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에게도 차가 생겼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남편에게 차가 생겼다. 아무튼간에 결혼 6년만에 드디어 차를 샀다. 자동차 산다고 빚 내기는 싫어서 몇 개월간 돈을 모아 적당한 가격대의 중고차로 구입했다. 그동안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았던건 우리 부부의 생활에서 굳이 차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자차보다 대중교통이 훨씬 편한 서울에서 오래 살았고, 집에서 직장까지 걸어서 출퇴근 했다. 직장을 이직하며 서울은 벗어났지만, 이곳에서도 집에서 직장이 가까워서 도보로 출퇴근이 가능했다.
일상 생활에서 꼭 필요하지 않으니까 굳이 구입하지 않았던 것. 그런데 이제 우리 부부의 라이프 스타일이 많이 바뀌고 있다. 곧 이사를 가면서 출퇴근에 자차가 필요해졌고,자동차로 전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시골 땅을 알아봐야 할 목적도 생겼다. 너무 당연하게 그동안 자동차 없이 살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너무 당연하게 자동차를 구입했다. 결혼 후 6년만이었고, 남편에게는 인생 첫차였다.
남편은 한동안 방구석에서 아이패드로 중고차 목록만 주구장창 보더니 하루 날 잡고 중고차 매장에 가서 본인이 원하는 기종과 옵션을 콕 찝어서 바로 계약금 걸고 구입해왔다. 중고차를 구입한 과정에 대해서도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나는 정말이지 차와 운전에 대해서라면 아무것도 몰라서 음, 그냥 우리 집 가정경제 주머니를 쥐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적당한 가격에 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월요일에 구입하고, 금요일에 탁송 받았다.
아침부터 차 온다고 호들갑 떨고 (내가!)
부지런히 점심 전에 할일 다 끝내놓고 (내가!)
어디라도 드라이브 가자고 했다 (내가!)
여유로운 드라이브를 위해 집에서 미리 따뜻한 아메리카노도 내려왔다.
차로 움직이니까 한겨울인데 얇은 경량패딩으로
가볍게 입어도 되는 거 너무 좋았다 :)
집앞에 있는 주유소에서 주유하고
네비도 아무것도 안 켜놓은 상태로,
"여보, 우리 근데 어디가?"
"글쎄. 몰라. 어디 가지?"
막상 드라이브를 하려고 하니
어딜 가야할지 모르겠는거다. 푸하하
그래서 그냥 지난 달에 청약 당첨된 우리 아파트 잘 짓고 있나 보러 왔다. <나 혼자 산다>에서 이시언 배우가 왜 청약 당첨 되고서 아직 공사중인 아파트를 보러 그렇게 자꾸 가고 또 가고 하는지 알 것 같던 마음이 들었다. 아파트 공사현장 둘러보고 주변 환경도 쓰윽- 보고 나니, 할 것도 갈 곳도 더는 없어서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자동차가 생겨도 갈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이 참 단조롭게 살고 있는 우리 부부구나 새삼 또 느꼈다.
운전하는 남편의 옆모습을 흘깃 바라봤다. 해외여행하면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차를 아예 운전 안했던 건 아닌데 오늘 남편의 얼굴은 그때와 많이 달랐다. 짐짓 진지하고 사뭇 설레보였다. 본인 소유의 차가 생겼다는 거. 그게 우리 남편을 행복하게 해주는듯 했다. 남편이 좋아하니 나도 좋았다.
집에 오면서 마침 집 근처에 엄청 큰 마트가 오픈한게 떠올라서 잠시 들렸다.
(나 이사가려니까 좋은 거 다 생기는 우리 동네!)
마트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마트에 가다니!
여보! 신기해!
전단행사를 모두 지나쳤는데 콘 500원은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남편 두 개. 내꺼 두 개. 그리고 보너스로 내꺼 하나 더 사서 나오는 길. 행복하다. 오늘 별일 없었지만, 그냥 그냥 오늘은 되게 많이 행복했다. 어제는 남편이랑 나란히 노트북 앞에 앉아서 자동차보험 가입한다고 인터넷 검색하고. 오늘은 '자동차세가 일 년에 몇 번 낸다고?' 그러면서 세금 공부도 했다. 중고차 사면서도 "매도세가 뭐야?" "수수료가 뭐 이렇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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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청약 당첨 되어 아파트 계약 할 때도 그렇고.
이번에 처음으로 차를 구입할 때도 그렇고.
근래 들어 배우는 게 참 많다.
나는 여전히 내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참 많고, 이 모든 것을 남편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다.
둘 다 처음이라 서툴고, 아무것도 몰라서 때론 실수도 하고 손해도 보지만. 요즘 우리 둘은 가끔 마주보며 그런 말을 한다.
"우리 지금, 진짜 어른이 되고 있어!"
사고 싶은 것, 필요한 것이 생기면 기꺼이 구입할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자립력이 커지고, 통장이 무거워지고 그만큼 우리 부부가 함께 자란 것 같아서
그냥, 조금 뭉클한 요즘의 나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