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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taeffect Mar 01. 2024

아이덴티티를 다시 정의하기, 마케팅 (3)

이미 정의된 것에 만족하지 않고, 성장하기 위한 새로운 정의를 하기

우리는 아이덴티티(identity)의 중요성을 이미 다양한 활동을 통해 배우고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덴티티를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만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실제 기업의 활동에서 아이덴티티를 정의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어떤 기업인지를 모르고 마케팅을 한다면, 수많은 마케팅 활동과 그와 연관된 기업 활동에서 끊임없이 갈등과 이유모를 고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앞서 신맛이 나는 사과를 예로 들었듯이, '단맛이 나는 사과'를 만들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지 않는 한 우리는 '신맛이 나는 사과'를 효과적인 마케팅을 통해서 고객에게 판매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왜 신맛이 나는 사과를 만들려고 했는지에 대한 최초의 기억을 더듬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태생은 무엇인가? 아이덴티티의 DNA를 찾는 실마리


제가 몸담고 있는 바이오 의약품 위탁 생산 기업의 아이덴티티 정의의 히스토리를 더듬어보면, 기업의 태생을 잘 정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배움을 얻게 됩니다. 이 기업은 한국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중국의 우시바이오로직스, 스위스의 론자와 같은 기업과 같은 사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특정 산업 내에서의 키플레이어로서 이들은 다양한 모달리티의 의약품을 생산하여 고객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가지는 독점적인 시장지배력은 각 기업의 매출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합니다. 당연히 후발주자들은 개척자들이 이룬 성공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성장의 방법을 결정하려고 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후발주자들이 산업의 개척자들을 따라가는 방법입니다. 많은 후발주자들의 실패는 개척자들의 DNA를 그대로 모방하려는 시도에서 발생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분명 그들의 태생을 결정한 DNA와 후발주자의 태생을 이끈 DNA는 다릅니다. 많은 기업들은 단순히 키플레이어들의 사업을 파악하고 영리한 모방을 통해 성공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우리는 하나의 기업이 그 산업에 뛰어든 이유를 살펴보고, 기업의 태생을 결정한 목표를 다시 고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후발주자의 경우에는 산업의 개척자들 만큼 좋은 경험의 기회를 가지기 어렵습니다. 개척자들은 많은 바이오텍과 협업할 기회도 많을 뿐만아니라, 바이오텍을 통해서 새로운 모달리티를 가진 의약품을 함께 개발하게 되는 뛰어난 경험을 합니다. 즉 이러한 산업의 개척자들을 창의적인 도전과 혁신의 과제에 노출되어 좋은 경험을 쌓을 기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mRNA나 ADC(Antibody Drug Conjugate)와 같은 새로운 의약품 기술에 도전하는 바이오텍과 빅파마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함과 동시에 매출에도 기여할 수 있는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만날 때마다, 개척자들은 장비와 시설 그리고 전문적인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그 결과, 개척자나 키플레이어는 지속적인 규모의 성장을 하면서 동시에 기술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경영 생태계를 자연스럽게 구축할 수 있습니다. 특장 분야에서 일등이라는 깃발을 꽂는데 성공한 키플레이어들은 그 어떤 플레이어보다 더 쉽고 빠르게 변화하는 생태계에 적응할 수 있는 혜택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혜택은 마케팅, 영업, 브랜드 그리고 인재의 영역에까지 폭넓은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후발주자의 환경은 전혀 다릅니다. 


바이오 CDMO 서비스와 전통적 산업의 위탁생산 서비스는  다른가?


