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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Jan 28. 2022

자크마르앙드레 뮤지엄에서 생일파티를

그림도 보고, 생일도 축하하며...

"엄마, 오늘 유치원에서 L이 이거 나한테 줬어." 유치원에서 돌아오자 마자, 아이가 나한테 준 초록색 카드를 열어보니, '당신을 초대합니다'라는 글자와 함께 날짜, 시간, 장소가 적혀있다. 장소는 바로 자크마르앙드레 뮤지엄(Musée Jacquemart-André). 대게 이런 카드는 생일 파티 초대장인데, 여기에는 생일 관련된 글자가 없다. 뮤지엄에 초대하는 것일까? 참가 여부를 알려달라며 연락처가 적혀있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L의 엄마다. 일반적인 프랑스 엄마들보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딸의 생일 파티를 파리 8구에 위치한 자크마르앙드레 뮤지엄에서 할 계획이었다. 


점점 생일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동시에 하루 걸러 아이 반에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 프랑스는 일일 확진자수가 평균 약 30만 명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생일 파티를 할까 말까 정말 궁금했다. 생일 파티 이틀 전,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일 모레 생일 파티를 계획대로 진행하나요?'  두근두근 어떤 답변이 올까?


'오늘 L가 열이 조금 나서 학교에 보내지 않았어요. 그래도 많이 아픈건 아니예요. 잘 놀고 잘 먹어요. 내일 모레 생일 파티는 예정대로 할꺼예요. L이 너무 기대하고 있어요.' 열이 조금 나서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는데 생일 파티는 한다고? 아이를 생일 파티에 보내야 하는 건가? 몇 명 오는지 물었더니 대략 10명 정도 된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도 취소하지 않고 다들 오기로 했나보다. 그래, 확진자도 유치원에 오고 있는 마당에 가기로 했다. 


1월 23일, 일요일 오후 2시 반, 자크마르앙드레 뮤지엄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오며 가며 자주 본 뮤지엄이지만, 그동안 팬데믹 여파로 들어가보진 못했다. 대게 프랑스에서 아이들 생일 파티에 부모들은 참석하지 않는다. 아이들만 맡겨놓고 2시간 정도 후에 찾으러 온다. 생일 파티는 집에서 하기도 하고, 야외 공원에서 하기도 하며, 뮤지엄 및 문화복합센터 등에서 하기도 한다. 집이나 공원에서 할 경우, 케이터링 업체를 부르기도 하고, 직접 다과를 준비하기도 한다. 업체를 불러서 인형극, 게임, 페이스 페인팅, 마술 등을 아이들과 함께 진행한다. 


파리 8구에 위치한 자크마르앙드레 뮤지엄


프랑스 아이들의 생일 파티의 특이점은 먹는 것보다는 놀이 및 경험에 더 치중한다는 점이다. 이전에 E의 생일 파티 때는 유니콘 컨셉으로 스케일이 엄청났다. 외동딸인 그녀를 위해 엄마는 이날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마술사가 와서 아이들에게 마술쇼를 펼쳤다. 또 다른 친구 C의 생일 때는 집에 인형극단을 불러서 인형극을 집에서 관람했고, 아코디언 연주에 맞춰 춤을 췄다. 중간에 젤리와 쿠키 및 음료를 간단히 먹었다. 모두 먹는 행위 보다는 보고 듣는 놀며 경험하는 행위에 초첨이 맞춰졌다. 


