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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메리 Jan 10. 2019

[대신 읽어드립니다] 죄와 벌(도스토옙스키) (2)

바쁜 당신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신개념 독서대행 써-비스




라스콜리니코프가 친구의 마음을 어디까지 눈치 챘는지는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무렵 그는 친구와 동생의 관계를 제대로 신경 쓸 수 없을 만큼 중대한 위기에 몰려 있었다. 살인범으로 몰려 붙잡혔던 페인트공이 증거 부족으로 풀려났고, 새로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 예심 판사가 살해된 노인에게 물건을 맡겼던 이들을 일일이 조사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는 앞서 동생이 준 반지와 아버지가 물려준 은시계를 저당잡한 일이 있었고, 그 물건들은 그의 이름이 적힌 서류와 함께 증거물로 제출되었을 게 분명했다. 이제 판사가 그를 소환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허무하게 잡혀 들어가지 않으려면 뭔가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는 대담하게도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예심 판사 포르피리를 제 발로 찾아가 동태를 살피기로 결심한 것이다. 자꾸만 나약하게 무너지는 마음을 스스로 꾸짖으며, 라스콜리니코프는 ‘아버지의 유품과 동생의 선물을 되찾고 싶다’는 명목을 내세워 판사에게 면회를 신청한다. 포르피리는 기다렸다는 듯 그를 맞이하지만, 소중한 유품 운운하는 그의 말을 신뢰하는 것 같지는 않다. 실없는 농담과 날카로운 질문이 뒤섞인 길고 긴 대화 끝에, 주인공은 문득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닫는다. 포르피리는 모든 것을 짐작하고 있다. 그는 라스콜리니코프가 경찰서에서 졸도했던 일부터 범행 현장에 다시 방문했던 일까지 속속들이 전해 들었으며, 애초에 그를 범인으로 점찍은 뒤 결정적인 증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포르피리의 이러한 확신에는 일종의 사상적 근거까지 갖춰져 있었다. 그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아직 멀쩡히 대학에 다니고 있던 시절 잡지에 기고한 논문을 입수해 읽었고, 겉보기엔 순박하기 그지없는 이 청년에게서 살인자의 기질을 발견한 상태였다. “범죄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그 논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세상에는 다수의 평범한 인간과 소수의 특별한 인간이 존재한다. 특별한 인간은 세상을 바꿀 힘을 갖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평범한 인간들을 희생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를 범죄라고 볼 수는 없다.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5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영웅으로 추앙받듯이, 그들은 인간의 법과 양심을 초월하여 자신의 행동을 밀고 나갈 권리를 갖고 있다.’


여기서 잠깐, 포르피리가 들고 나온 이 논문은 지금껏 주인공을 쭉 지켜본 독자들의 의문을 한 번에 해소해 준다. 주인공은 살인이라는 행위에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속죄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스스로의 나약함’을 비난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여 왔다. 라주미힌을 비롯한 작품 속 친구들은 이런 그가 미쳤을까봐 걱정했고, 작품 밖의 독자(=나)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감정기복이 심한 주인공에게 짜증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미친 것도, 예민한 것도 아니었다. 보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그의 갈팡질팡한 태도는 모두 이십 대 청년의 어쭙잖은 영웅주의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날마다 하숙집 주인의 월세 독촉을 받던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의 마음속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뭔가 특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망상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는 세상을 바꾼 영웅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그 결과 ‘영웅이란 목적 달성을 위해 평범한 이들의 희생을 눈 하나 깜짝 않고 받아들이는 인간’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가 살인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자신에게 그 영웅들과 같은 ‘특별함’이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폐병 걸린 악덕 전당포 노인’이라는 벌레 같은 인간을 죽인 것만으로도, 담당 판사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의 두려움을 느꼈다. 안타깝게도, 그는 특별한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 번 만남은 정식 심문이 될 것이라는 판사의 의미심장한 말을 듣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지난밤 매몰차게 내보냈던 두 여인과 또 다시 재회한다. 그들은 라주미힌의 흑심 진심이 담긴 조언을 받고 용기를 얻어 다시 한 번 라스콜리니코프와 대화를 나눠보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어머니는 불안한 아들의 속도 모른 채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들이 페테르부르크에 올라온 목적은 두냐의 상견례를 하기 위함이었는데, 약혼자가 예비 처남에게 마음이 상한 나머지 상견례 때도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얘야, 이 사태를 어쩌면 좋니?” 어머니는 아들을 붙잡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당장 살인죄로 잡혀 들어가게 생긴 주인공의 귀에 어머니의 간절한 목소리가 제대로 들어올 리 없다. 그는 아무래도 좋다는 무성의한 대답을 반복하고, 결국 이 답답한 대화는 라스콜리니코프를 상견례에 참석시키되, 그의 상태를 돌봐줄 수 있는 라주미힌을 동석시킨다는 결론과 함께 겨우 마무리된다.


