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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Feb 09. 2022

이럴 때 나는 프랑스에서 살기 싫어진다_2편

택배, 우체국, 잦은 실수 

택배 받는 것이 두렵다?


해외살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택배. 그런데 이곳 프랑스는 택배로 인한 사건 사고가 잦은 편이다.  


우선, 택배가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이 관건이다.

프랑스 맘 카페에서는 '택배가 다른 집으로 배송됐다. 택배가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도착하지 않고 있다. 택배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글을 많이 보았다. 이곳 프랑스에서는 택배 한번 마음 놓고 받기도 쉽지 않아서 나는 한 번도 이곳에서 온라인 주문을 해본 적이 없다. 우리 가족은 무조건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을 직접 보고, 구매한다. 몸은 좀 힘들더라도... 


둘째, 기준 없는 관세. 그야말로 싸데뻥(Ça dépend)

이전에는 25달러 이하라고 표기하면 관세 적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서 물품을 보낼 때 실제 제품 가격보다 적게 적는 경우가 흔했다. 새 제품도 중고 제품이라고 속였다. 물론 거짓말하는 것은 나쁜 것이지만, 굳이 관세를 내고 싶다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 같다. 하얀 거짓말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나도 이렇게 부모님들께 말해서 관세를 피하곤 했다. 그런데 이것도 참 기준이 모호한 것이 어떤 사람은 이렇게 적었는데도 관세를 많이 냈다고 했다. 관세 금액도 천차만별이다. 또한, 10만 원대 전자 제품을 한국에서 받았는데, 관세는 50만 원 정도 나왔다는 글도 봤다. 이는 아마도 전자 제품 항목에 관세율이 높게 부과되는 듯했다. 하지만 정확한 기준을 알 수 없었다. 물론 관세청에 들어가서, 꼼꼼히 샅샅이 뒤져보면 나오겠지만, 대부분 그런 것을 모르고 물건을 주문해서 국제 운송으로 받았다가 이런 화를 당한다. 올해 초, 한국에서 택배를 받았는데, 처음으로 나도 관세를 지불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물품 가격은 35~40달러라고 적혀있었는데, 물건 받는데만 32유로를 냈다.  


셋째, 불친절한 택배 서비스. 공무원뿐 아니라, 식당 종업원도 택배 기사도 그들이 갑

올해 초 물건을 받을 때, 크로노포스트 택배 기사님이 전화가 왔다. 10분 후 도착한다고 했다. 그동안 택배 기사님이 도착한다고 전화를 주시면 대게는 밑에 물건을 놓고 가거나, 또는 집 문 앞까지 오시거나, 또는 관리실에 놔두고 가셨다. 이런 적도 있다. 코로나로 인한 새로운 유행인 건지, 엘리베이터 안에 쏙 넣고 그냥 가버린 경우도 있었다. 그 엘리베이터에 누가 타서 물건을 가져가면 어떡하려고 그런 건지... 너무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10분 후 도착한다고 해서 밑에 내려갔는데, 내가 없어서 그냥 갔다고 했다. 집 앞에 오지 않고, 집 주변 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기다렸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분이 내게 받을 돈이 있어서 놔두고 가지 않고 나를 꼭 만나야 한다는 것을.  


5분 후, 사정해서 다시 집 앞으로 와달라고 부탁했고, 다행히 차바퀴를 돌려서 우리 집 앞 거리로 왔다. 택배를 받으려고 하는데 32유로를 내라고 했다. 나는 돈을 내야 하는지 몰랐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맘 카페에서는 택배기사 사기도 많다고 들어서, 내지 않아도 되는 돈을 일부러 받으려고 사기 치는 줄 알았다. 자꾸 망설이자, 그는 돈을 내지 않으면 물건을 줄 수 없다고 아주 냉정하고도 무섭게 말하며 내 물건을 트럭 뒤 창고에 집어던졌다. 나는 그제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지금 받아야만 할 것 같았다. 집에 올라가서 돈을 가지고 내려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내게 돌아오는 대답은 "지금 마담 때문에 가던 차를 다시 돌려서 왔고, 시간이 지체됐어요. 안됩니다. 정 물건을 받고 싶으면 물품 보관소로 직접 와서 가져가세요."였다. 순간 너무 어이가 없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택배 기사는 흑인이었고,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옆에 같이 따라 나온 아이도 있었는데, 아이가 무슨 일인가 싶어서 트렁크에 던져진 택배를 유심히 보고 있는데 그가 차 뒷문을 갑자기 닫으려고 했다. 하마터면 아이가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화가 났지만, 누가 봐도 나는 지금 약자였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는 동양인 여성... 나는 그 순간, 보관소는 어디냐고 주소를 물어보니, 위험한 지역으로 분류되는 생드니 쪽이었다. 그곳에는 자가용으로도 가기 싫은 곳인데 이곳을 어떻게 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차를 타고 쌩하니 가버렸다. 영원한 이방인 모니카... 


