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나의 십자가를 지고

책은 절대진리가 아니다

by 메리힐데

도서관이라는 곳은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책들이 진열되어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모두가 무료다. 회원증만 있으면 하루에 적게는 3권에서 많게는 20권까지도 빌려갈 수 있다. 모든 책들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


나 한 번 읽어봐! 나 되게 재밌어! 나 매력있어!
내 주인이 나 되게 공들여 만들었어!


진열대에 꽂혀있을 때까지는 그래, 어쩌면 책의 주인은 그 책을 쓴 작가일지도 모른다. 혹자는 도서관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아니면 책을 살 수 있는 예산을 준 기관..? 뭐 아무튼.


그런데 진정 내가 책을 뽑아 회원증 바코드를 '띡'하고 인식한 그 순간, [대출내역서]가 '지이이익'하고 발급된 그 순간, 2주 정도의 시간 동안은 내가 그 책의 주인이 된다. 해석도 내 몫, 공감도 내 자유, 작가를 만날 수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작가, 책 좋네. 다른 책도 읽어 봐야지" 라고 할 수도 있고,

"내가 다시는 네 책을 읽나 봐라. 생각이 이상하네."라고 할 수도 있다.


작가를 만나서 비로소 그의 팬이 될 수도 있고, 작가에 대한 환상을 품어 팬이 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작가를 만나 비로소 안티가 될 수도 있고, 작가에 대한 오해로 안티가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떠한 과정을 거치든 이 모든 생각들을 통해 마주하는 공통된 결과가 있다.


나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내 생각은 어떤지.


[자유- 하고 싶어서 한거야]라는 나의 브런치 글에 보면 내가 책을 대하던 과거 모습에 대해 쓰여 있다. 과거의 나는 책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자 했다는 것.


나는 고통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의 책을 찾고 있었다. 나의 해답을 '나'에게서 찾기는 너무나도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들어서, 타인의 경험에만 의존하며 '아 그래? 그런거였어?'라고 생각해버렸다.


책은 '참고용'이다. '절대진리'가 아니다.

스스로를 책에 맞추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이기를 바란다.


책을 읽을 때 내가 지금껏 저지른 실수는 '불변의 진리를 찾기 위해서'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절대진리를 찾아가는 이유는 결국 그만 고민하고 그만 고통스럽기 위해서였다. 인생의 시행착오를 겪고 싶지 않고, 이겨내야 하는 시련이 참으로 싫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 성찰하고 고민하는 일은 나의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을 모두 바라보아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감정 소모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은 그 과정 속에서 내가 멈춘 듯 보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십자가를 대신 들어줄 힘 센 사람을 찾고 싶었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마태오복음서 10, 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태오복음서 16, 24-


처음 성경에서 '십자가'를 지고 사는 것에 대해 묵상할 때에는 '나를 버리고'에 집중했었다. '나'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사는 삶이 아닌 '타인',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뜻으로만 이해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


그런데 이번에 묵상을 하면서는 다른 부분에 눈길이 멈추었다.

'세 번째 넘어지심'.


예수님께서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넘어지셨다는 것.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 더 이상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게 되시어 얼굴을 땅에 대고 넘어져 계셨던 예수님. 그분의 얼굴이 땅에 닿아 있었다는 것. 십자가, '예수님 본인의 몫', 즉 '자신의 고통'을 온전히 겪으셨다는 것.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란, 절대지식을 얻고 무결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나의 십자가를 버리고 도망가는 꼴이다.


내가 져야하는 나의 십자가는 '넘어지는 것', '사람들이 밟고 다니고 온갖 짐승까지도 오줌을 싸고 똥을 누는 그 땅에, 나의 얼굴을 대는 것' '고통을 경험하는 것', '시행착오를 겪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의와 상식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자를 믿어선 안 됩니다.
오직 정의와 상식을 고민하고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달랐으면 합니다.
당신이 충분히 많이 읽고 많이 듣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상을 구분할 수 있는 맑은 눈과 밝은 귀를 갖는 행운을 누리길 바랍니다.

-허지웅, <최소한의 이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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