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세 아이의 좋은 대표 헌장을 읽으며
유치원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도 수요일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대신 시청에서 운영하는 레져 센터(Accueil/Centre de loisirs)를 같은 학교 건물에서 운영한다. 나는 편의상 이곳을 수요 학교라고 부른다. 수요일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6시 반까지 운영한다. 등교는 9시 15분까지이며, 아이 픽업은 오후 5시부터 6시 반 사이 아무때나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직장에 다니는 프랑스 엄마들은 대부분 이곳 수요 학교에 자녀를 보낸다. 또는 보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각종 스포츠 또는 아뜰리에에 데리고 다닌다. 그래서 수요일만 되면 미술관 등 각종 뮤지엄에서 키즈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한다.
초등학교 수요 학교는 유치원 수요 학교 바로 맞은편 건물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담당 선생님도 유치원 때와는 달랐다. 수요 학교는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이 함께 생활하며 대략 50명 정도 된다. 유치원 때와 마찬가지로 각종 스포츠 활동 및 예술 활동이다. 그림 그리기, 만들기 등... 대신 유치원 때보다는 수준이 조금 높은 예체능 활동을 한다. 유치원 때는 단순한 단체 게임을 했다면, 초등학교에서는 탁구, 줄넘기, 농구 등을 한다고나 할까.
9월 21일에 수요 학교 대표를 선출한다고 프로그램에 적혀 있었다. 한마디로 반장, 부반장 선거 같은 것이었다. 2주 전, 수요 학교 대표에 대한 오리엔테션을 하며, 21일에 선출한다고 나와있었다. 나는 당연히 초등학교 2학년 형들 중에서 대표가 뽑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외국인이라서 언어적으로도 프랑스 현지 아이들보다는 조금 약할 수도 있으니 대표 선출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조차 없었다.
이날,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 나는 아이를 찾기 전에 늘 교문 사이 틈으로 운동장에서 뛰놀고 있는 아이를 늘 5분 정도 관찰한다. 5분 이상 볼 때도 있다.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아들도 매우 신나게 운동장을 뛰어놀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엔도르핀이 도는 것 같다.
아이는 나를 보자 반갑게 내게 뛰어왔다. 옷과 가방을 챙겨서 집으로 가려고 뒤돌아서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어머니, 잠깐만요. 이것 가지고 가세요."라며 노란색 종이쪽지 같은 것을 내게 줬다.
이것이 뭔지 물어보니, 오늘 대표 선출을 했는데, 아이가 대표가 됐다는 것이다. 나는 잠시 의아했다. '잉? 우리 아이가?' “우리 아이가 대표가 됐다구요?"
아이들 투표에 의해 선출됐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 중에서 4명, 2학년 아이들 중에서 4명 이렇게 8명이 대표로 선출됐다. 아이를 찾으러 온 학부모들은 여전히 어벙 벙한 표정의 나를 보며,
"축하해요! 아이가 대표가 된 거예요. 마치 정치 같은 거죠. 대통령 선거처럼요."
몇몇이 내게 축하한다고 말해주자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 나는 아이가 대표 선거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예 생각조차 안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아이가 수요 학교에서 인기투표로 뽑힌 것이니,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은 알았다.
노란 쪽지를 찬찬히 살펴본다.
좋은 대표 헌장이라는 빨간 글씨 아래에는 대표의 권리, 대표가 해야 하는 일, 대표가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한 문장 한 문장 큰 소리로 읽어줬다. 아이는 내가 말하는 문장을 귀담아 들었다. 아이도 대표로 선출돼서 기분이 무척 좋은 듯했다. 대표는 한마디로 아이들을 대표하는 셰프라고 말해주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아이는 의기양양해졌고, 감투가 싫지 않는 모양이었다. 평소 부끄러움이 있어서 이런 것은 하기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대표가 되는 것을 좋아했다.
대표 헌장을 쭉 다 읽고 나서, 이것은 마치 어른 정치인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 6세 어린이들도 대표를 역임할 때 이러한 조항을 숙지하고 실천하려고 하는데, 과연 어른들의 정치 세계, 한 국가의 대표, 국민을 대표해서 일하는 정치인들은 과연 이 헌장의 말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의 권리로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귀담아듣고, 친구들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하고, 안건을 제시하는 등이다.
대표의 의무로는 모든 아이들(굵은 글씨로 강조했다) 을 대표 및 대변하며, 싸움을 중재하며, 모든 일을 돕고, 모든 미팅 및 모임을 도우며, 모든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귀담아 들어줘야 하며, 친구들에게 정보를 잘 알려줘야 하며, 프로젝트에 대해 잘 생각해보고 수요 학교 활동을 도와야 하며, 비밀을 잘 지켜야하며, 다른 모든 아이들처럼 내부 규칙 및 규정을 잘 지켜야 한다고 나와 있다.
대표가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는 난폭하면 안 되고, 좋은 어휘를 사용해야 하며, 말을 왜곡해서는 안되며, 비밀 또는 기밀을 발설하면 안 되고, 다른 아이들에게 대표의 자격을 함부로 남용해서는 안되며, 편애주의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하나 모두 다 전 세계 정치인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무릇 만 6세 아이들도 이 헌장대로 지키려고 하는데 어른들이 제대로 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오늘 한국 뉴스에 대통령의 언어에 대한 뉴스를 봤다. 대통령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그런 비속어를 미국 순방 중에 사용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이 헌장에 나와 있는 좋은 어휘를 사용해야 하며...라는 문장에 눈이 갔다.
편애주의(Favoritisme), 내 시선이 한참 머무른 단어다. 자기랑 친하다고 해서 특혜를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판에 뇌물 수수가 많다.
나는 아이와 마주 앉아서 역할극을 펼쳤다.
포켓몬 카드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표님~ 내가 포켓몬 카드 2장 줄게. 너 포켓몬 카드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저번에 잘못한 거 선생님한테 말하지 말아 줘. 알겠지?"
아이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안돼~ 받을 수 없어. 노노노~ 도로 가져가."
이번에는 가짜 돈을 내밀면서,
"대표님~ 여기 네가 좋아하는 돈이야. 돈 줬으니까 단체 게임할 때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게 해 줘. 알겠지?"
아이는 이번에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면서,
"노노노~ 돈 도로 가져가. 안돼."
아이는 대표가 되었다는 것이 연신 기분이 좋은지 자꾸 노란 쪽지를 들여다본다. 대표가 되었으니, 좋은 말을 쓰고, 아이들을 더 잘 챙겨주고, 더 많이 어른스러워져야겠다는 표정이다. 대표로서 책임감을 느끼는지 늠름한 행동을 보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생각지도 못한 대표 선출로 인해 아이는 한 층 더 어른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