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가 자란 곳이자 인상주의 화가들이 사랑한 항구 도시
파리에서 차로 2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르아브르(Le Havre). 르아브르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인 클로드 모네가 자란 곳이다. 출생은 파리라고 나오지만, 어린 시절 이곳에서 자랐다. 그렇다 말년에 지베르니에서 그림을 그리며 삶을 마감했다. 어린 시절 르아브르에서 자라면서 자연 빛의 변화를 많이 관찰할 수 있었다. 모네를 인상주의 창시자이자로 확실하게 만든 그 유명한 <인상, 해돋이> 작품도 이곳 르아브르 항구 도시에서 탄생했다. 인상주의 근원지라고 볼 수 있는 르아브르는 어떤 곳일까? 정말 빛의 향연이 펼쳐지는 그런 동네일까?
르아브르는 노르망디 레지옹 및 센 마리팀 데파르트망에 속해 있는 도시로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다. 영국 해협을 두고 프랑스와 영국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교통량에 있어 프랑스 남부 도시 마르세유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항구이며, 컨테이너 물량이 가장 많은 항구이다. 미국, 영국, 아프리카 등지에 이르는 항로의 기점이다. 도시와 항구는 1517년 프랑수아 1세에 의해 어촌에 불과한 곳을 도시로 공식 건설했다. 현대에 와서 종교 전쟁, 영국과의 갈등, 전염병 및 폭풍 등으로 인해 경제에 타격을 입었다. 18세기 말부터 르아브르가 성장하고 노예무역과 국제 무역 덕분에 성장했다. 1944년 전쟁 폭격으로 인해 도시가 파괴되었으나, 오귀스트 페레(August Perret)가 콘크리트로 도시를 새롭게 재건했다. 2005년 유네스코는 르아브르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행정적으로 르아브르는 디에프(Dieppe)와 함께 센 마리팀 주의 두 개 코뮌 중 하나이다. 르아브르는 노르망디에서는 가장 인구가 많은 지방 자치 단체이지만 2019년 인구조사에서 233,414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여행을 떠나기 전, 르 아브르에 관한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봤는데 르아브르에 젊은이들이 계속해서 빠져나가고 있어서 인구 감소가 계속된다는 뉴스 영상을 봤다. 세계적으로 젊은 층들의 지방 도시 이탈이 이슈다. 이들은 집값이 비싸지만 학업 및 취업 기회가 많은 수도권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8월 12일 금요일 아침 8시 반, 우리 가족은 집에서 출발했다. 며칠 전부터 아이에게 바닷가에 놀러 갈 것이라고 얘기해줬고, 아이는 매일 밤 들떠 있었다. 수경 등 물놀이할 것들과 함께 전날 김밥 및 주먹밥, 과일 등 도시락을 쌌다. 저번 칼레 해변에서 컵라면이 많이 먹고 싶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번에는 신라면과 튀김우동 컵라면을 꼼꼼히 챙겼다. 르아브르 해변에서 먹는 컵라면 맛은 어떨까 상상하며 즐겁게 음식을 쌌다.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쉬지 않고 달리면 파리에서 차로 2시간 소요되는데 우리는 중간에 휴게소에서 들려 쉬었다 갔기 때문에 2시간 반 정도 걸렸다.
먼저 도빌(Deauville)에 도착했다. 도빌과 르아브르는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해변으로 도빌에서 먼저 물에 발을 담그기로 했다. 도빌에서 2시간 정도 놀다가 르아브르로 이동했다. 노보텔에 짐을 풀고, 몸을 좀 씻은 뒤, 저녁을 먹으러 갔다. 호텔 바로 앞에 Docks라는 큰 쇼핑몰이 있었다. 휴가 기간이라 식당들이 문을 많이 닫은 상태였다. 시내 여러 곳을 걷다가 결국 호텔 주변 쇼핑몰에 입점해 있는 아메리칸 스타일 식당에 들어갔다. 호텔이 역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주변이 위험해 보였다. 르아브르 바닷가까지 가는 트램이 호텔 바로 앞에 있어서 교통은 매우 편했지만, 우리 가족은 프랑스 살이에서 안전을 늘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주변에 위험한 사람들이 보여서 매우 조심하며 다녔다. 호텔 방안에 별 물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금고에 여권을 넣어두고 온 것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혹시 누가 금고를 깨서 여권을 가져가면 어떡하나 싶었다. 2017년 8월에 있었던 호텔 도난 사건이 늘 떠올라서 호텔방을 나설 때면 그때를 잊지 못한다. 카우보이 서부극 인테리어 식당에서 햄버거, 감자튀김, 어니언링, 멕시칸 요리, 프라이드치킨 등을 시켜 먹었다. 다 먹고 나오니 시간은 이미 저녁 8시. 피곤하지만 석양을 보러 르 아브르 바닷가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잠시 생각했다. 그래도 인상주의 태동이라고 볼 수 있는 르 아브르 석양을 놓치는 것은 아쉬웠다. 모네가 자연의 경이로움과 빛의 변화를 관찰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르 아브르의 밤을 느껴보고 싶었다. 트램을 타기 전, 사람들에게 돈을 내야 하냐고 물어보니 공짜라고 했다. 웃으면서 걱정하지 말라며 공짜예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길래 우리는 이게 웬 횡재냐며 그냥 트램에 올라탔다. 5 정거장을 지나 종착역 La Plage(바닷가)에 내렸다.
