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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Jun 01. 2022

시몽 한타이(Simon Hantai) 전시회

접고 칠하고 펼치면 멋진 작품이 된다

루이비통 재단이 주최하는 '시몽 한타이 : 백주년 전시회 (Simon Hantaï : L'exposition du centenaire)' 관련하여 특별 초대장 한 통이 집으로 배달됐다. 날짜는 5월 17일 화요일 오후 4시부터 저녁 11시까지였다. 실제 전시는 5월 18일부터 8월 29일까지 하며, 공식적으로 전시를 시작하기 하루 전날에 VIP 멤버들만 따로 미리 초대를 했다. 평일 오후 4시는 아이를 유치원에서 픽업해야 하는 시간이다. 초대받은 전시라 가고 싶었지만, 아이와 함께 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딸기, 바나나, 빵 오 쇼콜라, 주스 등 간식거리를 잔뜩 짊어지고 유치원에 시간 맞춰 갔다. 그날은 30도를 육박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들 땀이 삐질 삐질 났다. 글을 쓰는 오늘은 다시 기온이 떨어져서 20도 정도 된다. "우진아, 오늘 엄마가 피크닉 간식도 많이 챙겨 오고, 씽씽카도 가져왔는데, 우리 루이비통 미술관 안 갈래? 거기 아끌라마따시옹 공원에도 가서 놀자." 아이가 미술관 가는 것은 썩 흥미를 가지지 않지만, 루이비통 재단이 품고 있는 아끌라마따시옹 공원에는 놀거리가 많기 때문에 좋아한다.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웬걸 가겠다고 흔쾌히 대답했다. 가기 싫다고 하면 전시회는 포기할 생각이었다. 씽씽카를 타며, 씽씽 달리는 아이 뒷모습이 신나 보였다. "우진아, 모자 쓸래?" "아니, 트로띠네뜨(싱싱카) 타면 바람이 불어서 시원해. 괜찮아."


집 앞에 있는 도로만 건너면 볼로뉴 숲으로 들어간다. 볼로뉴 숲부터는 파리시 소속이다. 우리 집은 한마디로 뇌이쉬르센과 파리시 경계에 있다. 마치 국경에 사는 것처럼. 볼로뉴 숲 그늘에 잠시 서서 주스를 마시려고 하는데, 저 멀리서 같은 반 친구 N이 "우진아~" 하고 소리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의 아빠와 주변에 다른 엄마들 및 친구 여럿이서 몰려오고 있었다. 볼로뉴 숲 안에 있는 놀이터에서 함께 놀 계획인가보다. 그 아이들 무리 중에는 같은 반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이 백조 가족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N 아빠와 잠시 대화를 했다. 대만인이다. 오랜만에 중국어로 대화를 했다. 그녀의 아빠는 프랑스에 온 지 1년 됐다며 아직 프랑스어를 잘 못한다고 했다. 대만인들이 발음이 좋은 편이다. 중국어가 귀에 쏙쏙 정확하게 들렸고, 나도 중국어가 편안하게 잘 나왔다. 참고로 북경인들은 소위 얼화라고 해서 얼얼 거리면서 발음을 뭉개는 편이라 외국인들이 잘 못 알아듣기도 한다. 그래서 어학연수 갈 때 발음이 정확한 도시를 학생들은 선호하는데 그중에 대만도 들어간다. 물론 북경에 어학연수도 많이 가는데 어학연수 기관에서는 선생님들이 분명한 발음으로 정확한 표준어를 가르친다. 그는 내가 중국어를 잘한다며 놀라워했다. 나는 그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초반 몇 마디 들으면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다 보면 막히기 때문에 그는 아마도 대화를 이어나가면서 다른 생각이 들었을테다.


