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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쉐어하우스 이야기

by 머쉬

사람들은 나를 엄청난 부자로 생각을 한다. 그리고 돈을 펑펑 쓸 수 있고 항상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실상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번 사람들을 주위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 직장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이유는 부동산이 올랐어도 팔지 않았고 그저 기분만 낼 수 있는 사이버머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설사 매도를 해서 수익실현을 했다고 해도 대부분 투자가들은 그 돈을 여유롭게 쓰지 않고 다른 곳에 재투자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수익형 상가 투자가 아닌 아파트 투자를 의미한다.

나 또한 최근 5년 동안 엄청난 시세 상승을 가져왔지만 팔지 않았기에 기분만 낼 수 있는 사이버 머니에 불과하다. 물론 전세금을 받아서 투자금은 어느 정도 회수했지만 그래도 이 돈을 허투루 쓰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부동산 고수들은 시세차익도 중요하지만 일정 이상 매달 나올 수 있는 파이프 머니를 만들어야 투자를 안정적으로, 오래 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솔직히 나도 이 의견에는 백 프로 공감한다. 하지만 나는 과거 투자를 할 때 선택과 집중을 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동산 하락장에서는 시세차익형보다는 월세수익형에 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하락기에서 상승기로 접어들면서 하락기를 수익형 투자로 버틴 고수들은 상대적으로 쓴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과거 해오던 습관대로 상가,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 또한 하락기에 수익형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그래도 시세차익형이라는 생각을 일관되게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하락기에 재미를 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에도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하고 있었기에 매달 월세 1~2백을 받아서 저축하는 것보다는 시세차익형에 투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부동산 상승 초입에 아파트에 모든 영혼까지 들여 투자를 이어갔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한 쪽 월급은 오롯이 이자로 충당을 해야 했고 사이버 머니는 증가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더욱 궁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부랴부랴 파이프 머니에 대해 고민을 했고 그것이 바로 셰어하우스 투자였다.


사실 이야기는 책에서도 언급했고 몇 번 글을 썼기 때문에 특별한 것은 없다. 다만 오늘은 셰어하우스를 4년 동안 운영하면서 직장을 다니면서 쉐어하우스를 운영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셰어하우스라는 것은 솔직히 부동산 투자를 하면서 처음으로 하는 작은 사업이다. 처음 1호를 오픈했다. 거의 인테리어는 도배장판만 하고 시설도 거의 중고나라에서 구매를 했기 때문에 초기 자금은 1천 만도 안 들어 간거 같다.(당시에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서 투자한 것이다.)

물론 나는 이 아파트를 시세차익형 개념으로 매입을 했고 당시에 90프로 대출을 일으켰다. 매달 이자만 120만 원 정도 비용이 발생하고 있었다. 총 방이 4개에 베드를 9명을 입주시켜 임대료를 43만 원 정도로 운영을 하면 관리비 제외하면 약 170여만 원 정도의 수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당시에 내가 오픈할 때는 주변에는 셰어하우스가 2~3개밖에 없었다. 시장 조사를 통해서 대학가 근처로서 임대수요는 높았지만 공급이 작아 충분히 경쟁력이 높다고 생각을 했다. 시세는 원룸보다는 낮게 고시텔보다는 높게 책정을 한 가격이었다. 처음 오픈할 당시에는 수요가 높아 바로 만실을 채웠다. 하지만 학기 중에 나가는 인원이 발생했고 그 공실은 다음 학기까지 오롯이 공실로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나는 만실을 채우기 위해 학교 대좌 보나 알림판, 정류장에도 홍보 전단지를 붙여 보았지만 이미 학생들은 방을 다 구한 상태였기 때문에 학기 중간에 채우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가을학기 시작하면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예측은 또 빗나갔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최소 1년 단위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가을에 방보는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이 지역이 수익률이 좋다고 판단했는지 셰어하우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2~3개였던 것이 거의 25개 정도로 늘어났다. 그러면서 오픈 기념으로 할인행사를 대대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셰어하우스도 치킨게임이 시작되었다.

임대료는 40만 원이었던 것이 33만 원까지 내려가기 시작했다. 만실을 채워도 얼마 남지 않는 구조가 돼버린 것이다. 그래도 셰어하우스는 다른 사업과 달리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 직장 다니면서 충분히 케어가 가능한 업종이다. 더군다나 우리 집 근처라 고장이나도 얼마든지 바로 달려갈 수 있어 수월하다.(물론 초기부터 주거와 접근성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초기 예상과 다르게 수익률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다행히 매입한 45평 아파트가 4.5억이던 것이 9억이 되면서 위안을 삼을 수가 있었다. 당시에 나도 고민을 많이 했었다. 매입을 할 것인가? 전대로 운영할 것인가? 나는 그래도 매입해 시세차익형에 비중을 높게 봤고 임대료는 그저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접근을 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셰어하우스를 오픈한 사람들은 전대로 운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2년이 지나고 나니 나름 노하우가 생기게 되었다. 계약, 운영, 관리에 조금씩 익숙해지게 되었다. 3년 차부터 쉽게 만실을 채웠다. 그리고 신학기가 시작할 즈음이 됐다. 갑자기 중국발 코비드 19가 터져 버렸다. 학교가 폐쇄되었다. 가계약했던 임차인들이 해지를 하기 시작했다. 9명 중에 3명만 남기고 모두 해지를 통보했다. 갑자기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이자는 내야 하는데 임대료를 낮추어 블로그에 부랴랴 올렸다. 하지만 전화가 한 통도 없었다. 그리고 가끔씩 1~2달 단기 묶는 사람들 외에는 5자리 정도 밖에 차지 않았다.


