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당신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신개념 독서대행 써-비스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로, 왕의 아들이자 조카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덴마크 왕이 그의 아버지이자 삼촌이라는 뜻이다. 여전히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자, 이것은 아주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한 이야기이다. 햄릿의 친아버지인 덴마크 왕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는데, 죽은 선왕의 동생(= 햄릿의 삼촌)이 미망인인 왕비(= 햄릿의 어머니)와 재혼을 하면서 새 왕으로 등극한 것이다. 햄릿은 졸지에 삼촌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개막장상황에 놓였다.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변심, 꼬여버린 가족 관계도는 햄릿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삼촌과 결혼해버린 어머니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가 왕의 대관식과 결혼식으로 들뜬 궁정에서 혼자만 상복을 입고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다니는 것 또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사람들은 그가 틀렸다고 한다. 어머니도, 삼촌도, 다른 귀족들도, 그만큼 애도하고 슬퍼했으면 됐지 뭘 그렇게까지 오버하냐며 오히려 햄릿을 유난스러운 사람 취급한다.
그가 가장 믿는 친구인 호레이쇼가 이상한 귀신 이야기를 들고 찾아온 것은 바로 그 시점이다. 호레이쇼는 최근 성곽 부근에서 밤마다 출몰한다는 유령 얘기를 들려주며, 그 유령이 생전의 선왕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더라고 말한다. 이미 목격한 보초병만 여럿이고, 본인 또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는 것이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소리지만, 정직한 그의 성품을 잘 아는 햄릿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당장 그가 말한 성곽으로 달려간다.
유령은 자정이 조금 지났을 무렵, 정확히 친구가 말한 그 장소에 나타난다. 그의 증언과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늘 멀뚱히 서 있다가 새벽과 함께 사라진다던 그 존재가 햄릿을 보자마자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한다는 것이다. 호레이쇼는 악마의 농간일지도 모른다며 왕자를 말리지만, 햄릿은 그리운 아버지의 모습을 한 그 형체를 모른 척할 수가 없다. 그는 친구의 만류도 뿌리친 채 혼자서 유령의 뒤를 따른다.
귀신인지 악마인지 모를 그 형체는 다른 사람들의 귀가 없는 으슥한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멈춰 선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나의 아들 햄릿. 나는 악마나 허깨비가 아니라, 진짜 네 아비의 영혼이란다.” 놀라고 감격한 아들이 미처 인사를 건넬 새도 없이, 유령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시간이 없으니 잘 듣거라. 내가 지옥에서 올라와 너를 찾은 이유는 복수를 부탁하기 위함이다. 나는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독살당했다. 탐욕스런 내 동생이 잠을 자던 내 귀에 독약을 부은 게야. 나는 한 순간에 목숨과 왕위와 왕비를 빼앗기고 말았지. 햄릿, 이 아비를 사랑한다면 부디 나를 위해 복수를 해다오.”
이야기를 마친 아버지의 영혼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홀연히 사라진다. 제대로 질문할 틈도 없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의 이야기는 그간 햄릿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모든 의문을 한 번에 해소해준다. 건강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정숙하던 어머니가 변심한 것은 모두 비열한 삼촌의 간사한 계략 때문이었던 것이다.
성곽까지 터덜터덜 돌아간 그는 걱정하는 친구를 안심시키며, 방금 본 것이 진짜 선왕의 유령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오늘 일을 절대 발설하지 말고, 앞으로 자신이 미친 사람처럼 굴더라도 다 계획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니 부디 모른 척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날 이후 온 나라에 햄릿이 미쳤다는 소문이 퍼진다. 하루 종일 혼잣말을 중얼대거나 궁정 대신에게 생선 장수라고 부르며 킬킬대는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제 정신이 아니다. 총명하던 왕자의 변화는 모두를 놀라게 만들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당황한 것은 왕좌에 앉아 있던 그의 삼촌이었다. 호레이쇼가 비밀을 잘 지킨 덕분에 햄릿과 유령 사이의 만남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멀쩡하던 왕자가 갑자기 미쳐버릴 만한 이유는 딱 둘 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어머니와 삼촌의 결혼.
