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었던 시간
남편의 3일 오프(휴무) 가 시작됐다.
허리에 손을 올리고 진지한 표정의 남편이 말했다.
여보! 3일간 집안일 아무것도 하지마!
넌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일 해!
두 번째 원고 마감일이 얼마 안 남아서
살림+집밥을 하면서
그 외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 앉아있는
내가 안쓰러운 남편이 내린 특단의 조치.
그렇게 전업주부 남편을 부리는 (?)
3일간의 일상이 시작됐다.
남편의 3일간의 휴무 시작 전날은
내가 주방에 선 마지막 날이었다.
미역국을 끓이고 부추전을 해서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고,
남편은 야간 출근을 했다.
다음 날 아침.
그러니까 남편의 전업주부 첫날.
남편은 퇴근길에 나 아침으로 챙겨 먹으라고
내가 좋아하는 빵을 사 왔다 :)
슈크림 빵을 뇸뇸 먹으며
상쾌한 아침 시작-
작업실에 틀어박혀 글을 쓰다가
남편이 점심 먹으라고 부르면
쪼르르 나가서
남편이 차려준 점심밥을 먹었다 :)
냉장고에 남아있던 양파 조각을 넣고
달달 볶아 달달하고 매콤한 파스타
+ 그리고 어머님이 주신 한 박스의 피자 ㅎㅎ
오븐에 구워 먹었다.
점심을 먹고 이제 청소를 하려고 하니
내게서 청소기를 뺏은 남편은
다부진 표정으로 말했다.
앉아 있어 앉아 있어!
쉬어! 아무것도 하지마!
그냥 앉아 있어!
내가 다 할게!
그래서 이번에는 청소기 돌리고
빨래 개는 남편 옆에 앉아서
나는 읽고 싶던 책을 원 없이 읽었다.
오후에는 함께 산책을 했다.
남편과 손 잡고 하는 산책이 얼마만인가
헤아려보니 마지막 산책이 기억나질 않는다.
우리 부부. 요즘 참 열심히 성실하게도 사는구나.
오랜만에 나선 산책길의
날은 맑고 달은 밝았다.
그만큼 추웠지만.
주전부리를 사 와서
우리만의 해피아워 타임 :)
요즘 남편과 보내는 시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살 뺀다는 핑계로
근래 들어 나는 과자를 따로 안 사고
남편 과자 조금만 먹을게! 하는데
매번 내가 거의 다 먹는 것 같다 ㅎㅎ
그거 다 알면서도 늘 속아주는
착한 남편.
확실히 책 출간을 준비하며
마음이 붕 뜨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사실 나의 생활을 똑같다.
여전히 글을 쓰고, 글을 고치고, 글을 보낸다.
마냥 붕 떠서 내가 이룬 첫 책 출간!!!!! 이라는 꿈을
만끽하는 것은 아주 잠깐.
다시 작업실에 틀어박혀 글을 쓴다. 여전히. 똑같이.
오늘 남편이 점심을 만들고 있을 때
내내 베베 꼬인 몸으로 책 작업을 하고 있다가
남편 옆에 가서 구시렁거렸다.
하기 싫어~~ 하기 싫어~ 글 쓰기 싫어~
남편은 웃는 얼굴로 아기 어르듯 다 들어주더니
그래, 마음껏 칭얼거려라!라고 말했다.
근데 그 순간.
나는 되려 내가 쓰고 있는 부정 단어가 크게 와닿았다.
내 뜻대로 맘대로 잘 안돼서 부침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 쓰는 게 정말로 싫은 건 아니었다.
곧바로 태세 전환하고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밌어~!
그리고 다시 작업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책상 앞에 앉아서
정말로 재밌다는 마음을 담아 글을 썼다.
난 백수잖아!
백수인데 뭐 어때-!라고 말할 때마다
남편은 "네가 왜 백수야. 글을 쓰는데. 작가지."라고 말했다.
남편에게 직업이라는 것은
꼭 그걸로 돈을 벌어야지만
가질 수 있는 이름표가 아니었다.
집에서 살림하며 하고 싶은 글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혼자 끄적이던 순간마다
가장 힘이 되었던 건 책 한 권 출간한 적 없는
그리고 언제 출간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나를
늘 작가라고 불러준 남편이었다.
그냥 난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재밌게.
밤에 남편이 설거지해둔 모습을 보고
픽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씻은 그릇들 말려 놓는 위치와
행주 말려놓는 것 하나까지도
그 모든 것이 내가 주방 마무리할 때의 모습
그대로 똑같이 되어 있었다 :)
나의 규칙과 나의 루틴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이해해주는 남편.
이런 사소하지만 결코 절대
사소한 게 아닌 모습을 볼 때마다
그냥, 난 늘 감동이다.
오늘은 고마워서 내가 아침 준비.
우리 남편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딸기인데
요즘 딸기값 너무 비싸서 사본 적 없다. ㅜㅜ
이번에 오아시스 마켓에서 딸기값 조금 내렸길래
냉큼 장 보면서 샀다!
아침에 만나는 이 싱그러움이 참 좋네.
점심은 남편이 만들어준 쭈꾸미볶음!
전업주부 남편과 이틀을 살아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너무 편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살림을 해주고 밥을 차려주고
곁에서 알뜰히 챙겨준다는 게
얼마나 호사스러운 시간인지 새삼 알게 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간 하고 있던 주부의 일이
얼마나 가족에게 가치로운 일인지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의미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나를 언제나 이쁜이~ 라고 부르는
우리 어머님.
며느리가 책 썼다고
그게 너무 기쁘고 대견하다고
우리 엄마께 전화하셔서는
"내가 너무 기분이 좋고 기뻐서
이게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사돈어른이랑 이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
전화했지 뭐예요."라고 하셨다고.
우리 딸 시댁 하나는 정말 잘 만났다라고
말씀하시던 우리 엄마. ㅎㅎ
그러게. 지금 보니까 나는
시댁도 잘 만났고 남편도 잘 만난 것 같다.
내내 감사하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