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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Jun 03. 2022

파리 13구 스트리트 아트

길 위에서 진짜 예술을 만나다

파리는 20 구로 이뤄져 있다. 1구가 중심에서 시작하는데 달팽이 모양으로 중심에서 외곽으로 확장되면서  숫자가 점점 커진다. 파리  구마다 저만의 특색이 있다. 루브르, 오르세, 노트르담 대성당  주요 관광지는 중심부에 많이 있는 편이다. 파리 1~20 중에서   가본 동네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가긴 가봤는데 볼일이 있어서 아주 잠깐 머물렀다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동네가 19, 20구이다.  동네에 과학산업관이 있고,  빌레뜨 공원이 있긴 한데 자주 가지는 않는다. 주변이 위험 지역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동네에 사시는 분이  글을 보시면 오해는 마시길. 생드니 쪽이 위험하다고 익히 들었고, 나는 겁이 많은 아줌마이며, 초기 정착  엄청난 도난 사건을 어서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파리에서는  조심하는  상책이란 생각이 깊이 박여서 그런 것이니 이해 부탁드려요. 사실 초반 도난 사건만 겪지 않았어도, 파리에서  많은 곳을 찾아다녔을텐데, 트라우마라는   무섭긴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드는 , 초반겪은 일로 인해 몸과 마음이 무척 움츠려 들었다. 어쩌면 그때 겪은 일 덕분에(?) 평소 늘 조심하는 습관으로, 그 이후로 무사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지 않는 동네  하나가 파리 13구이다. 최근 파리 13 구라는 프랑스 영화도 마침 개봉했다. 차이나타운이 있는 동네인데, 그리 위험하진 않을 듯한데도 관광 명소가 아니면, 내가 관심 있게 드나드는 곳이 있지 않으면, 굳이 다른 동네에 가지 않는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어린아이가 있기 때문에 혹여라도 내가 잘못되면  된다는 그런 마음이 크다. 파리는 곳곳에 소매치기도 많고, 테러 위험도 있으며, 인종 차별도 심한 편이다. 미술관, 박물관 위주로 파리 중심부  마레 지구 위주로 자주 다녔고, 내가 살았던 파리 16  샹젤리제 일대는 무수히 다녔다. 당시 대구문화재단 웹진에 기고해야 하는 글을 작성중이었는데, 관련 사진이 필요해서 파리 13구를 두발로 직접 찾아갔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사진을 첨부해도 상관없는데, 기자 정신이 발동해서 그래도 기왕이면 현지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첨부하면 더욱 글이 생생하고 현장감 있을  같았다.  


날이 좋은 5월 11일, 나는 지하철 6호선을 타고 파리 13 구로 갔다. 지하철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갔고, 눈앞 가까이에서 에펠탑이 지나갔다. 13구에는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로 유명한 동네가 있다. 스트리트 아트, 즉 거리 예술은 대중의 가시성을 위해 공공장소에서 만들어진 시각 예술이다. 독립 예술, 포스트 그라피티, 네오 그라피티, 또는 게릴라 예술이라는 용어와 관련이 있다. 거리 예술은 특징은 메시지 전달성을 가지고 있다. 초기 형태의 도전적 그라피티에서 보다 상업적인 형태의 예술로 발전했다. 거리 예술은 종종 그라피티보다 그 목적을 더 분명히 해서 일반일들에게 거부감보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라피티는 일반적으로 불법적으로 행해지는 반면, 거리 예술은 동의 또는 수수료를 바탕으로 행해지며 그래서 허가의 여부가 거리 예술의 핵심이기도 하다. 구상 단계에서 그 공간을 명시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공공장소에 노출된 전통 예술과 다르다. 대도시 건물에 영상을 투사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 형식은 거리 예술가들에게 점점 더 인기가 있다. 저렴한 하드 웨어 또는 소프트 웨어를 사용하여 이런 예술 작품이 기업 광고와 경쟁할 수 있다. 파리에서는 주요 기념일인 7월 14일 대혁명 기념일에 에펠탑에 스토리가 있는 영상을 비춰서 사람들이 매우 재미있게 관람한다. 매년 12월 31일 밤 11시가 넘어가면 개선문 위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 편의 드라마 또는 영화가 펼쳐지는데 이런 것도 크게 보면 거리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좌) 세스 작품. 아이들을 통해 메세지를 전한다. (중) 허름한 집에 벽화가 있으니 느낌이 다르다 (우) 우크라이나의 눈물 같다 by 모니카