두 원인 모두에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왕은 하루하루 가시방석에 앉은 나날을 보낸다. 이것은 단순히 삼촌과 조카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자칫 왕과 왕자의 대립 구도로 보일 수 있는 문제였다. 햄릿은 평소 소탈한 성품으로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엄밀히 말하자면 죽은 선왕의 외아들로서 정당한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형수님과 결혼하며 왕위를 가로챘다는 의혹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데, 백성들이 존경하던 왕자가 실성까지 해버렸다면 그 후폭풍이 어디로 향하겠는가.
게다가 지금 덴마크는 전쟁을 벌이기 직전의 상태에 있었다.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된 노르웨이의 포틴브라스 왕자가 대놓고 이 땅을 노린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 마당에 덴마크의 왕자라는 놈이 백성들을 단결시키기는커녕 정신 나간 행동으로 민심을 어지럽히고 있으니, 왕으로서는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왕이 궁정 안에서 골머리를 썩고 있는 동안, 궁정 밖에도 햄릿의 변화에 억장이 무너진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었다. 지체 높은 귀족의 딸이자 나라 제일의 미녀로 손꼽히던 오필리어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햄릿의 열렬한 구애를 받고 있었다. 아버지와 오빠는 혈기왕성한 왕자의 가벼운 마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그녀는 내심 자신과 결혼하겠다는 햄릿의 약속을 진심으로 믿었다. 그런데 그 늠름하던 왕자가 어느 날 갑자기 두더지와 사람도 구분 못하는 미치광이가 되고 만 것이다. 오필리어는 당혹스런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고민 끝에 아버지에게 달려가 조언을 구한다.
그런데 이 아버지, 폴로니어스라는 사람이 상당히 재미있다. 그는 햄릿이 변한 이유가 자기 딸을 향한 상사병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알고 보니 왕자님은 우리 딸을 진정으로 사랑하셨는데, 이 어리석은 애비가 그 진심을 몰라보고 만남을 반대하니 절망한 나머지 그만 정신을 놓아버리신 모양이야…’ 제멋대로 이런 결론을 내린 그는 한달음에 왕에게 달려가 자신이 찾아낸 중대한 사실(?)을 보고한다.
왕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주책맞은 늙은 대신의 말을 마냥 무시하지 못한다. 만에 하나라도 그의 말이 맞다면 모든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테니까. 폴로니어스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말한다. 햄릿이 틈만 나면 헛소리를 지껄이며 돌아다니는 복도에 오필리어를 데려다 놓고, 커튼 뒤에 숨어 그 반응을 지켜보자는 것이다.
이 귀여운 제안은 즉시 실행에 옮겨진다. 폴로니어스는 딸을 궁정 복도로 데려와 세워 놓은 뒤, 햄릿이 지나가면 상냥하게 말을 걸라고 지시한다. 그리고는 왕과 함께 커튼 뒤로 몸을 숨긴다. 이윽고 복도 끝에서 햄릿이 나타난다. 아마도 세상 모든 독백 중에서 가장 유명할 바로 그 대사를 읊으면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아직 그와 오필리어는 마주치지 않았지만, 주인공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독자(혹은 관객)들은 폴로니어스의 부푼 기대가 보상받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곧바로 짐작할 수 있다. 햄릿은 지금 자신의 삼촌이자 한 나라의 왕을 살해한다는 무시무시한 임무 앞에서 고뇌하고 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당장 달려가서 목을 쳐도 시원치 않지만, 그 순간 자신이 역적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변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또 얼마나 충격을 받으실까.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릴까 싶다가도, 막상 죽음을 생각하면 부끄럽게도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말 그대로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선 이 상황에, 한때 쫓아다녔던 여인의 미소 따위가 어찌 눈에 들어오겠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오필리어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그러나 햄릿은 예전처럼 다정한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다. 게다가 들끓는 고뇌와 별개로, 그는 어머니의 아름다운 외모가 삼촌의 정욕에 불을 붙여 결과적으로 아버지를 죽인 원인 중 하나라고 믿고 있었다. 이제 그에게 여성의 미모는 환멸의 대상에 불과했다. 그는 단순히 오필리어를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더럽고 역겹다는 둥, 결혼 따위 할 바엔 수녀원에나 가버리라는 둥 도가 지나친 모욕을 퍼붓는다. 마치 그녀가 남편을 배신한 자기 어머니라도 되는 것처럼.
