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이 아니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실패할 용기를 내라. 실망시킬 용기를 내라. 미움받을 용기를 내라.. 등등..
나는 가톨릭 신자이다. 불안하거나 걱정이 있을 때 결국 하느님을 찾게 되고는 한다. 하느님께 여쭤본다.
'이 길이 맞나요..?'
지금껏 나에게 하느님과의 대화는 '뽑기'와 같았다. 요즘 유행하는 '고민의 답'이라는 책을 보듯, 고민을 하나 생각한 뒤에 무작위로 책의 페이지를 편다. 그 책에는 '할 일을 해라', '용기를 가져라'등의 짤막한 메세지가 적혀 있는데 그것을 '해답'으로 여기는 것이다.
나의 신앙은 항상 질문과 그에 대한 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던 적이 많다. 행동하지 않고 걱정만 하면서,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질문만 던져버리며 하느님과 대화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이 길일까?', '저 길일까?', '이게 하느님께서 주신 생각이 맞을까?', '선으로 가장해서 찾아온 악이면 어쩌지?' 등등.. 이러한 질문들이 나온 나의 마음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불안'이 있었다.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나는 하느님을 밖에서 찾으려 했다. 책, 내가 믿는 사람들, 신학자, 신부님, 수녀님, 나보다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한 이들, 나보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들 등에게 '고민의 답'을 구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말을 곧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응답'이라고 믿으며 한 걸음씩 걸어 왔다.
'이 길이 맞나요?'
'역시 이 길이 맞았어. 저 신부님도 동의하잖아. 부모님도 동의하잖아. 친구들이 동의하잖아. 우연히 보게 된 책에서 그 말을 하고 있잖아. 이건 신의 계시야.'
라고 생각했다.
나는 하느님을 원하지 않았다. 하느님을 무당처럼 생각하며 그가 내려주는 내 삶의 해답을 원하고 있었다.
내 삶의 선택권을 가져야 할 때마다 나는 그것을 거부했다. 그저 하느님께서 선택해주시면 나는 그 길을 걸어가는 그의 병사가 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단 한 걸음도 내딛지 않았다. 왜냐하면 무엇이 하느님의 음성인지를 26년째 기다리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떠한 모습으로 나에게 오시는 줄도 모르고 어떤 생각으로 오시는 줄도 모르고 알고자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하늘에서 뚝 나에게 선물처럼 그 지혜를 주시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A라는 생각이 들면, '하느님, 이게 하느님이 주신 생각이 맞아요?' -- '아니면 어떡하지?'
B라는 생각이 들면, '하느님, 이게 하느님이 주신 생각이 맞아요?' -- '아니면 어떡하지?'
그렇게 고민하다가 결국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닐까봐 나는 걸음을 내딛지 않는다.
'나'로 살지 못하고 스스로 선택해야 할 것들에 대한 결정을 타인에게 유보하며 안심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방황하는 시기를 거쳤다. 우울증, 식이장애, 강박증, 불안증, 공황장애 등 신경정신과적 질병분류에 해당하는 것들을 '얻고'나서 치뤘던 대가가 있다.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을 극복하고 발걸음을 내딛을 것인지에 대한 스스로의 결정이다.
하느님과 소통하고자 할 때 나는 하느님을 찾은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즉각적인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으니까.
나는 쉬운 방법을 선택하고 싶었다. 확실한 방법을 원했다.
설사 내가 선택한 방법이 오답일지언정 '오답이라는 확신', 그 확실성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하느님에게서 즉각적인 대답을 찾지 못했다. 성경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많았고, 묵상 중에 드는 생각들도 의심하기 일쑤였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각인지 아닌지 확신이 없었다.
내가 흔들리면 흔들리는대로, 머뭇거리면 머뭇거리는대로, 그냥 그러는대로 두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느님께 묻는 나의 질문들은 아무데나 던져버리는 쓰레기와 같았다. 쓰레기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마구잡이로 던져버리는 쓰레기들. 어디 하나는 들어가겠지하며 아무렇게나 목적 없이 던져버렸다. 그렇게 내가 던져버린 쓰레기들은 악취를 내며 썩고 있었다.
지금껏 나의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마주한 굴곡들을 생각해보면 나는 주로 '안전한 길'을 택하는 삶을 살았다. 그 안전한 길이라는 것은 곧 확실한 길을 말하는데, 다른 이들이 이미 걸어본 길, 그래서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봐도 아는 길일 때에만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갑갑함이 있었다. '나는 다른 길로 가보고 싶었는데..'라는.
다른 길을 선택하고 싶었던 것도 '나'고, 가본 이가 없는 길을 걸어가기 두려웠던 것도 '나'고, 결국 안전하고 확실한 길을 선택하기로 결정한 것도 '나'다. 그래서 사실은 후회가 된 것도 맞고, 동시에 그나마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한 것도 맞고, 결국 내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실망한 것도 맞다.
다른 길을 가고 싶었던 것도 내가 맞고, 그 길을 걷기는 두려워서 타인이 가라고 한 길을 선택한 것도 내가 맞는데, 왜 나는 내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을까? 둘 다 내가 맞다면 어떤 길을 선택했든 모두 결국 스스로의 선택인 것일텐데 말이다.
실패가 두렵다. 실망이 두렵다. 시행착오가 두렵다.
타인이 나를 '실패자'로 볼까봐 두렵다. 타인이 나에게 실망할까봐 두렵다. 타인이 내가 겪는 시행착오를 보고 내 인생을 가치 없다고 평가할까봐 두렵다. 나는 타인의 평가가 두려웠다.
'결국 쟤 저거밖에 안되는 거였네'
'나는 네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데?'
'쟤 지가 뭐라도 된다고 착각하나봐' 라는 타인의 생각이 두려웠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나는 위와 같은 말들을 스스로에게 되뇌이고 있었다.
'결국 난 또 여기서 주춤거리고 있구나'
'뭐지..? 꿈 꾸던 나는 그냥 뭔가에 홀렸던건가?'
'내가 뭐라고, 아무 것도 아닌 내가 책을 쓰지?'
'네가 타인에게 네 생각을 말할 수 있을만큼 대단해?, 완벽해?, 무결해?'
그렇게 눈덩이처럼 불어난 공포심에 하느님을 찾았다.
그리고 물었다.
'하느님, 원하시는 길이 이게 맞아요?? 제가 하려고 하는 일들이 하느님으로 가장한 악의 일이라면 어쩌죠?'
'너무 두렵습니다. 제가 하느님 안에서 굳건히 서도록 도와주세요.'
이렇게 어리석은 질문들을 반복한 끝에 내 믿음이 얼마나 보잘것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선한 것 안에서도 악한 것을 고의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의심', '불안', '걱정',
곧 '불신'이라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