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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Apr 15. 2020

로마, 피렌체, 바티칸

프랑스에서 맞이하는 첫 겨울은 이탈리아에서...

2017년 12월, 파리의 겨울은 어떤 모습일까? 프랑스에서 와서 처음 맞이하는 겨울이다. 별로 하는 것도 없이 12월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11월 한달은 거의 집콕 생활이었던 것 같다. 날씨도 우중충하고 연이은 충격으로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길가다가 소매치기당할 거 같고, 누가 나를 해코지 할거 같아서 집에 있는 게 마음이 편했다. '이불 밖은 위험해'란 말이 맞는 말이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한국서 가져온 전기장판 위에 배를 깔고 누워있는 게 몸도 마음도 제일 편했다.


한국에서 전해오는 카톡에는 '파리에 살아서 너무 부럽다'는 메시지들이 많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여기가 한국인지 프랑스 파리인지 모르겠다.'는 답장을 했다. 그래도 파리 공기를 마셔서 부럽단다. 나는 호텔 도난, 인종차별 겪어 속이 말이 아닌데도 '잘 살고 있다고 해야 걱정하지 않지'라고 생각하며 '그래, 파리 공기 좋다.'라고 마무리했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우울증이 올 거 같았다. 날도 춥고, 마음도 춥지만 프랑스의 크리스마스를 경험해 보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는 서양 명절인만큼, 예수님 탄생을 기리는 날인 만큼 프랑스의 최대 명절은 단연코 성탄절이다. 11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기 시작해서 12월에 들어서면 크리스마스 분위기 절정을 이룬다. 한 달 내내 크리스마스 같다. 나는 이 나라 사람들은 축제와 휴가를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달 내내 크리스마스를 온몸으로 즐기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서 각종 트리 장식품을 고르고, 선물을 고른다. 이런 행위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크리스마스트리도 인조가 아닌 진짜 트리를 구매한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목적으로 이미 제작된 나무들이 꽃집이며 마트 앞에 진열되기 시작한다. 트리 장식을 하고 선물을 고르고 와인과 치즈를 맛보러 다니는 이 모든 행위를 형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삶의 한 일부로서 충분히 만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크리스마스 하면 연인들이 영화 보고 데이트하는 날로 기억하고 있고,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은 먼지 날리는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여자였다. 크리스마스의 본고장 유럽에 와서 보니 내가 알던 크리스마스와는 전혀 달랐다. 나도 이들 속으로 들어가서 한 달을 즐겨보기로 했다. 파리의 각 구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데 그중에서도 유명한 크리스마스 마켓은 뛸르리 크리스마스 마켓, 라데팡스 크리스마스 마켓 등이 있다. 우리 동네에도 꽤 크게 열리는데 도떼이(D'auteuil)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성당 앞마당에서 열리는데, 각종 치즈와 와인, 소시지 등을 판매하고, 액세서리 및 공예품도 판매한다. 모두 소상공인들이 자기들의 물건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벼룩시장도 매우 크게 열린다. 나는 이때 아이 장난감이며 책들을 많이 사주었다. 제품의 상태가 썩 나쁘지 않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아이 장난감과 책을 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시작되어 1월 1일 신년을 포함하여 약 2주간의 겨울 바캉스가 있다. 프랑스인들은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는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크리스마스에 맞춰 파리에 오면 낭패를 본다. 글을 쓰다 보니 나의 과거가 떠오른다. 대학원 졸업 축하 기념으로 혼자 유럽 5개 도시를 처음 여행했었다. '파리는 낭만의 도시니까 크리스마스를 파리에서 보내주겠어!' 라며 들뜬 마음으로 파리에 왔는데 웬걸 가게는 모두 문 닫혀 있고, 날씨는 너무도 춥고, 반짝이는 에펠탑을 보며 파리는 겨울에 혼자 오면 백발백중 외로움의 끝을 본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나는 그때 파리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졌고, 한번 와봤으니 이제 또 올 일을 없겠지... 하며 여행을 끝냈었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내가 파리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을 줄이야...


첫 겨울은 이태리에서 보냈다. 아이가 아직 어리고, 겨울이라 여행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은 시간들이었다.


우리 가족은 단 3년을 파리에서 살기로 계약이 되었기 때문에 있는 동안 최대한 유럽 국가 많이 여행하기로 했다. 물론 어린 아기가 있어서 쉽지는 않지만... 두 돌이 안된 아기를 안고 로마, 바티칸, 피렌체를 선택했다. 일주일 정도 여행하기로 했다. 로마는 2007년 5개국 배낭여행 때 가봤던 곳이지만, 신랑이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했다. 나에게도 또 다시 가는 것이 의미가 있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가족과 함께 하는 로마 여행이고, 이미 오래전이라 로마의 모습들이 기억에서 가물가물했다. 


로마의 휴일 이랬던가... 휴일을 로마에서 멋지게 보내고 싶었지만, 추운 날씨와 어린 아기와 함께 한다는 것, 해가 짧다는 점 등이 여행에 썩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낮에 집중적으로 여행하고 오후 4~5시 쯤 호텔로 돌아왔다. 아직도 파리 호텔 도난 사건의 후유증이 있는지라 소매치기가 많은 이태리에서도 늘 날 선 자세로 조심하며 다녔다. 호텔에서도 문을 잘 잠궜는지, 열쇠는 가방에 잘 있는지 등등 조심하며 다녔다. 신랑과 나는 교대로 다니기도 했다.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 진실의 입, 젤라또, 광장... 등 학생때 로마를 여행하던 그때 당시가 문득문득 떠올랐다. 로마는 특히 잊을 수 없는 이유가 2008년 새해 카운트 다운을 로마에서 봤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한인 민박을 했는데, 10명 정도 되는 한국 젊은이들끼리 같이 거리로 나가서 카운트다운을 봤던 기억이 난다. 카운트다운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남녀커플이 심하게 싸우길래 살짝 쳐다봤다니, 여성이 남자친구 뺨을 세게 때리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그때 이탈리아 여성들 무섭다...라는 생각을 했다). 


파리 호텔방 도난 사건의 후유증이 컸는지 잠을 거의 자지 않고 피렌체 호텔에서 꼬박 날을 샌 적도 있었다. 두오모와 우피치 미술관에 갔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좋았다. 로마와는 또 다른 피렌체는 너무도 아름답고 세련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물론 로마가 아름답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피렌체 티본스테이크가 유명하다고 해서 1일 1 스테이크 했고, 가죽 시장에서 피렌체 가죽 가방, 가죽 장갑도 샀다. 피렌체에서 1시간 정도 버스를 타면 유명한 명품 아울렛도 있다. 그곳에서 신랑 구두와 내 머플러, 가방 등도 구매했다. 


2018년 새해, 바티칸 대성당에서 신년 미사를 드리면서 온 가족의 행복과 건강과 안녕을 기도했다. 처음 가본 바티칸 성당인데, 너무 웅장해서 깜짝 놀랬다. 영화에 나올것만 같은 그런 위엄이 느껴졌다. 시스티나 성당에도 가서 책으로만 봤던 그림을 실컷 봤다. 이탈리아 여행은 두 살도 안된 아기와 함께 했기에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또 값지고, 뜻깊고, 의미있는 우리 가족만의 추억을 만든 그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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