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버 해협만 건너면 영국
7월 7일을 마지막으로 아이는 더 이상 유치원에 가지 않는다. 7월 5일 저녁부터 시작해서 꼬박 일주일을 크게 앓았다. 아이는 방학을 맞이해서 하루종일 집에 있는데 엄마는 아파서 아이와 놀아주지도 밥을 차려주지도 못할 정도였다. 원래 방학 학교에 신청해서 몇일 동안 보냈는데 이번에 깜빡하고 신청 기간을 놓쳐서 7월 한달 동안 꼼짝없이 집에 있게 생겼다. 7월 7일 마지막 날은 처음으로 아이 아침 등교 및 하교 픽업을 내가 해주지 못했다. 다행히 그날 신랑이 재택근무라서 나 대신 아이를 데리고 가고 오고를 해줬다. 신랑이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을지... 열이 나고, 침을 삼키면 목과 코 점막 부분이 너무 따갑고 아파서 침을 삼키기 힘들고, 뼈마디가 으슬으슬 쑤시고, 오한이 났다. 같은 공간에 있는 신랑도 내게 옮아서 오랜만에 부부가 아팠다. 다행히 아이는 아프지 않았다. 면역력이 강하고 약한 사람이 누군지 바로 드러났다. 증상이 심해서 혹시 코로나인가 싶었는데 검사해보니 다행히 아니었다.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혹독하게 끙끙 앓고 나니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해외에서 어린아이를 키우며, 신랑 외에는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엄마가 아프면 정말 큰일난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형제자매라도 있으면 어린아이를 도와줄 수 있지만, 외동이기에 더욱더 힘들다. 컨디션이 돌아온 것은 7월 13일 수요일 정도. 14일은 이 나라 축제의 끝판왕인 프랑스 대혁명 축제일이었다. 다음날이 금요일이라 샌드위치 데이로 신랑이 회사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아파서 집안에만 있었기에 바람도 쐴 겸, 아픈 엄마 아빠 때문에 지겹고 힘들었을 아이를 위해, 파리 폭염도 피할 겸 프랑스 북단으로 가기로 했다. 벨기에와 가까운 프랑스 북쪽에 있는 릴(Lille)이라는 도시를 구경하기로 계획했다. 릴 근처 미슐랭 가이드 식당도 예약하고, 릴 명물 디저트 카페인 Meert도 알아봤다. 근처 덩케르크 바닷가에도 들려 발을 담그고 오기로 계획했다.
15일 아침, 우리 가족은 8시 30분쯤 일어났고, 1시간 정도 후 출발하면 식당 도착해서 식사하다 시간을 다 보낼 것 같았다. 얼른 예약 취소하고, 릴 대신 덩케르크가 아닌 칼레라는 곳을 먼저 가기로 했다. 그 이유는 아이를 바다에서 많이 놀게 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릴에 돌아다니면 분명 아이는 지겨워할 것 같고, 바닷가에서 조개 잡고, 모래를 파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집에 어린아이가 있으면, 나들이 및 여행은 주로 아이 위주로 계획하게 된다. 날씨도 덥고, 바닷가에서 더위도 식힐 겸, 칼레에 먼저 가기로 했다. 애초 기획했던 릴과 덩케르크는 온데간데없고, 새로운 칼레라는 지역이 혜성처럼 등장해서 경로를 급하게 변경했다. 우리 가족은 아침은 휴게소에서 샌드위치로 대신하기로 하고, 각종 간식 및 물티슈 등을 부랴부랴 챙겨서 차에 올라탔다. 파리여~ 잠시만 안녕~
프랑스 북단 항구도시 칼레. 파리 시민들은 바다에 가려면 북, 서, 남 이렇게 세 군데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데,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가겠다고 하면 북쪽이다. 조금 시간이 걸려도 더 괜찮은 곳을 물색하려면 라로셸, 브르타뉴 같은 서해로 간다. 부산 해운대 같이 바다 가까이 휴양 시설이 밀집되어 있고, 인프라가 잘 되어 있는 곳을 장기간 머물다 오겠다고 하면 니스, 마르세유, 모나코 등이 있는 남해로 간다. 우리는 당일치기로 가볍게 바다에 발을 담그고 올 생각이었기 때문에 북쪽을 선택해서 갔다. 우리 가족이 이번에 가려는 칼레 지역은 노르망디 지역이 아닌, 오드 프랑스(Hauts de France) 지역이다. 프랑스는 땅이 크며, 행정 구역을 크게 레지옹(Regions), 그 아래 데 파르트 망(Departments) 등 이렇게 나뉘는데, 가장 크게 분류되는 행정 단위가 바로 레지옹이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경상남도, 전라남도가 레지옹에 해당할 수 있다. 경상남도 안에 마산, 부산 등이 데파르트망이라고 볼 수 있다. 노르망디 지역에는 익히 잘 알려진 좋은 바닷가가 많다. 에트르타, 옹플뢰르, 르아브르, 도빌 등등... 도빌은 럭셔리 휴양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그동안 우리 가족은 주로 노르망디 지역에 있는 바닷가에 갔는데, 이번에는 노르망디 지역이 아닌 오드프랑스 지역에 속해 있는 칼레에 갔다. 노르망디와 오드프랑스 지역 모두 프랑스 북쪽 바다와 인접한 레지옹이다. 칼레는 오드프랑스 레지옹 안에 있는 파드칼레(Pas de Calais)라는 데파르트망에 속해 있는 도시다.
