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속 먹는 즐거움..
어제는 일요일이었다. 오랜만에, 아니 격리 생활 중 처음으로 온 가족이 다 같이 마스크를 쓰고 마트에 갔다. 동네 대형 까르푸는 일요일인데 문을 닫았다. 이제부터 일요일은 영업을 하지 않나 보다.. 얼마 전 까르푸 직원 한 명이 코로나로 숨졌다. 나이는 50대이고 여성이다. 그 사건 이후 마트 직원의 안전에 대한 이슈가 부상하면서 일요일은 영업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결국 핸들을 꺾어 늘 가는 케이마트라는 한인 마트로 갔다. 아직 오픈 전인 시각. 안은 영업 준비로 분주하다. 또 방향을 틀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다른 한인 마트인 유로 마트로 갔다. 다행히 문을 열었다.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규모는 작다. 여기서 참기름, 김, 만두, 라면 등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식품들로 장을 가득 봤다. 근처 대형 모노 프리엔 사람들 줄이 길다. 이곳에서 아이 장난감을 사려고 했는데 무리다. 패스.
장을 보는 행위도 이렇게 힘들 줄이야. 바짝 긴장하고, 사람들과 거리를 둬야 하며, 마스크는 답답하고, 선글라스에 서리가 껴 물건 가격도 잘 안 보인다. 나온 김에 장을 다 봐야 한다. 수기로 긴 외출 확인증 한번 작성하는 게 여삿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출증 작성을 했을 때, 즉, 세상에 나왔을 때 내 볼일을 다 봐야 한다. 이건 무슨 수감자 같다. 감옥에서 나왔을 때 볼일 다 보고, 다시 감옥살이를 하는 죄수 같다.
겨우 장을 다 보았다. 총 130유로가 나왔다. 한화 약 17만 원. 약 2주간은 걱정 없을 것 같다. 먹을 거로 가득 찬 냉장고와 찬장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흐뭇하게 좋아진다. 엥겔 지수란 게 있다.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먹는 것에 소비를 많이 한다는 것. 지금 전 세계는 모두 엥겔 지수의 소득 수준 낮은 사람들이 되었다. 1주일간 쓴 소비 목록은 식품뿐이다. 미술관, 음악회 등 문화생활에 소비한 목록은 제로다. 여행도 없다. 옷, 액세서리 구매도 없다. 늘 같은 옷에 먹는 것에만 돈을 쓴다. 그리고 화장지 같은 생활 용품. 갑자기 엥겔 지수의 소득 수준에 따른 소비 행태를 느끼고 있다. 먹는 것으로 즐거움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 갇힌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책 읽고, 글 쓰고, tv 보고, 군것질 거리 먹는 것..
사실 다이어트 하기 딱 좋은 시기이다. 아무런 만남이 없으니 나만 마음을 굳게 먹으면 된다. 원래 단식원이 이렇다. 단식원에 갇혀서 외부 세계와 다 끊고, 혼자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견디고 견디면 단식이 가능하고 살이 빠진다. 지금 우리 집을 단식원이라고 생각하면 단식하기, 살 빼기 딱 좋은 환경이다. 누가 먹으라고 강요를 하나, 약속이 있나, 회식이 있나.. 그런데도 먹는 즐거움마저 없애 버린다면 이 시기를 참으로 견디기 힘들 것 같다.
파리에서의 하루하루...
먹고, 읽고, 쓰고, 보고, 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