햄릿은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한 행동이었겠지만, 졸지에 왕과 아버지 앞에서 수모를 당한 오필리어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두 사람은 햄릿의 행동에서 정 반대의 인상을 받는다. 왕은 햄릿의 이상 행동이 절대 사랑 때문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고, 조카에 대한 의심을 더욱 강화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폴로니어스는 왕자가 자기 딸을 사랑한다는 생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번에는 왕비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결심한다.
한편, 오필리어를 내버려두고 나온 햄릿은 그 길로 성에 머물고 있던 유랑극단을 찾아간다. 유령을 만나던 날 친구에게 말했듯이, 그는 진짜 미친 것이 아니라 내내 미친 척을 하며 왕의 죄를 증명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유랑극단과의 만남은 그 계획의 일부였다. 그는 유령에게 들은 선왕의 독살 과정을 그대로 재현한 대본을 직접 쓰고, 극단 배우들을 불러 궁정에서 그 연극을 공연하라고 명령해둔 상태였다. 당연히 왕이 보는 앞에서. 만약 왕이 그 장면을 보고도 태연하게 앉아 있다면, 어쩌면 자신이 보고 들은 유령의 부탁은 아버지 잃은 아들의 괴로움을 이용하려는 악마의 계략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왕이 그 장면에서 조금이라도 동요하는 기색을 보인다면, 그것은 그가 저지른 죄의 명백한 증거가 될 터였다. (약간 억지 같기도 하지만… CCTV가 없던 시절이니 이 정도는 눈감아주자)
마침내 공연 시간이 찾아온다. 왕은 설마 햄릿이 대본을 썼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왕비를 대동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연극을 보러 온다. 하지만 얼마 후 문제의 장면이 펼쳐진다. 선왕 역할의 배우가 땅에 누워 낮잠을 자는 시늉을 취하자, 살인자 역할의 배우가 살며시 다가와 그의 귀에 독약을 부어넣는다. 햄릿은 삼촌의 안색을 주의 깊게 살피지만, 사실은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연극을 중지하라고 외치고는 뒤돌아 나가버린 것이다. 이제 그의 죄는 분명해졌다.
하지만 이 연극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본 것은 햄릿뿐만이 아니었다. 왕은 미치광이의 가면 뒤에 숨어 자신을 위협하는 조카를 더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뭔가 조치를 취하기로 마음먹는다.
같은 시각, 주책바가지 폴로니어스는 왕비를 찾아가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 계획을 설명하고 있었다. 왕비가 햄릿을 불러 마음을 떠보는 동안, 자신은 커튼 뒤에 숨어서(이분 최소 커튼 성애자) 둘의 대화를 듣고 제3자의 입장에서 왕자의 상태를 파악해보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점점 심해지는 햄릿의 행동에 걱정이 깊어가던 왕비는 폴로니어스의 생각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당장 아들을 자신의 방으로 부른다.
그러나 오필리어와 마찬가지로 왕비 또한 햄릿을 부른 타이밍이 좋지 못했다. 지금 막 연극을 통해 삼촌의 죄를 확인한 햄릿의 눈에 원수와 결혼한 어머니가 곱게 보일 리 없었으니까. 복수를 결심하면서도 어머니만은 보호하겠다고 다짐했던 그였지만, 자신을 불러다놓고 대뜸 왕의 심기 걱정이나 하고 있는 그녀를 보니 그만 인내의 끈이 끊어지고 만다. 그는 거의 이성을 잃고 정신없이 어머니를 비난한다. 더러운 정욕이니, 창녀의 낙인이니, 도저히 아들로서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어머니의 마음을 난도질하던 그는 문득 벽면의 커튼이 꿈틀대는 것을 보고 홧김에 칼부터 휘두른다. 그 뒤에 비열한 왕이 숨어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피를 흘리며 쓰러진 것은 왕이 아니라 죄 없는 폴로니어스였다.
