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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이 Apr 09. 2022

#2 열등감의 원인을 찾다

심리상담을 통한 스스로의 가치 찾기

글쓰기를 오랜시간동안 망설였다.


사실 누군가에게 열등감있는 모습으로 비춰지길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밝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비춰지길 바란다. 그래서, 지난번에 글을 쓰고 다시  잡기까지 오래걸렸다. 사실 지금까지도   미묘한 열등감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글에 나를 드러내기 두려웠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바랬다. 내 자신을 마주하기 정말 두려웠다. 나의 내면과 다시 마주하기 두려웠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정말 두려웠다. 앞으로도 이 주제로 글을 쓰기는 두려울 것 같지만, 이 시리즈의 글을 쓰고 나서 내 내면이 조금은 단단해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감에 글을 다시 재개하기로 다짐했다.


지난 번 글을 요약하자면, 나란 사람은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강박에 걸린 사람인데, 그 강박의 원인이 다른 사람과의 비교, 비교에 따른 열등감,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스스로에 대해 굉장히 게으른 사람이라, 내가 열등감이 심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다만 자존감은 높지 않다고는 인지하고 있었다. 심리상담을 5회쯤 진행하던 어느날이었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숙제를 주셨다. 태어났을때부터 차근차근 기억에 남는 나에게 글을 써보라고. 그래서 인생의 최초 기억인 5살부터, 8살, 11살, 12살 부터 차근차근 글을 써보았다.



내 최초의 기억은 5살때쯤 이었던 것 같다. 기억은 안나지만, 할머니네 집 옥상에 내가 혼자 있었고, 대충 노을지는 시간 때라 오후 4-5시쯤 이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아주 평온했다. 어떤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고, 내 마음이 참 평온했다.


그 다음은 8살-9살때쯤 기억으로, 사립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나서였는데 나만 국문 받아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엄청난 수치스러움을 느꼈었다.  그것이 내 열등감의 시작이었다.


사실 어린나이에 조금 충격이었던 것 같다. 집에서 원하는 걸 모든지 먹고, 하고 살았던 나에게 학교라는 곳은. 그 학교라는 곳에서 다른 아이들이 자라온 집안 환경이 대부분 나보다 좋다는 것을 깨우치게 됐을 때, 그리고 그것은 나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게 됐을 때. 이미 모든 아이들은 한글을 배우고 들어왔을 때 나 혼자서만 배우지 못하고 들어왔다는 것을 깨우치게 됐을 때.


그때부터 나는 부족하니, 노력을 통해 보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것이 많지 않으니 몇배는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서 스스로의 달리기 레이스를 시작하였다. 가진 것이 많지 않으니, 따라 잡으려면 더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초등학생, 중학생 때는 요령이 없어서 제대로 무언가를 하지는 못하였다. 사람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인생의 바운더리가 좁아 선택지가 좁았다. 그래서 이때까지만 해도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생각만 했지, 실천에 움직이는 건 글쎄, 돌이켜보면 많이 부족했다.


그러던 중 중학교 3학년때 과외선생님들을 만나 다양한 세상 이야기를 듣고,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면서 바운더리가 점점 더 넓혀지며 레이스가 점점 더 체계적으로 변했다. 레이스의 결승선에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매일 운동을 하며 몸매관리를 하고, 꾸준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만들고, 영어공부를 하고...나를 계발하며 레이스의 결승선에 달려가려고 노력했다. 가진 것이 없으니, 내 노력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요령이 없어서 모자르게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달려갈수록 결승선이 점점 더 멀어져갔다. 내가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 될 수록 내 이상향은 점점 더 업그레이드 되어갔다. 그래서 나의 목표는 항상 내가 달성할 수 없는 쪽에 있었고, 나는 늘 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결승선이 점점 더 멀어져서 달리면서 넘어질 수도 없었다. 개인적으로 슬픈 일이 생겼어도 슬픈 감정탓에 그날의 할당량을 달성하지 못한 나를 비난하곤 했다. 슬픈 내 자신을 위로하기는 커녕 다그쳤다. 지금 그 감정에 매몰되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내가, 감정을 컨트롤 하지도 못하는 감성적인 내가 너무 한심했다.


모든 일상이 업무처럼 "효율"중심으로 흘러갔지만, 나는 '내 목표 속의 나'와 '내 현실 속의 나' 사이의 괴리감 사이에서 매일매일 실패감을 맛보면서 점점 스스로를 비난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더 잘난 사람은 되어갔지만, 자존감이 낮은 불행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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