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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Feb 08. 2022

이럴때 나는 프랑스에서 살기 싫어진다_1편

느린 행정, 책임 전가

프랑스 행정 처리는 느리다는 말을 한번쯤 들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정말로 프랑스 행정 처리는 늦을까? 얼마나 늦을까? 2022년을 살아가는 최첨단 시대에 왜 이리 늦을까? 뭐가 문제일까?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처음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언어가 되지 않아서 행정 처리를 하는데 불편함이 많았다. 주재원 신분이었기 때문에 다행히도 회사에서 도와줬다. 처음 프랑스에 유학온 학생들은 한인 교회를 많이 찾는다고 들었다. 그 이유는 어학 실력도 부족한 데다가 행정 절차를 잘 모르다보니, 한인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현지에서 오래 살고 계신 한인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2020년 여름, 집을 알아보는 것부터 건강 보험을 비롯한 각종 행정 처리를 우리가 직접 해야 했다. 물론 회사에서 조금 도와줄 수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의무 사항은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맡겨버릴 수 없었다.  


신분증 받는데만 정확히 1년 걸렸다 


이사를 하면서 신분증에 적힌 집 주소를 변경하기 위해 그즈음 경시청에 가서 신청했다. 정확히 2021년 11월에 낭테흐(Nanterre) 경시청에 가서 새로운 신분증, 한국으로 치면 주민등록증을 받았다. 한국에서 새로운 주민등록증을 받았을 때 1주일 정도 걸렸던 걸로 기억난다. 이보다 조금 늦거나 빠를 수는 있지만 대략 이 정도였다. 이곳 프랑스는 1년 걸렸다. 주소를 변경을 위해 1년 소요됐다. 나는 어느 나라 시대에 살고 있는 걸까? 정말 나는 누구? 여긴 어디?이다. 프랑스어 자격 시험 합격증을 받는데도 약 1년이 소요됐다. 원래는 8개월 정도 걸렸는데, 나머지 4개월은 합격증이 집으로 제대로 도착하지 않고 반환되어 도로 기관의 서류 보관함에 고이 간직되어 있었다. 집주소를 정확히 기재했는데도 반환된 이유는 무엇이며, 반환됐다면 찾으러 오라고 연락을 줘야 하는데 연락도 주지 않은 이유는 또 무엇일까?  


경시청(Préfecture)은 각종 면허증, 외국인등록증 등을 발급해주는 공공 기관으로,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마다 경치청이 있다. 프랑스인 오헬리엉이 쓴 책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파리 서쪽에 위치한 낭테흐 도청의 구글 평점을 정말 최악이다. 평가 멘트를 읽어보면, 사람들의 분노가 절절이 느껴진다. 별점을 0개만 주고 싶었는데, 최소 별점이 1개라서 1개를 준다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불만을 남긴 사람들이 엄청나게 만다.' 책에서 낭테흐 경시청이 언급되어 반가우면서도 평점 최악의 악명높은 경시청이란 말에 겁도 났다. 내가 가야하는 곳이 바로 저긴데...  


그날 현장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준비해야하는 서류 리스트에는 분명 신분증 사본이 없었는데, 입구에서 자료를 검사하는 직원이 신분증 사본이 없다며 가져오라고 했다. 다행히 현장에 프린터기가 있었다. 낡은 구식 프린터기에 겨우 신분증 사본을 급하게 준비했다. 준비 자료를 다시 확인 받은 뒤,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번호표도 없고, 번호가 뜨는 전광판도 없다. 유리 안에 보이는 각 창구마다 행정 직원들 뒤로는 각종 서류가 빽빽하다. 오래된 쾌꽤한 종이 냄새가 유리창 너머, 마스크도 너머 내 코끝까지 전해지는 듯 했다. 서류의 나라다. 마이크를 통해 신랑 이름을 불렸다. 어느 창구로 가야 할지도 몰라서 이리저리 우왕좌왕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있는 방은 외국인 전용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언어 소통이 아주 원활한 것은 아니었다. 입구에서 필요하다던 신분증 사본은 요구하지도 않았다. 각종 서류가 많다 보니 우리 신분증 찾는데도 한참 걸렸다. 결재 라인인 100군데 됐을라나? 1년 동안 내 신분증은 어디를 거쳐 지금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 신분증 받은 날, 우리는 조촐한 축하 파티를 했다.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 목차를 죽 둘러보다, 눈에 띄는 목차 제목이 있다. '행정 지옥은 진행형, 복지 천국은 옛말' 바로 다음장을 넘기니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프랑스 행정'이다. 캬. 제목 한번 잘 지었다. 말그대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프랑스 행정이다. 프랑스 사람조차 자신의 국가의 행정을 이렇게 보는데, 하물며 말도 통하지 않고, 정서도 모르며, 행정 절차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오죽하겠는가.  


