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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PHYSIS Dec 23. 2021

매일 보상받기 좋은 리추얼

나의 가장 소중한 ‘등원길’ 리추얼

아침잠이 많은 나는 아들보다 딱 30분 정도 먼저 일어난다. 매일 덜 잔 것 같은 기분으로 깬다. 부엌으로 가 남은 잠을 떨쳐 내기 위해 물을 꿀꺽꿀꺽 들이켠다. TV 방으로 가 유튜브에서 '모닝 요가'를 검색한다. 재생시간은 20분 이하, 몸풀기도 20분 이하. 찌뿌둥한 몸이 아주 약간 풀린다.


아들이 잠에서 깨어나면, 우리는 한참 이불속에서 뒹굴뒹굴한다. 요일마다 아들도 나름의 패턴이 있는데, 꼭 목요일 정도가 되면 "유치원에 안 가고 싶다"라고 한다. 월요병이 아닌 목요병이다. 다행히 그러다 벌떡 일어나 놀다가 당연한 듯이 유치원 갈 준비를 한다. 나도 벌떡 일어나 계란밥을 만든다. 아들은 질리지도 않는지 계란밥을 해달라고 하는데, 밥에다 계란을 올리고 간장 약간, 참기름 약간, 깨 약간 비벼서 주면 땡이라 나도 간편하고 좋다.


평일 아침, 나의 가장 소중한 리추얼은 20분 남짓한 유치원 등원길이다. 차로 가기엔 너무 가까워, 아들의 킥보드가 유용하다. 아들은 킥보드를 탈 수 있어 즐겁고, 나는 빠르게 걷거나 뛸 수 있어 좋다. 영하 4도인 오늘도, 그렇게 등원했다. 우린 영하 몇 도까지 킥보드를 타고 갈 수 있을지 매일 시험 중이다. 덕분에 숨이 약간 가쁠 정도로 매일 이렇게 자의 반 타의 반 운동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덕분에 찌뿌둥했던 몸은 이미 온전히 ON 했다. 몇 번 헉헉대다 보면, 몸과 머리에 활력이 도는 그 기분이 나를 '뭐든 할 수 있겠다' 모드로 만들어준다.


등원길 리추얼은 운동에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아들의 여섯 살 아침 일상을 매일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요즘 따라 감사하다. 육아휴직을 하고 매일 차로 어린이집에 데려다 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새삼스레 느끼고 있다. 1년 정도 주중에는 떨어져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연가를 쓰고 아이를 바래다줄 때와도 역시 다르다. 마음이 편안하다. 한 살 한 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곁에서 함께 할 수 있어 더 소중하다. 원래도 표현을 잘하는 스타일이지만, 나는 더더욱 아이에게 '사랑한다'가 아닌 구체적인 상황과 감정을 말하게 되었다.


"사랑아, 이불에서 너랑 뒹구니까 너무 행복하다"

"사랑아, 언제 이렇게 '스스로 어린이'가 되었어? 기특한 아들"

"사랑아, 이렇게 네가 킥보드 타는 동안 엄마가 뛰니까 기분이 정말 좋다!"

"사랑아,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 보고 싶어서 어떡하지?"


아들은 '사랑해'라는 말보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더 환하게 웃는다. 그 때묻지 않은 순수한 웃음만으로도 내 리추얼은 매일 보상받는다. 아들이 불쑥불쑥 꺼내는 속마음과 자기가 만들어낸 재미난 이야기를 듣는 건 보너스다.


아이를 유치원에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 자주 하늘을 올려다본다. 땅과 바로 앞, 바로 옆 혹은 폰만 보며 걷던 나는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겼나 보다. 같은 하늘도 계절마다 시간마다 내 마음에 따라 다 다른 색인 걸 처음 알았네. 오늘은 아주 촉촉한 겨울 색을 띤 하늘을 보며 걸었다. 킥보드를 끌며, 지금 막 등원하는 아이와 엄마 혹은 아이와 할머니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공원을 시계 방향으로 도는 수많은 사람들을 재밌게 구경했다. 카페와 빵집의 아침을 여는 사람들을 보며 생기를 얻었다. 내가 남들에 대해 관심 있게 바라본 적이 언제 적이던가 생각해 본다.


이 시간만큼은 내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같은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아무렴 어때'라고 하는 나를 보게 된다.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만족감은 어떤 어마어마한 이벤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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