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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Jan 17. 2022

시테섬과 생루이섬 산책

생루이섬의 갤러리들

지난주는 코로나 19의 심각성을 직접 경험한 한 주였다. 아이 반에는 연일 확진자가 발생했고, 우리 부부는 밖에 나가지 않고, 몸을 사렸다. 일요일 아침, 추운 날씨지만 답답한 마음에 밖에 나가고 싶어서 온 가족이 파리 시내를 걸었다. 노트르담 대성당 근처에 차를 주차시켰다. 노트르담을 멀리서 보고(여전히 공사 중이고, 문은 닫혀있다), 시테섬 걷고, 그 옆에 있는 생루이 섬도 걸었다. 작은 성당에 들어가서 잠깐 미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생루이섬에는 아기자기한 갤러리가 많았다. 일요일이라서 문을 닫은 곳도 많지만, 그중 연 곳도 꽤 있었다. 

Carré d'artistes라는 갤러리. 현대 미술품을 판매하며, 이름처럼 모든 작품이 정사각형이었다. 다양한 작가들이 정사각형으로 된 화판에 자신의 스타일대로 그린 작품을 이곳 갤러리에 내놓았다.


Carré d'artistes 갤러리


이전 같으면 지겨워서 빨리 나가자고 했을 아이가 웬일로 갤러리 그림들을 관심 있게 살펴보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그림을 자주 그리는데, 나는 아이가 그린 그림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관심 있게 봐준다. 분기별로 유치원에서 작품 하나씩 완성해서 가져오는데 그 그림들은 액자에 끼워 넣어서 집에 진열해두었다. 아이가 그린 그림을 쉽게 넘기지 않고, 아이의 그림 설명을 잘 들어주고, 칭찬해주고, 관심 가져주고, 액자에 넣어서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시간들이 어느새 1년. 아이는 어느새 그림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성취감을 느끼고, 자존감도 함께 상승하고 있었다. 


갤러리의 그림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이 작품은 이렇게 그렸네. 저 작품은 저렇게 표현했네"하면서 그림을 자신이 느낀 대로 표현했다. 그럼 나는 옆에서 같이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이건 우진이가 그린 그림과 비슷한 기법을 사용했다. 물감으로 그리고, 그 위에 실을 붙였네. 너 얼마 전에 그린 그림도 이런 기법으로 그렸잖아. 똑같네"


만 5살 아이와 갤러리에서 그림을 보며 함께 대화하는 모자... 나는 오늘 우리의 모습을 상상도 못 했다. 나는 그림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알려주거나 한 적은 거의 없다. 유치원에서 그림을 그려오면 그것을 잘 봐주고, 잘 들어준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시간들이 1년 정도 쌓이다 보니, 어느새 아이는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고, 나도 그런 아이를 보며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서로 그림을 두고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있다니! 나는 어릴 적 나의 부모님과 그림을 보러 다니지도, 그림에 대해 서로 대화를 한 적이 없다(최소한 내 기억에는 없다). 미술학원 몇 년 정도 다닌 것이 전부다. 그날 그린 그림을 엄마에게 보여준 적도 없는 것 같고, 엄마가 관심 있게 보자고 한 적도 없는 것 같다. 


그 옆에 있는 다른 갤러리로 들어갔다. 그곳은 자신의 눈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주는 갤러리였다. 갤러리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당신의 눈은 영혼의 거울입니다'. 처음에는 설마... 했는데, 진짜 개인의 홍채를 사진 찍은 후, 확대해서 그대로 그려주는 갤러리였다. 가격은 49유로부터 시작이라고 적혀있었다. 주문이 꽤 많은지 포장된 액자가 여러 개 놓여있었다. 60억 인구의 지문이 다 다르듯이, 홍채 모양도 미세하게 다를 것이다. 눈이 예술로 재탄생되는 순간이다. 자신의 홍채를 집에 걸어두고 매일 들여다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기발한 아이디어다. 


(좌,중) 사람 홍채를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갤러리 (우)아이는 그림 앞에서 재밌는 표정을 짓는다


생루이섬의 다리를 건너는데 센 강 위로 펼쳐진 오스만 스타일 건물과 청명한 하늘이 참으로 아름답다. 파리에서는 찍으면 무조건 화보가 된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다. 이런 배경이 또 없다. 우리는 아이를 두고 셔터를 마구 눌렀다. 나와 아이와, 신랑과 아이... 독사진, 커플 사진, 파파라치 컷 등 마구 찍었다. 그때, 아이가 갑자기 "엄마! 종이와 펜 없어? 나 여기서 그림 그리고 싶어"라고 말했다. 다리 위에서 보이는 센 강 풍경이 너무 멋졌는지 이 장면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 안달이다. 아이는 지금 이 순간을, 자신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종이와 펜이 수중에 없었다. "엄마가 사진 찍을게. 집에 가서 사진 보고 그림 그리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많이 아쉬웠다. 다음부터는 외출할 때 늘 종이와 펜을 들고 다녀야겠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반바지, 반팔 차림으로 세느 강변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땀을 흘리며 뛰고 있는데, 보기만 해도 나는 추워 보였다. 내가 너무 추웠기 때문에 속살을 드러내고 뛰는 사람이 너무 신기할 정도였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수록 프랑스인들은 더욱 운동을 한다. 실내에서 말고, 실외에서...


요즘 흥행 중인 넷플릭스 시리즈 <에밀이 파리에 가다> 시즌 2에서, 미국인이 실내용 바이크를 프랑스에서 마케팅하려고 하는데, 프랑스 직원들은 왜 운동을 실내에서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운동은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밖에서 하는 것이 아니냐며...


정말로 프랑스에서는 헬스장이 많지 않은 편이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는 매일 가던 안 가던 헬스장을 늘 끊어두곤 했다. 프랑스에 온 뒤, 처음 3개월 정도는 헬스장을 끊어서 다녔는데 숲과 공원이 많고, 공기가 좋고, 풍경 좋은 파리는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뛰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 하기 시작했다. 운동을 할 때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뛰어야 하는 프랑스인들...


(좌) 노트르담 대성당 (중) 시테섬에 있는 가장 오래된 성당 (우)생루이섬에서 바라본 세느강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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