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니카 Mar 21. 2022

Yaron Herman과 창의성

혼자만의 시간과 천천히

루이비통 재단에서는 3월 16일부터 19일까지 제3회 피아노 재즈 세션을 진행했다. 16일 첫째 날은 재즈 피아니스트 Yaron Herman이 청중과 함께 재즈 작곡법 및 연주기법에 대해, 대본 없이 자유롭게 서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17일~19일은 콘서트가 있었다.


첫날 2시간 동안 진행되는 재즈 워크숍에 참가했다. 4번째  중앙에 앉았는데 하필 그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는 일직선 상에 앉았다. 사람들이 오자, 안으로 밀려 들어가고  들어가고 하다 보니 엉겁결에  좌석의 주인이 내가 돼버렸다. 그는 편한 차림으로 가볍게 무대 위로 올라왔다.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는 그는 프랑스인이라기보다는 미국인 느낌을 받았다. 프로필을 보니, 보스턴 버클리 음대에서 유학했다.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81년생인 그는 프랑스어가 매우 유창했다.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프랑스-이스라엘 태생이었다.


청중들과 자유롭게 작곡법에 대해 나누고, 연주도 들려주며, 편안하게 진행된 2시간의 재즈 워크샵 by 모니카


프로필에는 버클리 음대에서 실망을 하고,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고 나왔다. 굳이 미국에 '실망'이란 단어를 집어넣은 것을 보고, 프랑스답다는 생각을 했다. 프랑스는 미국에 대해 한국만큼 우호적인 편은 아니다. 물론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은 너무 상업적인 나라라는 생각을 가지고 미국 문화를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이 패권국가다 보니 자존심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프랑스는 자고로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편이라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영어를 잘 사용하려 하지 않기도 하고, 미국 제품을 많이 애용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는 최소한 내가 보고, 느낀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것을 밝힌다.) 아무튼, 미국에 실망이란 단어를 굳이 써가면서 바로 뒷 문장에 파리로 옮겼다고 말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프랑스는 피카소, 반 고흐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파리에 모여들었고, 이곳의 풍부한 문화예술적 감수성을 토대로 그들의 작업이 더욱 발전하고 융성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근현대로 와서는 르 코르뷔제, 현대에는 조성진 등 건축가 및 음악가들이 프랑스에 와서 공부하고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유명 예술가들이 프랑스를 파리를 거쳐갔다. 그도 이스라엘 태생, 미국 유학을 했지만 결국 파리라는 도시에 정착할 만큼 파리는 문화예술적으로 위대한 도시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느꼈다.


그는 수많은 질문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고 자신의 의견을 편안하게 대중들에게 알려줬다. 즉흥 연주를 하는데, 멜로디며 모든 것이 아름답고 좋았다. 큰 유리창 너머로 계단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이곳 오디토리움을 한층 더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100명 정도 되는 청중들을 보니, 대부분 중장년층이 많았다. 노트에 그의 말을 일일이 필기하며 집중해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평일 오후 시간이다 보니, 젊은이들은 오기 힘들듯 하다. 수요일은 학교를 가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할아버지도 계셨다. 7~8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 7명 정도가 곳곳에 보였다.


청중석에서 한 명이 자신은 프랑스어를 못 알아들어서 당신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듣는데, 피아노 연주는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재치 있게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서 정말 다행이군요!"라고 했다. 좌중은 한바탕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자리를 떠나지 마세요. 이따 피아노 연주 들려드릴게요."라고 덧붙여 말하며 매너 있게 대했다. 시종일관 문답이 오고 갔고, 중간중간 작곡법도 알려주며 피아노도 함께 연주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사람들도 매우 편안하게 워크숍에 임했다.


그는 어린 시절 농구를 했는데, 큰 부상을 입고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자, 16살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꽤 늦은 나이에 피아노를 시작했음에도 어떻게 이렇게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가 된 것일까? 비결은 창의성에 있다고 했다. 프로그램에 나와 있는 문구가 내 마음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L'enjeu de cette résidence est de réunir autour de la passion, de la créativité et de l'apprentissage, plusieurs projets qui mettent en avant le croisement entre influences et styles. Comment peut-on marier la musique classique et le jazz? Quel est le dénominateur commun entre tous ces différents musiciens? La créativité! En provoquant des rencontres inédites et surprenantes et en parlant du comment et du pourquoi de la créativité, on peut ouvrir les portes de l'inspiration.> Yaron Herman


클래식 음악과 재즈를 어떻게 결합할 수 있습니까? 모든 음악가들 사이에서의 공통분모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창의성!


