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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PHYSIS Jul 26. 2023

자유라는 오아시스의 위치

<자유론>

자유와 행복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의하면,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one's own mode) 살아야 행복한 존재로서 더 나아갈 수 있다. 그가 글을 쓴 그 시대(1859) 이래로 사람들은 남들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우리 사회가 개별성을 회복하도록 나아가야 함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본래 사람은 내면의 힘에 따라 "온 사방으로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려는 나무와 같은 존재"이다. 각 개인의 욕망과 충동은 사회 문화 속에서 다듬어지고 발전하며 자신의 독특한 성격이 된다. 그렇게 자기 고유의 색을 띤 욕망과 충동을 '굳센 의지의 통제 아래에 둘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정력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된다. 그러나 현재 사회는 그것의 결핍 시대가 되어, 남의 시선과 검열의 위협 속에서 살면서 자신이 뭘 더 좋아하는지, 자기 성격과 취향에 맞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고 키울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그보다는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 주로 무엇을 하는지, 심지어는 자기보다 높은 위치의 사람이 즐겨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그 말은 관습적인 걸 빼고 나면 그들에게는 따로 자기 고유의 기질이라는 것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정신 자체가 굴레에 묶여 있는 것이다." 군중 속에 묻혀 들어가길 좋아하고, 선택에 있어서도 흔히 하는 것 중에서 고른다. 생각과 감정 중에는 자기만의 것이 없어진다.



지금 사회를 들여다보고 쓴 것처럼 묘사가 생생하지 않은가. 각자의 개별성과 비례해 자신의 가치가 높아짐을 잊어선 안된다. "자꾸 묵종하는 버릇이 들면 성격 자체가 단조롭고 둔감해진다." "사람들이 자기 성향대로 마음껏 살기 위해서는 각자 다른 삶을 사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 즉 개별성이 곧 인간의 높은 수준의 발전이다.





자유와 독창성



자유를 허용해 개별성을 끌어올리면 독창성이 꽃 핀다. 즉 개별성은 자신을 평범함 속에 가두려는 사회를 벗어나 독창성을 꽃 피게 한다. 우리 주변의 좋은 것들은 모두 독창성이 뛰어난 사람들의 작품이다. 공중의 생각이 모여 여론이 되는데, 대중은 언제나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집합체로 존재하며, 더 문제는 그들이 그들과 아주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생각과 다름없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여론의 생각의 방향이 보통 수준을 넘었던 경우는 역사를 통틀어 한 번도 없었고 또 그럴 수도 없다. 밀은 이런 시대일수록 소수의 뛰어난 이들이 대중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자유롭고 거침없이 행동하고 살아가도록 장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이 시대에서는 획일성을 거부하는 파격, 그리고 관습을 따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인류에게 크게 봉사하는 셈이 된다." 누구든지 상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도 한다. 어떤 것, 상황, 생활양식도 각자의 취향과 추구하는 정신적 발전, 육체적 정신적 작용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각자의 경우에 맞는 다양한 삶의 형태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없다." 예를 들어, "동일한 생활양식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행동능력을 잘 키워주면서 최선의 상태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해주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모든 내적 삶을 황폐하게 만들어버리는 지긋지긋한 암초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매우 동의하는 바다.





my own mode and your own mode



존 스튜어트 밀은 이 책에서 개인의 자유의지보다는 시민의 자유 또는 사회적 자유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한 개인으로서 가장 손쉽게 먼저 해볼 수 있는 것은 나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일일 것이다.



