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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는 외로운 작품이다. <햄릿>이 ‘사느냐, 죽느냐!’ 한 마디로 삼척동자도 아는 슈퍼스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데 반해, <오셀로>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에서도 병풍 멤버 이상의 지위를 누리지 못한다. 4대 비극에 포함되지도 않는 청춘 사랑극 <로미오와 줄리엣>보다는 대중성 면에서 열 배쯤 존재감이 약하며, 같은 이름을 지닌 보드게임 ‘오셀로’에도 인지도가 한참 밀리는 모양새다(심지어 ‘오셀로 게임’의 이름을 이 작품에서 따온 것인데도 그렇다).
외로운 것은 작품뿐만이 아니다. <오셀로>의 주인공인 오셀로 장군은 4대 비극의 주인공들 가운데서도 압도적으로 고립된 인물이다. 그는 베네치아의 백인 귀족 사회에 끼어 살아가는 유일한 무어인, 다시 말해 흑인이다. 뛰어난 능력과 인품으로 온갖 산전수전을 겪으며 장군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코 주류 집단에는 낄 수 없다. 사람들은 그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는 ‘검둥이’이자 ‘입술 두꺼운 놈’이고, 기껏해야 ‘용맹한 무어인 장군’으로 치켜세워질 뿐이다.
그의 불안한 입지는 작품의 막이 열리자마자 분명히 드러난다. 희곡 <오셀로>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주인공이 아니라 두 명의 악당, 아니 한 명의 악당과 한 명의 호구다. 그들은 첫 대사부터 천박한 욕설을 퍼부으며 ‘검둥이’ 오셀로를 헐뜯는다. 간사한 악당 이아고는 오셀로가 자신을 부관으로 승진시켜주지 않은 데 앙심을 품고 있다. 자존심을 구기고 지체 높은 인맥까지 동원해가며 청탁을 넣었건만, 공정한 성품의 오셀로는 그의 연줄을 무시한 채 충직한 부하 캐시오를 부관으로 선택해버렸다.
게다가 그 건방진 무어인이 주제를 망각하고 절세미인 데스데모나와 결혼해버리는 바람에 이아고는 여러 가지로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사실 그는 지금 눈앞에서 징징대고 있는, 데스데모나에게 푹 빠진 청년 로더리고의 마음을 이용해 돈을 갈취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대신 전해준다며 선물 값과 수고비 명목으로 뜯어낸 돈만 이미 한 재산이었다. 그런데 데스데모나가 아버지의 반대까지 뿌리치고 덜컥 시집을 가버리자 그 동안의 사기 행각이 한 순간에 드러날 위기에 처했다. 일단은 신랑인 오셀로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려 고비를 넘겼지만, 제아무리 멍청한 로더리고라도 얼마 후면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터였다.
평범한 사기꾼 같았으면 이 시점에서 도망이라도 가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명작의 악역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이아고는 절망에 빠진 로더리고를 보며, 사랑밖에 모르는 이 바보를 이용해 자신을 물 먹인 오셀로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을 떠올린다.
비록 부관 승진에는 실패했지만, 그는 베네치아 군대의 기수로서 나름대로 오셀로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그 지위를 이용하면 자신의 아내를 데스데모나의 시녀로 들여보낼 수도 있었다. 이아고는 손에 들린 패를 찬찬히 따져보며 큰 그림을 그린 뒤, 넋이 나간 로드리고를 꼬드긴다.
“오셀로와 나는 곧 사이프러스 섬으로 파견될 걸세. 물론 데스데모나도 함께 갈 거야. 자네 설마 그 아름다운 여인이 오셀로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조금만 기다리면 그 늙은 검둥이에게 질려서 자신에게 진짜 어울리는 짝을 찾게 될 거라고. 자, 나와 함께 사이프러스로 가세. 그곳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내 반드시 그녀의 마음을 되찾아주겠네. 아, 물론 돈은 넉넉히 준비해야겠지.” 사랑에 눈이 먼 로더리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의 제안에 응한다.
며칠 후, 자신의 함대에 이런 독사(와 그를 따르는 호구)가 타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오셀로는 사랑스런 아내와 충직한 부관을 데리고 사이프러스로 향한다.
