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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메리 Apr 23. 2019

[셰익스피어 4대비극 특집] 맥베스, 대신 읽어드립니다

바쁜 당신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신개념 독서대행 써-비스




17세기 초 발표된 <맥베스>는 실제로 12세기에 스코틀랜드 왕좌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피비린내 나는 반역을 모티프로 쓰인 희곡이며, 심지어 주인공들의 이름마저 대부분 역사적 인물의 실명이 그대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현실감이 높은 작품이다.


보통 오래 전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과 그에 휘말린 사람들의 존재는 후손들의 기억 속에 매우 짧고 확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된다. 이순신 장군이 ‘영웅’이고 연산군이 ‘폭군’이듯, 맥베스는 ‘반역자’이고 던컨 왕은 ‘희생자’이다. 시간여행이 불가한 현실 속의 우리들로서는 사료에 적힌 단 몇 줄의 기록만으로 이 인물들을 이해할 수밖에 없고, 수백 년 전에 살았던 그들의 심리와 인간성을 입체적으로 추론하라는 것은 당연히 무리하고 부당한 요구이다. 하지만 이 시도를 한 사람이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 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가 무대에 올린 맥베스국왕의 사촌으로서 고귀한 혈통을 물려받은 왕족이자 누구보다 충직한 장군이었다. 작품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그는 반역을 일으킨 모반자가 아니라 반란을 제압한 영웅의 모습이다. 아군 진영에서조차 ‘운명의 여신이 반란군의 편을 들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리한 싸움이었지만, 그는 충심과 용맹함을 무기로 전투를 승리로 이끈 뒤 부관인 뱅코우를 데리고 당당히 귀환한다.


그들 앞에 세 마녀가 나타난 것은 두 사람의 말이 맥베스의 영지에 거의 도달했을 무렵이었다. 갈라터진 손가락과 시들어빠진 입술을 가진, 누가 봐도 마녀의 행색을 한 세 여인은 대뜸 두 개선장군의 앞에 나서더니 의미를 알 수 없는 칭송을 퍼붓는다. “코더 지역의 영주가 되실 맥베스 님, 만세!”, “장차 왕이 되실 맥베스 님, 만세!” 당황하면서 어딘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맥베스와 달리, 옆에 있던 뱅코우는 인간인 듯 인간이 아닌 그 존재들에게 순수한 호기심을 보인다. “재미있구나. 장군님이 장차 왕이 되신다면, 나는 무엇이 되느냐?” 마녀들은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스스로 왕이 되진 못하겠지만, 자손들이 대대로 왕위에 오르실 분. 뱅코우 님, 만만세!” 자극적인 암시에 흥미를 느낀 뱅코우가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물어보려 하지만, 운명의 자매들은 제 할 말만 마친 채 연기처럼 사라진다.


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로 대화를 나누며 방금 겪은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석해보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가 채 끝을 맺기도 전에, 마녀들의 첫 번째 예언이 기다렸다는 듯 현실이 되어 찾아온다. 왕궁 방향에서 헐레벌떡 달려온 파발꾼이 맥베스를 알아보더니 기쁜 목소리로 국왕의 칙령을 전달한 것이다. “전하께서 반란 진압에 큰 공을 세운 맥베스 장군을 코더 영주로 임명하신다고 합니다!” 이 영광스러운 소식과 함께, 그는 왕이 맥베스를 치하하기 위해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정보를 전한다.


맥베스는 운명의 수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직감한다. 운명은 그에게 코더의 영주가 되리라고 했다. 지금 그는 코더의 영주가 되었다. 그가 받은 다음 예언은 왕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가 왕이 되기 위해 없어져야 할 유일한 인물이 자신의 영지로 오고 있다. 그와 피를 나눈 가족이자,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가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바로 그 인물이.



우연히 만난 예언에서 운명의 가능성을 읽은 맥베스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그는 일단 오늘 겪은 일을 상세히 적어서 발이 빠른 부하 편에 보낸 뒤, 자신 또한 적당히 의심을 사지 않을 정도로 동료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는 왕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며 서둘러 성으로 향한다.