그렇게 불청객이 둘이나 낀 어색한 상견례 시간이 찾아온다. 일부러 빼 달라고 부탁했던 약혼녀의 오빠에다 가족도 아닌 웬 청년이 함께한 모습을 본 루쥔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며 라스콜리니코프를 자극하던 그는 급기야 중상모략으로 예비 매제의 콧대를 꺾어놓으려 시도한다. “어머님, 어머님께서 뼈가 빠지게 마련해서 보내주신 생활비를 저 친구가 어디에 써버렸는지 아십니까? 마차에 치여 죽은 주정뱅이의 딸이자 거리에서 몸을 파는 창녀에게 몽땅 줘 버렸답니다!” 이번에는 라스콜리니코프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는 그 돈을 건네준 것은 사실이나 창부로 일하는 딸이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에게 부의금으로 준 것이며, 실제로 그날 전까지는 그 여인을 본 적도 없다고 단단히 못 박는다. “당신이 어떤 목적에서 그런 모함을 하는지 뻔히 알겠소.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시오. 당신은 그 불쌍한 여인의 새끼손가락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열한 인간이오.”


자존심 빼면 시체인 루쥔이 창부와 자신을 비교하는 발언을 듣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는 상식에 어긋난 모욕을 받았다고 길길이 날뛰며, 이 자와 인연을 끊지 않는다면 이 약혼도 없던 일로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그의 천박한 언행을 지켜본 두냐도 더 이상은 참지 못한다. 그녀는 오빠와 약혼자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오빠를 택하겠다고 단호히 선언하고, 결국 내내 불안하던 상견례 자리는 불미스러운 파혼으로 끝을 맺는다.


루쥔이 씩씩대며 나가버린 뒤, 남은 가족들을 지켜보던 라스콜리니코프는 불현듯 친구와 여동생 사이에 흐르는 다정한 기류를 눈치 챈다. 그 옆의 어머니는 두 사람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다. 그토록 반대하던 약혼이 깨졌고, 선하고 믿음직한 청년이 자신의 가족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어쩐지 마냥 기뻐할 수가 없다. 그는 화기애애한 세 사람에게 영원한 이별을 암시하는 듯한 아리송한 말을 남긴 채 쓸쓸히 자리를 떠난다.


그가 그 길로 찾아간 곳은 과거 마르멜라도프와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소냐의 주소였다. 소냐는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면서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준 은인을 따뜻하게 맞이한다. 사실 그녀는 얼마 전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라스콜리니코프의 하숙방을 찾아갔었고, 어머니에게 큰 돈을 전해준 이가 실제로는 자신들 못지않게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데 큰 충격과 감동을 받은 상태였다.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였음에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은 신뢰와 호의를 느끼고 있었다. 대화는 주로 라스콜리니코프의 질문과 소냐의 대답으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쭈뼛쭈뼛 근황이나 생활에 대해 묻던 주인공은 점차 대담하게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본질적인 물음들을 던진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을 내던지는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 다른 사람들이 밉거나 원망스럽지는 않은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시련도 두렵지 않다는 그녀의 가냘픈 대답은 라스콜리니코프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는 지금껏 세상을 바꾸기 위해 평범한 타인들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굳게 믿어왔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여위고 창백한 여인은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망설임 없이 본인을 희생하고 있지 않은가. 애초에 자신의 죄를 뉘우칠 생각이 없던 그였지만, 소냐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자꾸만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은 뒤 소냐의 발에 입을 맞추고, 당황하는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집을 나선다.


다음날 그는 다시 한 번 포르피리의 사무실을 찾는다. 아직 자수할 용기까지는 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정식 심문을 받은 뒤 최악의 경우 체포될 수 있다는 각오는 한 상태였다. 예심 판사는 예상대로 강도 높은 압박 수사로 그의 목을 죄어온다. 라스콜리니코프를 범인으로 지목한 그의 신념에는 흔들림이 없었고, 지난 번 만남 이후로 보다 구체적인 증인 진술까지 확보한 상태였다. 그런데 멈출 줄 모르던 예심 판사의 날카로운 심리 공격이 절정에 달하려는 순간, 그리고 지칠 대로 지친 주인공이 마침내 자신의 죄를 시인하려던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신의 장난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일이 벌어진다. 얼마 전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어 체포됐다가 풀려났던 그 페인트공이 난입하여 자신이 노파를 죽였다고 떠들기 시작한 것이다.