다음은 그의 책에 나온 구절들이다. 각 구절에 따른 나의 의견을 각 아래 덧붙였다.  


책: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행정 서비스에 완전히 만족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걸 감안해도 프랑스의 행정 서비스는 정말, 정말 최악이다. 그야말로 '지옥같은 행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유를 들어보면 누구나 납득할 것이다. 우선 일 처리가 너무 느리고, 행정 기관의 운영 시간도 짧다. 게다가 행정 기관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 


->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의 행정 문제를 '프랑스병'이라고 부른다. 그들도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있다. 행정 기관이 너무 많아서 결재 라인이 길어지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다. 또한, 전자 시스템이 아닌 종이 서류로 하다보니 중간에 누락되고, 분실되기도 하는 등 시간이 많이 소요 된다. 그들끼리 의견을 좁히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워낙 자신의 의견이 많고, 강한 민족이다 보니... 이 프랑스 고질병 때문에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 즉, 인재 유출도 많다. 특히 속도가 중요한 스타트업 같은 경우에는 프랑스에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번 결재 받으려면 함흥차사인데 신기술 하나 개발했는데, 특허 받는 과정에서 이미 다른 나라에서 신기술을 개발해서 특허까지 끝낼 것 같다. 


실제 사례를 들면, 코로나 19로 인해 일상에서 많이 들어본 단어 중 모더나와 아스트라제네카가 있다. 미국 모더나 CEO인 스테판 방셀(Stéphane Bancel, 49)은 마르세유에서 태어났으며, 하버드 대학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했다. 그는 모더나의 9%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재산은 약 5조원이 넘는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최고경영자 파스칼 소리오(Pascal Soriot)는 1959년생이며, 호주로 떠났고 현재 프랑스와 호주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다. 이 둘은 코로나 예방 백신을 개발한 제약회사 CEO이자 프랑스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일처리가 느리고, 행정 규제가 많기 때문에 사업가들에게 어려움이 있다. 또한, 사회주의 전통의 뿌리를 가진 프랑스는 자본주의를 거북해 하는 경향이 있다. 이곳에서는 돈이 많아도 자랑하는 정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부자도 외적으로는 검소하게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곳에서 샤넬,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외국인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백신 개발에 성공한 제약회사의 두 CEO는 이러한 자국의 문제점과 장애물들을 재빨리 간파하고 해외로 빠져나가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 외에도 프랑스의 고질적인 행정적 문제로 인해 해외 곳곳으로 빠져나간 인재들은 많다. 


책: '공무원과 민원인의 관계를 보면 공무원이 갑이다. 공무원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꼭 그 공무원의 스타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밀어붙인다. 담당 공무원의 심기를 거슬러서 일이 틀어지면, 모든 일이 그 자리에서 멈춘다. 그냥 끝이라고 봐야 한다. 그 사람이 내 일을 처리해 주지 않으면 민원인으로서는 해결 방법이 없다. 그래서 항상 공무원을 만날 때는 아주 밝은 미소를 짓고, 그 사람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 프랑스에는 이민자들이 많다. 그들은 프랑스 땅에 살기 위해 외국인 거주증을 받아야 한다. 난민에 대해 부정적이 시각의 공무원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일이니 업무를 하긴 하지만 난민들 또는 이민자들을 매우 무시하며 대하기도 한다. 파리 경시청에 갔을 때, 수많은 각종 이민자들을 보았고, 프랑스 공무원들은 마치 가난한 너네가 부자인 우리 땅에 살러 온거니까, 내게 잘 보여봐.라는 듯 보였다. 그들에게 밑보이면 이땅에서 추방될 수도 있기 때문에 어쨌든 갑을도 아닌 갑병의 관계로까지 갈 수도 있다. 나도 파리 및 낭테흐 경시청에 몇 번 가봤지만, 갈때마다 공무원들이 무섭고, 늘 마음 졸이고, 체류증 못 받으면 어쩌지하는 괜한 긴장감이 들었다. 


책: '프랑스 사람들은 카프카의 소설 <소송>에 나온 상황을 빗대어 '카프카적이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소송의 주인공 요제프는 갑자기 알지도 못하는 이유로 1년 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소송에 휘말린다. 이 소설은 행정 절차를 일종의 괴물, 혹은 소통할 수 없는 대상으로 묘사한다. 주인공 요제프는 일반 시민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정 절차의 피해자다. 그래서 우리는 행정 절차가 잘 풀리지 않아 피해를 볼 때, 카프카적인 상황이라고 말한다.' 