맥베스의 심리 변화는 거의 위화감이 들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다. 햄릿은 아버지의 유령을 직접 목격하고도 끝까지 고뇌의 끈을 놓지 못했고, 아내를 향한 오셀로의 믿음을 흔들기 위해서는 독사 같은 악당 이아고의 길고 끈질긴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맥베스는 다르다. 애매한 예언의 일부가 실현되자마자, 그는 ‘손바닥 뒤집듯’이라는 말의 뜻을 몸소 보여주려고 마음먹기라도 한 사람처럼 순식간에 정직한 충신에서 음흉한 반역자로 변한다. 마녀들의 발언 그 어디에도 ‘왕을 죽이라’는 내용이 없었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 가지밖에 없다. 기회와 명분이 없었을 뿐, 그는 처음부터 왕위를 차지하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에게도 제동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죄를 짓기 직전의 모든 인간이 그렇듯, 마음속에 남은 일말의 죄책감과 일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끝장날 수 있다는 두려움은 그의 어두운 야심에 계속해서 경고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성에서 그를 맞이한 부인은 이 두 가지 감정을 별로 타고나지 못한 여인이다. 이미 편지를 통해 예언을 확인하고 왕비가 될 꿈을 품은 그녀는 남편의 나약한 태도를 꾸짖고, 모든 계획은 자신이 준비할 테니 실행이나 똑바로 하라며 그를 다그친다. 맥베스는 망설이면서도 결코 부인의 말을 완강히 거부하지는 않는다.


이윽고 아무것도 모르는 이 도착한다. 왕자까지 대동하고 찾아온 그는 맥베스의 공을 끊임없이 칭찬하고, 부인은 물론 가문의 하인들에게까지 큰 상을 내린다. 하지만 이 선량하고 인심 좋은 (그리고 사람 보는 눈이 없는) 왕은 두 번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보지 못한다. 그가 철석 같이 믿었던 사촌 형제가 기어이 잠든 그의 가슴에 칼을 꽂았기 때문이다.


반역을 저지르는 부부의 콤비플레이는 그야말로 천생연분이 따로 없다. 저녁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부인은 왕 일행은 물론이고 시종들에게까지 꼼꼼히 술을 먹여 인사불성으로 만들었다. 모두가 잠자리에 든 시각 단검을 들고 왕의 침소를 찾아간 것은 맥베스였다. 그는 “두 번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리라! 너는 잠을 죽였다!”라는 환청 속에서 왕을 시해한다. 당혹감과 두려움에 휩싸인 그가 시종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로 한 계획도 잊은 채 살인 도구를 그대로 들고 오자, 다시 부인이 나서서 술 취해 잠든 시종의 손에 피 묻은 단검을 꼭 쥐어준다. 그렇게 사이좋게 죄를 나눠 지은 두 사람은 침실로 돌아와 날이 밝길 기다린다.


몇 시간 뒤, 성은 (말 할 필요도 없이) 발칵 뒤집힌다. 맥베스는 왕의 시신을 발견하고 혼란에 빠진 분위기를 틈타 아직 술조차 깨지 않은 시종을 범인으로 지목한 뒤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린다.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왕을 따라 이곳에 왔던 맬컴 왕자는 아버지를 살해한 자가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하리라는 판단 아래 재빨리 몸을 피한다. 그의 결정은 현명한 동시에 어리석은 것으로 드러났다. 일단 목숨을 부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맥베스가 아버지를 두고 도망친 그에게 살인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왕을 죽이고 그 아들까지 치워버린 맥베스는 왕족이자 공신이라는 지위를 내세워 손쉽게 왕좌를 손에 넣는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찝찝한 구석이 남아 있다. 막상 왕위에 오르자, “자손이 대대로 왕위에 오르실 분. 뱅코우 님, 만세!”라는 세 번째 예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남의 자손을 왕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대역죄를 지은 셈이 되는 거잖아.’ 그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는 조용히 왕궁으로 자객들을 불러들인다.


함께 들은 예언이 착착 실현되는 모습에 놀라면서도, 뱅코우는 설마 맥베스가 자기 목을 노리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사람을 믿다가 배반당한 선왕처럼 순진해서일 수도 있고, 자신의 후손이 왕좌를 차지한다는 예언에 은근한 기대를 하느라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새 국왕 부부에게 뒤를 이을 자식이 없다는 사실이 경계심을 늦췄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은 채 맥베스가 시키는 대로 아들 플린스함께 길을 떠나고, 컴컴한 밤중에 괴한의 습격을 받는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욕설과 저주를 퍼붓지만, 세 명의 건장한 자객을 상대로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발버둥이라곤 온 몸으로 칼을 막아내며 아들을 탈출시키는 것뿐이다.



