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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Dec 12. 2023

모딜리아니 전@오랑쥬리

화가와 화상 (feat. 폴 기욤)

오늘은 오랜만에 프랑스 문화예술 산책을 함께 떠나볼까 합니다. 사실 그동안 파리 미술관도 가고 전시회도 가는 등 문화예술 산책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 바쁜 일들이 있어서일일이 글로 남기지는 못했어요. 이제부터는 간략하게나마 기록하려고 합니다. 한국에 계신 분들께 프랑스 문화예술 소식도 전하고요. 어제는 지인들에게 노엘 선물을 하기 위해 유자차를 사러 한인 마트가 있는 리볼리역으로 향했습니다. 오전에 이것저것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고, 오후 2시 정도 늦게 출발을 했어요. 그래도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겨울의 회색빛 파리를 좋아하는 저는 일부러 몇 정거장 앞인 콩코드 역에 내려서 센 강을 따라 조금 걸을 생각이었습니다. 콩코드 역에서 내려서 뛸르리 정원으로 올라가서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렬로 가지런한 장관을 이루는 겨울 튈르리가 너무 예뻤습니다. 그렇게 풍경을 눈에 담으며 걷고 있는데, 오랑쥬리 미술관에서 모딜리아니 전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인의 모딜리아니 전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어서 언제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바쁜 관계로 선뜻 가지는 못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줄이 매우 길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예술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는 프랑스인들. 물론 관광객도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저는 대열에 합류해야겠다는 마음이 갑자기 동했습니다. 지금 보지 않으면 1월 15일에 끝나는 모딜리아니 전시를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육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모딜리아니 전을 하고 있는 오랑쥬리 미술관. 겨울의 뛸르리 정원 모습 @모니카


오랜만에 찾은 오랑쥬리. 이 미술관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첫째는 수련 연작이 있기 때문이지요. 방 이름도 수련 방입니다. 수련은 꽃의 종류이지요. 하지만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마음 수련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실제 이 방의 설명에 as a space for meditation. 즉, 명상하기 위한 공간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모네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면서 이 공간이 하나의 명상의 공간이 되길 염원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감상해야 하지요. 수련의 방. 멋진 이중적 의미를 가진 방입니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그림과 나의 둘 만의 대화이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명상의 시간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공간은 말 그대로 수련을 보며 수련하기 좋은 곳이지요.


수련 방은 명상의 방이기도 하다. @모니카


두 번 째는 제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씨가 파리 유학 시절 이곳 오랑쥬리 미술관을 자주 찾았다고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조성진 씨가 이곳에 서서 그림을 바라보며 음악적 감성을 키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끝으로, 뛸르리 정원에 있기 때문에 미술관을 관람한 뒤, 정원을 거닐 수 있지요.


미술관 규모도 옆에 있는 루브르 및 오르세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아서 너무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크지 않은 미술관 지하에는 웬만한 미술 거장의 작품들이 옹기종기 다 모여 있답니다. 그래서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시간이 꽤 소요돼요. 피카소, 르누아르, 모딜리아니, 모네를 비롯한 수많은 거장의 작품이 있습니다. 참고로 샤넬 초상화도 이곳에 있어요.


수련을 보고 나서 계단을 내려가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관계로 상설 전시를 빠르게 한번 훑은 뒤, 바로 모딜리아니 특별전시로 향했습니다. 오랑쥬리를 지키고 있는 상설 작품들은 여전히 그 아름다움과 이야기를 잘 간직하고 있었어요. 오랜만에 방문했더니 이전과 달라진 점은 몇몇 주요 작품 옆에 쉽게 쓰인 작품 설명이 붙었더라고요. 프랑스어와 영어로 각각. 아이들 눈에 맞춘 쉽고 재미있는 해설이었습니다. 또한, 곳곳에는 전에 못 보던 이동시킬 수 있는 은색빛 의자가 있었는데요, 알파벳 모양을 본뜬 의자였습니다.





모딜리아니는 어릴 적 언뜻 노랫말 가사에서 들어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비운의 화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어릴 적부터 병약했던 그는 36세에 폐결핵으로 파리 자선 병원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더욱 슬픈 사실은 잔느 에뷔테른느(Jeanne Hébuterne)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났지만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생활이 궁핍하자 그녀는 잠시 그를 떠났고 그 사이에 죽음을 맞이했어요. 얼마 후 둘째를 임신 중이었던 잔느는 아파트 6층에서 뛰어내려 그에게 갑니다. 너무 비극적인 결말이네요. 둘은 몽파르나스 한 카페에서 첫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미남이었던 모딜리아니에게는 수많은 여성들이 주위에 맴돌았다고 해요. 모딜리아니의 사진을 보는데 그 당시 양복을 멋지게 빼 입은 잘생긴 미남형이네요.


모딜리아니 전시 포스터 / 폴 기욤의 초상화는 오른쪽 흑백 사진 중 왼쪽에 있는 폴 기욤의 특징을 잘 살려냈다/ 가장 오른쪽은 미남 모딜리아니 @모니카


이번 전시의 부제는 화가와 그의 화상입니다. 잔느를 넣은 것이 아니고, 그의 화상이자 깊은 우정을 쌓은 폴 기욤입니다. 둘의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 깊은 우정을 주제로 잡은 것이지요. 폴 기욤 또한 미남입니다. 모자와 양복, 담배, 책, 콧수염, 지팡이 등을 보면서 미남이면서 멋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구두도 뭔가 특이해 보이고 패션에 일가견이 있어 보입니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폴 기욤의 초상은 그의 특징을 잘 살려냈습니다. 콧수염과 입술이 재미있으면서도 독특하네요.