섬에 도착한 뒤 얼마 동안 오셀로에게는 꿈 같은 나날이 펼쳐진다. 날씨와 바다가 도와준 덕분에 사이프러스로 쳐들어온 터키군의 함대를 손쉽게 무찔렀고, 지역 귀족들과도 단단한 인맥을 쌓았다. 무엇보다, 그의 곁에는 듬직한 캐시오와 기쁨의 원천인 데스데모나가 있다. 두 사람은 오셀로의 피부색 밑에 숨겨진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고 사랑해준 이들이다.
행복한 가정과 빛나는 경력을 모두 손에 넣은 그의 앞에 불운의 싹이 움트기 시작한 것은, 다시 말해 이아고의 치밀한 복수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기 시작한 것은, 터키군을 무찌른 날 저녁에 열린 축하연 자리였다. 오셀로는 들뜬 군인들에게 하룻밤 동안 술과 음식을 마음껏 허락하고, 부관인 캐시오에게는 치안 유지를 위해 보초를 서라고 지시한다.
이아고는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섬 전체가 잔치 분위기로 들썩이는 동안 홀로 임무를 수행하는 캐시오에게 슬쩍 다가가 술을 권한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하던 캐시오였지만, 이렇게 기쁜 날 한 잔 정도는 마셔줘야 한다는 악당의 달콤한 꼬임에 넘어가 결국 술잔을 입에 대고 만다. 이아고는 그의 주량이 세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술을 마시면 다혈질인 성미가 튀어나온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희생양의 이성이 흐려졌을 무렵, 이아고의 신호를 받은 로더리고가 나타나 그에게 마구잡이로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캐시오는 역시나 술기운에 싸움을 벌이고, 말리러 달려온 사람들을 뿌리치며 난동을 부린다. 로더리고는 계획대로 난리통을 틈타 조용히 사라진다. 이아고는 잽싸게 오셀로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오셀로는 근무 중에 술을 마시고 싸움을 벌인 캐시오에게 크게 실망하며 그 자리에서 그를 해고한다.
장군의 호통에 정신이 번쩍 든 캐시오는 자신이 저지른 짓을 깨닫고 망연자실한다. 그놈의 술 때문에 직업과 명예, 상관의 신임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존경하는 오셀로 장군님의 믿음을 제 손으로 배신했다는 죄책감이었다. 우직한 그는 술을 권한 부하나 시비를 건 행인을 원망하는 대신 모든 죄를 자기 탓으로 돌린다. 그가 자책과 절망에 휩싸여 몸부림치고 있을 때, 이아고가 세상에서 제일 안타까운 표정으로 다가와 조언을 건넨다.
“걱정하지 마세요, 부관님. 장군님이 어디 부관님을 버리실 분입니까? 지금은 순간적으로 화가 나신 것뿐,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풀리실 겁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일단 그분의 부인이신 데스데모나 님께 찾아가서 사정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장군님은 아름다운 아내에게 푹 빠져 계시니, 그분께서 잘 말씀해주시면 사태가 더 빨리 해결될 지도 모릅니다.” 캐시오는 이아고의 조언이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이 모든 것이 함정인줄도 모른 채 그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로 한다.
다음 날 캐시오의 알현을 받고 사정을 들은 데스데모나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비록 그가 심각한 실수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평소에 그처럼 성심을 다해 남편을 모신 부하는 없었다. 그녀는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앞으로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캐시오의 호소를 믿고 남편에게 그의 복직을 청해보겠다는 약속을 한다. 캐시오는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 뒤 물러난다. 하지만 그가 그녀와 헤어지는 바로 그 순간, 이아고가 때맞춰 모셔온 오셀로가 아내의 방에서 나오는 그의 모습을 목격한다.
오셀로는 아내와 캐시오가 단독으로 만났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여기지만, 두 사람을 믿는 만큼 특별한 의심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애초에 그를 이 자리에 데려온 사람이 이아고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목격의 타이밍을 정확히 맞춰낸 이아고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음 스텝을 밟는다. 오셀로의 마음속에 떠오른 작은 물음표에서 의심의 실타래를 엮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흥겨운 잔치에서 홀로 보초를 서던 캐시오의 외로움을 자극했듯, 이아고는 무어인이라는 한계를 딛고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와 결혼한 오셀로의 마음속 불안함을 자극한다.
