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저 이 지구의 이방인

by 메리언


아이 반에 미국에서 청강생이 왔어요. 한국교포, 1학년, 이름은 아델라인(가명). 한 달 청강을 다니다 이번 주가 이제 마지막 주네요. 저희 학교는 시골의 작은 학교인지라 저도 매일 그 아이를 만나요. 아직 존대말이 어색해서인지


“서새임, 아녕?”


이라고 인사하고 가는 아이예요.


제 딸 00이 아델라인이 떠나는 걸 아쉬워하길래 아델 엄마에게 연락하여 약속을 잡았어요. 아이만 보내주면 내가 두 아이를 잘 데리고 놀아보겠다고.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델과 그 남매들(3명)이 한국 문화를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 청강을 보낸 건데, 친구와 사적인 시간을 따로 보낸다고 하니 아델의 엄마는 무척 반가워했어요.


“애니나~~~~~”


받침이 있는 저희 딸 이름이 발음하기 어려운지 아델라인은 꼭 ‘애니나’라는 비스무리한, 새로운 이름(?)으로 우리 아이를 불러요.


”아뒐롸인~~~~~“


아델라인이라 해도 되는데, 왠지 굴려서 발음 해야할 거 같은지 저희 딸도 아델의 이름을 요상하게 부릅니다.


”애니나 마미, 우리 어디 가?“


한 달 있었는데, 그 반 애들이 영어가 늘은 게 아니라 아델이 한국어가 엄청나게 늘며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어요. ㅎㅎㅎ 본인도 살아야 하니 생존 능력 발동이 되었을테고, 1학년 아이들은 영어를 못하니 한국어만 무지하게 쏟아냈을테니 그 리스닝 양에 아이가 한국어가 쑥 늘었죠.


”응, 아델아. 우리 과학관 갈 거야. 사이언스 뮤지엄!!! 사이언스 오케이???“


동네에 저학년 수준의 아주 작고 나름 재미있는 소규모 과학관이 있어요. 바깥은 더우니 오늘의 첫 코스는 너로 정했다!


여기저기 놀거리도 많고, 과학 게임기도 많으니 아델은 눈이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 낯선 타국에서, 외국어(한국어)만 들리니 혹시나 친구를 놓칠까 애니나만 졸졸졸 쫓아 다닙니다.


한바탕 논 녀석들을 붙잡고


”아델, 많이 놀았지? 디엔드디엔드. 우리집 가자. 마이 하우스, 렛츠 고.”


”아니야. 아니야. 애니나 마미, 나 게임 원몰 타임~~“


게임에 빠진 귀여운 아델이의 한이 풀릴 때까지 기다려주고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애니나 집 퍼스트 플로워? 웰 이스 세컨 플로워??”


“아델~~~ 코리아는 너무 스몰해서 아파트는 다 퍼스트 플로워야~~~아델이네는 세컨 플로워 있고 좋겠다.”


“애니나 마미, 왓 이스 디너 메뉴?”


“응, 포크! 포크!”


제 발음이 시원찮았는지 아델이 또 묻습니다.


“왓 이스 포크? 밋??”


“응~~~ 밋~~~ 삼겹살~~~ 두 유 라잌?”


“응. 나 밋 좋아해.”


문장으로 말할 수는 있으나 제 발음이 영 구린지 어린 아델라인은 원어민 발음이 아닌 이상에야 콩클리시를 잘 못 알아듣더라고요. 저도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는 성인 외국인들과 달리 너무 굴리고 자유롭게 말하는 아델라인 발음 못 알아듣겠고요. 결국 우리는 한국어와 영어가 섞인 제3세계의 외계어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아델이 긴 머리를 단발로 잘랐길래


”아델, 와이 딧 유 컷 유얼 헤어?“


“응, 나 그냥 잘랐어.”


와우…. 그냥이란 말도 배우다니… 나름 어려운 단어인데… 놀라웠어요.


“아델, 예쁘다.”


“나 예쁘다 시뤄해.”


“그래?? 그럼 쿨은?”


“응. 쿨 좋아.”


“아델, 유얼 쏘 쿨.”


“응, 땡큐~~~~”


그럼 영어 1도 못하는 저희 딸은 어떻게 아델이랑 놀까요? 예…. 그냥 패기 넘치게 한국어로만 말하더라고요. 손짓 발짓 하면 서로 다 알아듣는 게 신기하긴 하더라고요.


”아델아, 우리 레스토랑 놀이. 레스토랑“


여자애들 특인 소꿉놀이를 위해 드디어 딸도 아는 단어 말합니다. 레스토랑 ㅎㅎㅎ


둘은 서로의 언어로만 이야기하지만 나름대로 소꿉놀이, 피구, 클레이 놀이, 레진 아트, 팔찌 만들기, 인형 놀이를 알차게 이어갑니다.