요즘 한국 아이들의 생일 파티 문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을 불러서 상다리 부러지게 이것 저것 음식을 함께 먹으며 생일을 보냈다. 아시아권 정서는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친밀감을 형성한다. 중국도 손님을 대접할 때는 음식을 남길 정도로 엄청난 양의 음식을 준비한다. 음식이 남아야 잘 대접했구나 그제서야 안심한다. 예전에 중국에서 저녁 식사에 초대되어 갔는데, 음식 남기는게 미안해서 배불러도 다 먹었더니, 호스트는 계속 음식을 주문했다. 초대받은 이들은 미안해서 계속 먹고, 억지로 먹고, 누가 누가 이기나도 아니고 주문과 먹기를 반복한 끝에 결국 음식을 남기고서야 호스트는 흡족한 미소를 띄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번 L의 생일도 마찬가지로 보고 듣고 느끼는 행위가 우선이었다. 아이 부모들은 아이를 데려다 주고 다들 어디론가 각자 가버렸다. 우리나라 같으면 부모도 함께 있거나, 또는 부모들끼리 뮤지엄 근처에서 차 한잔이라도 할 수도 있을텐데 이곳은 달랐다. 아이만 남겨 두고 각자 어디론가 스르르 떠났다. 심지어 생일자 엄마 Y는 오늘 초대된 아이들 중 O라는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물었다. 반 아이 얼굴도 모르고 초대했다. 초대한 기준은 순전히 아이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다른 문화다. 우리는 아이가 친한 친구면, 그 아이 엄마 얼굴 정도는 알법도 하다. 그런데 여기는 달랐다. 아이 친구가 곧 엄마 친구는 아니다. 아이가 초대한 친한 친구라도 엄마는 아이 친구 얼굴도, 부모 얼굴도 모를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아이를 데리고 왔을 때도 부모끼리 서로 짧게 인사 나누고 헤어졌다. 


나는 그녀에게 여기에 있고 싶다고 미리 말했다. 그녀는 내가 원하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했다. 물론 친하지 않으면 함께 있겠다고 말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Y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편이라서 쉽게 제안할 수 있었다. 프랑스 엄마들은 이런 나를 이해 못할 수도 있다. '아이를 그냥 맡겨놓고 가면 본인도 자유시간 가지고 편할텐데 뭐가 그리 불안해서 옆에 함께 있겠다는 걸까?'하며 의아할테다. 그렇게 생각해도 할 수 없다. 나와 내 아이는 아시아인이고, 아직 아이는 만 5살로 어리며, 뮤지엄에서 아이를 잃어버리거나, 사고가 나더라도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항상 사고는 발생하기 전에 예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전 제일. 내 자식의 안전을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이 챙겨줄 수도 책임질수도 없다. 


실제로 2시간 동안 뮤지엄에서 아이들을 따라 다니면서 아찔한 순간도 몇 번 있었다. 3층 계단을 오르는데 큐레이터는 앞만 보고 가고(본인 업무는 그림 설명이지, 아이 보호는 아니니까), Y는 만 3살 셋째딸을 챙기기 바빴다. 보티첼리 전시회가 끝나기 하루 전날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정말로 많았다. 아이 한명을 누가 슬쩍 와서 데려가도 모를 정도였다. 또한, 3층 좁은 복도에서 아이들이 난간에 기대서서 그림을 보며 듣고 있었다. 자칫하면 떨어질 수도 있었다. 물론 사람이 쉽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다가 떨어질 수도 있다. 사람일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안전사고라는 것이 늘 그렇다. 문제 없겠지, 괜찮겠지... 하는 순간, 방심하는 순간 일어난다. 나는 그때 함께 온 것이 맞다고 다시한번 생각했다. 이중에서 한 명이 없어져도 모르는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하니 소름이 돋았다. 프랑스 아이들 생일 문화는 아무리 부모가 동행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프랑스인이 아니다. 그들을 함부로 따라갈 수도, 무작정 따라가고 싶지도 않다. 그들이 나를 보고 별나다 해도 별 수 없다. 이 땅에서 우리 모자는 말이 원활하게 통하지 않는 영원한 이방인이니까... 


