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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May 02. 2022

룩셈부르크

작고 심플하지만 깨끗하고 부유한 나라

프랑스는 4월 23일부터 5월 8일까지 부활절 방학에 들어갔다. 엊그제 봄 방학한 것 같은데 또 2주 방학이 돌아왔다. 돌아서면 방학이다. 이제 코로나 상황도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여행을 가기로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프랑스 살이 초기 3년 동안은 여행을 많이 다녔다. 만 1살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이탈리아 곳곳을 다니고, 만 2살 아이와 10일 동안 자동차로 프랑스 및 스위스 등 12개 도시 구석구석을 다닌 적도 있다. 유럽에 있을 때, 미국에도 가자 싶어서 토론토, 시카고도 갔다. 그 당시 여행을 글로 남겨놨으면 좋았을텐데, 아쉽게도 그때는 쓰는 삶을 살기 전이라 그렇지 못했다. 나의 쓰는 삶은 팬데믹과 함께 시작됐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언젠가는 지난 여행의 추억을 기록할 생각을 하고는(?) 있다. 어린아이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 채 엄마 아빠를 따라다니느라 힘들고, 우리는 아직 여행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느라 힘들었다. 그래도 지나고 보니 그 당시 여행을 많이 하길 잘한 것 같다. 팬데믹이 이렇게 오래갈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 중 하나는 해가 갈수록 나이 들어가는 엄마 아빠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체감했다.


처음에 우리 가족은 3 주재원으로 왔기 때문에 여기 사는 동안 남는 것은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시간이 한정적이면 목표가 생기고, 목표를 향해 행동으로 실천하게 된다. 주재원은 집과 차를 비롯해서 국제학교가 지원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다. 한정적 기간 + 주재원 지원이라는  가지 덕분에 여행을 다닐  있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의 현재 상황은 그때와 달라졌다. 현재 주재원이 아니다 보니 집과 차를 비롯한 학교  모든 비용을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되므로 자연스레 긴축 재정에 들어갔다. 월세만 해도 많이 비싸기 때문에 초창기와 지금 우리 가족이 경제적으로 체감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여행을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 팬데믹 전에 런던 여행을 갔었지만  가고 싶어서 영국을 알아봤다. 그런데 브렉시트 영향인지 호텔 값이 많이 올랐다. 전에 런던 여행  묵었던 힐튼 호텔을 똑같이 검색했더니 가격이 2배였다. 우리는 그래도  것인가  것인가 고민하다 결국 영국은 다음에 가기로 하고 룩셈부르크만 가기로 했다. 룩셈부르크는 부활절에  가려고 했었다. 옆집 L씨가 룩셈부르크에 회사를 두고 종종 출퇴근을 한다. 그의 아들도 룩셈부르크에서 인턴을 했다.  나라에 대해 자주 들었다. 프랑스에 살고 있을   번쯤 갈만한 국가이지, 한국에서 유럽 단체 여행을 오면  빠듯한 일정에 룩셈부르크를 가기는 쉽지 않다. 유럽 주요 국가, 주요 도시만 다니기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   말로만 듣던 룩셈부르크를 한번 가보기로 했다. 지인이 거기 있기 때문에 덕분에 아마존 유럽 본사도 구경하고 싶었다.


(좌) 파리와 룩셈부르크 중간 정도인 랭스에 왔을 때 지도상의 위치 (중) 아마존 유럽 본사 (우) 유럽 헌법재판소


룩셈부르크 남쪽으로 프랑스, 서북쪽으로 벨기에, 동쪽으로 독일을 접하고 있는 작은 내륙 국가. 룩셈부르크 1년 총 GDP는 2017년 기준 약 624억 달러로써 세계 70위이지만, 1인당 GDP는 2018년 기준 약 115,000달러로 세계 1위 국가이다. 인구 2020년 기준 632,275명, 수도는 룩셈부르크. 면적은 2,586 km2 정도로 유럽에서 가장 작은 주권 국가 중 하나이다. 이는 경주시의 약 2배에 해당한다. 하나의 국가가 작은 도시 2개 합친 크기로써 세계 174위이다. 룩셈부르크는 대의 민주주의 국가이자 대공을 국가 원수로 하는 입헌 군주국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주권 국가로 존재하는 대공국이다.


