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에 지어진 고대 로마 수로교
리옹에서 아를로 가는 길에 퐁 뒤 가르(Pont du Gard)라는 곳에 들렀다. 이곳을 방문하려는 이유는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다리이기 때문에 직접 보고 싶었다. Pont du Gard는 로마 식민지인 Nemausus(Nîmes)까지 물을 50km 나르기 위해 서기 1세기에 지어진 고대 로마 수로교이다. 이는 프랑스 남부 Vers-Pont-du-Gard 마을 근처 River Gardon을 지난다. Pont du Gard는 로마의 모든 수로 중 가장 높고, 가장 잘 보존된 수로 중 하나이다. 탁월한 보존, 역사적 중요성 및 건축학적 독창성으로 인해 198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목록에 추가되었다.
오후 5시 즈음, 퐁 뒤 가르에 도착했고, 주차비 9유로를 내고 입장했다. 영화관, 전시실 등 부대시설이 매우 잘 구비되어 있었다. 10분 정도 걸어 들어가니 드디어 퐁 뒤 가르가 보였다. 어떻게 1세기에 이런 다리를 만들었을 수 있지? 기네스에 오를 정도가 아닌가 싶다. 21세기에 이른 지금까지도 거센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고 잘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기 힘들다. 요즘에 짓는 현대식 건물도 종종 붕괴하고 갑자기 다리가 무너지기도 하는데 어떻게 1세기에 대단한 과학 기술이 없던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손수 지은 거대한 다리가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놀랍기만 하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성과 시간의 문제인 것일까?
다리를 조심히 걸어서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 물가로 가니 물고기가 너무 많았다. 아이는 신이 나서 준비해 온 그릇으로 물고리를 잡았다. 물이 너무 맑아서 물고기가 훤히 다 보였다. 40분 정도 물가에서 물고기 잡기를 했다. 몇몇 아이들은 수영복을 입고 물가에서 놀고 있었다. 이게 바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완전한 자연 속에 들어온 우리 가족은 물에 발을 담그고 그렇게 서로 말없이 한참을 있었다. 도시 삶을 벗어나 대자연의 품에 그대로 안겼다. 이러한 위대한 건축물과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작게 느껴지기도 했다.
발을 말리고 우리는 어서 아를로 향했다. 사실 더 있고 싶었지만, 갈 길이 바빠서 그만 일어났다. 다시 한번 퐁 뒤 가르를 보고, 반대편 다리 위로 올라가서 다리를 실제 만져보고, 고대 수로교의 기운을, 정기를 온몸으로 받고 내려왔다. 신랑은 이번 여행 중에서 퐁 뒤 가르가 가장 좋았다고 했다. 사실 신랑이 이곳에 꼭 와보고 싶다고 해서 왔는데, 그는 수로교의 장엄함에 압도되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돌에서 나오는 어떤 기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는 퐁 뒤 가르가 제일 좋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물고기를 직접 잡을 수 있어서였다.
반고흐의 도시, 아를에 도착하다
드디어 아를에 도착했다. 아를에서 이틀 묵기로 했다. 저녁 8시쯤 도착했는데 이 도시가 거의 중세 시대 같다고 익히 들었지만 와서 직접 보니 정말로 골목골목이 좁았다. 차가 골목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호텔에서도 차를 호텔에서 멀리 떨어진 주차장에 하고 오라고 할 정도였다. 호텔 내 자체 주차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는 다음 날 알게 되었는데, 큰 차가 아를 중심으로 들어가니 주변 관광객 및 현지인들이 눈살을 마구 찌푸렸다. 심지어 어떤 할아버지는 욕을 했다. 다들 이런 아름다운 관광 도시에 차를 끌고 들어오다니 하는 표정이었다. 일단 큰 차는 아를 중심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골목골목을 걷는 여행객이 많으며, 그 좁은 골목 길가에도 테이블이 놓여 있고, 테이블 위에 물건을 내놓고 팔고 있다.