자크마르앙드레 뮤지엄은 파리 8구에 위치한 순수 예술 및 장식 예술 박물관이다. Institut de France가 소유하고 있으며 1996년부터 Culturespaces에서 관리하고 있다. 원래는 개인 거주지였다. 이를 통해 옛날 프랑스 귀족들의 삶과 거주 형태를 알 수 있었다. 나는 귀족집을 뮤지엄으로 탈바꿈했다고 해서 규모가 작을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커서 놀랬다. 애초에 뮤지엄이라고 생각하고 갔다면 작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가정집이라고 알고 갔기에 그 당시 유럽 귀족들은 그야말로 대저택에서 살았구나 싶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자크마르와 앙드레는 부부이다. 그들은 체계적으로 컬렉션을 구축했고, 14세기와 15세기 원시시대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회화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파리에 보관된 137개 이탈리아 그림 중 124개의 작품이 이들 부부가 수집한 작품이다. 이를 과시하기 위해 이렇게 큰 저택을 마련했다. 그 당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그림을 모은 덕분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귀중한 유산과도 같은 작품을 볼 수 있다. 역사적인 저택, 유산, 그림, 작품을 하나하나 소중하게 다루며 보존하려는 프랑스인들이다. 다음에 따로 혼자 와서 천천히 작품과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볼 생각이다. 


개인 저택을 뮤지엄으로. 옛 귀족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상설 전시 외 특별 전시에는 보티첼리전이 한창이었다. 보티첼리 전시실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그도 그런것이 내일이 마지막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은 보티첼리 전시실은 근처도 가지 않고, 대저택 컬렉션만 1시간 30분 가량 관람했다. 큐레이터가 11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림을 설명했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보이는지 질문도 하고, 퀴즈를 맞추면 선물도 나눠줬다. 


보티첼리 전시회


나는 작품을 감상하기 보다는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아이들이 큐레이터의 설명을 귀담아 듣는 모습, 때로는 지루해하기도 하는 모습 등 내 두 눈에 담았다. 현장에서 직접 그림을 보면서, 자유롭게 자신이 본 것을 거침없이 얘기하고, 느낀대로 표현하는 살아있는 미술 교육 현장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적 미술 학원에 가서 시킨대로 그림을 그려야했고, 석고 뎃생을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미술관에 간 적은 거의 없었다. 반면 이곳은 그림을 이렇게 저렇게 그려라고 훈련 받기 보다는 어릴적부터 미술관에 와서 많은 그림을 보며,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질문하며, 정답이 없는 그림을 오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이는 시종일관 궁금한 것들을 손을 들어 질문했다. 큐레이터의 설명을 귀담아 듣는 아이들


그림에 요즘 부쩍 관심이 많아진 아이는 큐레이터 선생님 설명을 빼먹지 않으려고 가까이 앞에 서서 귀담아 들었다. 선생님께 손을 들고 질문을 하기도 하며, 선생님 질문에 대답하려고 하기도 했다. 엄마가 있어도 상관하지 않고 1시간 반 동안 뮤지엄 투어 프로그램에 집중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보물찾기 시간도 잠깐 있었다. 


1시간 반 정도 지나고 나서는 뮤지엄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이 레스토랑은 요리가 맛있고, 분위기도 좋아서 뮤지엄에 그림은 보지 않고, 식사만 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레스토랑 내부는 그야말로 화려했다. 사람들은 식사를 하면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뮤지엄 내부처럼 레스토랑 내부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심각한 팬데믹 상황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곳은 딴 세상이었다. 식사를 하기 때문에 마스크도 쓰지 않고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느라 내부는 시끄러웠다.


미리 준비되어 있는 생일 파티 테이블 위에는 젤리와 쥬스, 그리고 초코 케익이 나왔다. 심플했다. 아이들 각자 선물을 주었다. 생일 축하 노래도 없다. 그냥 선물을 주고 생일 축하해 한마디 하고는 오늘 자크마르앙드레 뮤지엄에서의 생일 파티는 끝이 났다. 아이 부모들은 시간 맞춰 속속들이 오기 시작했고,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아이을 데리고 갔다. 


(좌, 중) 뮤지엄 레스토랑에서 생일 초코 케익을 먹는 모습 (우)뮤지엄 3층 복도에서 그림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Y에게 다시한번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아이는 오늘 너무 재미있었다며 집에 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들떠있었다. 나는 2시간 반 동안 아이들 쫒아다니느라 이미 녹초가 되어있었다. 그래도 아이가 오늘 하루 친구들과 함께 그림을 보며 즐거웠다고 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다음에 혼자 조용히 자크마르앙드레 뮤지엄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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