확실한 물적 증거가 있지 않은 한, 제아무리 판사라도 제3자가 자수를 한 상태에서 다른 용의자를 붙잡아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포르피리는 이를 갈며 다 잡은 범인을 놓아주고,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렇게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얼떨결에 풀려난다.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어찌 보면 엄청난 행운이 따른 것 같기도 하면서, 또 어떻게 보면 비겁하게 자신의 죄를 외면함으로써 용서받을 기회를 놓친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특별한 인간’이라면 결코 느끼지 않을 약해빠진 안도감을 느끼는 자기 자신이 환멸스럽기도 했다. 어쨌든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에게 오늘 오후에 열릴 마르멜라도프의 추도식에 참석할 기회가 생겼다는 점이다.


한편, 예상치 못한 파혼 통보와 함께 쓸쓸히 퇴장했던 루쥔은 쭉 분노에 사로잡혀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자신이 받은 치욕을 라스콜리니코프에게 되갚아준 뒤 아름다운 두냐를 되찾아야 한다는 집념뿐이다. 이리저리 정보를 끌어 모으던 그는 마침 오늘 오후에 라스콜리니코프와 어울려 다니는 창녀가 아버지의 추도식을 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회적 지위와 남들의 평판을 목숨처럼 여기는 루쥔은 몸을 파는 천한 여자와의 관계를 이용해 주인공의 명예를 실추시킬 계획을 세운다. 건방진 예비 처남은 반드시 추도식에 참석할 터였고, 때마침 같은 하숙집 살면서 알게 된 청년 안드레이가 소냐와 잘 아는 사이라고 하니,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는 핑계로 안드레이를 통해 소냐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추도식 비용에 보태라며 10루블짜리 지폐를 건넨 뒤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게 100루블짜리 고액권을 돌돌 말아 그녀의 주머니에 슥 집어넣는다. 그야말로 속이 훤히 보이는 비열한 술수를 계획한 것이다.


그 이후의 상황은 빤히 돌아간다. 소냐와 라스콜리니코프, 많은 이웃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죽은 이의 추도식이 열린다. 한창 애도의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갑자기 루쥔이 들이닥쳐 자기 집에서 100루블짜리 지폐가 없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는 범인으로 소냐를 지목한다. 그녀는 모르는 일이라고 단호히 대답지만, 그녀의 주머니에서 없어진 돈이 나온다. 주인공은 결백한 소냐의 명예를 더럽힘으로써 자신을 상처 입히려는 루쥔의 계략을 뻔히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증거까지 나온 마당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분노에 휩싸여 루쥔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바로 그 순간, “잠깐만!”이라는 외침과 함께 루쥔의 룸메이트인 안드레이가 등장한다. 이 뜻밖의 손님은 혐오스런 눈빛으로 하숙집 동기를 바라보며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소냐를 하숙방으로 안내한 장본인으로서 10루블 지폐가 오가는 동안 쭉 옆을 지키고 있던 그는 루쥔이 그녀의 주머니에 큰 돈을 넣는 장면을 곁눈질로 목격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는 룸메이트가 비밀스레 선행을 베푸는 줄로만 알았고, 존경하는 마음을 품은 채 그의 훌륭한 행동을 못 본 척해주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소냐와 루쥔이 시간차를 두고 방을 떠난 뒤, 그의 머리에는 문득 이런 걱정이 떠올랐다. ‘저 여인이 주머니에서 돈을 발견한다고 해도, 생전 본 적도 없는 큰 금액에 놀라서 쓰지도 못하는 게 아닐까?’ 그는 소냐에게 그 100루블이 네 돈이며, 천사가 내려준 선물이라 생각하고 당당히 써도 된다는 말을 전하러 헐레벌떡 뛰어왔노라고 말한다.