뱅코우는 그렇게 수십 개의 칼자국을 새기고 하천에 버려진 시체로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맥베스 부부는 안심할 수가 없다. 예언의 진짜 주인공인 뱅코우의 아들왕좌의 정당한 주인인 맬컴 왕자가 여전히 살아 있는데다, 벌써 새 왕의 정당성에 의구심을 품고 등을 돌리는 귀족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선왕의 충신이었던 맥더프 장군은 왕의 호출마저 거부한 채 모습을 감춘다.


맥베스 부부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맥베스는 귀족들이 모두 모인 만찬에서 피투성이가 된 뱅코우의 유령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헛소리를 해댄다. 부인은 밤마다 선왕을 죽이고 그 피를 뒤집어쓰는 악몽에 시달린다.


불안과 죄책감에 대처하는 두 남녀 역적의 태도는 판이하게 다르다. 선왕을 시해할 당시만 해도 남편보다 훨씬 대담하고 냉정했던 부인은 끝없이 이어지는 불안과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언제부턴가 몽유병을 얻은 그녀는 밤마다 온 궁전을 돌아다니며 손을 비벼댄다. “피비린내가 멈추지 않는다. 아라비아의 모든 향수를 뿌려도 이 손 하나를 향기롭게 만들 수가 없구나. 그 노인의 몸에 그토록 많은 피가 있을 줄 누가 알았더냐?” 그녀는 하염없이 중얼거리며 꿈속에서 피 묻은 손을 씻고 또 씻는다.


반면 맥베스는 뱅코우의 환영에 시달리고 잠을 이루지 못해 괴로워하면서도 점점 더 대담하고 잔인해진다. 첫 살인 앞에서 느꼈던 일말의 망설임마저 내버린 그는 반란의 싹을 자른다는 명분 아래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자들을 모조리 죽여 없앤다. 날마다 새로 생긴 과부들이 통곡하고, 매일 아침 새로운 고아가 울부짖는다. 폭력과 공포가 나라를 지배하는 가운데 백성들의 삶은 자연히 피폐해져간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을 다 죽여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인데다, 설상가상으로 일찌감치 그의 손을 빠져나갔던 맥더프 장군이 아일랜드로 도망간 맬컴 왕자를 설득하여 봉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마저 들려온다. 절망에 휩싸인 맥베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전에 마녀들과 마주쳤던 길목을 찾는다.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를 자신의 운명을 정확히 예견했던 그녀들이라면, 길조든 흉조든 앞으로 닥칠 미래 또한 알고 있을 터였다.


세 마녀는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방문뿐만이 아니라 그 목적까지 잘 알고 있었다는 듯, 펄펄 끓는 가마솥에 두꺼비와 뱀 토막, 도롱뇽 눈알, 살모사의 혀 따위를 집어넣고 마법의 의식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 번 미래를 알려달라는 맥베스의 간청에, 그녀들은 대답 대신 가마솥에서 나타나는 환영을 주목하라고 이른다. 잠시 후 첫 번째 환영이 나타나 말한다. “맥더프를 조심하라.” 뒤이어 모습을 드러낸 두 번째 환영이 말한다. “숲이 걸어서 언덕을 넘지 않는 한 그대는 무사하리라.” 연이어 튀어나온 세 번째 환영이 말한다. “여자가 낳은 자는 결코 그대를 해치지 못한다.”


맥베스는 안심한다. 배반자 맥더프를 조심하라는 예언은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어쨌든 숲이 제 발로 걸어서 언덕을 넘어올 일은 없으며, 무엇보다 맥더프든 누구든 여자가 낳지 않은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당장 목숨이 위태로울 일은 없다는 확신을 안은 채 성으로 돌아온 그는 일단 스코틀랜드에 남은 맥더프의 가족들을 어린 아기들까지 잔인하게 살해한 뒤, 평소처럼 죄책감과 불안감을 폭정으로 달래며(?) 그다지 영예롭지 못한 군주의 자리를 근근이 지켜나간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마침내 잉글랜드 왕의 지원을 등에 업은 맬컴 왕자와 맥더프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스코틀랜드로 진격해온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물론 마녀의 예언을 등에 업은 맥베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심지어 봉기군이 왕궁 지척까지 밀려왔다는 척후병의 보고도 그의 평정심을 흔들지 못한다. 그러나 별안간, 하찮은 마법으로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오만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성 안팎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동시에 터져 나온다.


