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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Oct 31. 2020

제발 항생제를 달란 말이에요!

좌충우돌 파리 육아 월드 

해외에서 아이를 키울 때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는 바로 병원일 것이다. 내 나라 한국에서도 아이가 아프면 부모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데 말도 안 통하는 남의 나라에서는 오죽하겠는가. 나는 파리에 오자마자 한 첫 번째 일이 바로 소아과 찾는 일이었다. 아이가 갑자기 아픈데 응급실은 어떻게 가야 하는 것이며, 근처 소아과는 어디에 있으며, 위급상황에서 경찰을 불러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며… 안전과 생명에 관한 것부터 챙겨야 했다. 만약 아이가 없었더라면 굳이 이렇게 긴장하며 온갖 정보를 수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파리에 처음 도착했을 때 겪은 일 때문에 나는 더욱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때는 2017년 7월 한 여름. 파리에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채 집을 구하는 한 달 동안 호텔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돌이 갓 지난 아기와 둘이서 하루 종일 좁은 호텔방에 있으려니 너무 답답하여 근처 공원에 나갔다. 땡볕이라 너무 뜨거웠지만 잠깐이라도 이렇게 나와야 아기도 나도 살 것 같았다. 우진이는 혼자 모래를 만지작 거리며 잘 놀길래 혼자 가만히 놔두었다. 주변에 위험 요소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잠깐 벤치에 앉아볼까 하는 그 짧은 사이에 뒤에서 우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놀래서 달려가 보니 아기 손바닥 만한 말벌에게 양손이 쏘여서 퉁퉁 부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나는 내 머릿속에서 0.1초 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이시여, 어찌 저를 이렇게 버리나이까… 죽더라도 고국에서 죽어야지 먼 이국 땅에 오자마자 무슨 이런 죽음이랍니까…’ 정말로 나는 이 어린 아기가 커다란 말벌의 엄청난 독이 이 작은 아기의 온몸에 순식간에 퍼져서 죽는 줄 알았다. 나는 순간 한국에 계신 가족들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얼른 아기를 업고 파리 오기 전에 연락을 주고받던 한 여성분의 연락처를 찾았다. 그리고 냅다 전화를 했다. 일면식도 없는 그 여성분은 나에게 한걸음에 달려와 주었고 넥케흐(Necker)라는 아동 전문 병원에 같이 갔다. 온라인에서 알게 된 그분은 이곳 파리에서 아이를 키우며 거주하시는 교민이셨다. 다행히 병원에서는 자연히 곧 해독될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다행히 무시무시하게 생긴 말벌은 독성을 가진 벌은 아니었다고 한다. 나는 그날 하루가 일 년같이 느껴졌다. 그 여성분께는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고, 그 후 소정의 선물을 드렸지만 그걸로는 감사함을 다 전할 수 없었다. 그분은 그때  마침 다행히 시간이 가능했기 때문에 올 수 있었다면 매우 겸손하게 말씀하셨다. 15구에 위치한 넥케흐라는 병원은 아동 청소년 전문 병원으로 응급실도 함께 갖춰진 파리에서 가장 규모 있는 병원이었다. 나는 앞으로 응급 상황이 생길 경우 이 병원에 가면 되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집을 구하고 안정이 된 후 그날의 후유증으로 병원부터 알아봐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병원에 가려면 무조건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 Mondoctor 또는 Doctorlib이라는 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면 된다. 그래서 한국에서부터 익히 자주 들었던 단어인 '랑데부'가 프랑스 말이었던 것이다. 프랑스 발음으로 하면 '헝데부(Rendez-vous)는 예약하다'는 말로써 프랑스에서는 이 단어가 매주 자주 쓰이고 그만큼 자주 귀에 들린다. 처음 갔었던 소아과는 집 근처 Avenue Mozart에 위치한 커다란 빨간 대문이 인상적인 인자한 할머니 의사 선생님이 계신 소아과였다. 한국, 홍콩, 프랑스 3개의 아기 수첩을 들고 찾아갔다. 프랑스 시청에서 발급받은 아기 수첩에다 한국, 홍콩에서 예방 접종한 내역을 하나로 모아주셨다. 그리고 아이 건강을 체크하였다. 하지만 이 곳은 엄연히 말하면 소아과가 아닌 가정의학과였다. 가정의학과도 소아과를 겸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소아과 전문의사를 만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집 근처 파씨 거리에 전문 소아과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우선 체크 표시를 해놓고 다음에 아이가 아플 때 이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추운 겨울이 다가오자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콧물도 나면서 열도 났다. 나는 얼른 그때 표시해둔 파씨에 위치한 소아과에 유모차를 끌고 찾아갔다. 이곳도 역시나 할머니 의사였다. 동양인인 나를 보더니 웃음기가 사라짐을 나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내 앞의 백인 환자에게는 환한 웃음으로 배웅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잘 되지도 않는 프랑스어로 떠듬떠듬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였다. '설명하였다'라는 표현도 필요 없다. 거의 어린아이 수준으로 '단어의 나열하듯 늘어놓았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때때로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면서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가며 아이의 병세를 고쳐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그 무서운 표정의 할머니 의사에게 증세를 전달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이라고는 “무슨 말하는 거예요?”였다. 무안함에 얼굴이 붉어지며 이걸 다시 설명하려니 너무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냥 영어로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의사는 대충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아이를 침대 위에 눕혀보란다. 아이를 험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고 실망감이 밀려왔다. 