만약 이 자가 처음부터 불륜 운운하며 극단적인 억측을 꺼냈다면 이성적인 오셀로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정숙한 아내를 모욕한 벌로 당장 그를 내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아고는 그렇게 아마추어 같은 접근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간사한 악마의 얼굴 대신 순진한 천사의 얼굴을 하고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혼잣말과 말끝 흐리기 신공을 선보인다. “세상에, 저건 캐시오 님이잖아? 설마 데스데모나 님과? 어쩐지… 아, 아니야. 이건 심증일 뿐이니까. 선량한 두 분의 정절을 의심해선 안 돼. 하지만 그때 내가 보고 들은 건…”
귀가 멀지 않은 이상, 자신의 아내와 부관의 이름을 들먹이는 그의 중얼거림을 오셀로가 놓칠 리 없다. 위엄을 지키느라 애써 모른척하긴 했지만, 가뜩이나 믿었던 부하를 잃었다는 생각에 심란하던 오셀로는 더욱 더 불편해진 마음을 안고 데스데모나에게 다가간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는 남편을 보자마자 캐시오를 복직시켜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오셀로의 얼굴은 한층 더 어두워지고, 작전 성공을 예감한 이아고는 지체 없이 다음 단계를 실행하기 위해 달려간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아고는 지금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오셀로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섬으로 출발하기도 전부터 그려놓은 큰 그림에 따라 차근차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셀로의 파멸을 위한 모든 계획이 들어 있었고, 각 단계의 실행에 필요한 사전 준비물 또한 철저히 마련해둔 상태였다. 그 준비물 중에는 데스데모나의 시녀로 일하는 아내를 이용해 훔쳐낸, 오셀로 부부의 사랑의 정표인 손수건도 들어 있었다.
이아고는 캐시오의 동선을 파악해서 일부러 그의 눈에 띌 만한 곳에 손수건을 떨어뜨린다. 손수건을 발견한 캐시오는 주인을 찾아줘야겠다는 마음에 그 물건을 집어 들어 몸에 지닌다. 그것이 파멸의 시작인지도 모른 채.
악역으로서 이아고의 천재성(?)이 가장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 시점이다. 오셀로의 마음속에 불안의 씨앗을 심고, 데스데모나가 저도 모르는 새 남편의 의혹을 부채질하도록 만들고, 캐시오에게 거짓 증거물을 쥐어주고… 이 모든 준비가 완성된 후 이아고가 취한 전략은 바로 기다림이었다. 그는 낼름 오셀로를 찾아가 캐시오가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갖고 있다는 둥 입방정을 떨지 않는다. 가련한 오셀로가 자신의 불안에 잡아먹혀 아내와 부관의 모든 행동을 의심하고, 결국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어버릴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 뿐이다.
과연 인내의 열매는 달았다. 얼마 후 오셀로가 제 발로 그를 찾아온 것이다. 질투와 의심에 사로잡힌 그는 더 이상 부하들에게 존경받던 인자한 장군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욕설을 퍼붓고 고함을 치며 이아고에게 아내와 캐시오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이아고는 짐짓 당황한 표정으로 더듬거리며 (하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사실은… 얼마 전 훈련 기간에… 캐시오 님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자게 됐는데… 그 분이 잠결에 데스데모나 님의 이름을 부르시더라고요… 사랑한다는 둥… 우리 사랑을 들키면 안 된다는 둥… 사실 거기까진 그냥 잠꼬대인가 보다 했는데… 며칠 전 그 분이… 데스데모나 님의 손수건을 갖고 있는 걸… 봤습니다….”
그는 사색이 된 오셀로의 얼굴을 보며 못 이기는 척 한 가지 제안을 덧붙인다. “그래도 물증도 없이 의심을 할 수는 없으니… 괜찮으시다면 제가 캐시오의 마음을 한 번 떠봐 드릴까요?” 오셀로는 눈앞에 있는 자가 어떤 인간인지도 모른 채 미끼를 덥석 문다.