이탈리아 태생인 유대인 출신 모딜리아니는 1906년 파리 몽마르트르와 몽파르나스에 거주하며 당대 화가 및 미술상과 교류합니다. 1918년 3월, 모딜리아니의 건강이 악화되고, 잔느는 임신을 하며, 세계대전으로 파리에 폭격이 가해지자 모딜리아니는 남프랑스로 거처를 옮깁니다. 남부의 아름다운 색상과 함께 세잔의 영향을 받은 그는 한층 밝고 아름다운 느낌의 인물화를 그리기도 합니다. 전시장 곳곳에는 폴 기욤과 모딜리아니가 니스에 있는 영국인 산책로(Promenade des Anglais)를 나란히 걷고 있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 둘의 지속적인 우정을 유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딜리아니 사망 후에도 폴 기욤은 프랑스와 다른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의 그림을 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니스 해변 영국인 산책로를 걷고 있는 두 사람 @모니카


모딜리아니는 여성을 많이 그렸더군요. 특이한 점은 사람의 인물화인데 눈동자가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영혼까지 알 게 되면, 그 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리겠소." 눈동자 없이 하얗게, 검게 칠한 눈에 어느 날 눈동자가 생겼습니다. 바로 연인 잔느의 초상화에 눈동자를 그려 넣은 것입니다. 여성들은 하나같이 슬퍼 보입니다. 왠지 모르게 우울해 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밝은 느낌의 그림보다는 우울한 느낌에 더욱 매료됩니다. 저란 사람이 우울해서 그런가 싶기도 합니다. 슬픈 표정, 또는 무표정의 여성을 보고 있으면 꼭 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이 모델은 그 당시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던 걸까 혼자 상상하게 됩니다. 여성의 인물화에는 목걸이가 자주 등장하네요. 개인적으로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저는 '그 당시 여성들은 목걸이를 많이 즐겨 착용했나 보다. 그런데 귀걸이와 반지는 잘 안 했나 보다.'라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눈동자가 없고, 눈동자가 있다 / 모딜리아니가 그렸던 여성 초상화를 감상하고 있는 사람들 @모니카

20세기 초, 파리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너도 나도 모여들었습니다. 1906년 파리에 도착한 그는 몽마르트르와 몽파르나스와 오가며 폴 기욤을 만나고, Rue Ravignan에 작업실을 마련해서 함께 작업합니다. 사실, 1909년부터 1914년까지 모딜리아는 조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고질적인 결핵이 앓고 있었기에 조각은 오래 하지 못했습니다. 조각 대신 회화로 돌아왔고, 인물화를 주로 집중적으로 그렸습니다. 참고로, 아프리카 예술에 관심 있던 모딜리아니는 아프리카 조각 작품도 전시장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폴 기욤과 모딜리아니의 흑백 사진, 초상화, 그들이 함께 했던 작업실 그림 및 영상을 중심으로 시종일관 이번 전시의 테마를 이끌어갔습니다. 아트 딜러 폴 기욤의 작업실에는 모딜리아니 작품이 벽에 빽빽이 걸려있습니다. 미니어처도 만들어서 전시실 한편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너무 앙증맞고 귀엽네요. 모딜리아니의 주요 대표작 전시와 함께, 1920년 대 프랑스와 미국 등의 아트 시장을 무대로 폴 기욤이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선보이는 그러한 주요 역할에 대해 집중 조명했습니다.


훌륭한 예술가 옆에는 그의 작품을 마케팅해 줄 비즈니스 맨이 있어야 하죠. 요즘 시대는 더욱 그렇습니다. 훌륭한 작가가 있으면 책을 판매해 줄 출판사가 있어야 하고, 아이돌이 있으면 세상에 홍보하고 팬덤을 형성하게 끔 하는 엔터테인먼트 기획사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모딜리아니는 그 당시 가난했습니다. 미술상 폴 기욤이 옆에서 많이 도왔지만 그의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았나 봅니다. 안타깝게도 그가 죽은 후, 잔느의 그림이 인기 있어지면서 작품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반고흐도 그렇고 모딜리아니도 그렇고 그 당시에는 빛을 못 보다가 죽은 후에 가격이 뛰는 이유는 미술 거래상의 계략이라고요. 살아생전에 비싸지면 그 돈이 다 예술가에게 가는 것이니, 예술가가 죽고 나서 진가를 발휘해야 그 돈으로 미술상이 떼돈을 번다고요. 어느 정도는 그럴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폴 기욤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요.


그래서 평소 예술가는 너무 예술만 파고들고 세상 이치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어는 정도 경제관념도 가지고 세상살이에 알아야겠지요. 이야기가 다소 딴 데로 새긴 했지만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 씨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하고 바이올린 천재인데 돈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주변 사기꾼들이 들끓었던 것이지요. 자신이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매니저가 갈취했다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쇼펜하우어의 말에 따르면 원래 타고난 천재는 이런 운명을 타고났다고 하더군요. 천재는 세상과 단절되어 자신만의 예술적 영역에 아이처럼 순수하게 미쳐 있기 때문에 세상사를 모를 수밖에 없다고요.


이렇게 모딜리아니를 만날 줄 알았다면 오전에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지 말고 조금 더 일찍 유자차를 사러 나섰어야 했는데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그림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고 미술관을 나왔습니다. 기념품 샵에서 모딜리아니 주요 작품 및 모네 수련 엽서를 샀습니다. 수련 엽서는 저희 아이를 위해 쓸 계획입니다. 아이 픽업할 시간이 촉박해서 결국 유자차는 사지 못했습니다. 유자차 보다 더욱 값진 모딜리아니와 수련을 만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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