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틴 Apr 21. 2024

인류가 사라진 1000년

이야기의 서막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비가 오면서 시작되었다. 

언제인지 모를, 마지막 빗소리를 기억하며 그날의 기억을 재생한다. '정말 오랜 시간 만에 비가 오는구나! 오래전, 이 비가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곤 했었지,' 라고 로봇은 그날을 되새긴다.           


비가 그치면, 언덕에 있는 다채로운 식물들이 젖은 모습을 털고 각자의 아름다운 색깔로 꽃을 피우며, 이 언덕을 아름답게 장식하곤 했던 것을 회상한다. 그 꽃들을 따라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외로움을 달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오늘 오래전 보았던 그 비가 다시 내리고 있다.      

로봇은 조금 녹슬고 딱딱해진 팔을 들어 건물 밖으로 손을 내밀어 내리는 비를 만져본다.      

"오늘 비는 유난히 따뜻하다."      

로봇은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으로 비를 맞으며 느끼는 그 순수한 마음처럼, 손바닥 위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빗방울에 즐거움을 느낀다     


이제 로봇은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은신처를 나와 언덕의 끝으로 향했다.      

매 걸음마다 발 아래에서 울리는 빗소리와 물웅덩이를 밟는 소리가 신기한지, 조심스럽게 발을 들었다 놓으며 걷는다.      


강해진 빗줄기에 몸이 젖는 줄도 모르고, 로봇은 언덕 위에서 이제는 황량하게 남겨진 도시를 바라본다. 파괴되고 방치된 건물들은 건물의 터만 남겨 두고 있으며, 어두운 구름에 싸인 도시는 오늘따라 더욱 차갑고 엄숙해 보인다. 예전에는 사람들과 화려한 불빛, 자동차와 드론이 어우러진 살아 있는 도시를 바라보곤 했지만, 지금은 비 내리는 적막함만이 로봇을 맞이한다.                    


로봇은 예전 도시의 메타거리를 바라보며, 마법사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그리워 지는 듯 멈처 서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비에 젖은 채로 서 있던 로봇은 전력 문제로 잠시 기능이 멈추어 섰다가, 마침내 자신의 은신처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건물 안에서 로봇은 젖은 몸을 신경 쓰며,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에너지를 보충해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 잠시 방전된 채 움직이지 못했던 로봇은 눈을 깜빡이며, 비가 멈추고 따스한 태양이 다시 떠오르길 갈망한다. 그리고는 그 모든 기다림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전 01화 감수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