그 후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물건을 못 받은 사람은 다시 받을 수 있도록 날짜를 재조정하는 란이 있었다. 그 택배기사는 이것을 모를 리가 없다. 재조정해서 받으면 된다고 말하면 될 것을 그렇게 사납고 무섭게 내뱉어버리고 매몰차게 가버렸다. 나는 날짜를 다시 정해서 택배를 받기로 했고, 그날이 다가왔다. 그때 그 흑인 택배기사였다. 그는 시종일관 내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나는 그를 계속 봤는데, 내 눈을 연신 피했다. 자신도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해 초였다. 나는 그에게 "본 아네(Bonne Année)"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반갑게(?) 새해 인사를 했다.  


이 외에도 택배 기사님이 친절한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한국의 쿠팡 총알 택배, 친절한 택배 기사님 그런 것은 없다. (물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일반화하기는 어렵고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최소한 나의 경험으로는 없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갑자기 우체국이 없어진다면?


주재원일 때는 자동차를 받았지만, 주재원 신분이 끝나면서 우리가 직접 자동차를 사야 했다. 자동차 보험 및 각종 서류 작업을 회사에서 조금 도와줬다. 자동차 등록 절차 및 보험 등록을 위해 어떤 서류가 집에 오면 그것을 받아야 한다. 작년 11월 중순, 우체국에서 온 편지 한 통. 나는 대충 읽었다. 직접 받으시겠어요? 우체국으로 오시겠어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보자면, 그 당시 나는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았다. 그래서 그 편지 한 통이 내 눈에는 설문조사로 보였다. 날짜만 수기로 적혀있지, 그 어떤 란에도 볼펜으로 적은 글자는 없었다. 나는 쉽게 무시했다. 설문 조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뿔싸. 그것이 바로 자동차 관련 서류가 도착했으니, 우체국으로 받으러 오라는 편지였다. 그것을 그때 처리하지 못한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그 자동차 관련 서류는 다시 우리나라로 치면 교통부에 되돌아갔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이는 교통부에서 편지 한 통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당신의 자동차 등록에 관한 서류가 우체국에 15일 동안 보관 되어 있다가 반환되었으니, 다시 우체국으로 보내라는 요청을 직접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의 서류를 우체국으로 반환해드리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그 편지에 적힌 대로 전화를 했다. 안내 서비스 멘트가 계속해서 나올 뿐 직원한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결국 여러 번 들어본 결과, 인터넷에 들어가서 절차를 밟으라는 안내멘트였다. 아니, 전화를 하라고 하면, 전화로 해결이 된다고 해야지, 인터넷에 들어가면 된다는 말을 듣기 위해 전화를 해라고 적혀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이지 이곳 콜센터 직원의 목소리를 한번 들어보고 싶다.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서류를 우체국으로 반환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문 용어에다 프로세스가 복잡하다. 오헬리엉 말처럼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 통보다. 며칠 동안 이 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왜 내가 그때 설문 조사로 잘못봤을까라는 자책도 한참 했다. 그런데 이번 일을 통해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자동차 관련 서류는 중요하다. 그럼 이러한 중요한 서류를 서신으로만 연락하고 주고받고 확인하는 게 도대체 2022년에 일어날 법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연락처도 다 기재되어 있고, 이메일 주소도 알고 있는데, 당연히 문자로, 이메일로 연락이 왔을 것 같다. 당신의 자동차 관련 서류가 도착하니 받으세요. 문자와 이메일이라면 놓칠 수가 없다. 전화가 온다면 더욱 좋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문자 또는 이메일만으로도 실시간 체크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번 일과 관련하여 프랑스는 오로지 우체국을 통한 서신 통보, 알림 밖에 없었고, 15일 동안 보관되어 있다가, 결국, 교통부로 되돌아갔다. 요즘 같은 시대에 편지를 꼭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프랑스에서 우체국이 차지하는 중요도는 매우 높을 것 같다. 우체국을 통해 서신으로 소통(이라 쓰고 통보라고 읽는다) 하니, 만약 이 나라에서 우체국이 한순간에 싹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 많은 중요한 서류들이 통째로 없어진다면? 패닉 상태가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혼자 사는 사람인데 한 달 동안 장기 해외 출장을 갔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그 사람은 그 시간 동안 중요한 서류들을 받지 못한다. 15일 동안 우체국에 있다가 해당 부서로 다 되돌아간다. 그럼 한 달 출장 후, 집에 돌아와서 각종 고지서를 받는다. 당신은 서류가 반환되었으니 다시 찾아가세요. 설상가상으로 그 사람은 프랑스어 한마디도 못하는 외국인이다. 그럼 일은 완전히 꼬여버리고, 도움받을 곳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도움받을 곳 없고, 초기 정착인이라서 이웃도 친구도 없다면, 완전 패닉 상태가 된다. 그래서 프랑스 정착하는데 힘들었다는 외국인들 사례가 많은 편인 프랑스 살이다.  