애초 계획과는 달리, 우진이는 친구들을 보자마자 여기서 계속 놀겠다고 했다. 어쩔 수가 없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이, 친구를 만난 우진이는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미술관 가는 것을 구슬려 보려고 포켓몬 카드를 한 움큼 가져왔는데, 그 포켓몬 카드를 아이들 앞에 쫙 펼쳐놓고 게임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이미 판은 벌어졌다. 그렇게 또 한참을 놀았다. 20분 놀고 가기로 한 것이 1시간이 지나버렸다. "우진아, 친구들과 놀게 해 줬으니, 엄마 부탁도 들어주면 안 될까?" 아이는 웬걸 몇 번 조금 더, 조금 더 하더니 같이 미술관에 가겠다고 했다. 미술관 갔다가 다시 이곳에 오자고 했다. 놀이터에서 미술관은 걸어서 5분도 안 걸린다. 이런 곳이 또 어딨을까 싶었다. 집에서 조금만 걸으면 볼로뉴 숲, 숲에서 조금만 더 가면 미술관. 우리 집 옆에는 울창한 숲과 좋은 미술관(+ 놀이공원)이 있다. 숲 속의 잠자는 공주가 아닌 숲 속의 미술관. 여름 초록빛 숲과 하얀색 반투명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을 나는 사랑한다. 집과 숲과 미술관. 너무 완벽한 조화다.


오후 6시, 사람들이 꽤 있었다. 지난번 멤버들 전시 초대와는 달리 이번 전시는 꽤 유명하고, 규모가 있어서인지 VIP 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았다. 젊은 사람들도 꽤 있었다. 다들 옷을 잘 차려입고 왔다. 전문 사진사가 패션이 좋은 사람들을 찾아서 허락을 받은 뒤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반면 나와 아이는 주렁주렁 간식 가방을 들고, 씽씽카를 이고 지고 이곳을 찾았다. 대비되는 모습에 다소 움츠려 들기도 했지만, 상관없다. 나는 당당히 초대를 받아 왔고 아이와 함께 유치원에서 바로 온 엄마다. 씽씽카를 맡기고, 아이와 나는 둘이서 전시관 1번 방부터 7번 방까지 쭉 둘러봤다. 사람들이 북적대지 않으니 공기가 참 좋았다. 쾌적함 그 자체였다. 모로조프 전시 후 바로 그다음 전시였다. 관계자들은 모로조프 전시 동안 걸려있던 200여 점의 그림을 조심스레 다 떼어내고, 새로운 그림을 벽에 걸고 설치하고 작품 설명을 벽에 붙이고 하는 작업들을 부지런히 했겠다 싶었다. 전반적으로 모로조프 전과 달리 이번 전시는 전시실 자체가 밝았다. 모로조프 전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느낌이 강했다. 어두컴컴했던 방이 환하게 변신하니 훨씬 기분도 상큼했다.


시몽 한타이(Simon Hantaï, 1922-2008)는 헝가리 태생이지만, 1966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그의 일대기가 전시회 1번 방 옆에 있는 커다란 유리창문에 나타나 있었는데, 파리로 유학을 온 뒤,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는 부다페스트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후 이탈리아를 거쳐, 1948년 프랑스로 이주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추상 미술이다. 초현실주의 기법과 잭슨 플록의 액션 페인팅 방법과 근접하다. 그는 실제 잭슨 플록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2013년 5월 22일, 그의 작품에 대한 회고전이 퐁피두 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은 올해로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전시를 개최했다. 이번 백주년 전시는 그의 아내 Zsuzsa Hantaï 와 그의 자녀들의 헌신, 열정, 노력에 의해 이뤄졌다. 그의 아들 3명(Marc, Jérôme 및  Pierre)은 모두 음악가인데, 이번 전시와 관련하여 연주회도 열었다. 이번 전시는 1960년대 이후의 작품에 집중했으며, 130개의 작품이 미술관 7개의 갤러리에 걸쳐 전시되어 있다.


