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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리 Nov 04. 2024

7급 또 광탈했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진다

  서울시 7급 시험을 치르기 위해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에 다녀왔다. 6번째 치는 시험이다. 안될 걸 알면서도 자꾸 도전하는 이유는, 9급 발령 나서 10살 넘게 차이나는 공무원 동기들을 보며 주눅 들기도 고, 남들보다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한테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발령 나고 나서 2달 동안 거의 공부를 못했는데도, 몇 년 간 봤던 내용이라 그런지 생각했던 것보다는 머리에 많이 남아 있긴 했다. 시간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러나 만점 가까이 받아야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광탈할 것이다.


5년 간 버리지 못한 시험지들


  시험을 치고 나오며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시험에 미련을 못 버려서 수험서를 버릴지 말지 고민된다는 얘기를 했다. 아버지께서는 공부를 계속하든 말든 그냥 두라고 하셨다. 통화를 끝내고 서울역 근처 카페로 향했다. 브런치를 통해 알게 된 작가님을 만나 재무 컨설팅을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브런치를 하면서 직접 뵌 작가님들이 두 분 있는데, 달보님과 언더독님이다. 두 분의 글이 멋있어서 팬이 되었다. 어쨌든 달보님의 북토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 달보님이 했던 얘기 중 치지 않아 먼지가 쌓인 기타, 실패한 시험의 수험서 같은 물건들을 치우지 않고 방에 두면 그 물건들이 알게 모르게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 얘기 듣고 많이 뜨끔했었다. 그런데도 막상 집에 와서는 치우지 못하고 계속 두었었.

  카페에서 언더독님을 만났다. 내 얘기를 들은 작가님이 7급 시험을 포기하고 일하면서 돈 모으는 데 집중하라고 하셨다.  나이 때까지 모은 돈도 없기 때문이다. 작가님이 알려준 대로 실천할 일이 막막하지만, 7급 시험을 포기하라는 단호한 작가님 얘기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공시생일 때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커피 가루를 물에 타지도 않고 숟가락으로 떠먹었다는, 최연소 7급 합격자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녀를 따라 했다가 위장이 쓰리고 머리가 어지럽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몇 번 한 뒤로 커피를 아예 안 마시게 되었다.

  7급을 4개월 만에 합격했다는, 단기 합격자의 수기를 본 적이 있다. 그의 공부 방법을 따라 하다가 7급 합격은커녕 그게 9급 시험에 영향을 미쳐서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다.

  사실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중학교 때는 에쵸티에 미쳐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에쵸티 해체로 인한 충격으로 공부를 안 했다(?). 고3  때 공부에 조금 흥미를 느껴 간신히 지방국립대에 들어갔을 뿐...


버리지 못한 팬클럽 단체복. 우비 아님(?)


  정약용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무릇 한 가지 하고픈 일이 있다면 목표로 삼을 만한 사람을 한 명 정해놓고 그 사람의 수준에 오르도록 노력하면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으니, 이런 것은 모두 용기라는 덕목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똑똑하고 독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고 떠먹여 주는데도, 나는 그저 받아먹는 것조차 힘들다. 공부도, 돈 모으기도  사람들 방법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것조차 힘들다. 

  개그맨 양세찬의 말이 생각난다.


  "니 잘났다, 니 잘났어."


  사실은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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