이번 아를 여행에서 호텔 위치 하나만큼은 최고였다. 호텔을 나오면 바로 그 유명한 반고흐가 그린 <아를의 포럼 광장에 있는 밤의 카페테라스>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 호텔과 카페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이렇게 멋진 순간이 또 있나. 노란 카페는 더 노란 불빛을 환하게 밝히며 사람들의 시선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었다. 카페테라스 천장에는 빨강 주황 노랑 파랑 형용색색의 꽃들로 가득하다. 밤 10시가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이 카페가 뿜어내는 강렬한 노란빛으로 인해 광장 전체가 낮처럼 밝았다. 이리 찍고 저리 찍고 여기서 찍고 저기서 찍고 구도를 다양하게 해서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이런 것이 익숙한 듯 카페 주인, 카페 웨이터, 카페 손님들, 카페 주변 상인들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그저 자신의 일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호텔 근처니 이 카페는 수없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를에서 맛보는 스페인 요리
배가 너무 고픈 우리는 근처 식당을 찾았다. 이곳 아를은 스페인과 가까워서 스페인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많이 거주한다. 아를 원형 경기장에서 투우 경기도 열리고, 스페인 식당도 많다. 빠에야를 먹고 싶어서 이리저리 찾아다니다가 엘 파소라는 스페인 식당에 다다랐다. 인심 좋아 보이는 식당 여주인은 오징어 요리, 소고기 요리를 추천하며 우리 식당이 스페셜티라고 말했다. 나는 추천 요리 두 개를 주문했고, 추가로 아이 사과 주스와 샹그리아를 시켰다.
요리가 나오는 동안 식당 내부를 둘러봤다. 투우 경기한 사진이 벽을 가득 메웠다. 황소 조형물도 벽에 2개 붙어 있었다. 여주인은 내게 이 사진에 대해 설명해 줬다. 자기 가족들인데 6대째 내려오고 있단다. 스페인 출신이며, 온 가족이 식당과 투우 등을 한다고 했다. 노란색으로 염색한 긴 머리에, 태양에 그을린듯한 피부, 화려한 패턴의 스타킹, 원피스, 그리고 진주 귀걸이. 특이하고 개성 넘치는 패션이다. 그녀는 아를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코르시카에서도 살았다고 했다. 코르시카에 있는 자기 집을 보여줬다. 스페인 피가 가득한, 바다와 태양을 벗 삼아 자란 낙천적이고 여유가 있는 그런 기운을 내뿜는 중년 여성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아를에서 태어나고, 코르시카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자라고, 또 아를에 와서 살며 인생을 마감하는 그런 여인의 삶은 과연 어떨까? 아를, 그야말로 작고 조용하며 예술적이며 삶의 리듬이 느린 그런 도시다. 나폴레옹의 고향 코르시카는 가보지 않았지만 그곳은 휴양지 섬이다. 마치 하와이 같은. 평생을 이런 시골에서 삶을 보낸 사람은 어떤 생각과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그녀는 아를이 너무 좋다고 했다.
요리가 나왔고, 배가 고픈 탓인지 요리가 맛있었다. 사이드로 흰쌀밥과 가지 요리가 나왔다.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주방장은 우리를 보았고, 눈이 마주친 나는 엄지 척을 했다. 스페인 음식은 한국 음식과 비슷한 점이 있어서 입에 맞다. 오징어도 오랜만에 먹어서 매우 만족했다. 골목길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에서 먹었는데 분위기와 운치 하나는 끝내줬다. 테이블 하나 놓으니 골목은 꽉 찼다. 그만큼 골목길이 좁다. 여주인은 다음날 토요일 아침에 이곳에서 매우 큰 장이 열리니 꼭 가보라고 했다. 거기 자기 아들이 파에야를 파니 가보란다. 나는 그렇겠다고 했다.
호텔방은 꽤나 넓었다. 아날로그 감성이 강했다. 마치 동남아 현지 호텔 같은 느낌이었다. 가구도 모두 앤틱이다. 피자 한 판을 테이크 아웃해서 호텔 방에서 먹고 잠을 잤다. 토요일마다 장이 크게 선다는데 아침 일찍 장터로 갔다. 내 평생 이렇게 큰 규모의 장터는 처음 봤다. 파리에도 장터가 꽤 곳곳에서 열리는데 그 크고 유명하다는 바스티유 장터보다 더 컸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가도 가도 계속 나왔다. 물건 파는 사람들에게 이곳 사람이냐 물으니, 다들 님에서 왔다, 마르세유에서 왔다 등 이곳이 아닌 차로 1~3시간 걸리는 도시에서 아침 일찍 이곳 아를까지 왔다. 왜 아를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이는 것일까? 아무튼 아를 여행자인 우리로서는 행운이었다.
