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지금껏 해온 걸 계속해야 할까?

끈기는 참아내는 힘이 아니라, 돌아오게 만드는 힘일지도 모른다.

by 메리힐데

끈기는 버티는 힘이 아니라, 나다움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힘일지도 모른다.


"꼭 지금껏 해온 걸 계속해야 할까?"

이 질문은 늘 ‘끈기’라는 말과 함께 따라온다. 한번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야 한다는 말, 힘들어도 버텨야 의미가 생긴다는 기준. 중간에 멈추는 건 나약함이라는 암묵적인 시선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의심한다. 이 길이 나와 맞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부족해서 흔들리는 건 아닐까 하고.


어릴 적, 도서관에서 책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지던 어느 날, 우연히 고개를 들어 마주친 한 문장이 있다.


지금 읽는 책이 재미가 없는가?
그건 책을 잘못 고른 것이다.


이 문장은 나를 ‘참아내는 독서’에서 풀어주었다.

"아, 내가 책을 싫어하는 게 아니구나.
다만 이 책이, 지금의 나의 것이 아니었을 뿐이구나."


그전까지 나는 끝까지 읽지 못한 책들 앞에서 늘 나를 탓했다. 재미없어도 참고 읽어야 성실한 것 같았고, 어려우면 내가 모자란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 문장은 조용히 말해주었다. 문제는 네가 아니라, 이 만남이 어긋났을 수도 있다고.


이 문장을 받아들이기까지 사실 작은 용기가 필요했다.

자기 비난을 끝낼 용기.

지금에서야 용기라고 부르지만,

어린 나에게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유레카!'에 가까운 기쁨이었다.


끝까지 읽지 못한 나를 변명하지 않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기쁨.

'내가 책을 싫어하나..?'가 아니라, '이 책이 내 스타일은 아니네'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


그때 처음 알았다. 계속하지 못하는 데에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는 걸.

이를 인정하는 데에는 정직함이 필요하다는 것도.






흔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라는 말은 마치 또래보다 앞서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좋은 대학을 가면 모범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고, 좋은 직장을 얻으면 신분이 상승하는 것 같은 기분.


하지만 과연 그럴까?


"넌 공부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니? 대단하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내 대답은 이랬다.

"그저 덜 참아도 됐을 뿐이야. 누군가는 5시간을 집중하며 앉아 있는 게 참을 만하고, 누군가는 5분도 버겁지. 5분도 힘든 사람이 1시간을 앉아있었다면, 그게 더 대단한 거 아닐까? 5시간 공부는 참을만해도 5분의 운동은 도저히 못 참겠는걸? 절대적인 성과를 보고 모든 사람을 같은 기준에서 비교하는 건 좀 이상한 것 같아.."


사람들은 끈기를 '이를 악물고 버티는 힘'이라고 말한다. 손에 물집이 터져도, 마음이 닳아도 계속 가는 능력. 하지만 내가 경험한 끈기는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다움과 멀어진 일 앞에서는 조금만 힘들어도 마음이 먼저 지친다. 억지로 붙잡고 있는 일은 손에 굳은살을 남기기 전에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결론 내린다. “나는 끈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그리고는 멈추기를 거부한다. 멈추는 순간, 나약한 사람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끈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지 못한 채로 버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다움을 만난 순간은 다르다.

힘든데도 이상하게 포기하고 싶지 않고, 중단해도 다시 돌아오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어렵다고 말하는데, 나는 설명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움직인다.


그 차이를 알아차리는 데에도 마음껏 기뻐할 용기가 필요하다.

"이건 내게 쉽다"라고 말하는 용기.

그리고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다"라고 정직하게 인정하는 솔직함.


그래서 나는 나다움자연스러움이라고 부르고 싶다.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어떻게 하든, 그저 나에게는 쉬운 것.


쉽다는 건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다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불필요하게 싸우지 않는 상태.
억지로 나를 설득하지 않아도, 이미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감각.