사회가 개별성을 보장해 주기를 기다리고 외치기 전에 나부터 타인의 개별성을 존중하고, 그들만의 욕망과 충동을 이해하며, 가장 중요하게는 나만의 개별성을 다듬고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부터 대중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고 독창적으로 판단하고 내 삶을 설계해 나갈 줄 알아야 한다. 취향도, 관습도, 도덕적 기준까지도 절대적이란 건 없다. 밀이 말하듯 대중의 선호는 평범함 그 이상 이하도 아님을 받아들여 내 진정한 욕망, 충동, 성격, 취향, 본질을 깊이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즉, 개별성이 곧 독창성임을, 그것이 수준 높은 발전의 길임을 인식하고, 나만의 방식대로(my own mode) 살아가야 하며, 타인의 고유한 개별성을 존중하고 이해해야 한다. 개별성을 발휘해야 인류에 봉사하는 셈이라는 밀의 말은 조금 거창하긴 해도 깊은 울림을 준다. 내 멋대로 예술가적 삶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획일성을 거부하고, 맹목적으로 관습을 따르지 않는 것. 남다른 개성이 자유롭게 만개하도록 하는 것. "관습에 어긋나는 일을 최대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 정형화되지 않는 생각, 자신의 독창성으로 이롭고 아름다운 걸 창조해 내는 일, 자신을 둘러싼 족쇄를 깨뜨려 버릴 수 있는 강인함, 더 수준 높은 행동, 취향, 감각을 선보이는 일, 그러한 개별성으로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 나아가 타인에게도 그 가치를 전하는 일, 관습을 빼고 나서도 자기 고유의 기질로 가득 찬, 아무런 굴레 없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 그렇게 생명력 가득한 내면의 힘으로 온 사방에 스스로 자라고 발전해 나가는 나무와 같은 존재. 모두가 예술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누구나 예술가적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마저 관습이 되어 버린다면 그 또한 깨뜨릴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싶다.





자유라는 오아시스의 위치



나는 언제부터 이토록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을까. 어릴 때부터 다양한 형식의 자유라는 오아시스를 찾아다닌 것 같다. 그런데 오아시스에 가까워질수록 신기루임을 발견할 때가 많듯이, 내가 동경한 자유 역시 어떤 지리적, 물리적, 경제적, 사회적 영역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은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상태에 훨씬 가까운 것은 아닐까.



어차피 완전한 자유라는 상태는 있을 수 없고, 굳이 찾자면 죽음의 상태일 뿐일 것이다. 그 어떤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 그러니 그 완전한 자유의 상태에 도달하기 전까진 생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유로운 정신을 최대한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밀도 인정했듯, 그거야말로 인간이 충분히 행복해지는 길이다. 길게 말했지만 단순하게 말하자면, 남에게 피해 입히지 않는 선에서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서로 각자의 그런 다양함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인류는 더 높은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존 스튜어트 밀은 말한다.





+ 자유론에 대한 오해금지



<자유론>만으로 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을 오해할 수 있겠다. 이 책의 해제 부분을 읽으며 나는 그의 사상 일부를 체험한 것뿐임을 알았다. 해제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다른 책 <공리주의>와 <논리학 체계>를 언급하며 이 책 <자유론>이 그저 '쾌락과 본능에 따라 네 멋대로 살아라'가 아닌 "방향을 전제한 자유"를 설파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유론> 자체가 밀의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덕이 있고 현명한 사람은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며 지적, 감정적, 도덕적 자기 발전을 행복의 기준으로 설정했다고 본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논리학 체계>에서 "오직 완전한 덕, 이를테면 사려 깊음, 절제, 자기 통제의 덕목을 갖춘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라고 하고, <공리주의>에선 완전한 자유 complete freedom가 곧 고매한 덕 confirmed virtue이라 하였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강조하는 것은, 그 자유가 단순 쾌락의 추구이기 때문은 그러므로 결코 아니고, 우리 삶에서 각자 인간이 이를 수 있는 최선의 상태에 가깝게 끌어올리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자유란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는 것'이라 할 때, 그 '원함'은 방향 없이 제멋대로 함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한 방향을 옳게 하고 구체적인 경로와 방법 등은 '현명한 인간'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밀이 줄곧 주장하는 개별성임을 잊어선 안 되겠다. 밀이 말하는 자유는 "방향을 전제한 자유"이다. 완전한 자유는 고매한 덕에 다름없음을 기억하고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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