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잘 관찰하고 믿고 기다려주기
대게 이곳은 만 3살이 되면 공립 유치원에 다니게 되는데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대소변은 가릴 줄 알아야 한다. 우진이의 경우, 기저귀를 늦게 뗀 경우이다. 그 이유는 나는 아이를 억지로 뭘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냥 자연스럽게 될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아이를 키울 때 억지로 하지 말자는 육아 원칙이 있었다. 나는 내 평생의 육아 철학을 세웠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는 가장 귀한 손님이다'이다. 귀한 손님한테 억지로 권하지 않는다. 귀한 손님께는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는 내 귀한 손님이기 때문에 아이가 싫어하는데 억지로 요구하거나 강요하기 싫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방임하거나 방치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조금씩 대소변을 가릴 수 있도록 방향 제시는 하였다.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여기서 이렇게 소변을 누는 것이라고 몸소 보여주거나, 책을 보여주면서 ‘교육’을 하였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화장실에서 누고 싶게끔 보여주고, 알려주고,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아이가 스스로 화장실을 가는 그날까지 기다려주었다.
국제학교 유치원에 입학한 그 날, 아이는 교실에서 바지에다 오줌을 쌌고, 여벌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가방에는 다 젖은 팬티와 바지와 양말 등 그대로 비닐에 쌓여서 돌아왔다. 나는 그날부터 매일 가방에다 여벌의 양말, 바지, 티셔츠 등을 각각 2개씩 넣어서 보냈다. 선생님은 아직은 괜찮다며 인내심을 가지고 챙겨주셨다. 프랑스 공립학교의 경우라면 조금 더 엄하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면 학교에 오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나는 그런 경우가 아닌 것이 어디냐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2달이 넘어갔고, 우진이의 실수 횟수는 일주일에 2번에서 1번으로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가방에다 도시락 외에 여벌 옷들을 수북이 넣어야 했다. 아이 학교의 학부모 중 한 명은 내게 어느 날 조심스레 물었다. 우진이는 대소변 가리는데 문제가 없냐고... 나는 실수가 조금은 있다고 했다. 그 엄마는 자기 아이는 더 자주 실수를 하는데, 선생님이 앞으로 계속 이렇게 되면 아이가 학교에 오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만 3세부터는 공교육에 들어가며 아이 스스로 할 수 있게끔 하는 경향이 높다. 한국 같으면 아직 만 3살인 아이에게 이렇게 가혹하게 혼자 다 하도록 맡겼을까 의문이 들었다. 소변은 그렇다 쳐도 대변 가리는 것은 아직 힘든 나이인데, 대변보는 것도 아이의 자립에 맡기는 것은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큰일을 본 날은 샤워를 아주 많이 해야 했다. 아이가 학교를 다닌 1년 동안, 내가 학교에 간 것이라고는 고작 4번 정도였다. 그것도 2번은 아이가 아파서 조퇴한다고 데려간 날이었다. 내가 학교에 방문했을 때면, 이때다 싶어서 매의 눈으로 세세하게 관찰을 하였다. 아이들은 모두 혼자 화장실로 걸어갔다. 같이 따라가는 선생님은 없었다. 만 3살이면 선생님이 동행해야 한다고 생각한 내게 그 장면은 충격이었다. 이렇게 화장실로 갈 때부터 교실로 돌아올 때까지 모든 것을 아이 혼자 하다 보니 실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나는 집에서 아이에게 이렇게 바지에 오줌을 싸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교육을 하였다. 아이는 알아들었고, 집에서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에만 가면 일주일에 2번 정도는 꼭 실수를 하였다. 나는 왜 그런지 살펴보았더니 바지를 벗을 때, 혼자서 잘하지 못하여서 바지 단추 풀다가 그만 실수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당장 교복 바지를 바꿨다. 현재 교복은 단추를 풀어야 하는 방식이라서 어린아이가 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있었다. 나는 교복과 색깔이 같은 네이비 색깔의 운동복을 3벌 샀다. 고무줄로 되어 있어서 입고 벋기 편했다. 아이는 불편한 교복 대신 운동복을 입고 난 뒤부터 실수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아이를 잘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에 안된다고, 조급해하거나, 화내거나, 훈육하거나, 소리치면 안 된다. 무엇이 원인인지 살펴보고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 원인이 되는 것을 제거해주고, 아이가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면 된다. 그러면 아이도 스스로 깨우치고, 행동을 교정하는 날이 언젠가는 반드시 온다. 그 과정을 부모와 아이는 함께 하는 것이고, 그 시간 속에서 서로 간의 신뢰와 자존감이 함께 싹트는 것이다. 결과를 위해 뭐든 빨리,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그 과정을 함께 즐기면 된다.
