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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이혜림 Feb 03. 2022

남편의 전업주부 생활 종료

8일간의 휴무가 우리 부부에게 가져다준 것


남편의 8일 휴가가 끝났다.

나는 남편에게 전업주부 역할을

다시 이어받았다.




* 지난 글 보기

https://brunch.co.kr/@merrymayy/76




8일간 오늘은 뭐 해 먹지, 장을 뭘 보지?

냉장고에 남은 게 뭐지

날 좋으니 이불을 세탁할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어,

너무너무너무 너-무

몸도 마음도 편안한 시간들이었다.


이렇게 몸 편한 생활이 쭈욱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주방을 서성거리며

삼시 세끼 맛있는 집밥을

차려주었던 남편.





그런 남편 덕분에

살림하지 않아서 남는 시간에

이렇게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내 앞에 식사가 차려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ㅎㅎ





전날 식빵을 사서 툭, 팬트리에 넣어놓고

남편이 아침에 뭐 먹고 싶냐 물으면

(이미 결정해두었지만 고민하는 듯)

음... 프렌치토스트! 하고

외치던 나날들.


벌써 그립다.





그런데 막상 남편의 출근일이 되고,

내가 다시 살림을 도맡아서

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세팅이 되고 나니,

신기하게도 전에 없던 활력이 생기고

생기가 돌았다.


응? 이 느낌 뭐지?


마치 그동안 '지금'을 기다렸던 것처럼

자, 이제 다시 시작해 볼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살림을 돈 안 되는 노동이라고 생각해서

내 생활을 돌보며 밥 지어먹는 일을 등한시하기도 했고

그런 일을 전업으로 하는 나를 무시하기도 했으며

이런 마음들을 긁어모아 끌어안고

나 자신을 다치게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살림을 전업으로

수년간 해오면서,

그리고 이번에 잠시 멀리 떨어져 지내보면서

살림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 일이 내게 얼마나 잘 맞는지

또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시금 알게 됐다.


살림은 결코 무시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돈이 안 되는 노동이 아니라

돈이 안 돼도 기꺼이 해야 하는 일.

꽤나 에너지와 품이 많이 드는 일.


그러나 삶의 필수 불가결한 일이며

'잘' 살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생활의 중심으로

바로 세워야 하는 일.


단정하고 단단하게 꾸려나가는 생활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집이 되어 준다는 것.


살림이 곧 집이고, 삶이라는 것.

그걸 이번에 깨달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살림을 대하는

나의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내 역량보다 버거운 직장 생활을 하느라

집안 살림에 신경을 전혀 못 쓰던 시절을 지나

티끌 하나 없이 청소하고 단장하느라

수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던 시절을 지나

지금의 내가 있다.


애정을 가지고,

정성으로 마음을 담아 살림을 한다.

적당하고 느슨하게

그러나 야무진 손길로.




온라인 식자재 마켓에서 주문한 식재료





이번 주 주말까지 먹을 식재료로 가득 찬 냉장고.


어젯밤에

남편에게 살림을 이어받기 전

냉장고를 열고 정리부터 했다.


부족한 것들을 챙기고

미리 새벽 배송으로 식재료를 주문해두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 냉장고부터 채웠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획을 짠다.

오늘 점심은 남편이 먹고 싶다던

삼치를 오븐으로 굽고,

올리브유와 레몬즙을 뿌린 샐러드를 내오고

어제 남긴 카레를 마저 먹자!


저녁엔 달걀을 삶고 고구마를 굽고

한라봉과 함께 가볍게 혼밥 하자.


내일 아침은 쌀뜨물 미리 받아

두부 잔뜩 넣은 김치찌개를 끓이고

취나물 무침과 계란말이를 내어야지.





남편이 오늘 삼치보단 찌개가 먹고 싶다 하여

급하게 선로를 바꾸어

오늘 찌개 / 내일 생선구이로 변경.

이쯤이야, 프로 주부는 가능하지 :)


요리하기 전

거실에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에

핸드폰을 연결하고 음악을 틀었다.


오랜만에 쌀을 씻고 찌개를 끓인다.

찌개가 알맞게 우러나올 때까지 끓이는 동안

식탁의 작은 의자에 앉아

야금야금 아껴먹는 곶감처럼

줄어가는 페이지에 아쉬워하며

책을 읽는다.


아, 이거지!

책은 이렇게 읽을 때 제일 재밌지!



자. 다시 돌아왔다.

나의 본 일터로 :)





밥 먹고 남편이 출근하고 나서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널어 말리고

춥지만 충분한 환기를 하고

널어둔 이불을 걷고 세탁기를 돌리고

모처럼 바닥 걸레질을 했다.







나의 손길로 정돈된 집안 곳곳을 둘러보니

흐뭇-한 만족감이 피어오른다.


그냥 깨끗하게 정돈된 공간도 좋다.

그러나 내가 내 손으로 어루만지며

정돈한 공간은 더 좋다.


이번 8일간의 역할 교환은,

단순히 남편이 긴 휴무를 맞이해


1. 주부인 아내를 도와 살림을 하고

2. 아내는 그 덕에 원고 마감을 쳤다.


단순히 이 사실을 넘어서

수많은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우리 두 부부에게

새삼스러운 살림의 가치를 일깨워주었으며

아내는 내가 하는 살림이

이토록 가치 있는 노동임을 알게 됐고,

남편은 살림이 만만치 않다는 것.

그러니 앞으로는 좀 더 집안일에 동참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얻게 됐다.


그리고 나는-


1. 잘 쉬어주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

2. 잘 쉬는 법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3. 아는 걸 넘어서 잘 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4. 앞으로도 잘 쉬자!


그런 다짐을 하게 했다.


8일간의 휴식 후 만난 나의 살림은

너무 어여쁘고, 소중하고, 고맙고

아주 중요한 나의 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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