-> 소통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말이 정말 와닿았다. 문의 전화 또는 문의 메일을 보내는 곳에 연락했을 때 관계자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고, 메일이 전달된 적이 없다. 전송 자체가 안되는 적도 많다. 메세지를 남겨주세요라는 문구는 왜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책: '다행히 프랑스에서는 행정 기관끼리 서로 서류를 공유하지 않아서, 치료를 받고 나서 다른 행정 처분을 받지는 않는 것 같다.' 


-> 이 부분은 의료 복지 체계 관련해서 작가가 언급한 문장이다. 행정기관은 많고, 서로 공유를 하지 않으니, 행정 처리가 늦어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마치 이곳은 공무원이 많은데, 서로 의견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결국, 업무 처리도 점점 늦어지는 것 같다. 



(좌) 낭테흐 경시청 일부 건물. 실제는 훨씬 크다. by 모니카  (우) 낭테흐 경시청 가는 길 아침 모습. 라데팡스 신개선문이 보인다. by 모니카



1년째 화장실 벽면이 뜯어진 채로 내부가 훤히 드러나있다 


이 집을 최종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깨끗함이었다. 인테리어를 새롭게 마친 새 집과도 같았다. 허나, 이사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화장실 한쪽 벽면에 습기가 차면서 벽면 페인트가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급기야 벗겨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나무 틈새가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프랑스에서는 전셋집에서 나갈 때, 에따 데 리우(État des lieux)라고 해서, 처음 이사 왔을 때의 집 상태와 비교해서 이상이 없는지 아주 꼼꼼하고 세심하게 체크하는 절차가 있다. 별것 아닌걸로 트집 잡힐 수도 있는데, 그래서 큰돈이 나가기도 한다. 언어가 잘 되지 않는 외국인일 경우, 바가지 씌우는 것은 예삿일도 아니다. 검사 업체는 이때다 싶어 사사건건 트집 잡아 건건이 가격을 매긴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이전 집 에따 데 리우 때도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벽에 페인트 칠해야 하는 부분 당 십만 원 정도 가격을 매겼다. 내가 페인트 칠해도 될 것 같은 수준인데 여러 곳을 체크하더니 견적을 내버렸다. 아이가 다칠까 봐 욕조 유리문을 처음부터 떼어 놓았고, 이 사실을 업체에 미리 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장실 유리문을 다시 갈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화장실에 습기가 많이 차서 문을 교체해야 하는데 100만 원 정도 가격을 불렀고, 프랑스어도 잘 못하는 아시아인 잘 걸렸다는 심보인지, 이참에 싹 레노베이션할 생각인지, 굳이 새로 손대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도 새로 해야 한다고 견적서를 들이 내밀었다. 에따 데 리우에만 약 300만 원 이상 비용을 지불했다. 이곳에서 을이 될 수 밖에 없는 이방인의 삶이란... 그때 생각하면 억울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기 때문에 이번 집에서만큼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을 쓰자고 했는데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집에 문제가 생겼다.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우리 아파트는 회사가 건물 전체를 사들여서 회사가 집주인이다. 업체를 보내서 확인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이리저리 체크하더니 다시 오겠단다. 그다음에는 다른 업체에서 또 연락이 왔다. 이리저리 확인하더니 더 고쳐야 할 곳은 없는지 물었다. 이 참에 손을 다 봐주나 싶어서 베란다에 금이 간 것, 마루에 틈이 벌어진 것 등 세세하게 사진 찍어 보냈다. 곧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함흥차사다. 두 업체에서 견적을 내기 위해 체크하러 왔었고, 그 후 한 달 동안 연락이 없어서 집주인에게 어떻게 돼가고 있냐고 물었다. 알아보고 있단다. 그 후 4군데 정도에서 연락이 왔다. 집 상태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렇더니 약속도 잡지 않았는데, 갑자기 어느 날 아침 어떤 건장한 남자가 초인종을 누르더니, 화장실 고치러 왔다고 연장을 가지고 왔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고, 건장한 체격의 남성의 뜻하지 않은 출현에 무서웠지만, 약 세 달 동안 10군데와의 커뮤니케이션 끝에 성사된 오늘의 성스러운 만남이기에 얼른 들어오라고 했다. 각종 연장을 가지고 이곳저곳 체크하더니, 드릴로 화장실 한쪽 벽면을 뜯었다.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바로 맞은편이 주방 싱크대가 있는 곳인데 그곳과 연결되어 있었다. 공사를 할 때 이쪽은 손을 보지 않은 것 같았다. 내부가 많이 낡았다. 노후화된 수도관을 손보지 않고 그냥 겉만 깨끗하게 공사를 했나 보다. 기술공은 내부 수도관이 노후되어 물이 새고 있다고 말했다. 시멘트로 그곳을 막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하고는 시멘트가 마를 때까지 놔두면 된다고 했다. 벽면을 다시 덮은 작업은 이후에 다시 와서 하겠다고 하며 가버렸다. 일단 원인은 알았고, 문제점을 발견해서 그 부분을 막았으니 더 이상 물은 새지 않을 것이며, 벽면이 부풀어 올라서 벽 시멘트가 떨어지는 일은 더 이상 없겠지라며 한숨 돌렸다.  