학교를 보낸 지 1달 후, 학부모 모임이 있었다. 학부모 모임에 총 14명의 같은 반 아이의 부모들이 참가했다. 남성인 엄마도 있었다. 동성애 커플인데 여자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었다. 두 남자 커플이 학부모 모임에 참여해서 여러 학부모들과 스스럼없이 인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학교 일정 등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 설명하였다. 학교 스케줄이 궁금한 학부모들은 스케줄을 알고 싶어 했고, 선생님은 메일로 학교 스케줄을 주겠다고 했다. 그렇나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학교 스케줄은 오지 않았다. 선생님께 이메일로 여러 번 문의를 했지만, 답변 메일을 받을 수가 없었다. 만 3살인 아이들이 학교에서 도대체 어떻게 지내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이 셔틀버스는 또 어떠한가… 기사님 외 동승하는 선생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면 만 3세 아이가 차 안에서 갑작스러운 일이 발생해도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대체 어떻게 일처리를 하는지 궁금했다. 학교 행정 담당인 코스피토에게 물어보니, '문제없다.'는 답변만 왔다. 한국 같으며 운전수 외에 분명 동승하는 선생님이 최소 1명은 있었을 텐데… 나는 처음에 너무 불안해서 밤에 잠도 잘 못 잤다. 차 안에서 무슨 일이 있지는 않을까? 차가 사고 나면 누구에게 연락을 받지? 차 안에 있는 운전수가 아이들을 태우고 다른 곳에 가서 팔아버리면 어떡하지? 나는 온갖 상상이 나래를 펼치면 혼자 애만 태웠다. 운전수는 또 어찌나 자주 바뀌는지… 근데 하나같이 운전수 아저씨들이 덩치가 크고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이것은 분명 내 기분 탓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이 불안하니 사람도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5번 정도 바뀌었을까… 마지막 운전기사님인 람지는 덩치로 보자면 지금까지 본 기사님들 중에서 가장 컸다. 이슬람계 남성이었다.
아이가 어느 날은 람지가 자기를 때렸다고 했다. 나는 그때 당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어쩐지 험상궂게 생겼더니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끝도 없이 펼쳐나갔다. 나는 우선 침착하자고 마음을 쓸어내리며, 다음날 같이 타고 다니는 10살짜리 다니엘에게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개인 휴대폰 연락처를 좀 알려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다니엘은 흔쾌히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나는 언제 이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조심스럽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직 미성년자인 다니엘에게 아침마다 1~2분 정도 얼굴 보며 인사만 하는 아시아 아줌마가 대뜸 전화 또는 문자가 오면 조금 당황스럽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 나갈지 하루 종일 머리를 싸매고 고민만 하였다. 그리고 오후 4시 반, 람지는 여느 때와 같이 우진이를 차에서 내려주었다. 나는 람지의 얼굴이며 인상착의며 행동들을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차 안에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어색하게 잘 가라는 인사를 하며, 우선 우진이를 목욕부터 시켰다.
그런데 우진이가 갑자기 나에게 "엄마가 나를 때렸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우진아, 난 너 안 때렸어. 근데 왜 나한테 때렸다고 하니?”
“그냥"
아이의 거짓말이 이렇게 감사한 순간이 또 있을까! 나는 아이가 거짓말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아마도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아이러니한 순간도 마주하게 되나 보다. 속으로, ‘우진아, 거짓말해서 고마워.’라고 울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는 그냥 재미로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아이에게 거짓말하면 나쁜 것이라고 일러주었고, 그 후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겨울이면 아직 어둑어둑한 아침 8시, 집 앞에서 이 조그만 아이를 검은색 차에 실어 보내고 창밖으로 인사를 하고 나면 그 순간부터는 내 곁을 떠난 상태이다. 오후 4시 반, 우리 모자가 다시 만나는 그 시간까지는 서로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나는 내가 할 일을 하고, 아이는 또 아이가 할 일을 하며 각자의 시간을 살아간다. 학교 선생님도 학교 생활에 대해 잘 알려주지 않고, 국제학교도 학부모에게 알려주는 것이 별로 없다 보니 나는 그저 8시간 반 동안 아이가 오늘도 무사하기만을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