파리 13구에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한 벽화를 유명한 화가들이 그려놨다는 정보를 입수해서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사진을 찍으러 찾아갔다. 구글 지도를 따라 찾아간 곳은 Rue Buot. 우크라이나 소녀가 장갑차를 밟으면서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세스(Seth)라고 불리는 스트리트 아트로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이다. 2월 27일 그렸다. 전쟁 발발 3일 후, 그는 이곳에 직접 와서 그렸다. 벽화를 한참을 바라봤다. 그가 늘 주요한 매개체로 사용하는 어린아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소녀는 장갑차보다 훨씬 크게 그렸다. 그만큼 전쟁에 사용되는 장갑차보다 한 소녀가 더 힘이 있고,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쟁 중에 무고한 시민과 어린아이들이 죽었다. 하지만 그는 실제 아이가 더 힘이 있다는 것을, 아이가 사람이 더 크고 값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담장 위로 나뭇잎이 넘실 거렸다. 개미가 벽 위를 기어갔다. 땅과 벽 사이에는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그 옆에는 꽃도 있었다. 5월의 봄내음이 함께 어우러졌다. 햇빛이 벽화를 비추고 있었다. 자연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예술 작품이었다. 온도와 습도를 정확하게 맞춘 강화 유리벽에 고이 모셔둔 모나리자의 인공적인 느낌이 아닌, 자연의 온도, 습도, 빛, 공기 속에 살아있는 예술 작품이었다.  


세스는 1972년 10월 24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여러 책을 출간하기도 했고, TV 쇼에도 출연하고 있다. 본명은 줄리앙 말렁(Julien Malland)이다. 그는 파리 국립장식예술학교를 졸업하고 파리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90년대 세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다재다능한 예술가이자 작가인 그의 작품은 2017년 Urban Nation 박물관 개관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전시됐다. 사람들의 무의식, 젊은, 꿈의 문을 열고자 하는 그의 작품은 어린 시절을 주요 주제로 삼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지역 예술가들과 협력하여 서로의 예술 세계와 아이디어를 서로 교환한다. 그는 주변 환경에서 영감을 얻어 예술에 문화적 요소를 통합하고 아이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는 국제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기 위해 작품 속 캐릭터를 힘들고 어려운 사회적, 정치적, 지리적인 맥락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배치한다고 한다.


아이를 주제로 한 그림이 실제 곳곳에 많았다. 다른 그림이 눈에 띄었다. 무릎을 꿇은 한 아이가 목은 창문에 들어가서 보이지 않는다. 손에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았는데 새도 목만 새장에 갇혀있다. 둘 다 몸은 바깥에 있지만 목 위로는 집안에, 새장에 갇혔다. 세스는 작품 속 어린아이와 새를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내 개인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말해보자면, 몸은 바깥에서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정신세계는 집안에 갇혀 있다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은 자유로운 사고를 해야 하는데, 집에, 학교에, 어딘가에 갇혀서 자유롭고 창조적인 그들만의 세계를 훨훨 펼쳐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새가 자유롭게 날지 못하는 것처럼 아이도 새처럼 머리가 창문 안에 갇혀서 자유롭게 세상을 향해 날아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그런 메시지로 나는 읽었다. 그림 해석에 정답은 없으니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좌) 파리 13구 세스의 '우크라이나를 지지하세요' 작품. 장갑차를 밟고 힘차게 간다. (증) 세스 작품 (우) 담장 위 풀꽃과 그림 속 풀꽃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by 모니카


(좌) 한 요가 전문가가 메트로 6호선을 잡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중) 13구 벽화. 파리 13구는 곳곳이 벽화다. (우) 우크라이나 국기와 외치는 청년 by 모니카


이 외에도 거리 곳곳에는 벽화가 많았다. 벽화를 감상하고 있는데, 건물 위층에서 중국인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이곳은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는 것을 실감했다. 건물이 낙후되어 보였다. 많이 낙후되어 보이는 건물도 곳곳에 보였다. 이 거리에 혼자 덩그러니 서 있으니, 마치 중국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중국어가 내 머리 위로 계속 들렸다. 이곳에 탕프레라는 큰 중국 마트가 있는데, 한국인들이 이곳에 많이 장을 보러 간다고 들었다. 나는 중국 마트를 이용하지 않으며, 한인 마트를 주로 이용하는 편이다. 생소한 동네를 걸으니, 참 파리는 구마다 다양한 느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가 있는데, 그곳과 느낌이 사뭇 달랐다.


조금 더 걸어가니, C215의 작품이 아파트 외관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주로 스텐실을 사용하여 작품 활동을 한다. 그는 주로 사람들의 클로즈업 초상화를 작업한다. 거지, 노숙자, 난민, 거리의 어린이 및 노인들이 주요 작품 대상이다. 그 이유는 사회가 잊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다작 가이며, 바르셀로나, 암스테르담, 런던, 로마, 오슬로, 모로코 등 전 세계 도시에 그의 작품이 있다. 그는 거리 예술 외에도 캔버스에도 그림을 그리며 갤러리에 전시하는 등 상업 예술도 병행하고 있다.