파리에서 칼레까지는 차로 3시간 반 정도 소요되지만 아이가 있는 관계로 휴게소에서 쉬었다가 쉬엄쉬엄 갔기 때문에 총 5시간 반이 걸렸다. 꽤 많이 걸려서 도착했다. 재미있는 점은 바다로 가는 고속도로를 탔기 때문에 휴게소도 다른 곳과 다른 특색이 있었다. 물놀이 관련 용품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큰 해변용 타월, 튜브, 모래놀이도구 등등... 가장 인상적인 휴게소는 바로 솜 만(Baie de Somme)에 있는 휴게소. 솜 만은 오드프랑스 레지옹에 속해 있고, 피카르디(Picardie)라는 데파르트망 안에 속해 있다. 솜만 면적은 70km2로, 조류학 등 생태학적으로 매우 풍부한 곳이다. 휴게소 야외에는 인공 호수가 있는데 물이 매우 맑고 물고기가 많았다. 이 휴게소에 발을 들이자마자 느낀 점은 한국의 금강 휴게소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국은 휴게소 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휴게소 먹거리도 풍부하고, 재미도 있다. 한국만큼의 재미는 크게 없는 프랑스 휴게소이지만 이번 솜 만 지역 휴게소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아마도 처음으로 본 스타벅스도 있고, 해변 용품도 많았고, 인공 호수 등 특색 있었다. 각종 지역 특산품도 휴게소에 진열되어 있었다.
드디어 칼레에 도착했다. 기본적으로 나는 차를 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장시간 차 안에 있는 것은 내게 곤욕이다. 그래도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러 커피와 샌드위치도 먹고, 솜만도 구경해서인지 이번에는 덜 힘들었다. 차에서 내리니 벌써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어와서 심지어 추위를 탔다. 파리에서는 그렇게 덥더니, 바닷가라고 체감 온도가 무섭게 뚝 떨어졌다. 이렇다 감기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까지 될 정도였다. 칼레는 한국 경포대 바다 같은 느낌을 주었다. 도빌처럼 럭셔리하지도 않고, 니스처럼 이국적이지도 않았다. 조용한 동네 바닷가였다. 백사장은 매우 길었다. 단지 주변에 휴양시설이 거의 없는 시골 바닷가 같은 느낌이었다. 모래는 매우 고왔다. 백색에 가까운 모래였다. 우진이는 바다를 보자 너무 신나서 발을 바닷물에 담갔다. 차가웠다.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조개도 많이 주웠다. 모래를 파고 있으니, 며칠 전 봤던 영화 헤어질 결심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를 보지 않았으면 마냥 행복한 모래파기였을텐데 그 영화 장면이 오버랩되니 모래를 파는 모습이 잠깐 무섭고, 슬프게 느껴졌다. 같은 상황을 두고 이렇게나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낚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등대 쪽으로 걸어가니 마치 바다 한가운데 들어온 기분이었다. 날씨가 좋으면 영국 땅이 보인다는데, 영국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칼레에는 해저 터널을 탈 수 있는 고속터미널이 있다. 버스 또는 차를 타고 갈 수도 있다는데 당장 영국으로 가고 싶었다. 이렇게 가까이 영국 땅을 눈앞에 뒀는데 영국에 가지 못하고 파리로 돌아가야 하다니... 가깝고도 먼 나라 영국이여...