<La créativité n'est pas réservée à quelques élus. Ce n'est pas non plus un talent, c'est une habitude, une attitude, une façon d'être que l'on peut apprendre et cultiver. La créativité nous révèle les trésors qui sommeillent en nous. Les champs de la créativité sont infinis et souvent insoupçonnés!> Yaron Herman


창의성은 선택된 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재능이 아니고, 우리가 배우고 계발하는 존재의 방식이자, 습관이며, 하나의 태도이다. 창의성은 우리 안에서 잠자고 있는 보물을 깨운다. 창의성 분야는 무한하며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창의력을 일상생활 속 태도에 있다고 했다.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일상의 습관, 삶의 태도 등을 바꿔도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다고 했다. 영감은 이러한 습관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가 이렇게 말하니 한층 마음이 편안해진다. 예술가들의 번뜩이는 창의성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어떤 특별한 재능이 아닐까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신동, 천재, 영재... 그런데 그게 아니란 말을 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어떻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관찰하고, 느끼며, 또 배운 것을 어떻게 일궈나가는지가 창의력을 계발하는 비법이라고 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대단한 영감은 일상의 꾸준한 습관, 평범한 것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 삶의 태도 이런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는 재즈 작곡과 연주에 창의력을 강조했다. 2020년 '창조적 클릭(Le Déclic créatif)'이라는 책도 냈는데, 표지에는 '일상에서 창의성의 마법을 경험하세요(Vivez la magie de la créativité au quotidien)'라는 부제가 있었다. 멋진 말이다. 거창한 무엇인가를 해야만, 멀리 여행을 떠나야만, 대단한 선생님께 배워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삶의 자세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만 바꿔도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고,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으며,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어린아이들에게 창의력 계발 교육을 강조하고 필요성을 외친다. 창의력 계발을 위해 비싼 학원을 다니고, 선생님께 배우고, 좋은 곳에 여행을 가고, 많은 경험을 하는 것도 물론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것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매일 아이들의 창의성을 개발할 수 있다. 이는 부모가 어떤 시각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아이와 어떤 대화를 나누며,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따라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소한 말 한마디로 아이 속에 내재된, 잠자고 있는 창의력을 꺼낼 수도 있다. 아이와 만들기 또는 그림 그리기 등 창조적인 작업을 하면서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긍적의 대화를 나누면 창의성 개발은 물론 정서적 유대관계도 좋아진다.  아이와 근처 공원에 가서 자연을 탐색하면서 함께 생각을 나누고, 대화를 하는 것도 무궁무진한 창의력을 발산하게 한다. 사소한 것을 사소하게 여기지 않고, 평범한 것을 평범하게 바라보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창의성을 개발하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무한한 창의력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한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다.


Yaron Herman의 창조적 작곡기법과 연주를 들으면서 그는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피아노는 소중히 다뤄야 했고, 연습하고 나면 잘 닦아야 했으며, 악보대로 연습을 해야 했던 나의 어린 시절과는 달리,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장난감 다루는 자유자재로 연주했다. 연주하다 일어서기도 하고, 피아노 줄을 가지고 기타 치듯이 당기기도 하며, 다른 한 손으로 줄을 꾹 눌러서 피아노 건반 소리가 묵직하게 다르게 들리는 특이한 기법을 보여주기도 했다.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를 마치 조그만 악기 다루듯 현란하면서도 자유롭고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았다. 클래식 피아노 연주 기법을 완전히 탈피한 창조적이고, 무한하며, 광활한 우주와 같은, 자유 그 자체였다. 피아노와 한 몸이 되어 재즈 속으로 완전히 빠져든 그의 모습은 무아지경 그 자체였다.


재즈 멜로디가 좋다 by 모니카


Improvisation

- prendre des cours

- passer du temps seul à comprendre ce qu'on aime: livres, écoute, imitation...

- travailler lentement patience et tempo


즉흥 연주기법

- 수업을 듣는다.

- 독서, 감상, 모방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 인내심과 자신만의 속도로 천천히 연습한다.

 

그는 증흑법에 대해 청중들에게 알려줬다. 그중 '혼자만의 시간(temps seul)'과 자기만의 속도로 '천천히(lentement)'라는 두 단어가 내 마음에 깊이 들어왔다. 창의적인 사고를 위해 혼자 사색하고 숙고하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빨리빨리가 아닌 천천히. 창조적인 재즈 피아니스트도 천천히를 외치고 있다. 나는 행동도 느리고, 삶을 살아가는 리듬도 느리고, 세상사에도 느린 사람이다. 달리 말하면 게으른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나도 빨리빨리의 삶을 살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여러모로 많이 변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느린 것보다 빠름을 추구하는 편이다. 뭐든 빨리 해내야 하고, 남보다 빨라야 하고. 하지만 빠른 것에서는 창조성이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창의력, 창조성은 김치 또는 된장이 충분한 발효 과정과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하듯 어느 정도의 시간과 깊이가 필요하다. 천천히, 느리게가 결코 뒤처지는 것이 아닌, 창의력과 창조성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점에서 나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한편으로 나와 아이의 느린 삶에 위안을 얻기도 했다.


워크샵이 끝나고, 루이비통 재단 기념품 샵에 들렀다. 루이비통 재단 공식 포스터를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황량한 모래 위로 공중에 붕 떠 있는 거대한 흰색 건축물. 하늘을 거의 뒤덮은 하얀색 구름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한 장의 사진 밑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있다.  

<La Création est un Voyage.>

창조는 여행이다.


(좌) 유리창문 너머로 보이는 계단을 따라 흐르는 물 (중) 사람들이 그의 작곡법을 집중해서 듣는다 (우) 루이비통 재단 공식 포스터에는 <창조는 여행이다>라고 적혀있다.



피아노와 음악에 완전히 심취한 모습이 멋지다 by 모니카


매거진의 이전글 루브르 키즈 공간, 스튜디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