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도와줘'
'도움'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1. 눈에서 시작되는 도움과
2. 귀에서 시작되는 도움
요즘 들어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이상한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지금 이걸 도와줬다가 버릇이 되면 어떡하지?'라는. 그러고는 도와야 할 때가 왔을 때 문득 짜증이 밀려오고는 했다. 그 이유는 명확했는데, 나의 호의가 당연해지는 게 정말 싫었기 때문이다.
도와줘도 고마운 줄을 모르고 오히려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꼴이 보기 싫어서.
10번을 돕고 1번을 돕지 못하면, 나를 '천성이 못 된 사람' 취급을 하는 상황이 되니 짜증이 하늘을 찔러서.
물론 별 것 아닌 호의일 수도 있다. 내게 2개가 있어서 그 하나를 나누는 것뿐이니까.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서 하는 것뿐이니까. 상대에겐 전부이나 나에게는 일부일 뿐인 그 어떠한 것을 나누는 것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동시에 나의 호의를 당연히 여기고 감사할 줄 모르는 상대방을 마주하면 너무도 괘씸했다. 가끔은 호의를 베풀지 않으면 역정을 내는 이들도 있었다. 호의가 당연해졌을 때, 10번 잘하다가 1번 못했을 때, 그간 내가 베풀었던 호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현실에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도와주기가 싫었다. 도와주기는 싫고, 근데 그걸 외면하자니 내가 너무 나쁜 사람 같고.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가서 말했다.
"도와달라고 해, 그럼 도와줄게"
마치 내가 엄청난 것을 베푸는 것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원래 나의 것이었던 것처럼.
나는 그것을 어디에서 받았는지, 내가 가진 것 또한 아무런 대가 없이 받은 것임을 잊고는.
나에게 받고 싶으면, 와서 엎드려라. 머리를 조아려라. 그럼 내가 선심 쓰도록 하지.
부끄럽게도 나는 왕이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신이었다.
나의 도움은 '귀'에서 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나의 도움은 '무릎'에서 시작되었을 뿐이다.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루카 복음서 10, 25-37-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의 도움은 누군가의 '간절함'과 '무릎 꿇음'을 이용한 '왕관 놀음'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점점 더 '분노', '원망', '공허'로 가득 찼다. 높은 곳으로 오르려 하면 할수록 낮아지는 나 자신이 수치스럽게까지 느껴졌다.
이제는 내 눈으로 힘들어 보이는 이를 먼저 찾아야겠다. 이웃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참으로 감사한 선물이기도 하다. 도움을 받을 때도 감사하지만, 도울 수 있는 나이기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각자의 존재는 다른 이들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을 참으로 공경하고자 합니까? 그분께서 헐벗으셨을 때에 모른 척하지 마십시오. 바깥에서는 그분께서 추위와 헐벗음으로 고통받으시도록 내버려 두면서 성전 안에서는 그분을 비단옷으로 공경하지 마십시오. 역설적이게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때로는 신자들보다 하느님의 뜻을 더욱 잘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0월 4일, 오늘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이다.
눈으로는 사랑할 수 있는 만물을 보고, 눈으로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귀로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나는 바란다. 나의 육신으로 세상을 느끼며 그 속에서 '사랑'하는 일상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얘야, 네 일을 온유하게 처리하여라. 그러면 선물하는 사람보다 네가 더 사랑을 받으리라.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집회서 3,17-18-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1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