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있어요
9월 5일부터 11일까지 초등학교 1학년 1주일을 보냈다. 5일 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초등생활이 시작됐다. 매주 월요일은 특별 활동으로 체스 수업을 한다. 초등학교부터는 유치원과는 달리 간식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방과 후 특별 활동이 있으면 간식을 준비해야 한다. 조금 번거롭기는 하다. 아침 8시 10분, 교문 앞에 도착했다. 아들과 서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20분에 교문이 열리자 철문 틈 사이로 아들과 교신을 주고받았다. 사랑해, 최고, 안녕 등... 그렇게 10분 넘게 있었다. 종이 울리자 아이는 자기 반 교실 입구로 달려갔다. 아침에 이렇게 교문에서 이렇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다들 아이들을 교문에 들어가게 하면 직장 가기 바빠 보였다. 몇 몇 아이들은 학교 들어가기 싫다며 교문 앞에서 울기도 했다. J는 울며불며 학교 가기 싫다고 엄마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다른 반에 배정된 친구 R은 자기 반에 친한 친구가 없단 이유로 첫날 매우 힘들어했고, 결국 그날 밤 열이 났다고 R엄마가 내게 전해줬다. 유치원과 다른 초등학교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만 6세 아이들을 보며 속으로 힘내라고 응원했다.
아이를 픽업하러 학교에 갔다. 체스를 해서 분명 좋아할 줄 알았던 아이 얼굴이 밝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이 무섭다는 이유였다. 유치원 선생님들은 아이들 입장에서 그대로 맞춰줬다면 초등학교부터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또한, 프랑스 선생님들이 또 한국에 비해서는 다소 무섭고 엄격한 편이라고 알고 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이제 더 이상 아이들 입장에서 맞춰 주기보다는 규율과 원칙을 강조한다. 아이들을 수업 시간에 조금 엄격하게 다루는 것 같았다. 나는 유튜브 영상을 찾아봤다. 초등학교 1학년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니 여러 영상이 있었고, 그중 하나를 골라봤는데, 초등부터는 유치원과는 달리 규율과 규칙을 지키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한다고 했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도 하고. 분명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다소 엄격하게 해야 아이들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기강을 잡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들에게 일부러 무섭게 하는 것이라고 알려줬다. 너만 무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그럴 것이라고. 선생님이 무섭게 해야 아이들을 잘 컨트롤하고, 수업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유치원 때처럼 선생님이 맞춰주면 수업 진행이 안되기 때문에 일부러 무섭게 하는 것이니 겁먹지 말고 속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된다고 해줬다. 아이는 내 말을 귀담아 들었다.
다음날, 아이에게 어땠냐고 물으니 아직도 조금 무섭다고 했다. 그래도 전날보다는 괜찮은 듯한 표정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분명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변화로 인해 적응 중일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전처럼 마음껏 놀지도 못하고, 교실에 장난감도 없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정해진 시간 동안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다소 버겁게 느껴질 수 있다. 이렇게 어른으로 성장하나 보다. 나도 초등학교 1학년일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나도 초등학교 1학년이 무섭고 힘들게 느껴졌을 수 있다. 아이들은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부모가 곁에서 잘 케어해줘야 한다. 아이 마음을 늘 이해하고 아이 편에서 생각해야 한다. 누구나 다 처음은 힘들고, 변화에는 적응 기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저녁에 아이와 대화를 많이 나눴다. 잘하고 있다고, 엄마는 너를 믿는다고 얘기해줬다. 모두가 똑같은 상황이며, 다른 친구들도 갑작스러운 변화에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말해줬다. 아이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아이는 피곤한지 내 말을 귀담아 듣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수요일은 학교가 문을 닫는다. 대신 시청에서 운영하는 수요 교실이 같은 건물에 운영된다. 많은 부모들이 이곳에 아이들을 보낸다. 대부분 예체능인데, 친한 친구들이 대부분 오기 때문에 아들은 매우 좋아했다. 옆 학교 R도 왔다. 둘은 너무 반가워했다. 5시 반에 픽업 갔는데 아들은 빨리 왔다며 더 있다 오라고 했다. 그만큼 재밌는 놀이와 예체능으로 이뤄진 수요 교실은 아이들이 참으로 좋아한다. 아이는 수요 교실은 왜 한 번밖에 안 가는 것이냐고 물었다.