이아고는 오셀로에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으라고 말한 뒤, 캐시오를 불러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슬쩍 연애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이제는 말하기도 입이 아프지만, 무섭도록 주도면밀한 이아고는 캐시오가 최근 연애를 시작했다는 사실과 상대 여인에 대한 정보까지 입수해둔 상태였다. 그는 일부러 그 여인의 이름이 제대로 나오지 않도록 대화를 주도해 나간다. “부관님, 그 (비앙카라는) 여자와 결혼이라도 하실 작정입니까?” “무슨 소린가. 우린 그냥 잠깐 즐기는 사이라네.” “하지만 그 (비앙카라는) 여자가 부관님께 아주 푹 빠졌다던데요” “사실은 요즘 그것 때문에 귀찮아 죽겠어. 어찌나 피곤하게 매달리는지…”
오셀로는 부들부들 떨며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질투와 분노로 터질 것 같은 그의 머릿속에는 캐시오의 상대가 제 3의 여인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예 떠오르지도 않는다. 게다가 그 순간, 그의 이성을 끊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잡아 뜯어 뭉개버릴 만한 장면이 눈에 띈다. 캐시오의 손에 어디서 많이 본 천 조각이 들려 있었던 것이다. 그 물건은 분명히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에게 사랑의 정표로 선물한 손수건이었다.
캐시오가 돌아간 뒤, 오셀로는 거의 짐승에 가까운 모습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이아고는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그놈’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다며 울부짖는 오셀로를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하필 그 때 베네치아 본토에서 도착한 전령은 오셀로의 절망에 기름을 붓는 소식을 전한다. 전령이 가져온 편지에는 오셀로가 아니라 부관인 캐시오를 사이프러스 섬의 총독 대리로 임명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검은 피부의 무어인에게는 끝내 총독 자리를 맡길 수 없다는 윗선의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이아고는 오셀로에게 속삭인다. “이런데도 그 비열한 부관과 부정한 아내를 살려둘 수 있으시겠습니까? 만약 장군님께서 그년을 목 졸라 죽이신다면, 캐시오 놈은 오늘 자정까지 제가 대신 처치해드리겠습니다.” 오셀로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 이후의 상황은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윗덩이처럼 손 쓸 틈도 없이 진행된다. 성으로 돌아간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침실로 부르고 시종과 시녀들을 모두 돌려보낸다. 이미 스스로의 상상 속에서 모든 혐의를 확신한 그는 아내의 설명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의 눈에 비친 데스데모나는 간통을 저지른 더러운 여자고, 추잡한 불륜 행각이 벌어졌을 저 침대에서 목 졸려 죽어야 마땅한 범죄자에 불과하다. 그는 냉정한 표정으로 오늘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냐고 묻는다. 기도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이고 싶진 않다면서.
처음에 데스데모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요즘 남편이 조금 냉정해졌다 싶긴 했지만, 나랏일이 잘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나보다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뒤이어 쏟아지는 욕설과 비난을 통해, 그녀는 남편이 자신과 캐시오의 사이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을 죽이겠다는 말이 진심이라는 것도. 아무도 없는 방에서 궁지에 몰린 그녀는 생각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남편의 마음을 돌리려고 발버둥 친다. 결백을 주장하고, 영혼을 건 맹세를 하고, 울고, 빌고, 제발 하루만 더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이미 제정신이 아닌 오셀로는 아내의 호소를 차갑게 외면한 채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거칠게 조른다. 연약한 여인에 불과한 데스데모나는 일국의 장군인 남편의 힘에 저항조차 못한 채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다.