나는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깔고 털썩 누웠다. 하늘이 너무 가까이 있었다. 주변에는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어디에서 온 것일까. 칼레 주민들일까, 우리처럼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일까. 주로 프랑스 말이 들리는 것을 보니 해외 관광객은 거의 이곳까지 오지 않는다. 한 여름 해운대에 가면 몸매가 좋은 남녀가 비키니를 입고 자신이 갈고닦은 멋진 몸매를 과시하는 듯 보였는데, 이곳 프랑스는 그렇지 않다. 많이 뚱뚱한 사람도 비키니를 입고 수영을 하며 태양 아래 누워있다. 생각보다 살집이 많은 남녀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중년 여성,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도 많았다. 이렇듯 한국은 젊은 청춘 남녀들이 외모와 몸매가 좀 되어야 백사장에 비키니 입고 누워있을 수 있다면, 프랑스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외모와 몸매가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비키니를 입고 여름을 만끽한다. 뚱뚱해도 누구 하나 쳐다보지 않는다. 그 사람 자신만의 몸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개개인이 바캉스를 만끽할 자유를 허락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자기 몸이 어떻든, 배가 많이 나왔든, 허벅지에 셀룰라이트가 많이 붙어 있든, 나이가 어떻든 상관없이 내 여름을, 내게 주어진 소중한 바캉스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옆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3명의 프랑스 사람들이 수영복을 입고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뭐가 그리 재밌는지 계속 웃고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청년과 그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부부. 3명 모두 살집이 꽤나 있었다. 뚱뚱한 가족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들의 몸을 가감 없이 다 드러내고 모래에서 뒹굴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무척 행복해 보였다.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와 함께, 가족과 함께, 자식과 함께 아이처럼 깔깔대며 웃으며 삶의 순간순간을 맞이하고 공유하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평범한 듯 보이지만 평범한 것이 아니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한 공간에서 수많은 시간과 사건을 함께 겪어내는 가족이라는 인간관계 속에서 함께 지내면서도 서로가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은 그 긴 시간 속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 공감, 존중, 인정, 격려, 고운 말과 말투 이런 다양한 요소들이 삶의 매 순간에 베여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는 그 가족을 보면서 내 미래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진난만, 개구쟁이 만 6세 우진이가 20년이란 세월을 우리와 함께 겪고 나서 만 26세 청년이 되었을 때도 우리와 함께 있는 시간이 어색하지 않고, 심신이 편안하며, 싱거운 얘기에도 서로 그냥 깔깔대며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20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결코 그냥 시간만 지난다고 오는 미래는 아닐 것이다. 노력이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하다. 매 순간 깨어있어야 하고 자기 성찰과 반성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칼레는 면적 33.5 km2, 인구 75,961명(2015)인 북부 항구 도시다. 영국 해협으로 도버의 절벽과 분리된 이곳은 프랑스와 영국을 연결하는 페리의 주요 교차점이다. 구시가인 Calais Nord는 운하로 둘러싸인 인공 섬으로 되어 있다. 칼레 시청에는 도시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78미터 높이 종탑과 로댕의 유명한 동상인 '레 부르주아 드 칼레(Les Bourgeois de Calais)'가 있다. 이 동상은 로댕의 작품이라 유명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 동상에 관한 이야기가 더욱 유명하다. 이 동상은 파리에 있는 로댕 뮤지엄 야외 공원에도 설치되어 있다. 이 조각상은 칼레시에서 로댕에서 의로한 것으로 1884년 첫 작품이 만들어졌다. 이는 로댕 작품 중에서 생각하는 사람만큼이나 유명한 작품이다.