다음날 목요일, 다시 학교에 갔다. 아침에 교문에서 서로 바라보며 한참을 있다가 내가 이제 가겠다는 손짓을 하니, 아들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결국 울었다. 나는 너무 놀래서 계속 있으면 더 울겠다 싶어 사라졌다. 걱정이 돼서 다시 보니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울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손하트와 최고를 연신 보이면서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믿는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아이는 울음을 멈추며 한참을 바라보더니 안정이 되는 듯 보였다. 종이 울리자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폴짝폴짝 뛰면서 뒤돌아갔다. 아이들은 회복 탄력성이 높다. 슬프다가고 또 금세 기뻐한다. 아이를 한참을 보다, 집에 돌아가면서 마음이 계속 쓰였다. 계속 보고 있으면 더 슬퍼지니 그냥 빨리 돌아가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요일은 정규 수업이 끝나면 바로 픽업을 하는 날이다. 아이 표정이 밝았다. 오늘 아침에 왜 갑자기 울었냐고 물었고, 아이는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서 그랬다고 했다. 엄마가 끝까지 있어달라고 했다. 마침 이날 신랑이 재택 근무를 해서 아이를 집에 아빠와 함께 있으라 하고, 저녁 6시에 있는 선생님과 학부모 미팅에 갔다. 28명 아이들 중에서 학부모는 총 23명이 왔다. 아빠가 8명, 엄마가 15명이었다. 대부분 일을 마치고 온 차림이었다. 9월 1일 개학일 오후 2시에도 대부분의 학부모가 참석했었다. 그만큼 아이들 일, 가족 일이라면 회사에서도 양해를 잘해주는 편인 것 같다. 또한 학부모들은 아이들 학교 생활 및 교육에 관심이 높아 보였다. 담임 선생님은 책상 위에 아이 이름이 적힌 곳에 가서 학부모도 앉으라고 했다. 아이 이름이 적혀 있는 책상과 의자에 가서 앉았다. 옆에는 친구 E 엄마가 앉았다. E는 형이 있는데 만 9살이며 내년에 생 도미니크 초등학교로 전학 갈 계획이라고 했다.
생 도미니크는 뇌이쉬르센이 있는 학교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있는 명문 사립학교이다. 이 학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조선일보 손진석 기자의 칼럼을 통해서였다. 그분은 파리 특파원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에 계신데 '글로벌 노마드'라는 제목으로 하이브리드 인재에 관해 연재 글을 발행하고 있다. 나는 구독해서 읽고 있는데, 연재 글 중 현재 런던에 거주하고 있는 나폴레옹 후손인 장 크리스토프 나폴레옹이 바로 이 생 도미니크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녔다는 내용이 담긴 기사를 읽었다. 우리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 학교를 나는 평소 지나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명문 사립학교인 줄 몰랐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그 후, R네 집에 간 적이 있는데 R엄마가 자기 첫째 딸을 생 도미니크 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한 달 전에 입학 원서를 넣었다고 했다. 중학교 가려면 2년 더 있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넣었냐고 물어보니 경쟁률이 치열해서 미리 넣었다고 했다. 순간 여기가 프랑스가 맞나 싶었다. 홍콩 등 아시아권 국가에서는 몇 년 전부터 입학 원서를 넣는다고 들었는데, 프랑스도 이렇다니. R엄마 말이 뇌이쉬르센은 부자들이 많이 거주하며, 학구열이 높은 집들이 많은 편이라 그렇다고 했다. 모든 동네가 다 이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어제 일요일 오후, A네 집에서 티타임을 가족끼리 다함께 가졌는데, 알고 보니 A도 생 도미니크 초등학교에 입학 원서를 넣었다가 2번이나 거절당했다고 했다. 물론 현재 초등학교도 좋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만족하며 자녀들을 보내는데, 아무래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에 더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좋은 학교로 보내려는 것 같다. 뇌이쉬르센은 다른 지역에 비해 자식 교육에 관심이 높은 가정이 많은 편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됐다.
책상 서랍에 그동안 배운 것을 봤는데, 생각보다 많이 해서 놀랬다. 읽기, 쓰기, 산수 등 다양한 과목을 공부했다. 대부분 다 맞추며 선생님의 잘했다는 표시도 있었다. 선생님이 무섭다고 해도, 해야 할 것을 차분하게 잘 수행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니까 마냥 어리광을 부리고 싶고, 힘들다고 괜히 토로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잘 지내고, 담임 선생님을 말씀을 잘 듣고 수업 시간에 학습을 잘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1시간 정도 앉아서 선생님 얘기를 들었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아장아장 기어 다니고, 옹알옹알 거리던 마냥 아기 같던 아들이 언제 이렇게 성장해서 뛰어다니고, 말도 쫑알쫑알하고, 이제는 학교라는 곳에 와서 정해진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서 연필을 손에 쥐고 글자를 한 자 한 자 적고 있다니. 나는 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아들은 부쩍 성장을 했다. 한 것이라고 하면 아이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고, 배설물을 갈아주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사랑을 준 것 밖에는 없는 것 같다(물론 이것도 쉽진 않은 일이지만). 6년이란 시간 동안 아이는 알게 모르게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토록 바라는 자연스러운 성장이다. 아이는 계절이 변화하듯이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있다. 아직도 어리기만 한 아이가 교실에서 의젓하게 묵묵히 공부하는 모습을 그려보니 기특하고 대견스러웠다.