밖이 소란스러워지면서 온갖 사람들이 오셀로의 침실로 뛰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시점이다. 캐시오 전 부관의 암살 미수 사건으로 성 안이 발칵 뒤집힌 것이다. 보고를 드리러 달려온 시녀며 관리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오셀로를 발견하지만, 침대의 휘장 너머에 그 아내의 시신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그들이 올린 보고에 따르면 밤길을 걷던 캐시오가 로더리고라는 사내의 습격을 받았고,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큰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살인미수범 로더리고는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충직한 군인 이아고의 칼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존재, 로더리고의 이름을 다시 접한다. 그리고 끝까지 철저한 악당이던 이아고가 캐시오를 대신 처치하겠다는 약속마저 자기 손으로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그는 ‘캐시오가 오셀로 대신 총독 자리에 오르는 바람에 상심한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데리고 아프리카로 떠나려 한다. 이 사태를 막는 방법은 캐시오를 죽여서 오셀로를 계속 이 섬에 붙잡아놓는 것뿐이다’는 취지의 거짓말로 로더리고를 속여서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살해 계획을 성사시키려고 했었다. 하지만 어설픈 로더리고가 암살에 실패하자, 우연히 사건 현장을 발견한 척하며 그를 죽여 입막음을 한 것이다.
그러나 작품 속의 인물들은 이아고의 야비한 심보를 알 리 없기에, 이미 변명조차 할 수 없게 된 로더리고의 범죄만을 오셀로 장군에게 보고드린다. 어차피 자신의 죄가 밝혀질 리가 없다고 생각한 이아고는 뻔뻔스레 사람들 무리에 끼어 영웅 행세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한때 세상의 전부였던 아내를 목 졸라 죽인 오셀로의 눈과 귀에는 이아고의 존재도, 부하들의 말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때 장군의 이상한 태도를 눈치 챈 시녀가 침대의 휘장을 걷고, 처참하게 질식사한 데스데모나의 시신을 발견한다.
오셀로는 더듬거리며 자신이 아내를 죽였으며, 하지만 그녀가 부정을 저질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복수의 완전한 성공을 직감한 이아고는 경악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홀로 쾌재를 부른다. 하지만 이 최후의 순간, 지금껏 매끄럽게만 돌아가던 그의 계획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첫 번째 변수는 데스데모나의 시체를 발견한 시녀이자 이아고의 아내인 에밀리아였다. 사실 그녀는 남편의 명령에 따라 이 모든 비극의 계기가 된 손수건을 훔쳐다 준 장본인이었다. 그녀의 죄는 남편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는 당시의 관습을 너무 엄격하게 따른 수동성과, 그 손수건이 기껏해야 유치한 장난에나 사용될 거라고 믿은 안일함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결과적으로 살인에 가담했다는 깨달음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모든 관습을 내던지고 그 자리에서 자신과 남편의 죄를 고백한다.
그 순간 부상을 입은 캐시오가 웬 편지 뭉치를 들고 나타난다. 죽은 로더리고의 주머니 속에서 나왔다는 그 편지 속에는 그동안 이아고와 주고받은 범죄 공모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끝까지 이용만 당하다가 목숨을 잃은 로더리고가 마지막 순간에 이아고의 모든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이다.
현장에 있던 오셀로와 이아고는 서로 다른 의미에서 이성을 잃는다. 오셀로는 자신이 죄 없는 아내를 죽였다는 무시무시한 진실 앞에 절규한다. 자신을 사랑해서 가족까지 버린 아내를, 목숨을 걸고 전장까지 따라온 아내를, 마지막 순간까지 믿어달라고 애원하던 아내를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여 버린 것이다.
이아고는 힘들게 쌓아온 복수의 탑이 마지막 순간에 무너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이 그토록 무시했던, 순종적인 에밀리아와 아둔한 로더리고가 이렇게 결정적으로 뒤통수를 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잃은 두 범죄자는 각각 자신에게 어울리는 최후를 맞이한다. 오셀로는 질투와 불안에 사로잡혀 아내를 죽인, ‘한때 오셀로였던 어리석은 사내’의 목숨을 자기 손으로 끊는다. 이아고는 자신을 고발한 아내를 칼로 찌르고 도망가지만 곧 군인들에게 붙잡혀 끌려온다. 사이프러스 섬의 새 총독으로 임명된 캐시오가 그에게 사기 및 살인교사 및 살인 혐의를 적용하여 고통스러운 고문이 동반된 사형을 선고하면서, 셰익스피어의 두 번째 비극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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