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관련 교육은 어릴 때부터
개인적으로 나는 파리에 살면서 인종차별을 많이 겪은 편이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파리에 사는 동안 인종차별을 많이 겪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 번은 길거리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내 뒤에서 커다란 개가 갑자기 곁에 다가오더니 짖어대는 소리에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친 적이 있다. 움츠려 드는 내 모습을 본 개 주인은 내 얼굴 앞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내게 심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길을 걸어가는 내내 내게 욕설을 퍼부었는데 그 시간은 약 5분 정도 된 것 같다. 곁에 어린 아기가 있어서 본능적으로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에 한 마디 대꾸도 못하고 무방비 상태로 욕설을 듣고만 있었다.
마트에서 계산하는 직원이 계산대에 줄 서 있던 다른 사람에게는 일일이 인사를 하다가 갑자기 아시아계인 나에게는 인사 한마디 안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프랑스어를 잘 못 알아듣는 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내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어를 잘 못하는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잘못으로 몰고 가는 상황도 있었다.
처음에는 억울하기도 하고 무척 서럽기도 했다. 내 나라에 살고 있었다면 겪지 않을 그런 일을 일상 속에서 겪었다. 낯선 땅의 이방인으로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졌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이런 상황을 체념한 듯 무비판적인 자세로 수동적인 삶을 사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래도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여야 내가 온전한 정신과 육체로 살아갈 수 있었다.
나는 그렇다 하더라도 내 아이만큼은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했다. 나야 내 마음만 잘 다스리면 되지만 자라나는 어린아이에게는 어릴 적 겪은 인종차별이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수도 있고, 일상생활 속에서 자존감 또는 자신감을 하락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다행히 우진이는 어린이집부터 유치원을 거쳐 현재 초등학교 1학년에 이르기까지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며 별다른 사건 사고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우진이가 만 4세였을 때, 유치원에서 단 한번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만 5세 반 누나 두 명이 우진이에게 다가와서 '중국인'이라고 했다고 내게 말했다. 몇 번 그런 일이 있었고, 우진이는 처음에는 내게 말하지 않다가 누나들이 계속 그런 말을 하니까 어느 날 조심스레 내게 얘기를 털어놨다. 그 당시는 코로나19가 한창 심각한 2021년 초였다.
그 당시 전 세계 곳곳에서 인종차별 관련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겉모습만 보면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알 수 없는 아시아인은 코로나19가 한창 심할 때 프랑스 사람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가 막 시작된 2020년 초에는 길을 걸어가다가 반대편에서 나를 본 사람들은 갑자기 오던 길을 다시 뒤로 돌아가기도 했고, 상점에 들어가려고 하면 나를 못 들어오게 막은 적도 있다. 물건을 계산하고 거스름돈을 내려고 하면 손가락으로 선반을 톡톡 치며 여기 놔두고 가라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특정 인종을 향한 혐오 발언과 차별, 폭행은 더욱 증가했다. 2020년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세상을 경악케 했다. 백인 경찰이 흑인을 과잉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망에 이르게 했고, 이로 인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 운동이 확산됐다.
1966년에 유엔 총회(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는 인종 차별 철폐를 위해 매년 3월 21일을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로 선포했다. 세계 인권 선언의 첫 번째 조항에 "모든 인간은 존엄과 권리를 지니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프랑스는 3월이 되면, '인종차별 및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교육 및 행동 주간(La Semaine d'éducation et d'actions contre le racisme et l'antisémitisme)'으로 정하고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를 옹호하는 모든 기관 및 파트너와 가치 실현을 위한 약속을 강조한 바 있다. 학교에서는 이와 관련된 교육을 학생들에게 매년 시행하고 있지만, 인종차별 관련 사건 사고는 교내 및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종 다양성 및 다문화 교육은 유치원(만 3세~5세) 때부터 이뤄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취학 어린이들은 비교적 인종 차별이 덜한데, 초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아이들 사이에서 인종 차별은 심해지는 편이다. 유치원 때부터 다양성에 대한 교육을 해야 어린 시절에 형성되기 쉬운 각종 편견 및 고정관념을 더욱 손쉽게 줄일 수 있다. 아이들은 세상에 다양한 나라와 인종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지 못해서 비롯된 언행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아이들을 무작정 나무라기보다는 이에 대해 잘 알려줘야 한다.
2021년 7월 1일(현지 시각),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한복을 입고, 프랑스 유치원에 다니는 만 4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국을 소개(Présentation de la République de Corée)'하는 수업을 약 1시간 정도 진행했다.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한국이란 나라는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한국 음식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한글이란 글자는 어떻게 생겼는지 등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해 만 4세 아이들 수준에 맞춰서 수업을 했다.