그렇게 반년이 갔다. 2학기가 와도 학교는 개강을 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학교 주변 상권이 서서히 문을 닫기 시작했다. 주변 셰어하우스가 하나둘씩 폐업을 하기 시작했다. 반이 사라졌다. 10여 개만 남았다.


그리고 겨울이 왔다.

과거 4년 전에 나는 45평 아파트를 2채를 매입했다. 물론 둘 다 셰어하우스를 운영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하나는 집주인여서 이사를 가서 다행히 바로 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한 채는 임차인이 있어 2년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만기가 돌아왔다. 나는 갈등을 하게 된다. 임차인을 내보내고 생각한 대로 셰어하우스를 오픈해? 말어? 내년에는 코로나가 끝나지 않을까? 정상적으로 돌아오면 나쁘지 않은 것 아니야 고민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원래 생각했던 데로 임차인을 내보낸다.

여기서 팁 하나, 머쉬야 너는 임차인을 내보낼 정도로 돈이 많았니? 아니요. 사업자 대출(아파트 담보)을 활용해서 어렵게 임차인을 내보냈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대대적인 인테리어를 제대로 해서 멋진 셰어하우스를 하겠다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인테리어를 어떻게 할지를 아이디어를 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철거를 하기 시작한다. 원래 방이 4개였었는데 드레스 룸을 개조하면 한개 룸을 추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철거비로만 350만 원을 들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테리어를 하려고 하던 찰나에 어머니가 아프셔서 우리 집으로 모셨다. 중간에 병원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코로나가 발생했고 우리 어머니도 확진 판정을 받게 된다. 어머니 포함 우리 가족은 모두 15일 자가 격리를 해야 했고 어머니는 성남의료원으로 강제로 가는 상황이 발생한다.


나는 빨리 12월에 인테리어를 마치고 1월부터 세입자를 받으려고 했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15일간 공사 중단 (참고로 나는 직영으로 인테리를 한다.)

답답한 심정이나 어찌하겠는가? 받아들 여지. 그리고 2월이 다 되어서야 인테리어를 마칠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대학교는 여전히 대면 수업을 못 하게 되었다.

"아~힘들어지겠는 걸"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

대면 수업(예체능과) 하는 친구들이 아직 방을 구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나는 어떻게 60프로 정도 입실을 채우게 된다.

그래 이게 어디야 이자라도 내면 다행이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2학기가 돌아온다.

내가 운영하는 셰어하우스가 거주는 사람들로부터 입소문이 나면서 비대면 수업이지만 1자리를 제외하고 다 채우게 된다.

그런데 2학기에도 여전히 대면 수업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 주변 셰어하우스 업체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신학기가 도래했다. 학교는 대면 수업을 드디어 시작했다. 현재 쉐어하우스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정상적인 시세보다 높게 해서 만실을 다 채웠고 현재도 운영 중이다.


보통은 셰어하우스 계약은 6개월을 하지만 나는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그런 룰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잖아.

집주인 마음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고 모두 다 1년짜리로 계약을 다 했다.

2학기가 되었는데 전화가 매일같이 온다.

"방 있어요? 만실입니다. 혹시? 죄송해요."

"혹시 내년도 지금 예약해도 되나요?"


나는 사실 전업이 아니기에 손해만 보지 않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다.

솔직히 임대 수익보다는 시세차익형에 중점을 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작은 경험이라고 생각을 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전업 개념으로 시작을 했기에 위기가 왔을 때 이를 버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 셰어하우스를 직장 다니면서 운영을 하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가서 물품 리필하고 청소하고 하는 정도이다.

가끔씩 문제가 생기면 가는 것 외에는 크게 신경 쓰는 것이 없다.


만약 내가 이 일을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으로 했다면 이 기나긴 코로나 2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직장인들도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대단한 새로운 일을 계획하기보다는 회사를 다니면서 작게 일을 시작해 보아라. 그러면서 위기가 와도 월급으로 병행하면서 최대한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을 키우면서 사업을 조금씩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머쉿게 살고 싶은 -머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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