한국과 비교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한국의 경우 소아과 의사 선생님 하면 인자하고 자상하고 병원에는 알록달록 장난감이 가득하다. 이곳 소아과는 어른들이 오는 병원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무미건조하기 그지없다. 단지 테이블 위에 너덜너덜한 어린이 책이 몇 권이 덜렁 놓여 있고, 10년도 더 되어 보이는 장난감 서너 개가 굴러다니는 것이 전부다. 할머니 의사 선생님은 이맘때쯤 많은 아이들이 겪는 일종의 감기 같은 것이라며 프랑스 국민 해열제 돌 리프란을 처방해주었다. 

'엥? 이걸로 끝?' 아이가 열도 나고 콧물도 나는데 고작 일반 해열제 하나뿐으로 끝인가 싶어서 두 눈을 의심하고 다시 한번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예스다. 나는 용기를 내어 “항생제 처방해 주세요.”라고 요청을 했다. 한국이라면 요청하기도 전에 이미 의사가 소량의 항생제를 가루 또는 액상으로 처방해주었을 것이다. 한국은 아이 병세가 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큰 편이고 이곳 프랑스는 병세가 느리게 호전되더라도 최대한 항생제를 쓰지 않고 천천히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한국은 항생제를 통해 병세가 빠르게 호전되면 아이도 편하고 부모도 편하기 때문에 이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반면 프랑스는 아이의 병세가 지속이 되더라도 우선 맡길 곳이 있다는 사회적 뒷받침이 한몫한다. 아프면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는 아기가 콧물 나고 기침해도 크레쉬에 보낼 수 있다. 아주 많이 심하면 못 보내지만 기본적으로 크레쉬는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마시오’라는 말할 권리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들은 아이가 아파도 맡길 곳이 있고 출근을 할 수 있다.

그렇게 결국 나의 소원이었던 항생제 받기는 실패로 돌아갔고 해열제 하나 달랑 쓰인 처방제 한 장을 들고 터벅터벅 소아과를 나서야만 했다. 그러면서 “푹 쉬고 잘 먹고 하면 됩니다”라는 무미건조만 말 한마디와 함께 이전 고객들한테 하던 것과는 달리 나에게는 문 앞 인사를 건너뛰고 자리에 앉아서 잘 가란 한마디만 할 뿐이었다. 뭔가 불쾌함을 가득 안고 온 프랑스 소아과 체험기였다. 돌 리프란만 먹이면서 일주일 동안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아이를 잘 먹이고 잘 재우니 아이는 서서히 좋아지는 듯했다. 어린아이와 해외 생활은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체력도 정신력도 바닥을 향해가고 있음을 느꼈다. 뭔가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도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 무탈하게 아이와 오늘 하루도 넘겼다는 것에 만족하며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아이의 특성은 자주 아프다는 것. 단체생활을 하면 더욱 아픈 일이 잦기 마련이다. 한동안 괜찮은 듯했는데 또다시 열도 나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Doctorlib에 들어가서 다른 소아과를 찾아보았다. Le Grain이라는 남자 가정의학과와 소아과를 겸하는 의사였다. 나는 이곳에 예약을 하고 들어갔다. 이곳의 의사 또한 항생제 처방은 극도록 조심하여 처방하였다. 젊은 남자 의사는 매우 친절하고 영어도 유창한 매너 있는 프랑스 소아과 의사였지만 역시나 항생제 앞에서는 여지없이 철통방어적이었다. 점차 프랑스의 자연주의 치료법에 대해 알아보게 되었고, 프랑스는 인위적인 치료보다는 자연적으로 면역력을 높이는 방식을 추구하는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미식 국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먹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고, 노동의 권리를 잘 찾으며, 여름휴가를 1달씩 해변에서 푹 쉬다 오는 가보다. 약보다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하는 프랑스인들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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