(좌) 전시실 입구 (중) 두 가지 전시가 진행중이다 (우) 전시실이 밝고 쾌적하다 by 모니카


그의 작품 기법은 한마디로 접기(Pliage, 플리아쥬)라고 보면 된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접기 방식(Folding method)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평평한 캔버스가 아닌, 종이, 천 등을 마구 구겨 접은 뒤, 그 위에 색을 칠한다. 그리고 종이 또는 천을 펼치면 물감이 칠해지지 않은 하얀 부분이 드러나게 된다. 이런 기법으로 그는 작품을 이어나갔다. 1960년 플리아쥬 회화를 시도했고, 초현실주의 자동주의 및 추상 표현주의 기법을 활용했다. 이런 기법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캔버스 위로는 주름이 있고, 단색 덩어리가 덩그러니 있기도 하며, 한쪽 물감이 다른 쪽 면에 그대로 겹쳐져서 똑같은 그림이 반복되어 나타나기도 하는 등, 접고 펼치기를 통해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다양한 작품이 창조됐다. 이 기법은 어머니의 앞치마에 접힌 자국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역시 우리네 일상 속에 예술이 있고, 우리 주변을 잘 관찰하면 영감을 얻을 수 있고, 창조적일 수 있다는 내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나는 평소 우진이에게 "우리 주변 일상을 잘 관찰하면(Observer), 발견할 수 있고(Decouver), 그러면 창조가 가능하다(Créer)"는 말을 자주 한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일상이 중요하며, 그 일상에 답이 있다. 창조는 일상에서 주변에서 일어난다.


1967년부터 1968년까지 그는 인물의 주제를 연구하는 Meuns 시리즈를 작업했다. Meun은 1966년부터 작가가 살았던 퐁텐블루(Fontainebleu)숲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그는 "연구를 하면서 내 작품의 진정한 주제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내 그림 아래 있는 땅이 부활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후 1969년에는 Studies 라는 이름의 시리즈를 옮겨갔는데, 인물은 흡수되고 흰색 이 배경에서 떨어져 나와 역동적으로 변하게 된다. 갤러리에는 잭슨 플록의 작품이 몇 점 걸려있었다. 또한, 앙리 마티스의 작품도 걸려있었다. 다른 예술가들에게서 영감을 주고 받았던 것 같다. Daniel Buren이라는 현대 예술가가 전시장 곳곳의 벽 6군데에 시몽을 위한 벽(Wall for Simon)이라는 작품명으로 그를 오마쥬하며 전시에 함께 참여했다.


