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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Nov 14. 2020

놀라운 것들의 방

미술관이라는 '공간'(1)

지난 글에서 뒤샹의 <샘>에 대해서 얘기를 해봤는데, 글 말미에 <샘>을 '예술 작품"으로 가능케 한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앞으로 몇 개의 글로 소개를 해볼까 한다.


앞선 뒤샹의 <샘>의 경우를 통해서 미술관이 미술 작품을 제도화하는 힘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그 둘의 관계성은 일반적 생각과는 반대이다. 우리는 보통 어떠한 작품이 '예술'이기 때문에 미술관에 전시된다고 생각하지만 미술계의 역사를 거스르면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작품이 '전시'되어서 사람들에게 가치평가를 받아야만 진정한 '작품'이 된다. 이러한 행위의 주체자들이 과거 귀족에서 현재 큐레이터, 평론가, 컬렉터 더 나아가 대중(소셜미디어 서비스의 등장으로 인해서)까지 다양하게 나눠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미술관은 언제부터 그러한 역할을 했을까?


먼저, 미술관의 탄생에 대해서 알아보자. 서양 미술의 근원지인 서유럽의 언어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독일어로 놀라운 것들의 방을 뜻하는 Wunderkammer(분더카머) , 프랑스의 Cabinet curiosite(까비네 큐리오시테) ,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소장품을 전시해놓은 galleria(갈레리아, 현재 갤러리의 어원이다.) 프랑스혁명 이후, 나폴레옹의 지휘 아래 모든 소장품을 공공 전시로 바꿨을 때, 그 탄생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재와는 달리 소장과 보관, 관리의 개념만 있을 뿐, 현재와 같이 전시와 비평의 개념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천장과 밀접하게 작품들이 걸려있었다. (물론, 현재에서도 루브르에서 그러한 광경이 목격된다.) 허전한 벽을 그저 채운다라는 목적으로 빼곡하게 걸려있는 미술품들은 그렇다면 언제부터 하얀색 벽에 거리를 두고 전시되었을까?


1930년 나치에 의해서 '순수의 상징'이 된 하얀색이 미술관 벽색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도 이를 따랐고 미국으로 넘어와서 '화이트 큐브(White cube)'라는 개념의 현대적 전시 공간을 형성하였다. 천장과 벽을 하얀색으로 칠하고 조명으로 작품을 비춰 그야말로 작품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또한 벽에 걸리 작품 간의 거리는 상당했으며 심지어 한 벽면에 한 작품만 전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전시 공간'이 하나의 기준으로 규정되가고 있을 때, 반대의 목소리 또한 등장했다. 바로 제도 비판 미술이다. 여기서 알아야 하는 개념은 바로 '미술 제도'이다.

미술제도란 교육기관, 전시기구, 언론사, 정부 등 작품이 생산, 유통되는 과정에서 관련된 다양한 기구는 물론,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 컬렉터 등 이들 기관을 움직이는 사람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출처: https://redquinoa8.tistory.com/264 [기록 저장소]


즉, 미술관이 가진 사회에서 정치적 경제적 영향 및 이데올로기를 폭로하는 것이 제도 비판 미술이다. 1910년대 뒤샹의 <샘>은 그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미술관이 가진 힘이 단순하게 작품과 작가와 관람객 이 세 꼭짓점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하다. 이 공간이 가진 힘은 대량 생산된 소변기를 위대한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


이를 비판하는 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할 이야기는 오히려 미술관의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게 크다.) 본격적으로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 이 곳이 어떠한 곳인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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