한복을 입고 교실에 들어서니 여자 아이들은 내가 입고 있는 한복이 마치 겨울 왕국에 나오는 공주 드레스 같다며 이리저리 살펴보고 만져보며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옆 반 선생님들도 한복을 보겠다며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한복은 언제, 어떻게 입는 옷인지 선생님들께 설명해줬다. 한복은 한국 전통 의상으로 명절 또는 결혼식 등 특별한 날에 입으며, 특히 한국에서는 아이가 만 1살이 되면 돌잔치라는 것을 하는데 이때 아이도 한복을 입는다고 얘기해줬다. 돌잔치 때 한복 입고 찍은 우진이 어릴 적 사진을 보여주니 모두들 우진이가 맞냐며 통통한 볼이 귀엽다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에게 한국에 가본 적이 있는지 물었더니 선생님 2명을 포함해서 아무도 가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어린아이들이라 금세 지루해할까 봐 퀴즈 형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집에서 우진이와 함께 그린 그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한국에 가려면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좋은지, 가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등 퀴즈를 냈다. 아이들은 서로 맞추겠다며 손을 여기저기서 들었다.
◆프랑스에서 한국까지 가기 위해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가장 좋은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그림으로 된 퀴즈를 내고 있다. ©모니카 박
◆한국에서는 아이가 태어난 지 1년이 되면 한복을 입고 돌잔치를 한다고 설명하며, 이때 입는 한복에 대해 보여줬다. ©모니카 박
◆친구들에게 한국어 책을 보여주는 우진이 ©모니카 박
전 세계에 다양한 음식과 식문화가 존재하듯 한국도 전통 식사 문화가 있는데, 한국인은 예로부터 김치를 먹는다고 설명했다. 김치는 매운 음식인데, 한국 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잘 먹는 편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김치를 본 적이 있다고 했고, 파리에 김치 파는 곳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파리 곳곳에 있는 한인 마트를 알려줬다.
마지막으로 한국어를 소개했다. 프랑스인은 프랑스어를, 미국인은 영어를 사용하듯이 나라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데 한국은 '한글'을 사용한다고 알려줬다. 한국어로 된 동화책을 여러 권 나눠주며 직접 보여주니 글자가 신기하게 생겼다며 아이들은 저마다 눈을 반짝거리면서 한글을 유심히 살펴봤다. 선생님도 언어에 관심이 많은지 한국어와 중국어 및 일본어의 차이점에 대해 궁금해했고, 수업 시간 내내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한글에 큰 관심을 보였다.
수업이 끝나고 초코파이를 다 같이 나눠 먹으며 어떤 맛이냐고 아이들에게 물으니 "초콜릿 맛 마시멜로 같아요! 맛있어요!"라고 환호했다. 간식을 다 먹은 후, 한국 동요를 들으면서 흥겨운 시간을 잠시 가진 뒤 '한국 수업'을 마무리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한국이란 나라를 한국인 엄마가 직접 소개해줘서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며 감사를 표했다.
그날 저녁, 학부모 그룹 단체 채팅방에 여러 개의 글이 올라왔다.
"료하가 오늘 유치원에서 한국에 대해 배웠는데, 매우 재미있었다며 내게 얘기해줬어요. 한국 초콜릿 과자도 맛있었대요. 아이에게 한국이란 다른 나라에 대해 알려줘서 고마워요."
"사샤가 오늘 유치원에서 한국어 책을 봤는데 글자가 신기하게 생겼대요. 한국어가 아름답게 들렸대요. 아이가 우리 가족에게 한국에 관해 설명해줬어요. 기회가 되면 한국에 꼭 가보고 싶어요."
"유럽 다른 나라는 아이들에게 종종 설명해줬는데, 아시아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잘 몰랐어요. 첫째 아이는 다른 유럽 국가로 가족 여행을 같이 다니면서 전 세계에는 다양한 나라가 있고, 다른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는데, 둘째는 팬데믹으로 인해 아직 다른 나라를 경험해보지 못하고 프랑스에 줄곧 있었어요. 오늘 아이가 마치 한국을 여행한 것 같아요. 팬데믹이 끝나고 기회가 되면 한국이란 나라도 한번 가보고 싶어요. 고마워요."
나는 포르투갈, 모로코, 아르헨티나, 미국, 독일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학부모들에게 "수업 시간 내내 아이들의 눈이 매우 반짝거렸어요. 모든 아이들이 제각각 총명하고 아름다웠어요. 아이들이 세상에는 나와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며, 내가 쓰는 언어와 다른 언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놀라워하고 신기해하며 기뻐했어요. 한국을 알릴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2020년 12월 7일 유네스코에서는 그해 5월에 출범한 한국 주도의 '연대와 포용을 위한 세계 시민교육 우호 그룹'이 제출한 '인종차별 반대' 결정문이 만장일치로 채택된 바 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 및 혐오, 차별은 반인권적 행위이며 이에 맞서 세계 시민교육은 더욱 중요해졌다.
학교 및 가정에서 조금만 관심을 갖고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에게 인종 및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알려준다면 청소년기 또는 성인이 되어서 발생하는 타 인종에 대한 혐오와 차별 문제를 다소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세계 시민교육의 첫걸음이 아닐까 다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