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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이 Apr 01. 2022

#1 좋은 성격이 직장에서 장점이 될 수 있나요?

@10년차 직장인의 직장생활 고찰

서두부터 시작하면 나는 전문성이 높게 요구되는 업종에서 근무한다. 법을 잘 알아야하고, 기술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이 높게 요구된다. 그뿐인가? 영문 레터는 기본으로 작성해야하고, 영어로 기술/특허에 대해 회의도 해야한다. 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일본어를 독해할 수 있으며, 중국어로 소통가능한 사람은 더 인정받는다. 어느 직장에서나 꼼꼼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높은 덕목으로 칭송되지만, 내가 속해있던 업계는 더더욱 그러했다. 이성적이어야 하고, 생각을 깊게 해야했다(그래서 감정적이고 생각이 깊지 않은 ESFJ인 나는 -NT-형을 아주 동경했다).


나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해도는 빠르지만 관심 분야가 아니면 정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영어는 읽기는 곧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은 글쎄.. 다른 사람앞에서 내 부족한 영어발음을 들키기 늘 두렵다. 꼼꼼함? 꼼꼼함과 섬세함이야말로 내가 가장 갖고 싶은 덕목이다. 그래서 난 늘 내가 속해있는 업계에서 업무 능력이 탁월하지는 않다는걸 자각하고 있었다. 


스스로 자기 객관화는 잘 되어 있기에(오히려 자기에 대한 평가는 너무 낮게 평가해서 문제다), 현 회사에서 죽은듯이 지냈다. 기술을 잘 알아야하는데 기술을 잘 알지 못하고, 관련 법도 사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풀이 죽은 채로, 있는 듯 없는 듯 일에 욕심내지 않고 살았다. 어차피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많으니까.


그래도 사람이 태어날 때 뭐하나 장점은 갖고 태어난다고...사람들을 좋아해서 사람들과는 잘 지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인기가 많았고, 사람들이 늘 주위에 있었다. 자랑같겠지만, 사람들이 나와 친해지고 싶어하고, 사실 이런것들이 내게는 익숙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내가 출근하면 회사가 시끄러워지고, 내가 휴가면 회사가 조용해진다는 피드백도 들을 정도로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냈다. 내가 참석했던 회식은 역사적으로 재밌었던 회식으로 인정되는 회식도 많았고(단, 내가 술을 마셔서 말을 많이 한다는 전제 하에), 그래서인지 나이차가 제법 많이 나는 회사 선배들도 나랑 회식을 하면 참 좋아해주셨다. 


회사에서 회의에 들어가서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사람들과 힘듦을 공감했다. 서로 자연스레 공감하니 힘들어도 장난치며 그 힘듦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속해있는 팀의 팀원들은 유대관계가 유달리 좋았다.


하지만, 업무 기본능력이 우수하지 못하다는 점은 늘 내 아킬레스 건이었다. 스스로 사람들과 재미있게 지내기만 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며, 자아 비판적일 수 밖에 없었다. 늘 자신감이 없으니, 업무 성과도 그럭저럭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청 힘든 릴레이 회의 끝에 후배가 나에게 선배님이 계셔서 회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었다고 부럽다고, 고맙다고 했다. 


사실 대부분의 직장인의 경우 어떤 업무 능력이 우수하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기분이 좋지, 분위기가 좋다는 피드백에는... 심드렁하지 않나? 단순 인사치례겠거니 하지 않는가? 그래서 후배의 피드백에 고맙다고는 했지만, 내면은 심드렁했다.


'사람들이 날 좋아하는게 도대체 뭐가 중요하지? 회사에서 성과만 좋으면 되는거 아닌가? 업무 효율만 좋으면 되는거 아냐? 좋은 결과물이 중요하지 도대체 분위기 좋고 재밌다는게 도대체 뭐가 장점이야? 사람 좋다는게 장점이야? '라는 생각이 늘 머리를 따라다녔다. 심지어, 생각의 꼬리가 "사람 좋은것만 있는 사람인데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 난 무능력한가봐"라고 자아비판을 하게 이르렀다.


