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존재와 사랑이 비로소 보입니다
느끼지 못할 때, 믿음이 자라납니다. 느끼지 못해서 당신이 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 시간들 당신 이름 부르짖다 보니 느껴지지 않는 당신의 존재를 비로소 알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으며 손으로 잡을 수 없을 때, 그래서 오감으로 세상 속 당신을 느낄 수 없을 때. 그때야 말로 내 안에 존재하시는 당신을 비로소 '존재' 그 자체로 믿는다 고백하게 됩니다.
며칠 동안 도저히 당신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서 실망의 실망을 거듭하다가, 다시 한번 감실 앞에 우두커니 앉아 한참 동안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러다 다시 찾아온 당신의 위로에 잠시나마 바깥 밴치에 앉아 새소리, 바람의 숨결, 팔과 얼굴에 추적추적 적시는 빗방울, 어느새 어여삐 피어난 꽃들을 보며 온 세상을 가득 채운 당신의 현존을 저의 들숨과 날숨에 느껴 봅니다.
그러다 문득 내 안에 자리한 당신의 빛이 보입니다. 오감으로는 맛있는 냄새, 시원한 바람, 뜨거운 태양, 달콤한 맛, 찬란한 색을 느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눈을 감고 나를 둘러싼 세상의 자극보다, 내면의 빛을 마주할 때, 무엇으로도 이름 지을 수 없는 엄청난 빛이 나를 채우고 세상으로 뻗어져 나가는 순간을 봅니다.
그것을 보고 나니 세상이 주는 어떠한 어둠도 어둡지 않고, 세상이 보여주는 어떠한 빛도 눈부시지 않습니다. 가장 깊이 아름다운 것은 모든 생명 속에 각기 자리한 당신의 빛이 뿜어져 나오는 그 순간일 것입니다.
지금 함께하는 이 위로가 언젠가 다시 실망으로 바뀔 그날이 올 것을 알기에, 이제는 그때를 대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기도해 보아야겠습니다.
오늘은 문득 성모님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옛날에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참 커 보였는데, 크고 보니 어머니의 뒷모습이 참 작습니다. 그러다 활짝 두 팔을 벌리고 계신 예수님의 뒷모습을 봅니다. 문득 이제는 그 팔에 안아달라고 칭얼거리기보다 그저 옆에 서서 제 두 팔도 함께 벌리고 당신 곁에서 함께 기다려드려 보고 싶어 집니다.
그러고는 당신의 시선 아래 놓인 성모님의 뒷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봅니다. 한평생 자식을 위해 희생해 온 어머니를 바라보는 자녀의 마음이 어떠할지 생각해 봅니다. 저 또한 어머니의 희생을 먹고 자란 자녀이기에 마음 여러 구석이 아려옵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성모님과 예수님 가운데로 자리를 옮겨 봅니다. 제 두 팔 벌려, 오른손에는 예수님의 왼 손을, 왼 손에는 성모님의 오른손을 마주 잡아 봅니다. 그렇게 우리 셋이 서로 미소를 나누어 봅니다. 그러고는 하늘로 고개를 들어, "이것이 성가정 아닙니까?" 하고 질문드려 봅니다.
당신의 사랑이 저를 살아있게 합니다. 당신의 사랑을 통해 사랑을 배웁니다.
근본 본(本)을 보니, 사람 인(人) 위아래로 십자가(十) 두 개가 그를 받쳐주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위아래로 당신이 받쳐주고 있으니, 본모습대로 살지 못할 이유가 없겠습니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