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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Oct 31. 2020

4시 반이 되면 마법이 풀린다네

마법 같은 소중한 나의 시간...

아침 7시에 아이를 깨워서 8시에 집 앞에 오는 검은색 밴에 태워 파리 15구에 위치한 국제학교에 보낸다. 바쁘고 긴장되는 아침 1시간을 보내고 나면 파리의 오전 8시는 마법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아이를 돌보면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3년이라는 육아의 시간이 끝났고, 이제 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어 이 시간은 마치 마법에 걸린 듯했다. 신데렐라가 밤 12시가 되면 마법이 풀리면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듯 나 또한 오전 8시부터 아이가 돌아오는 오후 4시 반까지는 마치 신데렐라가 된 듯했다. 원래의 내 삶이 아닌 것 같은 이 귀하디 귀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유용하고 효율적으로 잘 보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우선 타이즈를 입고, 신발끈을 질끈 묶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파리는 곳곳에 공원이 많고, 길거리마다 나무가 많다. 특히, 내가 사는 16구 바로 옆에는 파리의 허파라고 불리는 볼로뉴 숲(Bois de Boulogne)이 있다. 845 헥타르에 해당하는 이 커다란 숲은 뉴욕 센트럴 파크의 2.5배의 크기이다. 엄청나게 큰 숲은 마치 아마존을 연상케 하는 우림과 같다. 잔잔한 호수도 많은데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Lac Supérieur호수에는 백조 부부가 산다. 오리도 많이 살고, 6마리의 해달 가족도 산다. 우리 집에서 이 곳 호수까지는 걸어서 약 15분 정도. 나는 이 곳까지 매일 아침 우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난 뒤 바로 뛰어갔다. 호숫가에 도착해서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면 기분도 상쾌하고, 마음도 평온해졌다. 프랑스인들은 운동을 헬스장 같은 실내에서 하기보다는 숲 또는 공원에서 조깅을 한다. 곳곳에 자연이 많고, 뛸 공간이 충분하며, 무엇보다도 미세먼지 걱정 없이 공기가 좋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무조건 헬스장에 회원 등록을 해서 뛰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는데, 파리에 와서는 나도 마치 파리지앵이 된 듯 파리지앵처럼 호숫가 주변을 뛰었다. 호숫가에서 에펠탑이 저 멀리 보이는데 에펠탑을 바라보면서 아침 조깅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새삼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파리시는 시민들로 하여금 어디에서든지 에펠탑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책을 바탕으로 거주용 및 상업용 건물 높이를 차등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래서 파리는 뉴욕, 상해, 홍콩 등과 같이 세계적인 대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스카이라인이 없다.  나는 1시간 정도 뛰다 걷다를 반복하다가 잔잔한 아침의 호숫가를 바라보면서 오늘 하루도 잘 살 수 있도록, 우진이가 학교에서 무탈하게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짧게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러한 시간이 내게 주어짐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했다. 

매일 아침과 오후, 아이를 스쿨 밴에 태워 보내고 픽업하는 나의 일상. 마법이 시작되는 아침과 마법이 풀리는 오후...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한 뒤, 유튜브에서 육아 관련 동영상 강의를 틀어 놓고, 집안 청소 및 정리를 하였다. 그렇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점심시간이 왔다. 점심을 혼자 먹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아까웠다. 황홀한 나의 점심시간이 끝나면 불어 공부를 했다. 불어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새 오후 3시, 4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3시만 되어도 마음은 조급해졌다. 곧 마법에 풀려서 집에 빨리 가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나도 곧 4시 반이 올까 봐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뭐라도 읽거나 공부해야 하는 압박감을 느꼈다. 지인들과 채팅을 하면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에 빠져들어 보고 있으면 1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오후 4시 20분, “띵동!” 차량 기사님으로부터 온 문자에는 ‘10분 후, 집 앞에 도착합니다.’ 

띵동이란 소리는 마치 ‘이제 마법이 풀립니다.’라고 내게 알리는 것 같았다. 집 앞에 도착한 아이를 보는 순간 오늘도 안전하게 유치원에서 보내고 돌아와서 감사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이제 내 자유 시간은 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시간 이후부터는 아이와 목욕하고, 밥 먹고, 놀아주는 시간들로 채워진다. 비록 내 시간은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리고 육체적이 소모가 크고 에너지가 드는 일이지만, 이렇게 아이와 눈을 맞추고 함께하고 소통하는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내가 일을 하는 직장 여성이라면 아마 아이는 이곳 프랑스 엄마들이 하는 것처럼 베이비시터가 지금 돌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직장에서 돌아오는 6시, 7시에는 이미 온몸이 녹초가 되어 아이와 눈을 맞출, 아이와 대화할 에너지도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내가 현재 아무런 사회 활동을 하지 않고 있고, 결혼 전의 내 모습처럼 커리어를 위해 한 단계 두 단계 올라가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시간,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이 내게는 더 소중하고 중요하기에 이 또한 감사하게 생각하며 오늘도 아이와 함께 잠이 든다. 

학교에서 신나게 보냈는지, 차안에서 잠들어 있는 우진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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