토요일마다 서는 아를 장터
우선 아이 생일이 곧 다가오니 생일에 온 아이들에게 줄 답례품을 샀다. 남녀 큰 호불호가 없는 피카추 아이템으로 했다. 옷도 예쁜 게 많았는데 시간이 없다 보니 옷은 그냥 패스했다.(현재 집에 안 입는 옷도 너무 많기 때문에 또 옷을 사기가 그랬다) 아를 지역 특산 소금도 사고, 라벤더도 샀다. 지인 선물 등 여러 개를 샀다. 향수가 필요했기에 향수도 샀다. 또한, 디자인이 예쁜 샌들이 있어서 샀는데, 아이가 아빠에게 돈을 받아오더니, "엄마, 이거 내가 사줄게."라며 샌들을 가져다 아저씨께 직접 돈을 지불했다. 곧 내 생일이기 때문에 여행 오기 전부터 아이는 엄마 생일 선물 사줄 거라고 했는데 아를 장터에서 만난 예쁜 연분홍 샌들이 아들의 원픽이 되었다. 나는 아이에게 "고마워. 잘 신을게." 하며 그 자리에서 바로 신었다. 매우 편했다. 분홍빛 흐드러진 동백꽃이 볼 넓은 내 발을 감싼 덕분에 한층 발이 예뻐 보였다. 아이는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제 엘 파소 여주인과의 약속대로 로열 파에야라는 이름을 가진 곳을 찾았고 파에야를 사서 먹었다. 생각보다 맛이 좋지는 않았다. 각종 과일이 신선하고 가격도 파리보다 저렴했다. 장터에 올라온 샌들, 향수, 장난감, 액세서리, 옷 모두 다 파리보다 반값이었다. 아니, 1/3 가격인 것도 많았다. 이 제품이 파리로 올라오면 2배 3배로 받을 것이다.
아를에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인심
오후 1시에 장터가 접기 때문에 마지막 액세서리 고르는데 온 집중을 다했다. 결정을 빨리 못하는 성격상 반지 하나 고르는데도 이리저리 고심을 했다. 그다음 행선지인 루마 아를에 가는 길에 아보카도 3개에 1유로라고 적힌 것을 보고 얼른 뛰어가서 주인에게 지금 사도 되냐고 물었다. 주인아줌마는 “지금 철수하는 중인데 얼른 사요”라고 했고 나는 아보카도 3개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1유로를 내밀었다. 아줌마는 내게 웃으며 그냥 가져요라고 했다. 잉? 그래도... 라며 내밀었더니 손을 훠이 저으며 그냥 가라고 했다. 아니, 이런 인심이 다 있나. 프랑스 6년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정이었다. 물론 1유로가 큰돈은 아니다. 하지만 이 분들도 장터에서 과일 팔아가며 생계를 유지하는데 단 1유로라도 더 벌어야 할 텐데, 그냥 가져가라니... 있는 사람들이 더하고, 없는 사람들이 인정이 있다는 말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안 받겠다는데 굳이 자꾸 주려는 것도 아닌 것 같아 돌아섰지만 그 여운은 꽤나 오래갔다. 파리에서는 사기 쳐서라도 1유로 더 받으려고 할 텐데 아를은 달랐다. 이것이 껑빠뉴(Campagne, 시골) 인심인가? 리옹에 이어 다시 한번 지방 소도시로 갈수록 사람들이 더욱 친절하고 마음에 여유가 있음을 느낀다. 아를 사람들이 파리에 가서 살면 어떻게 될까?
프랭크 게리, 루마 아를
아를에서 반고흐 다음으로 기대하고 고대했던 루마 아를에 다다랐다. 루마 아를은 루이뷔통 재단을 건축한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건축물이다. 2021년에 지어졌다. 아를을 둘러보며 이 고장의 느낌을 살려지었다는데 건물이 매우 특이하다. 건물이 마치 살아 움직이며 춤추는 것 같다. 프랭크 게리 스타일대로 바닥에 물이 있다. 건축에 물을 함께 연결한다. 천장이 매우 높다. 원을 그리며 올라가는 계단은 맨 위에 움직이는 거울이 있다. 자칫 어지러울 수 있으니 계단을 걸을 때는 천장 거울을 보지 말자. 3층 높이에서 홀까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도록 했다. 독창적인 발상이다. 두 개가 매듭처럼 꼬여 있다. 겁이 났지만 체험해 보기로 했다. 천을 깔고 그 위에 썰매처럼 내려오는데, 생각보다 빠르고, 회전이 많아서 어지러웠다. 아이는 타보고 싶은 마음 반 무서운 마음 반으로 결국 안 타기로 했다.
