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빌 해변에서 먹는 컵라면과 김밥
노르망디 레지옹 북부에는 르아브르, 에트르타, 도빌, 옹플뢰르, 디에프, 쉘부르 등 휴양지로 유명한 항구 도시들이 많다. 노르망디는 노르망디 해전으로 익히 들어봤으며, 쉘브르는 영화 <쉘브르의 우산> 배경으로 유명하다. 까뜨린느 드뇌브가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영화는 어머니의 우산가게 일을 돕는데, 남녀 사랑 이야기 외 그녀의 패션과 쉘부르의 배경 등 눈을 사로잡는 것이 많다. 우산 가게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북부 항구 도시이다 보니 비가 많이 내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노르망디는 비가 자주 내리는 날씨로 유명하다. 파리에서 도빌까지 차로 2시간 정도 걸려서 갔는데, 중간에 휴게소에 내려서 쉬었다. 휴게소 안에는 먹을 것과 함께 기념품 및 지역 특산품도 함께 약간 판매하는데, 구경하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노르망디는 비가 많이 내린다는 특징을 잘 잡아낸 그림이었다. 특히, 노르망디와 브르타뉴 경계에 있는 몽생미셀을 가운데 두고 두 지역이 서로 자기 것이라며 주장하는 그림이 독특했다. 몽생미셸은 파리에서 4시간 정도 걸리는 관광지인데,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몽생미셸의 위치를 보면 브르타뉴와 노르망디 가운데 위치했다. 아슬아슬하게 브르타뉴에서 벗어났고, 아슬아슬하게 노르망디에 속해있다. 유명 관광지이기 때문에 서로가 내 것이라고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에서는 노르망디 기념품을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에 기념으로 몇 개 구매했다.
도빌(Deauville)은 럭셔리 휴양지로 유명하다. 1966년 개봉한 영화 <남과 여>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1800년부터 프랑스 사람들에게 럭셔리 휴양지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파리와의 근접성 덕분에 남프랑스 니스보다 파리지앵 및 파리지엔들이 이곳에 고급 별장을 두고 휴양하기도 하는 곳이다. 실제 도빌은 파리 근접성을 겨냥해 파리 상류층을 위한 고급 휴양지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개발했다. 그래서 골프, 카지노, 경마장 등이 유명하다. 곳곳에 경마장이 많이 있다. 또한, 도빌 미국 영화제(Le Festival du cinéma américain de Deauville)로도 유명하다. 미국 영화제는 1975년부터 시작해서 매년 도빌에서 개최되고 있다. 영화제 이름 그대로 미국 영화를 소개하는 축제다. 48회를 맞이하는 올해는 9월 2일부터 11일까지 열린다. 남프랑스에 칸 영화제가 있다면 북프랑스에는 도빌 영화제가 있다.
도빌에 도착하면 벌써부터 예쁜 별장같이 생긴 집들이 많이 있다. 알자스 지방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는 목조 건물 모양인데, 동화 마을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인 Y은 평소 주말에 도빌에 자주 가며, 이번 바캉스 때에도 도빌에 며칠 머물다 올 계획이라고 했다. 이곳에 별장이 있어서 자주 가서 아이들과 함께 놀다 온다고 했다. 예쁜 별장들을 지나 바닷가에 도착했다. 8월 12일 오전 11시 반, 도빌 백사장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다들 물놀이를 하거나 백사장에 누워 재충전을 하는 듯 보였다. 2020년 코로나가 한창 불어닥쳤을 당시, 도빌에 우리 가족은 바람을 쐬러 온 적이 있다. 그때 제1차 락다운이 시작되고 오랜 기간 집안에만 있어서 너무 답답했던 우리 가족은 격리 생활이 해제되자 바람을 쐬자며 찾아간 곳이 도빌이었다. 그때 도빌 바닷가에는 정말이지 아무도 없었다. 8월 말 경에 갔는데, 그 당시 미국 영화제를 홍보 포스터 및 부스를 볼 수 있었다. 2020년에는 9월 4일부터 13일까지 개최했는데, 코로나로 개최할까 싶었는데 결국 개최를 했었다. 그때는 큰 바닷가에 아무도 없이 썰렁하기만 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추웠던 기억이 난다. 도빌 도심을 둘러봤는데, 에르메스를 비롯한 명품샵이 많다. 명품샵도 도빌 특유의 예쁜 목조 건물이다. 식당 및 카페 등 관광 인프라가 꽤나 잘 되어 있었다. 건물이 하나같이 예쁘다.