인천 월미도 또는 부산 광안리 같이 해변가에는 총쏘기, 범퍼카, 인형 뽑기 등 각종 놀이기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시간은 저녁 8시 30분.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9시 20분에 해가 떨어진다고 핸드폰에 나왔다. 휘황찬란한 놀이 공원을 지나서 바닷가까지 나무로 길을 만들어 놓은 곳 위로 걸어갔다. 백사장 한가운데는 커다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뒤로 석양이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 부부는 일출은 많이 봤어도 일몰을 볼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신랑은 생에 일몰을 본 적이 손에 꼽는다며 일몰을 보고 너무 신기해했다. 세계 3대 일몰 중 하나라고 불리는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석양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멋졌다. 그런데 그 석양만큼 르아브르 석양도 정말 멋졌다. 해 주변은 분홍색과 주황색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내며 하늘과 바다를 부드럽고 곱게 물들이고 있었다. 르아브르 해변의 특징은 모래가 아니라 자갈이라는 점이다. 남프랑스 니스도 자갈 해변이다. 그래서 비교적 깨끗하고 깔끔했다. 모래가 발에 묻지 않으니 편하고 좋았다. 물은 매우 차가웠다. 꽤 맑은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석양을 바라보며 한동안 우리는 석양의 아름다움에 한껏 취하고, 자연의 경이로움과 대자연의 웅장함에 말을 잊고 넋 놓고 바라봤다. 해는 순식간에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아이는 늘 집에서만 잠을 자다가 집이 아닌 새롭고 낯선 공간에서 잠을 자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아이가 만1~3세 때는 여행 하느라 호텔을 이곳 저곳 다녀도 아직 너무 어려서 여기가 대체 어딘지 잘 모르며 그렇게 지냈는데, 만6세가 되니 호텔이 어떤 곳인지도 알고, 집이 아닌 낯선 곳에서 생활하고 잠을 자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그런 아이는 룩셈부르크 여행 이후로 노보텔 노래를 불렀다. 노보텔 로비에 있는 축구 게임을 너무 좋아한다. 이번에도 노보텔에서 축구 게임을 2시간도 넘게 했다. 아이의 회포를 풀어주고자 르아브르 해변보다는 아이와 로비에서 축구 게임을 하는데 더 시간을 보냈다. 로비에는 조식을 먹고 하나둘씩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다양한 국가 및 도시에서 온 아이들이 서로 이름도 나이도 모른 채 축구 게임으로 하나 되어 서로 금세 팀을 만들어 게임을 즐겼다. 천진난만하며 순수하게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고 쉽게 어울려 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인간은 원래 사교적이고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끌리는 것이 인간 본성인데,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가정 및 주변 환경에 의해, 사회 경험에 의해 사람을 싫어하게 되거나 비사교적이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아이들 8명이 함께 깔깔대며 노는 것을 보고 있으니, 왜 써머 캠프에 보내는지 알 것 같았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사귀는 것도 사회화 과정의 하나이다. 또한 꼬마 니콜라 영화가 떠올랐다. 니콜라가 여름 방학 때 해변으로 바캉스를 떠나면서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겪는 에피소드를 다룬 내용인데, 이것이 바로 꼬마 니콜라의 한 장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11시 30분쯤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르아브르 해변으로 갔다. 호텔 직원에게 트램 비용을 내는 것인지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1인당 1.80유로다. 정류장에서 만난 그 남성은 왜 우리에게 공짜라고 말했을까? 아마도 원칙은 돈을 내는 것인데, 양심에 맡기고 일일이 검표를 하지 않아서 우리에게 반 농담 식으로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그래도 재수 없이 걸리면 벌금을 낼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트램 탈 때마다 표를 구매했는데, 사람들을 관찰하니 표를 내지 않고 타는 사람들도 꽤 있는 듯했다. 낮 12시, 한낮의 기온은 31도 정도. 태양이 너무 뜨거웠다. 서울을 물난리가 심한데 이곳은 건조해서 난리다. 루아르 계곡물이 말라가고, 지롱드 지역 산불이 크게 나는 등 건조함과의 싸움이다. 파라솔이 없는 우리는 피부가 다 까질 만큼 따가운 태양 아래 그대로 피부를 다 노출시켜버리고 말았다. 아이는 바다가 신기한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파도가 신기한지 뜨거운 줄도 모르고 1시간 넘게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놀았다.