한 달, 두 달... 온다고 약속한 사람은 오지 않는다. 업체에 연락을 했다.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집주인한테 연락을 했는데도 어떠한 후속 조치도 없다. 그렇게 또 몇 달이 지나갔고, 화장실 벽면은 여전히 개복해서 배를 훤히 드러낸 상태다. 내부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안에서 바퀴벌레며, 쥐며 갑자기 나오지 않을까라는 상상도 해본다. 벽면을 뜯어놓고는 뒤처리를 하지 않고 가버리고, 온다고 해놓고는 깜깜무소식에... 설상가상으로, 세면대와 싱크대가 막히기 시작했다. 화장실 세면대는 이사 온 이래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다른 욕실에서 늘 손을 씻고, 샤워를 하기 때문에 이곳 세면대는 우리 가족은 손도 안 댔는데, 세면대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  


GMF라는 보험 회사에 연락을 20통 정도 했는데도 뾰족한 답이 없다. 전화를 받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한국의 콜센터 직원, 그것도 엄청 친절한 콜센터 상담 직원의 목소리가 그렇게 사무치도록 그리울 수가 없다. 이곳 콜센터 직원은 목소리 한번 듣기도 힘들지만, 한번 기회를 잡았다 해도 빨리 말하고, 냉정하게 말하고, 불친절해서 뭘 물어볼 수가 없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평균적으로 한국의 서비스와 프랑스 서비스는 하늘과 땅 차이다고 본다. 


결국, 오페라에 위치한 GMF 사무실에 두발로 직접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자기들은 잘 모르고,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했다. 한마디로 퇴자 맞았다. 그 후, 신랑과 함께 한 번 더 찾아갔다. 우리집 수도관이 윗집 아랫집과 연결되어 있어서 너희 집만의 문제는 아니니, 집 주인에게 연락해서 집주인이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집만의 문제면 GMF에서 해결해줄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는 취지였다.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뾰족한 해답은 못 찾고 돌아왔다. 여전히 화장실 벽면은 열려있다. 이 집에서 나갈 때, 에따 데 리우 할 때, 우리 보고 돈 내라고만 안 하길 바랄 뿐이다. 우리한테 돈 내라고 덮어씌울 수도 있기 때문에 그전에 어떻게 해서든지 손을 보긴 봐야 하는데 집주인도 보험회사도 그 누구도 책임을 떠넘기고,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하고, 지금도 여전히 알아보겠다고만 하고 있다. 액션이 없다. 말만 있을 뿐이다. 한국이라면 이 정도 일은 수리 업체가 와서 뚝딱뚝딱 해결할 것 같은데, 프랑스는 다들 이렇고 사는건가... (갑자기 예전에 프랑스 처음 도착해서 1000만원 치 도난 당했을 때가 떠오른다. 호텔에서 일어난 일인데, 호텔 주인도, 경찰도, 회사도 그 누구도 자기에게 책임이 없다며 보험 처리가 안된다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의견을 피력해서 사건 발생 후 1년이 되는 시점에 보험금을 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래서인지 프랑스는 DIY가 발달했나 보다. 마레 지구에 위치한 BHV 백화점 지하에 가면 DIY 제품들로 가득하다. 페인트 종류도 많고, 보도 못한 각종 신기한 공구들도 많다. 전에 살던 집에서 하수구가 막혀서 영 해결을 못하고 있자, 윗집 이웃에게 조언을 구하러 갔는데 기다란 용수철을 주면서 이걸로 하수구 안에 집어넣어서 이물질을 빼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보지도 못한 신기하게 생긴 도구가 이곳 프랑스는 가정집마다 하나씩 구비해두고 있다. 그만큼 하수구가 잘 막힌다는 얘기기도 하고, 기술공을 부르면 돈도 많이 들고 불편하니 각자 스스로 해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처럼 집을 새롭게 짓기보다는100년, 200년 된 건물을 부수지 않고, 계속 고쳐쓰기 때문에 굵직굵직한 파이프 관은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점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현재 우리 집 맞은편에 살고 있는 이웃은 1년 전에 이사를 왔는데, 최근에 셀프 집수리를 마쳤다. 조금씩 천천히 하나씩 집주인 아저씨께서 각종 연장을 가지고 집안을 스스로 고치고 계셨다. 이런 것들이 몸에 밴 듯 보였다. 기술공을 불러봤자, 느리고, 돈은 많이 요구하고, 속 시원하게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혼자 스스로 하는 것이 더 나은 듯 보였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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