애쓰지 않아도 리듬이 생기고, 억지로 다잡지 않아도 다시 손이 가는 것.


'나'에 대한 정직함 속에서, 마침내 기쁘게 할 수 있는 것.


이 자연스러움 위에서 끈기는 새로 정의된다.

끈기는 참아내는 힘이 아니라, 돌아오게 만드는 힘이다.

같은 자리를 오래 쓰다 보니 어느새 생겨난 굳은살처럼,
의식하지 않아도 남아 있는 힘.



취미와 특기도 여기서 갈린다.

"취미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는 비교적 답하기 쉽다. 좋아하는 것,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하지만 특기를 묻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길을 잃는다. 성과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할 것 같고, 남들보다 잘해야 할 것 같고, 한 줄로 설명 가능한 능력이어야 할 것 같아서. 거창한 것을 찾는 마음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는 한없이 초라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너무 쉽게 지워버린다.


“이건 누구나 할 수 있잖아.”
“이 정도로는 특기라고 하기엔 부족해.”


하지만 사실, 그 말을 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일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는 걸.

다만 그것을 특기라 부르기엔 스스로에 대한 환상이 너무 클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특기는 다르다.
너무 쉬워서 설명하기 어려운 것.
너무 자연스러워서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흘러나오는 것.
그 일을 하고 있으면 이상하게 기쁜 상태로 머물게 되는 것.


어쩌다 한 번 찾게 되는 달콤한 디저트가 아니라, 매번 먹어도 질리지 않는 어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 같은 것.

근사해 보이는 다른 음식에 마음이 흔들리다가도, 결국 돌아오게 되는 집밥 같은 것.


이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특기는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보는 일이, 곧 나답게 사는 것의 첫걸음이라고 믿는다.



내게 그것은 '말하고', '쓰는' 일이다. 나는 삶을 살며 선택하고, 실천하고, 흔들리고, 다시 일어서는 그 모든 과정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것을 언어로 한 번 더 건너보고, 세상에 나누고 싶어진다.


잘하려 애쓰지 않아도 말이 먼저 와 있고, 글이 나를 부른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내 삶과 어긋나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말과 글을 ‘잘한다’고 말하진 못하지만, 그 일은 내게 어렵지 않다. 자연스럽고, 나를 살아있게 하며, 기쁘게 만든다.


어쩌면 특기란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내 삶과 자연스럽게 연결된 통로인지도 모른다. 그 통로를 통해 나는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을 조금 덜 외롭게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계속해온 시간만으로 계속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시간은 증거일 수는 있어도, 방향의 보증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꼭 지금껏 해온 걸 계속해야 할까?
아니면 지금의 나에게
여전히 자연스러운지를 정직하게 물어볼 용기가 있을까.


나다움이란

거창한 정체성이 아니라,

“이건 나한테 어렵지 않아”라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일이다.

그리고 솔직함을 신뢰하는 의지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오래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지금 읽는 책이 재미가 없는가? 그건 책을 잘못 고른 것이다."

우연히 만난 이 문장은 이제 '참아내는 삶'에서도 나를 풀어주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끈기가 없어서 멈추는 게 아니라, 더 이상 솔직해질 용기가 없어서 계속 버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다움은 늘 거창한 결심보다 먼저 몸으로 반응한다. 설명하지 않아도 다시 손이 가는 것, 잘하려 애쓰지 않아도 돌아오게 되는 방향. 그곳에는 억지로 만든 각오 대신, 오래 머물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나는 이제 묻는다.

"얼마나 오래 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돌아오게 되는가"를.


혹시 오늘 재미없는 책을 억지로 넘기고 있다면, 그건 우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만남이 지금의 우리와 어긋났을 뿐일지도 모른다. 놓아도 괜찮다. 그리고 돌아와도 괜찮다.


끈기는 끝까지 버티는 힘이 아니라,

잃지 않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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