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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an 21. 2021

포스트 뮤지엄

미술관이라는 '공간'(2)

앞서, '놀라운 것들의 방'인 미술관의 어원과 그의 제도적 역할에 대해서 얘기해봤다. 근대 미술관의 표본인 전시 공간, 화이트 큐브(White cube)를 넘어 미술관의 역할은 공공 교육 기관으로 확장되었다. 작품의 전시, 수집, 관리를 넘어서 시민 교육이라는 역할의 카테고리 추가는 국수주의나 제국주의의 발흥에 따른 기념물인 미술관의 그 유래를 희석한 듯하다.


강남의 코엑스몰, 잠심의 롯데몰, 하남의 스타필드 등 지금도 서울과 근접한 외곽도시에는 커다란 복합쇼핑몰이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곳에 한 번 들어가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 없이 한 건물 안에서 으레 주말에 할 법한 일들을 다 할 수 있다. 영화보기, 외식하기, 쇼핑하기, 게임하기, 장보기 등 그래서 그런 걸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말 또는 휴일이 되면 이런 복합쇼핑몰에 차를 끌고 간다. 복합쇼핑몰에 대해서 언급을 한 이유는, 나는 이러한 역할을 미술관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주말이 되면 차를 끌고 가서 들어가면 세끼 해결하고 하루 종일 있어도 지루하지 않고 돈 쓰는 곳으로? 반은 맞고 반은 아니다. 


현재의 대부분의 미술관에서 일반 관람객들은 '관람'만 하고 나온다. 현재 하고 있는 전시의 특성이 체험형 전시가 아닌 이상, 그저 사진만 찍으면 작품을 감상하고 선물 가게에 들려 전시 굿즈를 사고 나온다. 조금 더 미술관과 친숙한 관람객들은 도슨트를 찾아 일부러 그 시간대에 가서 전시를 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보다 더 나아가서는 미술관에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평일이나 주말에 시간을 따로 내기도 한다. 아직까진 극소수만이 이렇게 미술관을 공공의 시민 교육의 장소로 활용을 한다. 


미술관이 복합 문화 공간이 (휴일이 되면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관에 갈까? 생각을 하고 진짜 가서 전시도 보고 체험 프로그램도 하고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그러한 공간.) 되기 위해서는 교육의 역할에 지금보다 더 구체적인 세부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국민 누구에게나 그 기회가 있어야 하며, 미디어 시대를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수용하여 그것을 선보이는 일에 대해서도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존 듀이의 <경험으로서의 예술>에서 그는 예술이 예술을 위한 예술이 되어 박물관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상생활과 동떨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즉, 일상생활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예술이 나오지만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 상류층만을 위한 활동으로 자리 잡히면서 예술은 일상과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미 오랫동안 그러한 관습이 있었기에 최근까지도 미술관의 문턱은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너무 높았다. 그렇기에 미술관은 그러한 과거의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포스트 뮤지엄의 예시로, 파리의 퐁피두 현대미술관을 생각할 수 있다. 퐁피두 안에는 서점, 시네마(예술 영화 전용), 전시, 도서관이 한 건물 안에 있다. 로비에서 행위 예술가들이 퍼포먼스를 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 머물면서 공연을 '관람'한다. 미술관 어디에서나 전시가 펄쳐지는 퐁피두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다. (물론 관광지라는 장소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포스트 뮤지엄, 교육의 역할을 넘어 이제는 복합 문화 공간의 역할까지 하는 '미술관'의 미래가 기대된다. 휴일에 미술관에 가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그런 일상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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