신발을 벗고 걸어본다. 하얀색에 가까운 매우 고운 모래였다. 모래는 뜨거웠다. 도빌 바닷가의 특징은 백사장에서 바다의 폭이 넓다는 점이다. 한참을 걸어야 바다에 발을 담글 수 있다. 바닷가 곳곳에는 파라솔이 꽂혀있었다. 도빌의 랜드마크 같은 원색의 파라솔이 펼쳐져 있었다. 대게 일반인들이 가정에서 가져오는 파라솔은 흰색 푸른색 스트라이프가 대부분인 반면, 이곳 도빌에는 형용색색의 파라솔이 해변에 꽂혀 있어서 파라솔만 봐도 어느 해변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는 바다를 보자마자 너무 신이 나서 점심을 먹을 생각도 하지 않고 쉼 없이 모래 파기를 하며 놀았다. 나는 돗자리를 깔고 전날 저녁에 준비한 김밥을 꺼냈다. 튀김 우동과 보온병도 꺼냈다. 프랑스 노르망디 도빌 해변에서 먹는 라면과 김밥이라니! 꿀맛이었다. 이 순간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다. 비록 물이 아주 뜨겁지는 않아서 국물이 얼큰하거나 시원하지 않고, 라면 면발은 잘 익지 않아서 한국 편의점 또는 식당에서 파는 라면과 김밥의 맛은 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며 너무 맛있게 먹었다. 다른 사람들은 바게트와 소시지, 치즈 등을 먹고 있는데 동양인 나 혼자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역시 한국인은 뜨뜻한 국물, 짭조름한 국물을 먹어줘야 하는 것 같다.
2시간 정도 물놀이를 했을까. 이제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주차한 곳 옆에는 작은 성당이 있었다. 잠깐 들어가서 기도를 하고 나오려고 했다. 입구에는 예쁘게 차려입은 할머니 한 분이 내게 이 성당을 관람하는 법을 안내해주셨다. 성당에서 일하시는 분이셨는데, 보기 드문 친절함이었다. 성당 내부를 보고, 기도를 한 뒤, 할머니께서는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시길래, 파리에서 왔다고 하니 할머니는 이전에 파리 16구 롤랑가로스 근처에서 사셨다고 했다. 알고 보니 이전에 우리 가족이 살았던 동네에 사셨다. 반가워서 서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곳에서 오래 사시다가 남편께서 죽고 난 뒤,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이곳 도빌에 와서 혼자 사신다고 했다. 예쁜 동네에서 말년을 보내려고 오셨다고 덧붙였다. 방명록에 어떤 말이라도 좋으니 남기고 가면 좋겠다고 하셔서 '우리 가족을 포함한 지구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작별 인사를 하고 나서는데 나의 노년은 어떨까 생각해봤다. 부부 중 누구 하나는 먼저 떠날 것이고, 그 후 노년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 그런 생각을 잠시 해봤다. 도빌에 사신지 얼마나 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꽤나 밝아보였다. 붉은색 계통의 밝은 원피스를 입으셨는데, 꽤나 깨끗하고 단아한 느낌을 풍기셨고, 헤어스타일도 예쁜 진주 핀으로 긴 머리를 틀어 올렸다. 빨간 립스틱을 곱게 발랐는데 얼굴에는 평화로움이 가득해보였다. 홀로 남은 여생을 도빌 해변에서 그렇게 기도하며 보내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