역동적인 경제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번영하는 국가  하나로 성장했다. 인종 구성은 룩셈부르크인 53%, 포르투갈인 17%,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독일인, 벨기에인  주변 인접 국가 국민들이 넘어와 살고 있다. 실제 국경 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살기는 자기 나라에 살고 일은 룩셈부르크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국경을 건너 다니면서 일도 하고, 장도 보고... 세계 2 대전 이후, 룩셈부르크 정부는 국가 경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금융산업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금융거래 관련 세금을 면제해주고, 기업 법인세를 낮춰 다국적 기업을 유치했다. 이베이, 스카이프, 아마존 유럽 본사도 다른 국가가 아닌 룩셈부르크에 있는 이유다. 프랑스에서는 보지 못한 각종 중국은행도 이곳에서는 많이 보였다. 사실 말이 좋아 금융거래 지원이지, 돈세탁이라고 보면 된다. 검은돈도 것으로 예상된다. 이웃 L씨도 부동산 개발 관련 일을 하는데, 굳이 회사를 프랑스에 두지 않고, 기차로 출퇴근하면서 룩셈부르크에 설립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럽 펀드시장의  30% 차지하는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까지 기차를 타고 갈까, 자동차를 타고 갈까 고민하다 자동차를 천천히 타고 가기로 했다. 각각 장단점이 있긴 하다. 우리는 아침 9시 20분 정도 집에서 출발했다. 중간에 휴게소를 3번 정도 들렸다. 프랑스 휴게소는 한국 휴게소만큼 재미가 있진 않다. 한국은 고속도로를 달리다 휴게소 들르는 맛이 꽤나 쏠쏠하다. 지역 특산품도 판매하고, 기본 메뉴로 늘 등장하는 핫바, 구운 옥수수, 떡볶이, 통감자, 라면, 가락국수, 김밥, 호두과자, 핫도그 등 맛있는 먹거리로 넘쳐난다. 트럭에서는 뽕짝이 울려 퍼지며 신나는 음악이 휴게소 전체를 감싼다. 이런 풍경이 흔한 한국 휴게소. 프랑스에는 없다. 프랑스는 샌드위치, 크로와상, 빵 오 쇼콜라, 도넛 요 정도 판매하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커피.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프랑스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다. 커피는 뜨겁게 먹는 것이지 차가운 음료가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모든 휴게소마다 있는 아이들이 차 안에서 볼 수 있도록 구비해 놓은 책들로 가득하다. 가격도 3~5유로로 일반 서점에서 파는 것보다 저렴한 편이다. 재밌는 점은 콜라, 과자, 젤리 등 먹는 주전부리는 일반 마트보다 2~3배로 비싸게 파는 반면 서적 종류는 일반 서점보다 싸게 판다. 비싸도 어쩔 수 없다. 빈 속에 차를 타면 멀미를 하는 나는 샌드위치를 사서 먹었다. 물론 주전부리를 미리 준비하긴 했지만 휴게소 샌드위치가 먹고 싶었다.


(좌) 휴게소에 있는 자동차 타기 (중) 미슐랭 가이드가 진열되어 있다 (우) 각종 동화책, 어린이 책이 가득하다. 비용도 저렴하다 by 모니카
(좌) 프랑스에도 뽑기가 있다! (중) 고속도로 지도 (우) 유익한 학습 자료가 많다 by 모니카


쉬엄쉬엄 차를 달려 가보자 했는데 웬걸 차가  번도 막히지 않고 쌩쌩 달렸다. 4 23 출발했는데, 방학 초반부이기도 하고, 다음날 대선이 있어서 다들 투표를 하고 여행을 떠날 생각인지 고속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우리는 날짜 한번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도 룩셈부르크까지는 6시간 걸렸다. 아이가 있어서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러서 쉬엄쉬엄 갔기 때문인데, 쉬지 않고 달리면  빨리  수도 있다. 노보텔에 짐을 풀었다. 방이 생각보다 넓었다. 공간이  있어서 좋았다. 아이는 호텔이 좋다면서 밖에 나가기 싫어했다. 오후 3 반쯤 도착했고, 4시에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신랑 지인 J왔다. 룩셈부르크 아마존 유럽 본사에서 일하는 그는 관광지를 소개도 해주고, 아마존 건물도 보여줬다. 내부를 구경하고 싶었는데 그렇진 못했다. 이곳에서 2 정도 근무했고,  미국 LA 돌아갈 예정이다. 새로운 직장은 산타 모니카에 있단다.  이름이 들어간 동네. 신혼여행  도시였던 산타 모니카...