성 안에서 나온 소리는 시녀들의 울부짖음이다. 사방에서 진동하는 피비린내에 미쳐가던 왕비가 끝내 생명의 끈을 끊어버린 것이다. 동시에 성 밖에서는 병사들의 거친 고함이 들려온다. “전하! 버넌 숲이 움직여서 던시네인 언덕을 넘어오고 있습니다!”


맥베스는 두 귀를 의심한다. 잠시 후 ‘움직이는 숲’의 정체는 적군의 군대로 밝혀진다. 맥더프 장군이 병사들의 몸에 나뭇가지를 둘러 모습을 감추는 위장 전술을 사용한 것이다. 예언이 솜씨 좋게 말장난을 쳐가며 자신의 목을 졸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맥베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거대한 이 성을 향해 진격해오고, 그 선봉에는 환영이 조심하라고 경고했던 맥더프가 서 있다. 그러나 이미 1만 군대가 성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에서 맥베스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그다지 많지 않다. 뱅코우에게 주어진 마지막 선택지가 자신을 희생해서 아들을 살리는 것이었듯,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맥베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결국 ‘여자가 낳은 자는 그대를 해치지 못하리라’는 마지막 예언을 믿고 매달리는 것뿐이다.


그는 왕좌를 박차고 일어나 직접 칼을 들고 전투에 참여한다. 실제로 처음 얼마 동안은 예언의 보호막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듯 보인다. 적군의 칼은 맥베스를 베지 못하지만, 그의 칼은 병사, 장군 할 것 없이 상대방의 몸을 가차 없이 관통해 나간다. 그는 점점 득의양양해진다. “여자가 낳은 놈이 휘두르는 것이라면 어떤 칼도 우습고, 어떤 무기도 가소롭다!”


바로 그 때 맥더프가 등장한다. 자신이 예언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모르지만, 눈앞의 악당에게 손에 존경하는 선왕과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은 그는 사적인 복수심과 공적인 정의감에 불타고 있는 상태다. 운명으로 얽힌 두 남자는 격렬한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예언 탓인지, 호각으로 뛰어난 검술 탓인지, 승부는 쉽사리 결정되지 않는다. 맥베스는 세상 무서울 것 없다는 태도로 태연히 말한다. “헛수고 마라. 네 칼은 내 몸에 닿지 못한 채 공기만 베다가 끝날 것이다. 나는 마법의 보호를 받고 있기에 여자가 낳은 자에게는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하지만 맥더프는 한 치의 동요도 없이 그의 말을 받아친다. “그 따위 마법은 단념해라. 나는 여자가 낳은 자가 아니다. 열 달이 지나기 전에 어머니 배를 찢고 나왔으니.”


맥베스는 비로소 예언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아마도 광활한 숲이 자신을 향해 진격해올 때 어렴풋이 눈치 챘겠지만, 어쨌든 그 잔인한 문장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한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하지만 그는 물러설 수 없다. 어차피 지금 여기서 무릎을 꿇어봤자 자신에게 닥칠 운명은 애송이 왕자 앞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잔인하게 처형되는 것뿐이니까. “항복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칼자루를 단단히 움켜잡는다.


이것이 살아 있는 상태로 관객 앞에 선 맥베스의 마지막 모습이다. 셰익스피어는 맥베스의 최후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자포자기한 듯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며 무대에서 퇴장한 맥베스는 다음 장면에서 잘린 머리가 되어 쓸쓸히 등장한다. ‘왕위 찬탈자의 저주받은 머리통’이라는 조롱과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선왕의 적법한 후계자인 맬컴 왕자가 왕위에 오르고, ‘악마 같은 반역자의 간악한 앞잡이들’을 잡아들이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욕망에 사로잡혀 운명의 장난에 놀아난 맥베스의 광기 어린 비극은 막을 내린다.




작가 인스타그램: seo_merry

작가 유튜브: 서메리Merry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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