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하고 싶어서 한거야

내가 쓴 글은 독자의 시선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by 메리힐데

책을 쓴다는 것.


내가 생각한 '글쓰기', 그리고 그것이 모여 이루어진 책이란 일목요연한 서론, 본론, 결론이 있고 그 속에 뚜렷한 메세지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통일성이 가장 중요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해야만 한다. 추상적이기보다 구체적이어야 하고 나를 모르는 사람이 읽었을 때 쉽게 공감에 이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의도한대로 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쓰려고 하는 나의 생각들에 색깔을 입히고 이름을 붙이기에 급급했다.

내가 책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대부분의 시간동안 학업에 매진하면서 나에게 책이란 '지식, 정보 전달의 창구'로서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궁금한 것이 있어야 책을 펼쳤고, 궁금한 내용만을 선택적으로 읽는 것을 '능력', '효율'이라 여겼으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구체적인 책일 때야 비로소 그 책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로스쿨을 휴학하고 '나'를 살피는 시간이 늘어서일까. 지식과 정보를 얻고 싶어서 책을 보는 빈도가 많이 낮아졌다. 대신 '작가를 만나고 싶다'는 느낌이 들 때 책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책은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야."

"책을 통해서 돈 들이지 않고 인생수업을 받을 수 있어."

"책은 네게 큰 도움이 돼. 책을 보며 깨달음을 얻어봐."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책을 보다 보니 깨달음을 얻게 된 때와, 깨달음을 얻고자 책을 찾는 것은 달랐다. 적어도 나에게는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전자의 경우에는 책을 보는 그 자체로 행복했다. 책을 읽는 순간 희열을 느꼈고, 작가와의 소통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다. '마약을 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구름 위를 거닐고 있었다. 후자의 경우에는 '조급함'이 밀려왔다. 내 인생의 해답을 얻기 위해 펼친 책인데 도대체 언제 답을 줄꺼지?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렇게 1/3, 2/3,,, 점점 책의 말미에 도달할 수록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괜히 봤어. 이 책 별로네."


필요에 의해 책을 찾는 것이 나쁜 행동은 아니다. 오히려 해답을 찾고자 하는 여러 방법 중 효율성과 효과성을 모두 가질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다만 나의 경우, 필요할 때에'만' magic spell(마법 주문)을 찾듯 책을 고르는 것은 고통 속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욕심'을 드러내는 하나의 표현이었음을 깨달았다.



잠들기 전 어제밤, 우연히 허지웅 작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술술 읽혔고 재미도 있었고 우선 글이 짧게 끝나서 좋았다. 물론 목차가 나뉘어 있기는 했지만, 그 목차 안에 글이 갇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목차를 먼저 보고 구미가 당기는 부분을 선택적으로 읽기도 하는데, 해당 책의 경우 목차가 많이 나뉘어져 있지 않아서 그럴 수도 없었을 뿐더러, 글을 읽다보니 목차에 해당되는 내용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어느샌가 그냥 '허지웅', 그가 궁금했다. 그의 생각이 궁금했고 그의 경험이 궁금했고, 책을 읽으며 그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생각했다.

'나'를 써야겠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책을 쓴다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껏 내게 글쓰기란 학교에서 주최하는 '대회'와도 같았고, '누가 누가 자기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잘 쓰나'의 배틀이었으며, 나에게 그러한 글쓰기가 의미 있었던 까닭은 '1등'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으니까.


글쓰기란 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심사 받는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내가 원해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나를 글로 표현하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으리라 생각했던 첫 결심은 잊고 있었다. 그저 '나의 글이 인정받을 수 있을까', '공감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반복했다. 그렇게 나의 삶의 중심은 '나'에서 '타인의 인정'으로 옮겨졌다. 글의 완성도를 위해 퇴고를 반복하던 나는 작가의 서랍에 쌓이는 글들에 차마 '발행'을 누르지 못하고 세상에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글을 쓰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읽은 허지웅 작가의 책은 나에게 다시금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었다.



'책'이란 작가가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읽은 독자에게 가서 닿을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 것이다. 작가의 역할은 어떠한 글이든 '세상에 내어 놓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작가를 만나게 되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물론 작가를 만날지 말지는 독자의 선택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나는 이제 위대한 작가가 되기 위해 책을 쓰지 않는다. 인정받기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 그럼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냥, 오늘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서.
다른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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