프랑스는 행정적으로 매우 아날로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나는 생각해본다.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나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걸까? 해외 출장 중인 외국인에게 문자 또는 메일로 알려준다면, 그 사람은 해외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나름 대고 자기 선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최소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인식은 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그들만의 언어와 그들만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외국인, 고객, 상대방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우체국, 서신, 편지, 이런 아날로그 방식만 계속 고수한다면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일까? 일은 더욱 느려지고, 복잡해질 뿐이다. 일은 단순하고, 빠르게 해결되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들은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일부러 느리게 처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어떤 가치관 때문에? 어떤 이념 때문에? 


프랑스 행정 처리가 느리다는 말은 이미 예전부터 나온 말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왜 프랑스 행정이 느릴 수밖에 없는지 더욱 알게 됐다. 한마디로 아날로그 방식 고수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편지가 중간에 어떤 이유로 분실되면 그때는 또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프랑스에서, 프랑스인들에게 라 포스트(La Poste), 즉, 우체국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곳이라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프랑스의 아날로그를 대변하는 우체국, 편지, 서신 통보... 이 모든 것들이 프랑스라는 나라를 더욱 발전시키고 있는 것인지, 후퇴하게 만드는 것인지를 프랑스인들이 스스로 인식하고 깨어나야 할 부분이다. 뭐든 빠른 한국인은 이 부분이 쉽게 보인다. 하지만 이미 어릴 적부터 이런 행정 절차에 익숙해지고, 젖어들며 우체국과 함께 성장한 프랑스인들은 변화가 필요한 것인지, 느린 것인지, 불편한 것인지, 개선해야 할 것인지를 체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그렇게 맞춰 살아갈 뿐이다. 그럼 변화도 없다. 발전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퓌토(Puteaux)에 있는 우체국 정문 위 조각화가 인상적이다. 각 대륙에서 신과 여신들이 손을 뻗어 연결되고자 하는 듯 보인다. 그 밑에는 '우편, 전신, 전화. 구대륙과 신대륙을 이어주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요즘 시대에도 우편으로, 전신으로 연락하는 프랑스를 잘 표현하는 조각화다. 저기 글자를 문자, 이메일로 바꾸면 안 될까라는 생각도 든다. 연결하자, 이어지자 하면서도 연결되지 못하는 것 같은 갑갑한 느낌을 안고 퓌토 동네를 한 바퀴 걸었다. by 모니카 



잦은 행정적 실수. 무조건 직접 꼼꼼히 확인하셔야 합니다


프랑스 행정이 느리다. 그럼 느린 만큼 꼼꼼하게 정성 들여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런데 행정 처리에서 문제를 발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미 예전 글에도 썼는데, 프랑스에서 4번에 1번 꼴로 마트에서 계산원이 실수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계산서를 무조건 꼼꼼히 봐야 한다. 그들은 그들이 계산을 잘못해놓고는 미안하다는 말도 절대 하지 않는다. 프랑스 살이 5년 차의 짬빱인가, 여유인가 이제는 계산이 틀린 것을 발견하면, 화나기보다는 그럼 그렇지 하며, 이번에도 발생했네라며... 실수를 발견한 것이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이상한 상황에 까지 다다랐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 그게 더 어색하다.  


생활 속 실수뿐 아니라, 공공 기관의 행정적 실수도 잦은 편이다. 아이 이름을 잘못 적는다거나, 이메일 주소 및 핸드폰 번호를 잘못 적는다거나(실제 이메일 주소를 확실하게 종이에 적어서 건네줬음에도 불구하고 알파벳을 잘못 적어서 한동안 시청에서 아이 학교 관련 이메일을 못 받은 적이 있다.) 그 외 행정적인 실수를 자주 발견했다. 신랑 회사도 마찬가지다. 회계팀에서 잘못해서 신랑 월급이 2번 들어온 적도 있고, 더 많이 들어온 적도 있다. 물론 후에 잘못 처리되었다면서 다시 돈을 잽싸게 빼내가기도 했다. (이런 것은 실수가 발생해도 또 귀신같이 찾아낸다). 월급이 잘못 들어온 적도 있고, 적게 들어온 적도 있다. 안 들어온 적도 있다. 


