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 있었어요.
최근 곤란한 상황에 빠진 A가 있어서 제 마음이 오래도록 아팠습니다. 제가 해결해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해주며, 매일 아침마다 기억하고 기도해주는 일밖에 할 수 없었어요. 동료로서 책임을 느끼고, 이 일의 키를 가지고 있는 B께 A의 상황을 해결해주십사 말씀드렸지만 돌아오는 건 따가운 일침이었습니다.
시간이 또 흘렀고, 상황은 계속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렀습니다. 어제 사석에서 함께 모여 편히 이야기할 상황이 생겼어요. 불편함을 무릅쓰고 B께 한 번 더 A의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런 소리 꺼내지도 말라며 소리지르며 화를 내셨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순식간에 얼어 붙은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꺼내는 다른 분들의 이야기 속에 B와 저의 어색함은 유야무야 묻혔어요.
불편한 마음을 안고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다시 돌아가도 그 이야기를 또 꺼낼 건지.
제 대답은 네였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아파도 후회하지는 않기로 했어요.
A 본인도 여러 번 상황의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그 과정 속에서 고립감을 느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똑같은 상황이면 얼마나 외롭고 슬플까 , 누가 나를 위해서 한 마디라도 해주면 좋겠다 생각할 거 같았습니다.
살면서 돌아보니
1) 옳지 못하다 생각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고 상대방과 좀 어색해지기
2) 좀 참고 잘 지내기
매번 저는 둘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지만, 결과적으로 1번읕 선택했을 때 시간이 오래 흘러도 마음이 편안했던 것 같아요. 어차피 시간은 흐르고 그런 유형의 사람들은 1~2년 뒤면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조차 까먹을 정도로 지나가니까요.
물론 제가 도왔던 누군가가 저를 기억해준다거나 고마워하길 바라지 않아요. 그것보다 그때의 제 선택에 대한 공기와 느낌은 생생히 남아있더라고요. 기억은 앞으로의 삶을 나아가게 하는 발판이 되어주기도 하고, 생각날 때마다 고통스러운 가시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침묵하여 아픈 가시 보다 조금 불편해도 더 나은 선택을 위한 발판의 기억을 갖고 싶다 생각이 들어요.
항상 이 상황은 가면만 바뀐 채 반복이 되는 거 같아요. 그리고 상황은 제게 묻습니다.
“이번엔 몇 번이니?”
선택을 한 뒤의 어색함과 불편함을 지닌 채 밤과 아침의 일상 루틴을 그대로 밟았습니다. 육아를 하고, 책을 읽으며, 대화를 하고, 재밌는 볼거리도 뒤적이며 살던대로 살았어요. 꽃도 보고 하늘도 가끔 쳐다보며. 당황했던 순간이 자꾸 떠올라 여전히 가슴 한 쪽이 따끔거리지만, 이 어색함을 품고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 내가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되는 길이라는 걸 이제는 아는 거 같습니다.
어제의 생생했던 마음이 조금은 둥글어져 이렇게 글로 담담히 남겨도 보고요.
나란 사람의 본질은 무엇인가.
살면서 내내 성찰하는 질문이지만, 나의 본질은 옳다 생각하는 바를 충실히 사는 사람, 그 방향이 진짜 옳은지에 대해 기도로, 책으로, 공부로 계속 의심해보는 사람인 거 같습니다. 매번 불완전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이 질문을 평생 완성하며 살아가고 싶다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