룩셈부르크는 윗 도시, 아랫 도시 이렇게 두 개로 나눠져 있다. 룩셈부르크의 역사는 매우 복잡한데, 주변 인접 국가들이 침략하고, 식민지 삼고, 서로 땅을 가지려고 싸우고 그렇다가 독립을 했기 때문에 요새가 많다. 항상 적으로부터 보호해야 했기 때문에 포대, 요새 이런 것들이 많은데 그 흔적이 고스란히 아직도 남아있고, 이를 유산으로 잘 보존하려고 한다. 룩셈부르크는 1437년 부르고뉴 공국의 지배를 받게 됐다. 이후 합스부르크가 와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그 후에도 네덜란드, 벨기에 등 여러 국가의 침략을 받는 등 복잡한 역사를 가진 국가이다. 룩셈부르크는 아르덴 평균 해발 고도 400~500미터의 아르덴 고원에 위치했다. 유럽의 발코니라고 불리는 코르니 슈 산책로를 걸으면서 위에서 아래로 도시를 내려다본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도시 전체에 울려 퍼졌는데, 행사를 하고 있었다. 다음날 다시 그곳을 가보니, 마라톤 대회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도시 곳곳을 뛰는데, 이런 성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오랜 구 도심을 배경으로 마라톤 뛰는 것은 처음 봤기 때문에 신기했다.  


(좌) 룩셈부르크 구도심 전경 (중) 절벽 한 켠에 노천 카페를 차렸다. 한마디로 절벽 위 맥주, 커피, 와인 마시기.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우) 뷰가 좋다 by 모니카
(좌, 중) 룩셈부르크 구도심 전경 (우) 트램이 매우 깨끗하다 by 모니카


헌법 광장에 있는 골든 레이디. 이는 1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으로 죽은 이들을 기리기 위해 설립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제일 밑에 Coree라고 적혀있다. 1951-1953년이니 한국 전쟁 당시다. 낯선 땅에서 한국이란 글자를 만나니 반가웠다. 저녁을 먹을 겸 태국 식당에 들어갔다. 한국인은 하루 한 끼는 아시아 음식을 먹어줘야 한다. 팟타이 한 접시 가격이 20유로, 볶음밥이 16유로 정도, 사이드 디시가 10유로 정도했다. 집에서 내가 만들수도 있는 퀄리티였는데, 여행 오면 어쩔 수 없다. 바로 맞은편 테이블에는 나이 지긋한 서양 남자와 젊은 동남아 여성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면 바로 보여서 어쩔 수 없이 계속 눈이 그쪽으로 갔다. 여성은 태국 음식을 파트너의 밥 위에 정성스레 올려줬다. 그럴때마다 남자는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누가 봐도 그렇고 그런 사이같아 보였다. 보고 있으니, 예전 동남아로 출장 다닐때가 떠올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호텔 조식 먹으러 눈 비비며 내려와서 자리 잡으려고 하면, 곳곳에 젊은 동남아 여성과 나이 지긋한 서양 할아버지들이 그렇게 많이 있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는 만다린 호텔에 묵었는데, 호텔방에서 혼자 조용히 타닥타닥 출장 보고서를 집중해서 한창 작성하고 있는데 옆방인지 윗층인지 여성의 괴성(?)이 들려서 얼굴이 빨개진 적도 있다.


(좌) 자세히 보면 제일 밑에 1951-1953 Coree(한국)이라고 새겨져있다. (중) 골든 레이디. 세계 1차 대전으로 사망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음 (우) 미술관