바이오 의약품 위탁 생산을 하는 CDMO로 선언을 했다고 해서, 개척자처럼 매출과 기술 혁신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기회는 후발 주자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개척자들의 경험 속에는 성공도 있겠지만, 실패라는 소중한 경험들이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개척자들은 고객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할 때, 가능하면 고객이 실패하는 않는 방법을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제안합니다. 하지만 후발주자는 고객과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고객에게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제시하기 보다는 성공할 것이라는 가능성만 강조합니다. 후발 주자가 태생적으로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집중하고자 하는 영역에 대한 정의를 통해 선택을 해야 하고, 선택 이후에는 강한 집중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먼저 우리는 어떤 제품을 위탁 생산하여 고객에게 진정한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바이오 의약품 모두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모달리티의 바이오 의약품 분야에서 만큼은 전문성을 육성하여 고객에게 높은 품질의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방향을 설정해야 합니다. 이는 다른 산업에서도 동일한 전략입니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사출 시설을 운영한다고 가정해 보죠. 고가의 사출 장비를 이용하여 고객을 위해 무엇이든 생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플라스틱 사출 현장에서는 각각의 시설마다 특성화된 플라스틱 제품을 사출합니다. 어떤 시설에서는 스마트폰 케이스만 사출하여 생산하고, 어떤 생산 시설에서는 볼펜의 몸통만 사출을 하고, 어떤 시설에서는 대형 버켓만 생산합니다. 고객으로부터 제공된 금형을 장착할 수 있다면 어떤 제품이든 사출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출 시설은 특정한 제품군의 생산에 집중합니다. 이는 적용할 수 있는 금형의 종류나 사출하는 플라스틱 재료 등의 요인이 영향을 주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고 사출 전문 기업이 가진 DNA에 따른 선택과 집중의 문제입니다. 잦은 사출 제품 변경을 위해서는 잦은 금형 변경을 수행해야 하는데, 매번 금형을 사출 기기에 세팅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인력 그리고 테스트 생산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생산 제품의 다양성에 따라서 경험과 학습이 더 많이 요구됩니다. 모든 플라스틱 제품을 하나의 사출 기기와 단일한 시설 내에서 생산한다는 것은 매우 비경제적인 운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고객의 입장에서 접근하자면, 고객이 사출 공장을 찾는 기준도 비슷합니다. 고객의 본인이 제작하고자 하는 플라스틱 제품과 유사한 제품을 생산한 경험과 예제가 있는 사출 공장과 일하고자 할 것입니다. 정밀함이 요구되는 제품을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경험과 노하우가 있는 사출 시설을 찾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바이오 의약품을 생산하고자 하는 바이오텍이나 바이오 제약 기업도 유사한 선택을 합니다. 바이오 의약품 생산이란 것은 마치 특정 재료의 플라스틱 사출 생산과 같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바이오 의약품은 배양을 통해서 제품을 생산합니다. 최적의 배양환경을 제공하여 배양의 수율을 높이는 것이 바이오 의약품 생산 시설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다양한 모달리티를 가진 바이오 의약품 전체를 동일한 시설과 장비로 생산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어렵습니다. 물론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면 어떤 바이오 의약품 제조 시설에서도 생산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은 이러한 불안정한 조건의 CDMO 기업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충분히 생산한 경험이 있는 기업을 원합니다. 따라서 경험이 부족한 후발 CDMO 기업은 모든 모달리티의 제품을 생산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보다 모달리티의 영역을 좁혀서 특정 카테고리에 대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이오 의약품 CDMO 사업이란 것이 생소하겠지만,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전통적인 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상식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그래서 제가 몸담은 CDMO 기업의 경우에는, 모든 바이오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이전의 부적합한 정의에서 벗어나 항체 기반의 의약품 생산 서비스에 집중하는 마케팅으로 정의를 변경하였습니다. 물론 다른 모달리티의 제품을 만들 수 있겠지만, 이 기업의 지금까지의 경험과 현재 생산 시설을 설계할 때의 제품 목표 그리고 인력들의 경험치를 점검한다면, 결국 항체 의약품을 생산하는 데 매우 경쟁력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생산 서비스 품목을 제한적으로 선택한 것에 대해 많은 내부 갈등이 있었음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부 갈등의 원인은 다양한 생산 서비스 능력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체 의약품 생산 서비스에만 집중한다는 불만이 아니었습니다.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고객의 제품은 무엇이든지 생산할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위의 사출 시설에서의 예와 같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집중을 통해서 전문성을 성장시키고, 다음 단계의 새로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을 내부에서 준비하면 됩니다. 그것이 선택과 집중의 장점입니다. 이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에 대한 공감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다시 마케팅은 아이덴티티에 대한 정의를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고객에게 의미있는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자산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 고객의 손에 전달할 수 있는 가치가 마케팅의 가치입니다. 현재는 손에 없지만 언젠가는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기초로 고객에게 우리의 가치를 과장해서도 안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실과 희망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객에서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전달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생산하여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고자 했는가에 관한 창업의 역사를 돌아본다면 우리의 DNA에 들어있는 아이덴티티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고객이 우리의 가치를 이해하고 인정하도록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가치에 대한 재정의를 통해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확립해야 합니다. 그것이 고객이 우리를 통해 듣고 싶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때론 이렇게 만들어진 정의를 차별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음에서는 이제 바이오 CDMO 현장으로 들어가서 영업과 마케팅의 고난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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