이 청동상은 총 12개 오리지널 에디션이 세계 곳곳에 있다. '칼레의 시민'이라고도 불리는 이 청동상은 역사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1346년 9월, 에드워드 3세가 칼레를 포위했는데 칼레 시의 수비대는 장 드 비엔 기사가 지휘하는 영국 왕의 군대에 저항했다.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 칼레시를 구한 6인의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조각된 이 청동상은 칼레 시민의 자부심이자 프랑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근 1년 동안 칼레 시민들은 에드워드 3세 군대에 저항했고, 에드워드 3세는 끈질기게 저항한 칼레 주민들을 몰살하려다가 측근들의 만류로 인해 시민 대표 6명을 처형하겠다고 했다. 6명은 자진해서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고, 결국 에드워드 3세는 그들의 저항 정신을 높이 사서 처형하지 않고 살려줬다. 이는 바로 그 유명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12개의 청동상은 칼레, 파리 로댕 뮤지엄을 비롯하여 런던, 필라델피아, 도쿄, 뉴욕, 코펜하겐 등에 있다. 심지어 서울에도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생명 본사에 있던 플라토미술관에 전시됐었다. 1999년 로댕갤러리로 개관을 했었는데, 2016년 폐관할 때까지 로댕의 걸작인 칼레의 시민과 지옥의 문을 전시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 공들여 수집했다는 이 작품들은 미술관 폐관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고 한다.
칼레가 자부심을 갖는 인물이 있다. 바로 샤를 드 골 전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이본 드 골 여사의 고향이 바로 이 칼레이다. 이본 드 골 여사(Yvonne de Gaulle)는 1900년 5월 22일 칼레에서 태어났다. 샤를 드 골 전 대통령은 칼레와 멀지 않은 릴 출신이다. 두 사람이 가까운 도시에서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부부의 동상이 광장에 설치되어 있다. 이 두 사람은 이곳 칼레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성당 안을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샤를 드 골이란 이름은 파리 국제공항으로 쓰이기 때문에 귀에 익다. 샤를 드 골 파리 국제공항. 이 외에도 케 브랑리(Quai Branly) 자크 시라크 미술관 등 프랑스 전 대통령 이름을 따서 지은 박물관, 미술관, 건축물 등이 많이 있는 프랑스다. 전 대통령들이 퇴임하고 나서도, 세상을 하직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주요 건축물 이름에 사용되면서 계속해서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것은 한편으로 본받을만하고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한국은 전 대통령들을 욕을 먹는 일이 많은 것 같다. 현재 정치 상황도 그렇고, 이전 대통령들도 감옥에 들어가고, 들어갔다 나오고... 한국은 왜 대통령만 되면 사람들이 욕을 하고, 퇴직하고 나서도 욕을 하고, 그들의 업적에 대해서는 기리는 경우가 많지 않은 편일까... 샤를 드 골과 이본 드 골 부부의 동상을 보면서, 부부의 업적을 기리는 글귀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더 돌아보고 싶었지만 해가 지기 전에 빨리 파리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칼레에 있는 큰 쇼핑몰에 가서 저녁을 먹고, 우진이 신발을 한번 보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쇼핑몰은 파리에 있는 것과 달랐다. 마치 한국 쇼핑몰 같았다. 도버 해협만 건너면 영국이라 그런지 영국 스타일의 펍과 피시 앤 칩스 식당이 보였다. 전반적으로 파리의 전형적인 쇼핑몰이 아닌 매우 현대적인 한국 스타일의 쇼핑몰이었다. 일본 식당에 들어가서 덮밥과 라멘을 주문했다. 바닷가에 앉아 있는데 뜨뜻한 국물 요리가 너무 먹고 싶었다. 뼛속까지 한국인 입맛인지 나는 바다를 보는 내내 얼큰한 해물 짬뽕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해물 짬뽕은 아니라도 컵라면이라도 먹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빨간 국물은 아니지만 이렇게 희멀건 색깔의 국물이라도, 소금국을 먹는 것 같아도, 칼레에서 일본 라멘을 먹는 게 어디냐며 나는 나트륨 가득한 국물을 연신 떠먹었다. 일본 식당이지만 중국인이 경영하고 있었다. 파리 쇼핑몰에서는 본 적이 없는 대형 오락실도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우진이는 게임에 눈이 돌아가서 총쏘기 게임 한판을 허락해줬다. 칼레까지 왔으니 기분이다 싶어서, 돌아가는 길에 또 차 안에서 한참을 아이가 견뎌야 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오락 한판을 했다. 게임을 할 때만큼은 눈빛이 이렇게나 진지하고 반짝일 수 없다. 휴게소에 들르지 않고 쉬지 않고 달렸는데 3시간 반 걸려서 집에 도착하지 밤 11시였다. 신랑이 너무 고생이 많았다. 우리 가족은 씻고 12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렇게라도 칼레라는 곳을 구경하고, 아이가 바닷가를 좋아했으니 나는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