나름 도시 번화가라고 하는 곳인데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나라가 작으니 뭐든  규모가 작다. 명품관도 있는데 파리에 비하면 말할 것도 없다.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룩셈부르크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식당과 마트에 들어가면 거의 대부분이 프랑스어로 말했다. 현지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독일어 또는 룩셈부르크 어가 많이 들렸다. 시내 곳곳에는 프랑스 브랜드가 많았다. 예를 들어, 모노프리가 이곳에도 곳곳에 있었다. 쁘띠 프랑스 같았다. 버스 정류장, 공공장소에도 거의 프랑스어가  들어가 있다. 룩셈부르크의 대중교통은 모두 무료다. 지하철은 없고, 트램이 다니는데  트램이 공짜기 때문에 수시로 탔다. 교통비가 들지 않으니 너무 편하고 좋았다. 트램은 거의  거처럼 깨끗했다. 트램 안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필수다. 야외에서는  써도 된다. 트램  티브이 광고에는 4 국어가 동시에 차례로 나왔다. J말에 의하면 이곳은 날씨도 너무  좋고, 심심하고, 나라도 작고,   좋은데  하나 좋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 교육. 공교육에서도 4 국어를 골고루 교육하다 보니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다양한 언어를 구사한다고 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여성 7 정도 되는 무리가 갑자기 내게 다가오더니 자신의 친구가 6월에 결혼을 하는데, 배드민턴을 같이 쳐달라고 요청했다. 여자 친구들끼리 웨딩을 위해 영상을 제작하는  같았다. 내가 중국인이라서 같이 치는 모습을 남기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케이 했고, 덧붙여서 나는 중국인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했다. 배드민턴을 5 정도 쳤던  같다.


J는 하도  나라가 심심해서 주변 국가로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파리에 6~7 여행했다. 파리의 장점은 미술관이라고 했다. 이곳 미술관과는 비교조차도 안된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유럽 국가 중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물었더니, 하는 말이 자신은 영국이 너무 좋은  같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영국은 정말 국제적인 도시이며, 다양하고, 사람들도 좋고, 음식도 맛있고, 아무튼 너무 좋다고 했다. 성당에서 알게  A런던에서 13년간 살다가 최근 파리로 왔는데 영국에는 뭐든  있는데, 파리에 오니 없는  너무 많은  같다고 했다. 내가 파리에 처음 왔을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아시아에 오히려 온갖 것들이 수입되는  같고, 파리에는 한국에서 홍콩에서 쉽게 구할  있었던 물건들이 생각보다 없었다. 살아보니 내가 느낀 것은 프랑스는 자국 브랜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짙은 편인  같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음식, 과자, 생필품, 학용품들이 세대를 거쳐 계속해서 사용된다. 외국 물품 수입에 까다로운 편이다. 100 전통의 프랑스 제품을 꾸준히 사용함으로써 자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국민들 애국심도 고취하려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보텔에서 묵었는데, 호텔방이 생각보다 커서 쾌적했다. 로비에는 각종 게임, 책, 그림 그리는 것들이 있었는데, 또래 친구들이 로비에 모여서 함께 놀았다.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니, 한 그룹은 슈투트가르트, 다른 그룹은 스위스라고 했다. 다들 룩셈부르크 인접국들이다. 룩셈부르크는 인접국가라서 여행 오지 한국, 중국, 미국 등 멀리에서는 굳이 시간을 내서 오지는 않는 그런 국가 같다. 5~6명 또래 아이들은 서로 처음 만났지만 금세 친해져서 2시간을 내리 놀았다. 부모들은 로비에 앉아 있었다. 신랑이 아이를 보고 나는 방으로 올라가서 먼저 씻고 쉬었다. 다음날 아침, 호텔 조식을 먹은 뒤, 미술관에 갔다. 지인이 여기 미술관은 정말 볼 것 없다고 했지만, 마침 무료라서 들어가 봤는데, 정말 볼 것이 없었다. 대충 훑어보고 나왔다. 아랫 도시로 내려가서 밑에서 도시를 위로 올려다봤다.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중세 시대에 온 그런 느낌이었다.


(좌) 독일에서 온 여자 아이와 1시간 넘게 게임하며 놀았다 (중) 형이랑 또 게임 (우) 노보텔 조식 by 모니카
(좌) 독일 여자아이와 게임 삼매경 (중) 또 다른 누나와 게임 (게임하는데 어찌나 열중하는지) (우) 노보텔 로비 by 모니카