지하에는 현대 설치 미술이 전시 중이었다. 피아노가 저절로 건반이 움직이고, 음악 소리가 나오며, 큰 화면에는 영상물이 나왔다. 의자에 앉았는데, 갑자기 의자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감 체험이다. 그렇더니 갑자기 어떤 여성분이 의자 가운데 앉더니 고양이 소리를 흉내 냈다. 비트 박스 같은 소리도 냈다. 행위 예술인가. 완전히 독특한 형식의 행위 예술이다. 아이는 신기해하며 재밌어했다. 꼭대기에 올라가니 아를 시내 전경이 다 보였다. 루마 아를은 인터넷 예약하면 무료다. 아를 시내 전경을 보기 좋으니 꼭 예약을 하고 들러보자.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매우 깨끗하고 쾌적하다.
에스파스 반 고흐, 반 고흐의 영혼을 따라서
그다음은 에스파스 반 고흐로 갔다. 이곳은 병원으로 예전에 사용되었는데, 이곳 풍경을 실제 그린 그림이 있다. 아를에는 반고흐의 작품은 없다고 알려졌다. 반고흐가 1년 조금 넘게 이곳에 머물면서 약 300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대부분 암스테르담 반고흐 미술관을 비롯해서 오르세 미술관, 미국에 있는 미술관 등 다른 도시에 있다. 반고흐가 파리에서 아를로 내려오면서 그의 작품 세계도 다소 밝아졌다고 한다. 밤의 카페는 주로 노란색이 많고, 해바라기도 그렇하며,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 등 색채는 다소 밝다. 에스파스 반 고흐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마침 방학 기간에 Festival de Dessin이 열리고 있었는데, 아를 도시 곳곳에서 전시를 하고 있었다. 에스파스 반 고흐에는 상페를 오마쥬 하는 니꼴라 아뜰리에가 열리고 있었다.
그다음 반 고흐 재단으로 갔는데 도착하니 오후 5시 반이었고, 곧 문을 닫기 때문에 아쉽지만 들어가서 보지는 못했다. 이곳에는 반고흐 작품은 없고, 현대 작품들이 많다고 들었다. 근처에 이우환 미술관도 있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조금 더 걸으니 커다란 론 강이 나왔다. 다리도 아프고 해서 강변에 앉아서 10분 정도 혼자 있다 왔다.
그 유명한 노란 카페를 가다
호텔로 돌아오니 두 사람은 쉬고 있었다. 한 명은 유튜브, 한 명은 게임. 아이는 호텔에만 들어오면 게임하기 바빴다. 게임이 그렇게나 재밌을까. 게임을 하기 위해 호텔에만 계속 있으려고 했다. 저녁 8시가 넘어서 우리는 슬슬 옷을 입고 호텔을 나왔다. 저녁은 반고흐 카페에서 먹기로 했다. 카페의 정확한 명칭은 밤의 카페(Cafe de la Nuit)이다. 여전히 사람들로 가득하다. 오징어 요리, 아를식 치킨 요리, 맥주 2병 이렇게 시켰다. 어제 먹은 화덕 수제 피자를 2판 시켜 호텔에서 먹을 생각이었다. 카페 식사 후기가 워낙 좋지 않아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시켰는데,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웨이터는 매우 정신없어 보였다. 늘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실내를 구석구석 둘러봤다. 벽에는 반고흐 그림이 붙어있고, 2층에도 그림이 있었다. 낡은 가구, 마룻바닥 모두 옛날 그대로 간직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은 오히려 100년 전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야 더 인기가 있으니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재현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카페를 나오면서 직원에서 가족사진을 한 장 부탁했다. 사진을 찍고 나서 그에게 물었다. "여기는 사람들이 늘 많은 것 같네요." 그는 답했다. "365일, 전 세계에서 오는 사람들로 항상 많죠. 밤에 사람들이 더 많아요. 그래서 밤늦게까지 할 수밖에 없죠." 옆에 있는 레스토랑 화덕 수제 피자 2판을 사서 호텔 방에서 먹었다. 카페 노란 불빛과 달빛 아래, 밤의 카페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아를에서의 마지막 밤을 노란 밤의 카페와 함께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