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4년 전만 해도 내가 알지 못하는 용어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다가 글을 쓰곤 했다. 니체, 해겔, 칸트, 데리다 등 읽지도 않고 대충 개론서 수준의 이해를 기반으로 그 사람들의 철학에 대해 뭔가 아는 마냥 글을 썼다. 단순히 내 감정을 토해 내거나, 일상의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느낀 적 없는 감정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단어, 개념들을 사용해 글을 쓴 당사자인 나도 공감하지 못하는 텅 빈 글들을 양산해 냈다.
그랬던 나에게 제대로 공부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쓰는 것이 하나의 반윤리적 행위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 준 책이 있다. 바로 이정우의 ‘ 개념-뿌리들’이다. 이 책은 철학자 이정우가 지금까지 자신의 철학적 여정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개념’에 대한 대중적인 설명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을 읽은 이후, 최소한 이 책의 설명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단어만을 사용하자고 다짐했다. 특히 이론적인 글을 쓸 때면 매번 내가 알 수 없는 개념사적인 단어들을 나열하지는 않았나 용어에 대한 퇴고를 감행했다.
예컨대 우리가 흔히 쓰는 ‘주체화’라는 단어만 해도 그것이 품고 있는 개념의 역사가 존재한다. 푸코에서 시작된 이 주체화는 랑시에르에게 계승됐지만, 그 의미가 매우 상이하게 달라졌다. 최소한 내 글 쓰기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어떤 의미에서 사용되는지를 인식해야 맥락을 읽어내는 사람에게도 올바른 의미가 전달될 수 있다.
어쨌든 이런 고민과 글쓰기를 지향하는 나에게, 다시금 정직한 글쓰기에 대한 고민의 씨슬들을 새로이 안겨준 책이 나왔다. 바로 앤서니 기든스의 ‘사회학의 핵심 개념들’이다. 기든스는 지금까지 내가 만나 본 사회학자들 중에 이론적인 토대가 가장 탄탄한 인물이다. ‘현대 사회학’이라는 불후의 명작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기본적인 개념들에서부터 시작해, 최근에 논의되는 논쟁적인 담론에 이르기까지 기든스는 신뢰할 만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그런 앤서니 기든스가 정리한 사회학의 개념들에 관한 책이다. 기본적인 개념들은 물론이고, 범죄사회학과 정치사회학에서 다루는 중요한 개념들은 대부분 다루고 있다. 오해하지 말자. 개념사는 아무나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대가들만이 개론서를 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개념사는 어떻겠는가.
사실 글쓰기를 위해 소개했지만, 기든스와 이정우 책의 주된 용도는 난해한 철학과 사회학 저서들을 읽기 위한 하나의 ‘introduction’이라고 할 수 있다. 서재에 꼽아 두고 모르는 단어들이 나올 때, 또는 글을 쓸 때마다 매번 꺼내어 살펴보자. 그러면 어느새 그 개념이 나의 언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