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4일 (금)의 감사 일기
1월 24일 (금)
# 그 옆에
악몽과도 같은 며칠이 지나고, 조금씩 그날의 충격이 옅어져 가고 있다. 여전한 분노와 미움이 들끓을 때마다 기도하지만 말이다. 친구들은 나에게 하나님께서 막아주실 수도 있던 일을 허락하신 데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는 것이니 그 메시지를 분별해 보는 게 좋을 거 같다 조언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자주 골똘히 생각했다. 물론 여전히 잘 모르겠다.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씩 분석해 가든, 조금 더 뒤로 가서 숲을 보려 하든 해야겠다.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오늘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는 실마리를 푸는 데에 조금 도움이 된다. 그건 파스에 대한 이야기였다. 파스를 붙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픈 곳에 붙이는데, 사실 파스는 아픈 곳이 아니라 혈관의 위치를 잘 생각하며 그 옆이나 뒤에 붙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내용이었다. 흘려 들어서 정확히는 기억 못 하지만, 내용의 요지는 이랬다. 때론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는 정확히 문제만 해결하려 하지 말고, 그 옆과 뒤를 살펴보는 것이 더 좋은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고.
최근 글을 통해 여러 번 밝혔지만, 나는 갑자기 오프라인 지인들에게 내 글이 퍼져나간 이번 사건을 통해 정말 진지하게 출판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동안 쌓인 글이 상당했다. 그러나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쓴 것이라 글이 상당히 야성적(?)이었고, 다듬어져 있지 않았다. 그동안의 글을 다시 한번 다듬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또 누군가에게 공개될 수도 있는 글이란 생각을 좀 더 가지며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한 친구의 말대로 내 글이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경계를 넓혀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씩 익숙했던 것을 벗어나 하나씩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쩌면 이번 일이 내 글의 경계를 더 넓히고, 내 글의 범위를 깊게 하는 것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거나 한 사건에 대해서 오래도록 생각하는 나의 습관에 따라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이 일은 나의 기억 속에 의미를 되찾기 위한 과정 속에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모든 사건에 감사하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지키심과 보호하심이 함께 있다면 그저 또 다른 스텝을 위한 디딤돌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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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부터 몸살로 고생을 하고 있다. 사실 학교에 출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방학 돌봄은 자잘 자잘한 일의 종류에 비해서는 누구에게 부탁하기가 쉽지 않은 복잡한 일이다. 결국 감기약과 영양제에 의지해 이틀을 더 다녔다.
오늘은 방학 돌봄 마지막 날. 아이들과 인사를 했다. 2주 동안 정말 내 자식이라 생각하고 살뜰히 돌봤다. 후회는 없다. 아이들도 나를 잘 따르기도 하고, 때론 엄한 말에 무서워하기도 했다. 전담교사라 3~6학년을 모두 가르치기도 하고, 1~2학년은 돌봄 보결로 자주 보다 보니 전교생 41명이 모두 우리 반 아이들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오늘은 지연이(가명)와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 준비한 선물과 편지를 주니 지연이가 어안이 벙벙하다. 좋은 걸 좋다고도 표현 못하는 것이 역시 지연이 답다. 나는 원래 제자들과 전화번호를 주고받지 않는데, 지연이는 서운하다고 말했다. 자기를 이제 못 보는데, 끝까지 전화번호를 주지 않을 거냐고.
통학버스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며 끝없이 차창 밖으로 손 드는 지연이를 보다가 눈물이 나왔다. 그러다 전화에 내 번호를 누른 뒤 지연이에게 창문 너머로 보여줬다. 내 행동의 의미를 금방 알아들은 지연이는 전화의 화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 뒤이어 전화가 울렸다.
“뭘 전화까지 해.”
“그래야 선생님도 내 번호를 갖게 되는 거잖아요. 고마워요.”
우린 무슨 헤어지는 연인처럼 창문을 가운데에 두고 전화로 목소리를 주고받았다. 버스가 떠날 때까지 지연과 나는 계속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리 사이에 벌어진 거리 때문에 지연이는 내가 우는 걸 보지 못했다. 다행이었다. 지연이는 웃고 있었으니까.
하나의 만남과 또 하나의 헤어짐. 교사라는 직업은 매년 그 일을 반복해야 한다. 기쁘고 슬프다. 이제 좀 정들었다 싶으면 더 높은 곳에 날려 보내야 한다.
지연아, 잘 자라라. 선생님이 널 위해 계속 기도할 거니까 너는 잘 자랄 수밖에 없어. 나는 잊어도 그 사실은 잊지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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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가 계속 계속 보고 싶다고 했던 세영이(가명)을 드디어 초대했다. 호두의 친구를 집에 자주 초대하진 않는데(보통 호두나 친구들 모두 일상이 바쁘니까), 친구를 초대하다 보면 호두가 어떻게 친구들과 노는지 관찰할 수 있다.
오늘 관찰한 호두는 생각보다 놀이를 잘 설계하는 아이였다. 방 탈출 놀이를 설계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역할놀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며, 친구들에게 유머러스한 농담도 곧잘 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른들하고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호두를 키우며 나는 최대한 다양한 친구를 만나게 하고, 다채로운 경험을 해보도록 한다. 언제든 새롭게 펼쳐지는 상황들에 겁먹지 않도록 연습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이런저런 놀이를 설계하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연습해 온 것들이 헛되진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아이가 되도록 지혜를 간구하며 키워야겠다.
# 환경은 소중해
배달음식을 시키는 것을 되도록 자제한다. 돈을 쓰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나 하나의 행동으로 플라스틱 쓰레기가 자주 생기는 것에는 죄책감이 크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몸이 너무 아파서 요리를 할 수가 없다.
고민하다가 돈카츠 마켓이란 곳에서 돈가스를 시켰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이 나올까 봐 딱 돈가스 단품만 오는 것을 시켰는데, 종이 상자에 돈가스만 덜렁 들어 있었다. 딱 좋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몸이 힘들 때,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으면서도 시켜 먹을 수 있는 가게를 드디어 발견했다. 유의미한 발견이었다. 이런 가게와 메뉴들을 계속 고민하고 싶다. 같이 쓰는 이 지구가 너무 소중하니까.
# 힐링, 순간
르라보 핸드 포마드 히노끼.
처음 선물 받고 맡았을 때는 아, 좋다였다. 바를수록 향을 맡을 때마다 더 그 순간이 좋아진다. 향으로도 힐링이 가능하다는 걸 느꼈다. 히노끼 향을 맡으면서 잠시 마음을 전환한다. 참 좋다. 핸드 크림을 신중히 고르며, 크림을 바르는 흔한 리추얼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