아이 학교 급식비용을 잘못 계산해서 돈이 더 많이 청구된 적이 있다. 이곳 프랑스는 평등을 강조해서 급식비, 방과 후 활동, 특별활동 등 모든 비용을 각 가정의 수입에 따라 차등 지불한다. 각 가정은 일 년 치 수입 및 세금 낸 것 등의 자료를 토대로 다르게 돈을 청구한다. 나는 학기 초에 분명 세금 및 모든 자료를 제출했다. 그리고, 1년 치 수요 학교 및 방과 후 활동 비용 2가지를 모두 한 번에 내라는 통지를 받았다. 나는 큰 의심 없이 서류에 찍힌 액수대로 돈을 지불했다. 그 당시에는 돈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네라는 정도로만 여겼다. 왜냐면 월별이 아닌 일 년 치를 2가지 다 한 번에 내다보니 많은 비용이 나왔구나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며칠 후, 다시 한번 들여다보니, 우리 집 수입에 따라 내야 하는 비용보다 더 많이 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청에 문의 메일을 보냈고, 그곳에서는 알아보겠다는 답변을 줬다. 7일 정도 지나도 답변이 없다. 원래 메일 답변이 느린 프랑스이기 때문에 알아보고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10일째, 나는 다시 한번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덧붙여서 우리 집 수입 및 세금 고지서 첨부한 메일을 함께 보냈다. 나는 분명히 학기초에 보내라는 서류를 다 보냈다고 다시 한번 상기시켜줬다. 한 달 후, 시청에서는 자신들이 착오가 있었다며, 나머지 금액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이 처리를 하는데 뇌이쉬르센 시장 사인이 찍힌 서신이 우편으로 날아왔다. 또 서신이다. 시장까지 올라가기 위해 많이 거쳐갔겠구나 싶었다.  


이 외에도 행정적인 실수 및 오류가 잦다. 그때그때 스스로 확인할 수밖에 없다. 내 권리는 내가 찾아야 한다. 행정이 느리면, 실수라도 없어야 하는데 느린데 실수도 잦다. 그들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한국은 빠른데, 실수도 없다. 한국 마트 계산원들을 한번 보라. 빨간 조끼를 입은 캐셔 직원들은 하나같이 손동작이 빠르다. 매의 눈이다. 눈빛은 살아있다. 머릿속은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파파박 돌아간다. 어떨 때는 너무 정확하고, 빠르고, 빈틈없는 그들의 강도 높은 업무에 스트레스가 많으시겠다는 안쓰러움도 든다. 그 와중에 친절하기까지 하다. 아픈 속사정이 있을지라도 고객님들을 위해 미소를 잃지 않는다. 한국은 감정 노동이 심한 편이다.  


반면 이곳 프랑스는 캐셔들이 손님들 줄이 길어도 할 말 다 하고, 앞에 있는 손님과 농담도 섞어가며 바코드를 찍는다. 그렇다 보니 계산 실수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찍어야 할 것을 놓치거나, 찍는 것을 또 찍거나... 정신 바짝 차리고 계산에 열중해야지 이런 마인드가 아니다. 한국 같았으면 뒤로 길게 줄 선 손님들이 "거 좀 빨리 하시오~"라고 한마디 거들었을 수도 있다. 여긴 그런 것 없다. 그냥 사람들이 묵묵히 기다린다. 세월아 네월아 계산하면서 실수는 잦고, 친절하지도 않다.(물론 간혹 친절한 캐셔도 있지만 대게 그렇다는 말이다)


아날로그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것과 감수해야 하는 것


이쯤에서 어떤 것이 맞는 건지 또 한 번 헷갈리기 시작한다. 기계처럼 빡빡하게, 스피디하게 일하는 한국이 힘든 사회인가? 아니면 일이란 빠르고, 정확해야 하며, 빈틈이 없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일할 때 여유가 있고, 빈틈도 살짝 있어주며, 이로 인해 실수는 잦지만, 그래도 인간적인 면이 있는 것이 좋은 사회인가? 아니면 느리고 실수 투성이라면 이는 일을 위한 일을 만드는 것이며, 일의 효율은 떨어지고, 결국 사회 발전은 없는 것인가? 


1년째 화장실 벽면이 열려있고, 하수구는 자주 막히며, 내 자동차 관련 서류는 어디쯤에 있는 것인지, 들어오기로 한 나머지 학비는 들어왔는지, 어제 까르푸에서 장 본 영수증에는 계산이 잘못된 것이 없는지... 


옛 것을 고수하려는 민족성과 가치관으로 인해 100년, 200년 된 역사적 문화유산을 곳곳에서 매일 쉽게 즐길 수 있다. 동시에 옛 방식을 고수하느라 변화하지 않는 아날로그식 행정을 감수하며 고구마 백개 먹은 듯한 기분으로 이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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