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남편의 19번째 월급날이 돌아왔다.
세계여행 한다며 첫 번째 직장 그만두고
세계여행하고 돌아와서 6개월 정도
매일 부부가 함께 여름방학처럼 놀다가
그해 가을에 재취업해서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벌써 19번째 월급이라니.
남편의 월급 회차가 늘어날수록
우리의 세계여행은 점점 옛 추억이 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대화에서
세계여행 추억이 자주, 많이 회자되는 걸 보면
여행은 정말이지, 잘 다녀온 것 같다.^^
통장에 월급이 입금되었다는 메시지가 뜨면
책상 앞에 앉아 이번 달의 수입결산을 낸다.
커다란 빵을 잘라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듯
월급의 절반 이상을 툭 떼어내어 저금하고 난 뒤
남은 것을 작고 소소하게 나누어
용돈, 생활비 등 지출통장으로 보낸다.
오늘도 알맞게 딱 떨어졌다. 뿌듯하다.
가끔 딱 떨어지지 않고 금액이 부족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아내의 수입을 몽땅 모아두는
예비비 통장에서 끌어다가 쓴다.
그럴려고 모아두는 통장이니까.
원룸에서 살다가 투룸으로 이사 왔다.
자동차 없이 살다가 자동차를 샀고,
빚 없이 살다가 주거 대출이 생겼다.
사는 집이 커지고, 자동차가 생긴 만큼
지출의 종류와 규모도 티 안 나게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삶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내가 가장 많이 중점을 두고 고민하는 부분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의 여부다.
투룸의 집도, 자차 운용도, 주거 대출도
모두 현재 우리 생활에서 감당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진행했다.
그러나 감당 가능한 것들 중에서도
굳이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있다는 걸
요즘은 또 알아가고 있다.
나이를 먹고 경험과 경력이 높아질수록
삶의 규모가 확장되기 쉬워지는 것 같다.
점점 더 큰 규모를 감당할 여력이 되기 때문이다.
누리고 싶어지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지출의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다.
요즘 우리 집이 그렇다.^^
투룸, 자차, 대출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삶의 반경과 규모가 많이 커지고 넓어졌다고 느꼈다.
앞으로 남편과 함께 이뤄가고 싶은 꿈이 많은데
그 꿈들은 죄다 돈이 드는 것들이다.
가령 민박집 운영이라던가
두 번째 세계여행을 떠난다던가
밴 라이프를 시작한다던가
이렇게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해서
그다지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누리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을,
다시 내 삶의 리스트에서 조금씩 삭제해나가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상기할 수 있었던 남편의 19번째 월급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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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정신 혼미해져서 옛날 습관대로 살다가도
돌고 돌아 언제나 그렇듯, 작고 소박한 습관만이 남는다.
그리고 단순한 삶. 미니멀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