떠나기 전에는 도빌과 르아브르 바닷가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하겠다고 수영복과 수모를 다 준비했다. 그런데 막상 바닷가에 다다르니 바닷물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사르르 없어졌다. 나이가 들었구나 싶었다. 어릴 적에는 해운대 바닷가에 들어가 가족과 함께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바다를 보는 것은 좋지만, 들어가서 몸에 물을 적시는 것은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짠 소금물이 몸에 묻어서 찝찝할 것 같고, 젖은 몸을 어디 샤워할 곳도 없어서 그대로 말린 뒤 호텔에 가는 과정도 번거롭고 귀찮았다. 그저 앉아서 맛있는 것 먹으면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잊 좋았다. 반면, 아이는 바다를 보자 너무 신기한지 들어가고 싶어 했고, 발을 담그고 계속해서 모래 놀이와 자갈 놀이를 했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으니 어린이 다움이 무엇인지, 어릴 때만 느낄 수 있는 천진난만함, 순수함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어른에게는 시큰둥한 것이 아이에게는 마냥 신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어릴 때 어린이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충분하게 찾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놀게 하고, 새로운 것을 많이 접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이는 돈이 많이 들고 비싼 것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돈 안 들고, 소소한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본다거나, 발을 담그며 물장구 친다거나, 해변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는 등 그저 아빠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눈을 마주치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얼마든지 행복감을 느끼고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다.
바다를 너무 좋아하는 아이 모습을 한참 바라보면서, 팬데믹 전 파리 살이 초기 3년 동안 많은 곳을 여행 다녔지만 그때는 만 1~3살 때라 너무 어려서 아이가 이곳저곳에 다녀도 그것을 다 알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다. 아이가 생후 6개월에 첫 바다를 보았는데 바로 괌 바다였다. 괌은 확실히 다르긴 달랐다. 물도 에메랄드 색깔이고, 발 정도 물을 담가도 물고기 떼가 왔다 갔다 했던 기억이 난다. 가족 단위 여행지로 단연코 상위권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휴양시설도 매우 잘 되어 있고, 좋은 호텔도 많고, 맛집도 많으며 바닷가도 안전하게 재밌게 잘 되어 있다. 그때 아이가 너무 어려서 그저 타월에 꽁꽁 싸서 눕혀 놓기만 했었는데, 지금 만 6세 아이가 다시 괌에 간다면 정말 신나게 잘 놀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여행지를 즐기는 것을 물론이거니와 엄마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도 늘어나고,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편해지고 있다. 어릴 때는 여행을 갈때마다 아이가 먹는 것을 늘 만들어서 싸들고 다녔고, 유모차에 태워 다니느라 힘들었는데, 지금은 아이가 엄마 아빠를 잘 따라 걷고, 먹는 것도 우리가 먹는 것은 웬만큼 다 먹으니 여행하기 한결 수월해졌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인생의 순간순간을 함께 더 많이 공유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크나큰 축복이다.
사람들은 파라솔 아래 그냥 엎드려 누워있었다. 도빌 바닷가도 그렇고 르아브르 바닷가도 그렇고 이곳 사람들은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몸이 많이 무거워도 비키니 입고 해변에 벌러덩 누워있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태양에 썬텐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며 누워있다. 아니면 자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핸드폰 보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저 하늘을 보거나, 바다를 보면서 무념무상 중인 것 같아 보였다. 한국은 핸드폰을 많이 하는 편이라서 해변에서도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거나, 글을 읽거나, 문자를 주고 받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바캉스란 확실하게 재충전하고 쉬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힌 듯 보였다. 나도 프랑스에 살면서 점점 핸드폰을 멀리하고 있다. 전자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기는 하지만, 웬만해서는 밖에서 핸드폰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sns는 브런치 외에는 거의 하지 않으며, 카톡도 잘 안하는 편이다. 핸드폰과 멀어지면서 현재의 내 삶에 더욱 집중하고, 나의 생각과 감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한다.
열기가 조금 식을 때 다시 르아브르를 다시 찾을 것을 기약하며 해변을 떠났다. 근처 생 조셉 성당에 들어가서 성당에 잠시 앉아서 기도를 했다. 생 조셉 성당은 독특한 건축으로 매우 유명한 성당이다. 겉에서 보면 미국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르아브르 시청 건물도 보고 있으면 매우 미국적이다. 미국에서 건축의 도시로 알려진 시카고에 온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뉴욕 같은 느낌도 들게 하는 그런 고층 건물이다. 르아브르라는 도시는 건축의 도시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인해 도시가 불타서 그 후 다시 현대적으로 재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 건물이 많고, 깨끗한 편이며, 건축물이 비교적 현대적이다. 그중 하나가 생 조셉 성당이다.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가 중세 고딕 양식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성당 안에 들어가니 높이 솟은 천정을 비롯한 건물 모든 면이 스테인드글라스로 빼꼭했다. 마치 가우디 성당에 들어선 듯했다. 파리에서는 보기 힘든 매우 현대적인 건축 기법이었다.
아이는 덥고 걷는 게 힘들다고 해서 신랑과 호텔로 돌아가서 쉬기로 하고, 나 혼자 앙드레 말로 뮤지엄에 갔다. 프랑스에서 인상주의 작품을 오르세 뮤지엄 다음으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라고 해서 꼭 가보고 싶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도시, 르아브르. 그리고 그들의 작품이 많이 걸려있는 앙드레 말로 미술관. 1시간 반 정도 작품 감상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시간은 5시를 가리켰다. 우리 가족은 곧바로 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갔다. 안녕 르아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