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해도 되는거, 너무 좋다

스위스 숲 속의 작은 집에서 평온한 일주일

by 메이 이혜림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거, 너무 좋다"

남편과 창문 앞에 서서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한다.

하루종일 비가 그쳤다가, 쏟아져 내렸다가 짙은 안개가 산허리를 감췄다가 슬며시 보여줬다가

집 앞 장미꽃은 얼마나 활짝 피었는지, 빗방울을 머금은 장미꽃이 얼마나 깊은 향이 나는지 그렇게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자세히 관찰할 시간이 없었던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중.




여행 중에는 언제나 가야 할 곳 봐야 할 것 먹어 볼 것들이 넘쳐난다.

이 곳 스위스에서는 산 속으로 들어오면서 그런 리스트가 우리의 세계여행에서 잠시 빠졌다.

말 그대로 '일상'만이 남았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보내는 일상과는 사뭇 다르다.


아무래도 없는 것들 투성이다.

숙소가 깨끗하지만 그릇 건조대가 따로 없어서 설거지한 그릇을 엎어두고 말려야 한다.

처음엔 너무 불편했는데 요령이 생기니까 오히려 깔끔하고 좋다.

청소기나 빗자루도 없어서 어쩔까 하다가 키친타올 한장 들고 바닥을 쓰윽 쓸어 한 곳으로 머리카락과 먼지를 모아 버리며 청소하니 참 편하다.


세탁기도 따로 없어서 속옷은 매일 손빨래 하고 (남편은 이리 안했었음) 겉옷은 두 눈 딱 감고 몇 번 더 입어야지,한다. 하하 그렇게 없으면 없는대로, 잘 지낸다.


당장 오늘 아침부터 먹을거리가 없어서 남편이 산 아래 마을에 있는 마트에 걸어갔다왔다.

왕복 1시간 이상 걸리는걸 보니 만만하게 볼 거리는 아닌데. 그렇다고 또 걸어서 못 갈 거리도 아니고..

결국 우리는 8일간, 산을 오르기에 벅차지 않을 만큼만, 그렇지만 또 너무 부족하지는 않을 만큼 고심해서 장바구니를 채우며 왕복 한시간 거리의 산을 타며 장을 보러 다니겠지. 아마 우리에게 적당한 양의 음식에 대해서 또 한번 배우는 기회가 될거다.


남편이 오늘 사온 장바구니 가득, 55000원. 하하, 체감물가가 한국보다도 훨 ~ 씬 비싸다.

마트도 멀고 물가도 비싸니까 정말 알뜰살뜰 파뿌리 한조각까지도 아낌없어 먹어야한다.

그런 생각을 하니, 이 곳에서의 생활이 더 기대되고 재밌어진다.

이렇게 간단하게 먹는 아침도 이제는 너무 맛있다. 또 너무 만족스럽다.

점심은 간단하게 남편이 라면을 끓여줬다. 라면 두 봉지에 김치 한 봉지.

게다가 오늘은 파리에서 가져온 나무젓가락도 있다.


"점심은 밖에서 피크닉 어때?"


비가 막 그치고 난 직후, 상쾌한 풀내음을 맡으며 먹는 점심은 꿀맛. 비치 되어있는 캠핑 의자를 휙 휙 펴고

비에 젖은 테이블 위에 라면과 그릇들을 휙 휙 올리고 호로록 점심을 먹고, 쓰윽 가져가 설거지 하면 피크닉 끝.

간단하고 단순하니까 더 좋다.


즐겨 찾는 스타벅스 카페가 없지만 괜찮아, 에스프레소 캡슐 찐-하게 내려서 우유 살짝 넣어 초코 비스켓과 함께 먹는다. 저녁은 감자를 간장에 살짝 조리고, 점심에 먹고 남은 김치와 깻잎무침, 김과 함께 간소하게 차려 먹었다.

한국에서라면 메인요리가 없다고 생각될 밥상. 이 곳에선 진수성찬 :) 그동안 다녔던 여행지와 다르게 지낼수록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남편과 나는 매우 만족스럽다. 그 어느때보다도 마음이 편안하다. 어쩌면 그동안 우리 여행이 너무 넘치는건 아니였을까? 물건도, 음식도, 경험도 모두.


우리가 지내는 장소와 환경만이 바뀌었을 뿐인데 단 하루만에 우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많이 바뀌었다. 인터넷을 덜 사용하고, 창 밖을 더 자주 보고 더 많은 시간 마주보고 앉아서 더 많은 대화를 나눈다. 물론 더 많이 함께 웃는다. 참 신기하다. 밤에는 샤워하고, 함께 영화 한편 보기로 했는데 벌써부터 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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