교장 선생님이 오셔서 10분가량 말씀하셨다. 교장 선생님 한 말씀은 처음이다. 유치원도 같은 교장 선생님이셨는데 말씀하신 적이 거의 없었다. 한국의 그 흔한 교장 선생님 한 말씀이 없는 프랑스다. 학부모들은 질문을 했다. 선생님이 2명으로 가는 체제에 대해 약간은 불만이 있는 듯 보였다. 1시간 정도 진행된 모임이 끝났다. 교실 문을 나가기 전에 담임 선생님께 잠깐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선생님은 매우 정신없어 보였지만, 아주 짧게나마 나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왜냐면 아이가 담임 선생님이 무섭다며 학교 가기 싫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그 말이 마음이 계속 걸렸기 때문이다. 저희는 한국인 가족인데 아이가 선생님 말씀을 잘 알아듣는지 여쭤봤다. 선생님은 아이가 잘 알아듣는다고 했다. 다만 아이가 한 번은 학교에서 울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께 아이가 겁을 잘 내며, 약간은 센서티브 한 면도 있다고 했다. 아이 성향을 참고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살짝 언급했다. 그래도 아이는 친구들을 매우 좋아하고, 밝은 성격이며, 환경에 잘 적응하는 편이기 때문에 잘 적응할 것이라고, 아이를 믿는다고 덧붙여 말했다.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공감하셨고, 인사를 하고 교실을 나왔다.
담임 선생님은 여자 선생님인데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선생님은 머리카락이 길고, 화장은 짙은 편이며, 액세서리를 많이 하고, 딱 붙는 가죽 바지에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검은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강한 포스였다. 아이는 담임 선생님이 조금 무섭다고 했는데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국의 전형적인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의 패션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요즘 초등 선생님들은 어떤 패션인지 몰라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의 어릴 적 초등 시절을 떠올렸을 때 선생님들의 패션 및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또 다른 선생님은 20대 중후반으로 보였는데 그분 또한 패션이 남달랐다. 선생님들 패션이 매우 자유분방한 프랑스 초등학교다. 심지어 아침 등굣길에 20대 중후반 선생님을 봤는데 학교 근처 골목에서 혼자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었다. 담배를 다 피고 나서 교문으로 들어갈 태세였다. 한 손에는 타고 온 오토바이 헬멧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나는 인사하기가 뭣해서 그냥 슬쩍 지나갔다.
집에 와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아들아, 너 참 대단한 거 같아. 엄마가 네 자리에서 1시간 정도 앉아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앉아서 공부를 할 수가 있어? 엄마는 못할 것 같은데. 너는 지금까지 잘 해내고 있어. 정말 대단하고 대견하다. 정말 수고가 많고, 고생이 많아. 그리고 엄마는 널 항상 믿어. 잘할 거라고 믿고 있는데, 엄마가 오늘 보니까 너 정말 잘하고 있더라. 선생님도 네가 말을 다 알아듣고 참 잘하고 있대." 아이는 안 듣는 것 같아 보여도 엄마 말을 다 귀담아듣는다. 짧고 간단하게 아이에게 너는 잘할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를 종종 말해주면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아이는 어느새 또 한 번 훌쩍 성장하리라 믿는다. 나는 내 아이를 믿으며,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성장과 잠재력을 믿는다.
다음날 금요일, 아이는 즐겁게 학교에 갔다. 교문에서 엄마를 오랫동안 보지 않고, 금세 친구 S와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며 뒤돌아 교실 쪽으로 갔다. 학교라는 공간이 점점 익숙해진 모양이다. 오후 보충 수업까지 다 하고 난 아이를 픽업하러 학교에 갔다. 아이는 아침에 손을 잡고 갔던 S와 여전히 손을 잡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표정이 밝다. 학교 수업 시간도, 오후 보충 수업 시간도 모두 즐거웠다고 했다. S와 계속 손을 잡고 집까지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