그렇게 자아비판을 하던 중 어느 날 이런 내 생각에 일말의 의구심을 갖게 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내가 모시는 상무님이 "XX씨는 내가 차세대 여성리더로 눈여겨보고 있어"라고 하시면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겨주시며 부터였다. 이후 이상하게 나는 능력이 우수하지 않은데, 회사에서 보너스도 받고 좋은 성과도 받았다. 이때까지만해도 난 무능력한데 내가 그냥 운이 좋아서 라고 치부했다. 스스로를 운이 유달리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종종 '내가 무슨 능력이 있긴 한가? '상무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지?' 라고 한두번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봤지만 0.1초만에 '그런게 어딨어 그냥 운이나 인사치례지'하고 자답을 내렸었다. 


하지만 상무님께서 이후로도 계속 나에게 차세대 여성리더를 언급하셨고, 내 의구심의 씨앗이 점점 자라 '내가 설마 무슨 능력이 있는데 내가 모르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다. 


거의 몇개월...아니 1년동안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 사람 좋다. 웃기다(재밌다). 회의시간에 사람들이 좀 편하게 말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점 이외에 내가 유달리 뛰어난 부분이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친구와 MBTI 이야기를 하다가, 내 MBTI인 ESFJ가 싫고 -NT-형이 부럽다는 나의 말에 한 친구의 답변으로부터 이 의구심의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 구글 같은 회사는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선호하기도 한대. 그래서 E형을 더 좋아하기도 한대. 회사라는 곳이 사람들이 다같이 협동해서 일하는 곳이라 성격 좋은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대. 그러니 너무 부러워 하지마."


그때 뭔가 머릿속이 띵-함과 동시에 큰 위로를 받았다. 늘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것, 사람들을 재밌게 해주는 것이 업무와 전혀 무관하다고 믿었는데,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다는 것이, 분위기를 좋게 해준다는 것이 업무 상 강점이 될 수도 있겠구나 라고 그때 생각했다. 그리고 속물같지만 특히 그 들어가기 어렵다는 구글이라는 점에서 더 크게 위로를 받았다.


사실 지금도 우리 상무님 의중은 알 수 없다(솔직히, 현재로서는 알지 못하는 것이 속이 편하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사람이 좋은 것이 직장에서의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이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일할 때의 감정, 분위기가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절대 혼자 할 수 없다. 내가 제공하는 업무(서비스)는 결국 다른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얽혀있다. 그와 같이 일을 하건 그가 나로부터 서비스를 제공받던, 다양한 형태로 말이다. 일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여연결시킨다. 


그런면에서 생각해보면, 협업하였을 때 다같이 기분좋게 근무한다면, 기분좋게 서로를 도와가며 일할 수 있다면 업무 효율이 높아지지 않을까? 하기 싫다는 감정의 역치가 낮아지지 않을까? 하기 싫은 것도 참고 하게 되지 않을까? 같이 일하는 동료와 더 좋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싶다는 마음에 나부터 더 열심히 하게 되지 않을까?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은 능력중심의 사회이기도 해서 '분위기를 좋게 만든다'는 것이 높은 업무 핵심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자각을 하지 못하였을 뿐이지 업무를 할 때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것은 대단히 핵심 역량인 것이다. 


물론, 사람 좋은 것 "만"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다. 친화적이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든다는 것은 "촉매"정도의 역할을 수행한다. 사람이 좋고, 좋은 말만 해서는 절대 분위기가 좋을 수 없다. 회사란 업무를 하는 곳이기에 일단 어느 정도의 업무수행 능력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좋은 분위기를 만든다는 것 역시 무시해서는 안될 "역량"인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니, 업무 능력은 최고가 아니지만 사람들과의 친화력이 좋은 나같은 사람들이여. 더이상 스스로가 가진 장점이 없다고 스스로를 비난하지 말자. 회사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낮게 보지 말자.


이력서에 해당 장점을 다른 업무 능력처럼 서술하기 어려울 뿐, 우리에게는 타인만큼, 아니 어쩌면 타인보다 더 위대한 능력이 있다. 본인을 믿고 행동하자.




* 참고: 하기 글은 "피플웨어"에서 트위터 박승규(@wapj2000)의 트위터에서 가져온 내용으로 이 글의 영감이 되었기에 유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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