햄릿은 복수도 하지 못한 채 살인자가 되었고, 이로써 왕비를 포함한 그 누구도 그를 지켜줄 수 없게 되었다. 왕자라는 신분과 그를 사랑하는 대중의 여론을 고려해서 폴로니어스의 살해 혐의까지는 겨우 쉬쉬하며 넘어갔지만, 더 이상 그를 이 나라 궁정에 놔둘 수는 없었다. 왕은 당장 햄릿을 영국으로 보내겠다고 선언한 뒤, 그와 동행할 부하들을 은밀히 불러 영국 왕에게 전달할 친서를 쥐어준다. 그 안에는 ‘이 글을 읽자마자 햄릿의 목을 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배 가듯 항구로 향하던 햄릿은 문득 길가에서 열을 맞춰 행군하는 외국 군대를 발견한다. 저들이 누구냐는 그의 물음에, 부하는 폴란드로 진격 중인 노르웨이 포틴브라스 왕자의 군대라고 대답한다. 저들의 본래 목표는 이 덴마크였지만, 왕이 외교 수완을 발휘하여 당장 전쟁을 막는 대신 폴란드로 가는 길목을 내줬다는 것이다. 햄릿은 저도 모르게 포틴브라스와 자신의 처지를 비교한다. 노르웨이 왕자는 주변 국가들을 벌벌 떨게 만들며 죽음을 겁내지 않고 진군하는데, 덴마크 왕자는 아버지의 원수도 갚지 못한 채 목숨이 아까워 외국으로 도망치고 있지 않은가. 한참 생각에 빠져 있던 그는 마침내 무언가 결심한 듯 비장한 표정으로 영국행 배에 오른다.
햄릿은 그렇게 나라를 떠났다. 하지만 덴마크 왕실에서는 그가 복수를 한답시고 저질러놓은 사건의 부작용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단연 오필리어였다. 사랑하던 남자에게 버림받고 아버지까지 잃은 그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정신을 놓아버린다. 햄릿의 미친 척이 한 여인을 진짜로 미치게 만든 것이다. 날마다 꽃을 들고 뜻 모를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동생의 모습에 이성을 잃은 그녀의 오빠, 레어티스는 가족의 복수를 한다며 칼을 들고 왕궁에 쳐들어간다. 수비병들을 물리치고 왕 앞까지 나아간 그는 아버지와 동생의 원수를 갚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왕은 자신 또한 햄릿이 저지른 만행의 피해자라고 호소하며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 애쓴다.
두 사람이 팽팽한 긴장 속에 대치하고 있던 그 순간, 두 가지 놀라운 소식이 왕실로 날아든다. 전령이 들고 온 첫 번째 소식은, 지금쯤 영국에 도착했어야 할 햄릿이 덴마크로 돌아왔다는 뜬금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작품 밖의 독자들은 그가 영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왕의 친서를 몰래 뜯어보았고, 자신을 죽이라는 명령을 확인한 뒤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왕과 레어티스는 그저 깜짝 놀랄 뿐이다. 뒤이어 들어온 왕비는 너무도 안타까운 소식을 전한다. 가련한 오필리어가 호숫가의 나뭇가지에 화환을 걸어준다며 기어오르다가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레어티스는 망연자실하지만, 약삭빠른 왕은 그를 이용해 자신이 처한 모든 위기를 한 번에 해결할 묘안을 떠올린다. 그는 복수를 할 방법을 찾아냈다며, 레어티스에게 햄릿이 돌아오면 검술 대결을 가장해서 그를 죽이라고 제안한다. 왕이 검술 시합을 주선하는 것은 흔한 일이고, 마침 햄릿과 레어티스는 나라 안에서도 호각을 다투는 검술 라이벌이니, 귀환 축하든 뭐든 명분을 붙여서 시합을 연 뒤 독이 묻은 칼로 찔러버리면 그만이었다. 햄릿이 죽길 바라는 두 사람은 그가 절대 시합장을 살아서 나가지 못하도록 꼼꼼히 계획을 세운다. 그들은 우선 레어티스의 칼끝에 스치기만 해도 목숨을 잃는 맹독을 바르고, 만약에 대비해 햄릿이 시합을 끝낸 후 마실 술잔에도 미리 독을 타놓기로 합의한다.
얼마 후 햄릿이 궁정에 돌아온다. 왕은 전령을 통해 짐짓 과장된 태도로 그의 귀환을 축하한 뒤, 마침 검술의 달인 레어티스가 이곳에 와 있다며 시합으로 두 사람의 검술 실력을 비교해보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왕자를 맞이하러 나왔던 호레이쇼는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하다며 거절하라고 조언하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피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햄릿은 왕의 제안에 선뜻 응한다.