”아델, 렛츠 고 홈. 아델 마미가 6pm에 오랬어.“


”노오~~~~“


아델은 슬퍼했지만 약속 시간이라 어쩔 수 없었어요. 저희 딸 애니나는 이별의 슬픔 극복을 위해 먹다 남은 마이쭈(5개 들었나)를 꼬깃꼬깃 아델 가방에 넣어줍니다.


”아델 선물이야. 가져 가.“


그걸 또 고마워하는 아델을 보니 어찌 귀여운지. 집에 다른 새 간식이 없어서 너무 미안했네요.


아델 엄마가 일이 있어 잠시 나가서 할아버지만 있다는데, 번호도 모르고 아이도 걱정되어 집문 앞까지 바래다 주기로 했어요.


아델 외할아버지댁 공동현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려 망설이는데, 갑자기 아델이


”노노, 아이 노우, 아이 노우. 나 알아!!!“


라며 자랑스러운 얼굴로 비밀번호을 능숙하게 누르더군요. 띠디디디디디.


”야, 아델. 너 스마트, 스마트“


아델은 이 기세를 몰아 현관문도 멋지게 엽니다. 띠디디디디.


그리고 쿨하게 쏙 들어가버립니다.


”애니나, 애니나 마미, 빠이~~~ 할아부지~~~~“


갑자기 들어가버린 아델이 웃겨서 우리 딸 애니나와 눈 마주치며 웃다가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아델은 갑자기 문을 또 열더니


“빠이~~~~ 빠이~~~~~”


라며 우리가 지하로 내려가느라 안 들릴 때까지 인사를 해주었어요.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아델이랑 노니 어땠어?”


“어떻긴, 최고였지!”


역시 사람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낯선 아이인데다가 영어에 그다지 자신이 없어서 아델과 약속을 잡기까지 3번 이상 망설였는데, 아델이랑 보내는 시간은 아델이라는 낯설고 신비한 세상과 도킹하는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아델이 애니나의 세계를 신기해하듯이.


집에 돌아오니 아델 엄마에게 전화가 옵니다.


“루카스(아델 오빠, 4학년)가 과학 선생님이 자기에게 너무 친절하다며 과학 선생님을 좋아하던데, 00이 엄마가 과학 선생님이었군요. 루카스에게 잘해주셔서 고마워요.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는데, 루카스가 그게 힘이 되었나봐요.


아델이가 00이가 자기 베스트프렌드라며, 00이와의 플레이데이트를 며칠 전부터 고대했는데, 오늘 다녀와서 얼마나 행복해하던지. 출국 전에 00이를 제가 한 번 데리고 놀게요. 보내주셔요.”


한국인 부모를 가졌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델과 루카스는 자신들과 닮았으나 너무나 다른 이 나라 사람들과의 한 달이 어땠을까요?


초등학교 때만 4번의 전학을 다닌 저는 모든 학교에서 이방인이었습니다. 항상 절벽 끝의 마음으로 전학 초기를 보냈던 저는 갑자기 한국 학교에 던져져 적응하려 애쓰는 그 아이들의 모든 모습들이 아프고도 익숙했습니다. 딸에게도 생각날 때마다 아델이에게 잘해줘, 아델이는 모든 게 낯설 거야라고 말해줬습니다.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고, 수업 시간마다 안되는 영어로 최대한 번역하며 이해시켜주는 것, 가끔씩 등을 두드려주고, 치얼 업하는 것. 고작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있어서 수업이 좀 더 어려워진 건 사실이나, 루카스라는 세계, 아델이라는 세계. 어쩌면 평생 모르고 지냈을 세계를 탐험해보는 건 나라는 세계가 더욱 확장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 딸에게도 아델과의 만남은 그렇지 않았을까요.


사람에게 사람만한 선물은 없습니다. 장소의 여행만큼이나 다른 사람이 빗장을 열어준 그 사람의 세계 속으로 여행을 가는 것은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나와 딸에게 자신의 세계란 빗장을 활짝 열어 준 아델에게 고마웠습니다. 너무나 좋은 경험이었어요. 아델만이 줄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었거든요. 한국인 하드웨어를 가지고, 미국인 소프트웨어로 살아가는 아델은 그 자체로 매우 특별한 존재였고, 아이가 아직 어렸기에 더욱 편견 없이 나에게 전해준 새로운 통찰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지구란 별에서 우리는 모두 고작 80여년 머물다 가는 이방인이지 않을까요. 모든 이방인에게 친절하고 싶습니다. 과거의 나이자, 미래의 나인 그들에게 고단함를 잠시 누이는 그루터기 였으면 합니다. 나 또한 언젠가 그 그루터기가 간절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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