(좌) 앙리 마티스 작품 (중) 앙리 마티스 작품 (우) 잭슨 플록 작품. 시몽 한타이가 두 예술가의 영향을 받았다 by 모니카


기발한 발상이다. 종이와 천을 마구 구겨서 그것을 칠한 뒤, 펼쳐서 작품을 만들어 가다니... 그런데 그 작품들이 또 하나같이 다 아름답다. 추상적이지만, 뭔가 아름다워보였다. 얼핏보면 다이아몬드처럼 보이기도 했다. 네모난 형형색색의 다이아몬드. 색깔이 하나같이 밝고 빛이 났다. 나는 우진이에게 그림을 한국말로 설명해줬다. “우진아, 너도 할 수 있어. 별거 아냐. 사실 이거 종이를 구겨서 색칠하고 펼치면 되는 거야. 쉽지? 우리도 집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 종종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프랑스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인종차별을 받거나, 무시를 받기도 하지만, 소수 민족이기에, 소수 언어를 사용하기에 좋은 점도 있다. 바로 우리 가족만의 은어처럼, 코드명처럼, 우리끼리 어떤 말도 서슴없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주변에 동양인이 있다면 우리 말을 알아들을 수 있지만, 요즘은 프랑스인들도 한국어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서 간혹 알아들을 수도 있다지만, 평균적으로 보편적으로는 한국말을 해서 주변 프랑스인들이 다 알아듣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미술관, 길거리, 마트 등에서 우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지 지체없이 자유롭게 말한다. 예를 들면, 미술관에서는 "우진아, 벽에 걸린 그림을 봐봐. 점 몇개 찍어놓고 벽에 걸려있잖아. 너도 할 수 있어. 별거 아냐. 너도 나도 할 수 있는 거야." 공원 또는 마트 등에서  예의 없는 사람을 보면, "우진아, 저렇게 하면 돼? 안돼? 저건 나쁜 행동이야 그렇지? 저렇게 하면 신사가 아니야. 신사라면 저렇게 무례한 행동을 하면 안돼". 길거리에서 어떤 사람이 높은 난간위에 올라가서 앉아 있는 위험한 행동을 하면, "우진아, 저렇게 하면 큰일나. 저건 옳지 못해. 저러다 떨어지면 바로 다리 부러지고, 목숨도 잃어." 등 상대방이 들으면 기분 나쁠 말을 우리 둘은 편하게 나눌 수 있어서 참 좋다. 아이에게 교육적인 말이 대부분이지만, 이런 말도 상대방에게는 불쾌하거나, 이상하게 보일 수 있기 마련인데, 소수 언어인 한국어로 나와 아이 둘이서만 함께 공유한다는 것이 이럴때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지 모른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우리 둘만의 대화를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는 그 짜릿한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좌) 천을 구긴 뒤, 색칠한 후, 다시 펼치면 작품이 된다. 일명 폴딩 기법. (중) 타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다이아몬드같이 보였다 (우) 확대한 사진 by 모니카


우진이는 공원에 가서 놀고 싶어 했다. 그래도 엄마가 끝까지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많이 배려를 해줬다. 마지막 7번 전시실을 못 찾아 헤매는 엄마를 보더니, 미술관 관계자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7번 갤러리가 어딨냐고 물어보는 아들을 보고 있으니, 한편으로 엄마를 도와준다는 생각에 대견해 보였고, 한편으로는 얼마나 빨리 공원에 가고 싶었으면, 이렇게 적극적으로 행동할까 싶었다. 그 옆에서 아이 행동을 지켜보던 어느 중년 마담이 우진이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7번 전시실까지 다녀온 뒤, 우리는 공원으로 갔다. 시간이 이미 넘어 공원은 문을 닫았다. 아이는 매우 실망스러워했다. 그렇게 터벅터벅 집으로 가는데, 저기 숲 안에 있는 놀이터에 N이 아직도 놀고 있다. 시간은 저녁 7시를 향해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집으로 돌아가고 그녀와 그녀 아빠만 덩그렇니 있었다. 우진이는 너무 좋아하며 친구와 놀기 시작했다. 시간은 흐르고, 점점 나는 지쳐가고, 배는 고프고... "우진아, 저녁이야. 해가 있어 밝지만, 실제로는 저녁이야. 어서 가자."하니, 우진이는 "엄마, 조금만 더. 조금만 있어봐." 우진이와 N은 바닥에 앉아서 포켓몬 게임을 하며 놀았다. 저녁 7시 40분.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제는 가야 한다고 했다. 근데 이상하게 N의 아빠는 집으로 가지를 않는다. ‘저녁 먹으러 안 가나?’ 그렇게 우리는 대만인 부녀를 뒤로 한채, 유유히 집으로 갔다. 가는 내내 우진이는 N과 더 놀고 싶다고 10번 이상 말했다. 집에서 샤워하면서도 ‘N은 집에 잘 갔을까? 여전히 놀이터에 있을까?’ 라며 우진이는 N이 집에 잘 돌아갔을까 무척 궁금해했다. 전시는 8월말까지니, 여러번 작품을 감상해야겠다.


(좌) 숲 속 놀이터에서 포켓몬 게임하며 노는 모습 (중) 생전에 시몽의 플리아쥬 기법 작업 모습 by FLV 홈페이지 (우) VIP 멤버들이 속속 입장하는 모습 by 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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