그의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시합장이 차려진다. 왕과 왕비, 귀족들이 속속 도착하고, 햄릿과 레어티스는 각자 대결에 사용할 칼을 고른다. 예정대로 독이 묻은 칼을 선택한 레어티스는 복수심을 감춘 채 태연한 표정으로 햄릿과 마주한다. 왕은 왕대로 독이 든 술잔을 햄릿 옆에 놓는다. 그런데 시합이 시작되기 직전, 햄릿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을 한다. 레어티스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보며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넨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선왕을 잃고 너무나 괴로웠던 지난날의 심정을 설명하며 간절히 용서를 구한다.
레어티스는 마음이 흔들린다. 물론 햄릿이 가족의 원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복수를 할 때 하더라도, 이렇게 비겁한 방법이 옳은 것일까? 상대는 도망치지 않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데, 나는 어째서 당당한 결투를 피하고 독 묻은 칼을 사용하려는 걸까?
불안정한 마음은 그대로 칼끝에 드러난다. 레어티스는 상대를 한 번도 찌르지 못한 채 피해 다니기만 하다가 결국 1회전을 햄릿에게 내준다. 2회전이 시작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약속과 다른 전개에 당황하는 왕과 달리, 왕비는 오랜만에 보는 아들의 멋진 모습에 크게 감동한다. 그녀는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왕자를 위해 축배를 들겠다고 말하더니, 미처 말릴 새도 없이 햄릿의 술잔을 입에 털어 넣는다. 그 잔이 독배라는 사실을 아는 왕과 레어티스는 사색이 되지만, 갑자기 경기를 멈춰서 의심을 살 수는 없다.
두 살인자가 쭈뼛쭈뼛 하는 사이 3회전이 시작된다. 하지만 복수심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던 레어티스는 집중력을 잃고 칼을 떨어뜨리는 등 평소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다가, 끝내 같은 칼로 상대와 자신 모두를 상처 입히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몸 상태를 가장 빨리 눈치 챈 사람은 제일 먼저 독을 마신 왕비다. 그녀는 술에 독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아들을 향해 술잔을 들지 말라고 소리친다.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햄릿은 자신의 운명도 모른 채 당장 시합장을 잠그고 범인을 색출해야 한다고 외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어티스는 마침내 결심한 듯 햄릿을 향해 모든 것을 고백한다. 왕비뿐 아니라 그들 두 사람 모두 곧 목숨을 잃을 것이며,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주범은 바로 왕좌에 앉아 있는 저 인간이라고.
분노한 햄릿은 다짜고짜 독이 묻은 칼을 들어 왕의 몸에 깊숙이 찔러 넣는다. 그리고는 그의 입을 강제로 벌린 뒤 자신의 잔에 남은 술까지 부어 넣는다. 치사량의 독이 퍼진 왕은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햄릿과 레어티스는 그렇게 각자의 복수를 마친 뒤 서서히 죽어간다. 서로의 선택을 이해하며, 서로를 용서하겠다는 말과 함께.
레어티스의 숨이 먼저 끊어지고, 햄릿은 관중석에서 달려 내려온 호레이쇼를 향해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자네는 반드시 살아남아서 내 비극적인 선택과 그 원인에 대해 사람들에게 꼭 알려주게. 그리고… 내 예언 하나 하지. 후사가 끊긴 이 나라를 포틴브라스 왕자가 차지하게 된다면, 나는 그를 인정하고 지지한다네.” 그는 이 말을 끝으로 숨을 거둔다.
햄릿의 예언은 얼마 안 가 실현된다. 폴란드를 무찌르고 돌아온 포틴브라스는 시체가 굴러다니는 덴마크 왕궁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손에 넣는다. 그는 호레이쇼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낱낱이 전해들은 뒤, 모든 시신을 수습하고 햄릿을 전사자로 예우하기로 결정한다.
서로 죽고 죽이다가 끝내 몰살당한 한 왕가의 비극을 적국의 왕자가 정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첫 번째 비극은 막을 내린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 햄릿 /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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