파리 13구에 있는 한 아파트 외관 4층에 걸쳐 설치된 그의 작품을 한참 동안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다. 13구 시청과 협력하여 이번 우크라이나 평화 관련 작품을 만들었다. 파란색과 노란색 두 가지 색깔로 우크라이나 소녀의 프레스코화를 그렸고, 그 밑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한 말을 적어뒀다. "나는 신도 우상도 아니며, 국가의 하인일 뿐이기 때문에 사무실에 내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대신 아이들의 사진을 걸어 놓고 당신이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보세요." 정말 멋진 말이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아이들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라는 그의 말은 우리가 참으로 마음 깊이 담아야 할 부분이다. 그가 어떻게 코미디언에서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좌) C215의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한 작품. 젤렌스키 말이 와닿는다 (중) 세스 작품. 줄넘기 하면서 벽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우) 소년과 우크라이나 국기 by 모니카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무수한 선택을 해야 한다. 아이가 있다면 아이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면 뒤늦게 후회가 없다. 우리 가족은 2020년 주재원 계약이 끝나고 다음 스텝으로 일본으로 좋은 조건으로 갈 수 있는 제안을 받았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집과 학교를 알아보던 중, 우리 가족이 놓친 것은 없는지 다시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그곳의 방사능 수치가 세상에 실제 알려진 것보다 높은 수준이라는 것을 뒤늦게 친한 지인으로부터 자세하게 알게 됐다. 지금도 그 지인을 생각하면 고맙다. 물론 방사능이 괜찮다는 사람도 있고, 실제 일본에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알고 지내던 S는 아이와 함께 최근 일본으로 가서 일하게 됐는데 살기 좋다고 했다. 물론 각자 삶의 가치관이 다르고, 삶의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 정확한 정보를 수집 및 분석하고, 나의 삶의 가치관과 우선순위 및 철학 등을 바탕으로 스스로 최종 판단하면 된다.    


신랑은 무엇보다도 아이 건강을 가장 걱정했다. 솔직히 나는 일본에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음식을 주의해서 가려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일본에 가서 사는 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아들 일이라면 끔찍히 생각하는 신랑은 아이가 최우선이었다. 자신의 커리어 및 연봉보다 아이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신랑이 한편으로 고마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어른들은 이미 몸에 독이 쌓여가고 있지만, 성장하는 어린아이는 다르다고 그는 말했다. 아이를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조건이 좋았다. 일본행을 포기한다면 그 후로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가장 우선이었다. 말 그대로 우리는 당장 실직 상태가 될 수도 있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한창 진행되는 과정에서 결국 가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고, 그 후 본사에서 또 다른 좋은 오퍼를 받아서 프랑스에서 계속 삶을 살게 됐다. 아이는 학교에서 신선한 식재료로 된 음식을 먹으며, 현재까지 이곳 아이들과 친하게 잘 어울리면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그때 아이를 우선으로 생각하지 않고, 어른 잣대로, 사회적 기준으로, 내 편이대로 판단했다면, 그때 결정을 후회했을 수도 있다. 그 당시 속으로 많이 불안했을 수도 있는데 개의치 않고 용기내어 과감하게 결정한 신랑이 대단하고 고맙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아이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할 때 좋은 결과도 함께 따라온다는 것을 그때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좌, 중, 우) 파리 13구에는 그래피티도 곳곳에 많았다 by 모니카


파리 13구 스트리트 아트 동네를 천천히 걸으면서 느낀 점은 미술관과 박물관의 액자 속 그림만이 고귀하고 우아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거리의 그림도 얼마든지 멋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히려 액자 속 유리 안에 갇힌 죽은 그림이 아닌 벽에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그림으로써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오다가다 쉽게 볼 수 있고, 돈을 내지 않고도 누구나 남녀노소 감상할 수 있으며, 그림을 직접 만져도 볼 수 있는 진짜 살아있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이 한정된 소수만을 위한 것이 아닌, 다수를 위한 예술이 돼야 한다면 그것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바로 거리 예술이 아닐까 싶다. 돈을 내고 연주회장에 들어가서 조용한 가운데 연주회를 듣는 것이 아닌, 길거리에 오다가다 누구나 음악을 듣고, 보고, 함께 흥얼거리며 즐길 수 있는 거리 악사 및 버스킹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든다. 테니스 스포츠 경기장에 소리 내면 안되고 조용히 관람하는 것이 아닌, 길거리에서 누구나 함께 어울리며 농구를 하고, 축구를 하는 스트리트 스포츠가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는 말했다. 우리 인생은 길 위에 있다고. 길이 곧 인생이라고. 그러면 인생을 함께하는 이 길 위에 그림이 있고, 음악이 있고, 예술이 있다고 생각한다. 값을 치르지 않은 예술이라 자칫 쉽게 여기기 쉬운데, 이번 파리 13구 스트리트 아트 거리를 걸으면서 거리 예술을 다른 시각으로 새롭게 보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길 위에서 진짜 인생을 예술을 만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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