우리는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솅겐으로 내려갔다. 독일과 인접한 도시인데, 이곳에서 그 유명한 솅겐 조약이 이뤄졌다. 솅겐 조약은 유럽 연합 회원국 간 무비자 통행을 규정한 국경 개방 조약으로, 솅겐조약 가입국은 같은 출입국 관리 정책을 사용하기 때문에 국가 간 제약 없이 이동할 수 있다. 솅겐 유럽 뮤지엄이 있었는데, 방대한 자료에 놀랐다.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솅겐 패스라고 해서 패스포트 같이 생긴 것도 찍어줬다. 강을 바라보고 있으니 건너편 땅은 독일이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다리만 건너면 바로 다른 나라에 들어가는 셈이다. 검문도 없고, 마치 같은 동네 같은 느낌이다. 단 5분 안에 룩셈부르크, 독일, 프랑스 세 개 국가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유럽이 가진 힘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독일의 올리브영이라고 할 수 있는 DM이 바로 강 건너면 있다. 다리를 순식간에 건넜다.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꽤 큰 매장이었는데 아쉬웠다. 잠깐 독일 땅을 밟고 바로 프랑스로 향했다. 프랑스로 돌아가는 고속도로로 한산했다. 한 치 막힘이 없었다. 오늘이 대선 2차 투표(결선 투표) 날이니, 다들 투표를 하고 있나 보다. (참고로, 마크롱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했다.) 우리 가족은 선거 덕분에 막힘 없이 쭉쭉 고속도로를 달렸다. 차 안에서는 글자를 읽으면 멀미가 나서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어찌 된 일인지 책이 큰 무리 없이 읽혔다. 멀미가 날 것 같으면 눈을 감거나, 차창밖을 봤다. 아이는 내 무릎 위에 머리를 대고 누운 채... 이때 읽은 책이 <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였다. 반 정도 읽었는데 주로 와인 재배 관련 이야기였다. 파리에서 동쪽 룩셈부르크까지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유채꽃 천지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란색으로 가득해다. 책을 읽으면서 차창밖 저곳이 프랑스 시골 마을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말, 양, 젖소... 드넓은 초원에서 마음껏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샹파뉴 지역을 지나갔다. 이전에 샹파뉴 랭스에서 여행하며, 샴페인 투어를 한 적이 있다. 모에에샹동 와이너리를 구경하고, 지하 저장고도 구경하고 시음도 했는데 참으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연둣빛과 노란빛 물결을 보고 있으니 내 마음도 파릇파릇 노릇노릇해졌다. 다만, 멀미 때문에 차를 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속은 울렁울렁, 다리는 저릿저릿했다.  


(좌) 역사 미술관인데 규모가 작은 편이다 (중) 룩셈부르크 필하모니 (우) 일요일 마라톤 중이라 사람들이 길을 막고 있다. 다리가 너무 멋지다 by 모니카
(좌) 솅겐 유럽 뮤지엄 앞뜰 (중) 솅겐 조약 맺은 국가 국기들이 있는데, 프랑스 국기를 펼쳐보이는 아이 (우) 기둥에는 각 나라의 특징을 입체적으로 잘 표현했다 by 모니카
(좌) 강 건너편은 독일 땅이다 (중) 솅겐 유럽 뮤지엄 실내. 깨끗하고 자료가 풍부하다 (우) 솅겐 패스포트를 만들어서 출력 가능하다 by 모니카


차 안에서 아이는 20번도 넘게 노보텔에 또 가고 싶다고 했다. 룩셈부르크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노보텔 로비에서 처음 만난 여러 나라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한 것이라고 했다. 아이다운 대답이다. 곧 만 6세가 되는 아이는 이전에 1~2살 때 여행 다닌 것과는 확연히 다르게 보고 느끼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만 3살 이전에 다녔던 여행은 사실 아이가 기억도 못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데리고 다녔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어디를 다녀왔는지 정확히 기억을 했다. 다른 나라에 갔고, 여행한 나라의 규모가 작으며, 프랑스와 달리 길거리에 개똥, 새똥 없이 깨끗하며, 길거리에 개와 비둘기가 거의 안보였다고 했다. 아이는 새로운 장소를 알게 모르게 관찰하고 탐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을 통해 아이는 한 뼘 더 성장한 듯했다. 엄마 아빠와의 추억이 하나 더 생기고, 가족이 함께하는 행복을 맛본 시간이었으리라. 아이는 그다음 날도 계속 노보텔 노래를 불렀다. 게임을 할 수 있는 그곳으로 다시 가고 싶다며...


룩셈부르크에 왔으니, 크라잉 넛의 룩 룩 룩셈부르크...!

솅겐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강 건너 독일땅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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