한 순간에 모든 상황이 명백해진다. 소냐를 향하던 손님들의 비난은 순식간에 몇 곱절로 불어나 루쥔을 공격한다. 개중에는 술에 취해 술병을 들고 달려드는 이까지 나온다. 경건해야 할 추도식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루쥔은 혼란을 틈타 줄행랑을 치고 만다. 묵묵히 모든 굴욕을 감내한 소냐 또한 참담한 표정으로 자리를 뜬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뒤를 쫓는다. 불쌍한 여인에 대한 연민과 지켜주고 싶은 마음, 무엇보다 죄를 고백해야 한다는 고뇌가 뒤섞여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두 사람은 이윽고 소냐가 혼자 사는 집에 도착한다. 주인공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질문을 퍼붓는다. 하지만 이번 질문은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다. 저 비열한 루쥔 같은 인간에게도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가? 저런 놈들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이 고통 받는 데도? 그야말로 죽어 마땅한 해충이 아닌가? 그러나 소냐의 대답에는 흔들림이 없다. 그녀는 인간에게 다른 인간을 심판할 권리가 없으며, 양심을 지키는 것만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이라고 말한다. 마치 자기부정이라도 하듯 언성을 높이며 하찮은 인간들을 비난하던 라스콜리니코프는 별안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녀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전당포 노파와 그녀의 여동생을 살해한 것은 자기였노라고. 돈이 필요했던 것도,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그저 자신의 특별함을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그를 가족의 은인이자 선량한 청년으로만 여겼던 소냐는 당연히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주인공을 꼭 안아주며 그의 운명을 함께 슬퍼한다. 그리고 용서를 받을 유일한 길은 스스로 죄를 고백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며 그를 설득한다. “언제든 죄를 뉘우치고 벌을 받을 생각이 든다면 저를 찾아오세요. 그땐 제 십자가를 걸어드릴게요.”


소냐와의 만남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온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포르피리와 마주친다. 포르피리는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그는 비록 페인트공이 범죄를 인정하긴 했지만 진범이 당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그에게 자수를 권유한다. “그 결백한 사내가 왜 짓지도 않은 죄를 고백했을 거라 생각하시오? 세상에는 선량하면서도 무지한, 재판소에 갈 것이라는 두려움만으로도 정신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이 있거든. 당신에게는 지금이 기회요. 자수에는 타이밍이 아주 중요하니까. 다른 이가 범인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죄를 인정한다면 형이 훨씬 가벼워질 거요. 내가 이런 제안을 하는 건 당신 또한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확신을 했기 때문이오.”


말없이 돌아선 라스콜리니코프는 어머니와 동생이 묵고 있는 허름한 숙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때마침 숙소에는 어머니 혼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인공은 단 둘인 상황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기며, 냉정하게 굴었던 지난 며칠간의 태도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를 드린다. 그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거나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태도를 보고 무언가를 직감한 듯 애써 담담한 태도를 보인다.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간 하숙방에서는 동생 두냐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여동생에게 모든 죄를 털어놓는다. 예전과 너무 달라진 오빠의 태도와 다양한 정황들을 통해 슬픈 예감을 느끼고 있던 두냐는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참회하고 죗값을 치르라고 조언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소냐의 집을 찾는다. 그녀는 주인공의 목에 노송나무로 된 십자가를 걸어주며, 그가 어디서 어떤 벌을 받게 되더라도 그 곁을 지키겠다고 약속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경찰서로 향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그건 납니다. 전당포 노파와 그 동생 리자베타를 도끼로 죽이고 금품을 강탈한 건.”


총 6부로 구성된《죄와 벌》의 본편 줄거리는 여기까지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뒤에 에필로그 형식의 짧은 에피소드를 덧붙여 주인공들의 뒷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지만 스스로 죄를 인정한 점, 형을 감경하려는 변명을 전혀 하지 않는 점, 훔친 금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점 등을 인정받아 8년간의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는다. 얼마 후 그는 시베리아로 떠나고, 소냐는 말없이 그의 뒤를 따른다.


처음 얼마 동안 주인공은 소냐의 면회도 외면하고 그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은 채 고립된 생활을 한다. 하지만 시베리아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자신을 돌보는 소냐의 헌신적인 노력에 그의 얼어붙은 마음은 점점 따뜻해진다. 어느 날부턴가 소냐가 면회를 오지 않게 되자 그는 참을 수 없는 허전함에 시달린다. 그녀가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병 때문에 잠시 앓아 누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걱정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낀다. 마침내 소냐의 병이 나아 재회하게 되었을 때, 그는 울면서 그녀의 무릎을 껴안는다.


그날 밤, 그는 처음으로 베개 밑에 놓아두었던 복음서를 집어 든다.


[죄와 벌 / 완결]



-작가 인스타그램: merry_seo

-유튜브: 서메리Merry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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